개헌 블랙홀에 청와대 빨려 들어갈라
  • 양정대│한국일보 정치부 기자 ()
  • 승인 2014.01.08 1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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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벽두 국회에서 급물살…박 대통령 국정 운영 동력 흔들 수도

새해 정치권 분위기가 예사롭지 않다. 벽두부터 개헌론이 여기저기서 불거지고 있는 탓이다. 예년 같으면 새 정부 임기 첫해에만 반짝하다 수그러들었지만 이번에는 달라 보인다.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단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가 커지고 있고, 무엇보다 여야 국회의원들이 한목소리로 개헌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박근혜정부 1년 내내 ‘불통 정권’이라는 비판이 거셌던 점을 감안하면 새해의 개헌 논의는 사실상 박근혜 대통령의 권력 기반 약화와 맞물릴 수 있다.

정치권의 개헌 움직임은 꽤나 연원이 깊다. 2007년 당시 노무현 대통령은 ‘4년 중임제 원포인트 개헌’을 직접 제안한 바 있고, 이명박 정부 때는 친이계 좌장인 이재오 의원이 분권형 대통령제 도입을 적극 주장했다. 2012년 대선 때도 4년 중임제를 거론한 박 대통령을 비롯해 민주당 문재인 의원과 무소속 안철수 의원 등 유력 후보자 모두가 개헌에 공감했다.

2013년 11월8일 열린 ‘개헌 추진을 위한 국회의원 모임’ 조찬간담회에서 참석자들이 대화하고 있다. ⓒ 연합뉴스
“여의도의 개헌 동력, 이전과 확연히 달라”

하지만 지금까지의 개헌 논의는 실질적으로 크게 확산되거나 현실화하지 못했다. 임기 말 노무현 대통령의 개헌론은 “정략적 제안”이라는 야당의 반발에 직면했다. 이명박 정부 때도 임기 초반에 정치권 안팎에서 개헌론이 거론됐지만, 여권은 논의 자체를 외면했다. 이재오 의원이 개헌 전도사를 자임하고 나선 건 이명박 대통령의 임기가 중반을 넘어가면서부터다. 개헌을 하게 되면 과정상에서든 결과적으로든 ‘살아 있는 현실 권력 체제’에 누수가 생길 수밖에 없는데, 어렵게 권력을 잡은 세력의 입장에서는 굳이 이를 감내하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개헌의 가장 큰 변수는 현직 대통령의 의중”이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이유는 차기 대권을 둘러싼 현실적인 힘의 문제다. 여야 어느 쪽이든 유력한 대권 후보가 있는 한 개헌 논의에 소극적일 수밖에 없다. 현재 정치권은 물론 일반 여론도 개헌의 핵심 포인트는 권력 분산에 있다. 개헌이 이뤄지면 대통령의 권한은 어떤 식으로든 지금보다 축소될 수밖에 없다. 노무현 정권 후반에는 정권 교체 가능성 때문에 새누리당의 전신인 한나라당이 개헌 논의에 부정적이었다. 이명박 정부 때는 여당 내부의 친박계가 반대했다.

그러나 최근 정치권 내 개헌 논의를 주도하고 있는 의원들은 한목소리로 “이번엔 다르다”고 강조한다. 여야 의원 116명이 참여하고 있는 ‘개헌 추진을 위한 국회의원 모임’(개헌모임)의 야당 측 간사를 맡고 있는 우윤근 민주당 의원은 “개헌 문제에 대한 필요성에는 공감하면서도 현실 정치적인 이유 때문에 매번 제대로 된 논의를 못해왔지만 이번엔 여야를 가리지 않고 ‘이대로는 대한민국의 미래가 없다’는 위기의식이 크다”며 “지난해보다 훨씬 더 활발하게 움직일 것”이라고 공언했다.

최근 여야 정치권의 개헌 움직임은 이전과는 몇 가지 측면에서 적잖은 차이가 있다. 우선 개헌모임 등 조직화가 상당히 진행됐다. 헌법 개정안 발의를 위한 요건을 채우는 건 시간문제인 셈이다. 개헌 논의도 구체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개헌모임의 산파 격인 새누리당 이재오 의원은 “1월부터는 개헌안을 발의할 각오가 돼 있다”고 강조했고, 우윤근 의원은 “6월 지방선거가 개헌을 위한 국민투표를 부의하기에 적절한 시기”라며 구체적인 일정까지 제안했다. 여야 의원들은 워크숍에서 향후 개헌 절차와 국회의 역할, 전국 순회 토론회 개최 등 국민적 공감대 형성 방안을 논의하기도 했다.

국회 수장들이 적극성을 보이는 것도 이전과는 다른 모습이다. 친박계 핵심으로 꼽히는 강창희 국회의장은 올해 신년사에서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해 새해에는 개헌 문제를 본격적으로 공론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최근 국회의장 헌법자문위원회를 발족시키며 개헌 논의에 힘을 실었다. 이병석 국회부의장도 개헌 찬성론자이고, 박병석 국회부의장은 개헌모임 소속이다.

이처럼 여야 모두에서 개헌 흐름이 강한 것은 정치권 전반의 지형 변화 가능성을 짐작케 한다. 여당이든 야당이든 어느 한쪽의 힘만으로는 개헌이 불가능하다는 점에서다. 당적 변화를 포함한 직접적인 정계 개편까지는 아니더라도 여야 내부의 계파·정파 간 흐름이 교차하는 계기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이철희 두문정치전략연구소 소장은 “개헌 논의는 내용에 대한 논의 못지않게 격한 대치로 점철된 정치권 내부의 지형 변화 측면에서도 주목할 만하다”고 말했다.

청와대, “지금 나라 경제가 이런데…” 못마땅

청와대는 민감하다. 개헌 논의는 사실상 다른 정치 현안과 정국의 흐름을 빨아들이는 블랙홀이 될 수 있는 만큼 박근혜 대통령 입장에선 조기 레임덕에 빠질 수도 있다. 더욱이 집권 첫해에 국정원 댓글 사건 등으로 국정 운영에서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했던 박 대통령에게 올해는 특히 중요할 수밖에 없다. 청와대의 한 수석비서관은 “지금 나라 경제가 어렵고 정치권도 국민의 신뢰를 받지 못하고 있는데 개헌 논의가 가능하겠느냐”고 애써 평가절하했다. 한 친박계 실세 의원은 아예 “박 대통령과 현 정부를 흔들려는 의도가 아니고서야 지금 개헌 논의를 얘기하는 건 뜬금없지 않으냐”고 반문했다. 정치권의 개헌 추진을 ‘정략’으로 보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최근 한길리서치나 미디어리서치 조사에서 60~80%의 국민이 개헌에 찬성할 만큼 여론의 지지가 강하다는 점이 변수로 꼽힌다. 개헌을 바라는 국회가 여론을 등에 업고 청와대를 압박할 수도 있다. 여야를 가리지 않고 개헌에 대한 문제의식이 확산된 만큼 개헌 논의가 본격화할 경우 박 대통령의 국정 운영 동력은 일정한 벽에 부닥칠 가능성이 커 보인다. 새누리당의 한 소장파 재선 의원은 “지난해는 박 대통령 집권 1년 차여서 불만이 있고 다른 생각이 있어도 말을 못했지만, 올해부터는 당의 분위기가 다를 것”이라고 말했다. 정치권의 필요에 의해 개헌 논의가 진전될 것이란 얘기다. 신율 교수는 “올해는 이전과 달리 개헌 논의가 무르익을 수 있는 여건들은 형성돼 있다고 볼 수 있다”며 “다만 구체적인 논의 과정이 직간접적으로 박 대통령의 지지 기반을 잠식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는 점에서 새누리당 내부에서 동력이 마련될 수 있을지가 중요하다”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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