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전화 없으면 장사 못합네다”
  • 이영종│중앙일보 정치부 기자 ()
  • 승인 2014.01.08 1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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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주민 휴대폰 10명당 한 명꼴 보유…통제 가능한 숫자 넘어서

북한의 휴대전화 보급량이 250만대를 넘어섰다. 인구 2400여만명의 폐쇄 국가에서 인구 10명당 한 명꼴의 휴대전화 소유는 놀라운 일이다. 김정은 조선로동당 제1비서도 스마트폰을 쓰는 모습이 포착돼 화제가 되기도 했다. 지난해 1월 김정은의 ‘국가 안전 및 대외 부문 일꾼 협의회’에서는 탁자 위에 스마트폰 형태의 검은색 휴대전화를 올려놓은 장면이 포착됐다. 정보 당국은 영상 정밀 분석을 통해 타이완 업체인 HTC사의 최신형 스마트폰인 것으로 판단했다. 북한 관영 매체들이 전하는 영상물뿐 아니라 방북자들이 직접 촬영한 화면에서도 휴대전화를 자연스레 사용하는 북한 주민들의 모습이 곳곳에서 드러난다. 북한 체신성과 합작 방식으로 휴대전화 사업을 벌이고 있는 이집트 통신업체 ‘오라스콤사’의 영업 자료를 살펴봐도 마찬가지다.

북한 평양 시내에서 주민들이 휴대전화를 사용하고 있다. ⓒ 연합뉴스
“화폐 개혁 실패 후 휴대전화 보급 본격화”

휴대전화는 한때 북한에서 위험한 물건으로 간주됐다. 2002년 11월께 일부 로동당 간부나 무역 등 대외 부문 종사자 등에 한해 극히 예외적으로 허용됐다. 하지만 2004년 4월 용천역 폭발 사건 이후 북한 당국은 휴대전화 서비스를 중단했다. 이미 보급됐던 수천 대 규모의 전화기도 모두 회수했다. 용천역에서의 대규모 폭발이 당시 중국을 방문하고 돌아오던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전용열차를 겨냥한 테러 시도였다는 정황이 드러난 것과 관련 있다는 소문이 나돌면서다. 당시 폭발에 휴대전화를 이용한 기폭 장치가 이용됐다는 것이다.

2008년 말 북한 내에서 휴대전화 사업이 재개됐다. 이번엔 사정이 확 달라졌다. 이듬해 9월 10만명을 돌파한 사용자 숫자는 2011년 5월 50만명, 2012년 2월 100만명, 같은 해 11월 150만명 등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김정일에 대한 위해 시도에 관여된 것으로까지 지목받은 휴대전화가 어떻게 이처럼 짧은 기간에 많은 주민의 필수품으로 자리 잡을 수 있었을까. 오랜 기간 대북 접촉을 해온 교포 사업가 ㄱ씨는 최근 방북 때 흥미로운 이야기를 접했다고 한다. 그에 따르면, 북한 당국은 주민들로부터 돈을 거둬들이는 수단으로 휴대전화 보급을 급속히 늘렸다. ㄱ씨는 “김정은 제1비서가 후계자로 지명된 직후 휴대전화 재보급이 결정됐다”며 “특히 2009년 11월 단행한 화폐 개혁이 실패한 뒤 자금 조달이 어렵게 되자 휴대전화 보급을 본격화한 것으로 들었다”고 말했다.

북한은 김정은의 후계자 시절 경제 업적으로 내세우기 위해 화폐 개혁을 결정했지만 시장 상인과 ‘돈주’라고 불리는 신흥 자본가 세력의 반발이 거셌다. 결국 추진이 어려워졌고, 이듬해 3월 초 박남기 계획재정부장을 희생양 삼아 공개 총살함으로써 김정은에게 화살이 날아드는 걸 피했다.

휴대전화가 북한 주민들 사이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면서 장롱 속 여윳돈을 끌어내려는 정책은 대박을 쳤다. 처음엔 일부 특권층의 전유물처럼 여겨졌지만, 평양과 지방 도시를 중심으로 보유 욕구와 필요성이 맞물리면서 보급이 급증했다. 시장 상인들 사이에서는 “손전화가 없으면 장사를 못할 정도”란 말이 나왔다. 사실 휴대전화 가격은 만만치 않은 수준이다. 초기에는 개통에만 800달러(약 84만원)가 들어간다는 얘기가 흘러나왔다. 보급 물량이 늘어나면서 가격이 다소 내려가기는 했지만 여전히 휴대전화 가격은 200달러에서 400달러 정도다. 접이식으로 불리는 폴더형은 300~400달러, 슬라이드 방식은 250달러가량에 거래된다고 한다. 최근 들어서는 스마트폰 기능과 비슷한 터치폰 방식이 유행하고 있는데 700달러(73만5000원) 정도를 들여야 구입할 수 있다는 게 북한 전문 매체들의 전언이다. 250만대의 보급 대수를 고려할 때 엄청난 돈을 거둬들였음을 짐작할 수 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대북 사업가 ㄱ씨는 “이집트 오라스콤사 관계자로부터 북한이 투자 자금에 대한 배분을 해주지 않아 애를 먹고 있다는 볼멘소리를 들었다”고 전했다. 북한 휴대전화 사업자인 ‘고려링크’는 이집트 오라스콤이 75%, 북한 체신성이 25%의 지분을 갖고 3G 이동통신망을 가동 중이다. 당연히 정기적인 결산이 이뤄져야 했지만, 오라스콤은 북한으로부터 제대로 된 통보를 받지 못했다고 한다. ㄱ씨는 “북한 측이 오라스콤 측에 지불할 외화가 부족하다는 핑계로 투자 지분에 대한 이익금을 송금하지 않고 있다고 들었다”고 말했다.

이런 상황은 일부 서방 전문가의 관측과도 궤를 같이한다. 북한 정보통신 문제를 분석해온 인터넷 매체 ‘노스코리아테크’의 마틴 윌리암스 편집장은 오라스콤 측의 지난 12월 회계보고서를 인용해 문제점을 지적했다. 고려링크의 순자산이 4억6400만 달러(약 4872억원)에 달해 오라스콤이 북한에 투자한 3억 달러를 훨씬 상회하고 있지만, 북한 당국의 환율 계산 방식을 신뢰할 수 없다는 것이다. 공식 환율과 장마당 등에서 거래되는 북한의 실제 환율의 차이가 열 배가량 된다는 점에서 고려링크의 실제 자산 규모는 10% 수준에 그칠 것이란 얘기다.

2011년 1월23일 김정일 위원장이 방북한 이집트의 나기브 사위리스 오라스콤 회장(가운데)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왼쪽은 장성택. ⓒ 연합뉴스
장성택, 막대한 휴대전화 판매 자금 주물렀나

지난해 12월 전격 처형된 장성택이 휴대전화 판매를 통해 막대한 자금을 주물렀다는 관측도 있다. 장성택은 2011년 1월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오라스콤의 나기브 사위리스 회장을 접견하는 자리에 배석했다. 북한 관영 조선중앙통신은 세 사람의 모습을 사진으로 전송해 눈길을 끌었다. 김정일이 당시 “오라스콤 전기통신회사의 투자 활동이 성과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때 방문한 이사장(사위리스 회장)을 열렬히 환영한다”며 담화를 나눴다는 게 중앙통신의 보도다. 우리 정부 당국도 김정일의 외국 기업 면담을 이례적인 일로 판단했다. 이 때문에 전문가들은 장성택 처형의 이면에 대중 석탄 수출과 같은 지하자원 이권뿐 아니라  ‘황금알을 낳는 거위’인 이동통신 사업을 통한 돈줄도 한몫한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문제는 엄청난 규모로 보급된 휴대전화가 불러올 북한 사회의 변화다. 주민들은 휴대전화를 이용해 정보를 빠르게 유통시키고 있고, 제한적이지만 외부와도 소통하고 있다. 이미 한국의 음악·영화·드라마는 주민들 사이에 깊숙이 파고들었다. 이른바 북한판 한류를 통해 북한 사회에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는 얘기다. 여기에 휴대전화가 가세했다. 공교롭게도 2010년 12월 튀니지를 시작으로 일어난 민주화 시민혁명(일명 자스민 혁명)으로 리비아·시리아 등과 함께 큰 변혁을 맞은 나라가 이집트다. 30년 독재 정권인 이집트 호스니 무바라크를 밀어낸 데는 M혁명으로 불리는 휴대전화의 역할이 컸다. 북한이 도청과 감시를 통해 철저하게 통제를 가하고 있다지만 보급된 휴대전화 대수가 이미 통제 가능한 숫자를 넘어섰다는 지적도 나온다. 장성택 처형으로 요동칠 2014년 평양 권력과 민심에 250만대의 ‘손전화’가 미칠 파장이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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