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호사 친구 돼주고 싶어 뭉쳤다”
  • 안성모 기자 (asm@sisapress.com)
  • 승인 2014.01.08 1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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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 등 공익 전문 로펌 늘어 장애인·이주노동자 등 사회적 약자 지원

“변호사는 기본적 인권을 옹호하고 사회정의를 실현함을 사명으로 한다.” 변호사법 제1조 1항에 명시돼 있는 ‘변호사의 사명’이다. 인권 옹호와 정의 실현은 변호사의 가장 기본적인 임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현실은 다르다. 변호사 자격증은 신분 상승의 보증수표로 여겨진다. 막강한 권력과 막대한 부 앞에서 ‘변호사의 사명’은 뒷전으로 밀리기 일쑤였다. 과거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다.

하지만 모든 변호사가 그런 것은 아니다. 영화 <변호인>이 흥행 돌풍을 일으키는 배경에는 인권과 정의를 부르짖은 한 변호사에 대한 감동이 있다. 배우 송강호가 열연한 송우석 변호사는 1981년 군사 정권의 용공 조작 사건인 ‘부림 사건’(부산 학림 사건)을 계기로 ‘속물’ 변호사에서 ‘인권’ 변호사로 거듭난 인물이다. 서슬 퍼런 권력과 부귀영화의 유혹 앞에서 ‘변호사의 사명’을 다한 변호인이 우리 곁에 있었다. 과거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다.

공익인권재단 ‘공감’의 염형국 변호사가 공익 변호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 시사저널 최준필
시대 변화에 따라 변호 대상 확대

영화 속 주인공의 실제 모델인 노무현 전 대통령은 부림 사건 이후 정계에 입문하기 전까지 부산·경남 일대에서 발생한 시국 사건의 변론을 도맡다시피 했다. 물론 노 전 대통령만 그랬던 것은 아니다. 많은 변호사가 인권 옹호와 정의 실현에 앞장섰다. 공안 당국 입장에서는 눈엣가시 같았지만, 민주화를 갈망한 학생·노동자에게는 든든한 버팀목이었다.

세월이 흐르면서 ‘인권 변호’는 점차 ‘공익 변호’로 확장되고 있다. 사회적 약자의 인권을 보호한다는 점에서 큰 틀에서는 차이가 없다. 다만 시대의 변화에 따라 그 대상이 확대됐다. 과거에는 시국 사건의 피해자를 주로 변호했다면 지금은 장애인, 이주노동자, 성소수자, 노숙인, 철거민 등 변호 대상이 좀 더 다양해졌다. 체계도 갖춰나가고 있다. 인권 변호사 개인의 활동이 아니라 전문성을 갖춘 공익 변호사들이 조직적으로 활동하는 것이다.

2004년 1월에 문을 연 공익인권재단 ‘공감’은 국내 최초의 공익 로펌이다. 물론 처음부터 모든 준비를 하고 시작한 것은 아니다. 사법연수원을 마친 염형국 변호사는 공익 변호사가 되고 싶다는 뜻을 갖고 당시 ‘아름다운재단’ 상임이사로 있던 박원순 서울시장을 찾아갔다. 얼마 후 사법연수원 홈페이지에 구인 공고가 올라갔다. ‘낮은 곳에 임하는 용기로 소외된 희망을 되살리겠습니다.’

이 공고를 보고 젊은 법조인 김영수·정정훈·소라미 변호사가 합류했다. 공감은 이렇게 아름다운재단 사무실 베란다에 책상 4개를 놓고 출발했다. 염 변호사는 “사법연수원에 있으면서 앞으로 삶을 어떻게 살아갈지를 고민했다. 돈을 많이 버는 게 인생의 목표가 될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좀 더 보람차고 의미 있고 사회에 기여하는 일을 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변호 수임료 무료…100% 기부금으로 운영

공감은 이후 10년 동안 인권 현장에서 전문성을 키우고 시민사회와 든든한 파트너십을 형성하면서 ‘법률 활동가 그룹’으로 성장했다. 몽골로 추방된 17세 소년, 남편의 무자비한 폭행에 사망한 베트남 여성, 화장실조차 없는 농장에서 일한 이주노동자 등이 고객이었다. 수임료는 전혀 받지 않았다. 말 그대로 공짜 변론이다.

변호사 사무실은 100% 기부금으로 운영된다. 급여도 마찬가지다. 변호사 평균 수입에 턱없이 못 미치는 금액이다. 연봉을 3000만원으로 정하고 시작했다. 정부나 기업의 지원에 기대지 않는 비영리 공익 로펌은 세계적으로도 전례를 찾기 어렵다고 한다.

공감에는 현재 변호사 7명과 상근 간사 3명이 활동 중이다. 지난 10년간의 활동을 담은 책 <우리는 희망을 변론한다>를 최근 출간했다. 젊은 변호사들이 어떻게 모이게 됐는지 밝힌 대목이 인상적이다. 노동자 전태일 열사는 “대학생 친구가 있으면 좋겠다”고 했다. 공익 로펌 공감은 “변호사 친구가 돼주고 싶은 마음으로 뭉쳤다”고 한다. 법률 서비스의 문턱이 너무 높거나, 기존의 법 자체가 불합리해 피해를 받는 것은 늘 돈 없고 힘없는 쪽이다. 법의 보호로부터 소외된 이들의 손을 잡아주는 ‘변호사 친구’가 된다는 것은 인권 옹호와 정의 실현이라는 변호사 본연의 임무를 다하는 일이라고 할 수 있다.

변론을 넘어 아예 제도 자체를 개선하기 위해 법 개정이나 입법 운동에 나서는 것도 공익 변호사의 중요한 역할 중 하나다. 염 변호사는 “법이라는 게 일종의 테두리를 만들어놓은 것이다. 테두리 안에 있는 사람은 최소한의 보호라도 받을 여지가 있지만 테두리 바깥에 있는 사람은 아예 보호의 대상조차 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물론 법을 어떻게 해석 하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지만 기존 질서를 유지하려는 법조계의 인식을 바꾸기는 쉽지 않다”고 설명했다.

이 경우 법을 개정하거나 새로 만드는 게 대안이다. 2011년 11월 일명 ‘도가니법’으로 불린 사회복지 사업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한 게 대표적인 사례다. 공감은 ‘도가니대책위원회’가 꾸려질 당시부터 주도적으로 참여해 공익이사 선임을 골자로 한 개정안을 마련하고 토론회 발제, 기자회견, 1인 시위 등에 나섰다. 도가니법의 국회 통과는 그렇게 7년 동안 노력한 결실이었다. 그 밖에도 무분별한 해외 입양에 제동을 건 입양특례법 개정, 아시아 최초로 시행된 난민법 제정, 성소수자 차별 금지 조항을 반영한 학생인권조례 통과 등을 주도했다.

최근에는 공감과 같이 공익 변호를 전문으로 하는 로펌이 하나 둘 늘어나고 있다. 공익인권변호사모임 ‘희망을만드는법’, 공익변호사단체 ‘어필’(APIL), 공익법률사무소 ‘퍼블릭 법률사무소’ 등이다. 대형 로펌인 ‘태평양’에서 공익 법률 지원을 위해 설립한 곳도 있다. 재단 법인 ‘동천’이 그것이다. 사법연수원생들이 공익 변호사를 지원하는 기금도 마련됐다. 무엇보다 공익 변호에 관심을 갖는 예비 법조인이 늘어나고 있다.

물론 공익 변호사로 활동하는 데 여러 가지 어려움이 남아 있다. 염 변호사는 “기존의 판례가 없는 새로운 소송을 많이 맡게 되는데 보수적인 법조계에서는 익숙하지 않으면 불편해하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 “변호사도 생활인이다 보니 경제적인 부분을 신경 쓰지 않을 수 없다. 후배들에게 공익 변호만 열심히 하라고 막무가내로 몰아세울 수는 없다. 법조계 전체 차원의 지원을 통해 공익 변호사를 양성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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