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충동 땅에서 금맥이라도 터졌나
  • 이석 기자 (ls@sisapress.com)
  • 승인 2014.01.09 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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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CJ·신세계·한솔 등 범삼성가 집중 매입

범삼성가가 서울 장충동 일대 땅을 집중 매입하고 있다. 삼성과 CJ에 이어 신세계그룹과 한솔그룹까지 서울 중구 장충동 1가와 2가 일대의 땅을 집중적으로 사들이고 있는 것이다. 하나의 땅이나 건물을 놓고 두 그룹이 동시에 매입 경쟁을 벌인 경우도 있다. 입소문이 나면서 주변 땅값이 하루가 다르게 치솟고 있다. 일부 부지는 2~3배의 웃돈을 줘야 겨우 살 수 있을 정도로 땅값이 폭등했다.

현재 장충동1가 110번지에는 고 이병철 창업주의 생가가 위치해 있다.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 소유로, 지금은 관리인만 이곳에 거주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런 이유로 삼성가 2·3세들 역시 일찍부터 장충동 일대에 둥지를 틀었다. 장녀인 이인희 한솔그룹 고문과 차남인 조동만 전 부회장, 삼남인 조동길 회장 등이 이 창업주의 생가 인근 ㅈ빌라에 모여살고 있다. 2012년에는 계열사인 한솔제지도 이 빌라의 두 호를 매입했다. 특히 조동만 전 부회장은 지난해 715억원의 세금을 체납해 고액·상습 체납자 1위에 올랐다. 조 전 부회장이 보유한 301호 역시 2004년 세금 체납으로 국세청에 압류됐다. 이후 공매로 나온 집을 조 전 부회장 여동생의 남편인 권 아무개씨가 사들였다. 조 전 부회장은 이 집을 아내 소유인 302호와 편법으로 연결해 세무당국의 재산 추적을 피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범삼성가가 최근 장충동 일대 부지를 잇달아 매입하면서 주목받고 있다. 왼쪽부터 호텔신라, CJ제일제당 장충동 사옥, 신세계건설 사옥. ⓒ 시사저널 임준선
이재현 CJ그룹 회장과 이미경 CJ E&M 부회장이 거주하는 4층짜리 빌라도 생가와 대각선 맞은편에 위치해 있다. 골목을 따라 조금만 내려가면 신세계건설 사옥과 신세계상품과학연구소 건물이 나온다.

삼성그룹의 경우 삼성전자 장충동 사옥을 포함해 계열사 빌딩이 여러 채 주변에 포진해 있다. 이 창업주 생가 바로 옆에 위치한 두 채의 단독주택 역시 호텔신라 소유다. 끝에 있는 집은 이재현 회장이 거주하는 빌라와 담벼락을 맞대고 있다. 이런 이유로 삼성과 CJ그룹은 1995년 분가 당시 상당한 신경전을 벌였다. 중앙일보 기자 출신인 이용우씨는 최근 출간한 <삼성뎐>(감고당)에서 “제일제당 분가 문제로 갈등이 일자 삼성은 이재현 회장이 살던 집 바로 옆 3층 주택을 사들여 감시카메라를 설치했다”며 “당시 삼성 쪽은 경비용이라 주장했다가 논란이 되자 카메라를 철거했다”고 언급했다.

CJ경영연구소 주변 빌라, 삼성이 매입

호텔신라는 최근 생가 건너편에 위치한 건물과 부지 추가 매입에 나섰다. 면세점 건물과 현재 리모델링 중인 장충체육관 사이 땅이 대상이다. 일부 땅은 호텔신라가 1970년대 말부터 매입해 보유하고 있다. 하지만 일부는 부동산 신탁 전문회사를 통해 2011년과 2012년에 집중적으로 사들였다. 도로변에 위치한 건물 일부는 2013년 3월과 10월에 각각 등기를 마쳤다. 신탁회사가 먼저 부지를 매입한 뒤 호텔신라에 넘기는 방식으로 거래가 이뤄졌다. 소문날 것을 우려한 때문으로 보인다. 현재까지 매입이 확인된 부지만 2000여 ㎡(약 600평)다. 신탁회사 소유로 아직 호텔신라에 넘어가지 않은 땅까지 포함하면 매입 부지는 더욱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이곳에서 만난 한 부동산업자는 “장충동은 예전부터 명당자리로 꼽혀왔다”며 “최근 들어 호텔신라가 주변 부지를 대거 매입하면서 개발에 대한 기대 심리가 커졌다”고 말했다.

호텔신라가 매입한 대로변 3~4층 건물은 세입자 이주를 마친 상태다. 건물들은 일반인이 들어갈 수 없도록 펜스로 가려져 있다. 호텔신라 측은 이 건물을 허물고 전통 호텔로 재개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호텔신라 관계자는 “전통 호텔 건립에 필요한 부지 매입이나 세입자 이주는 대부분 마무리된 상태”라며 “현재는 서울시의 건축 인허가를 기다리고 있다”고 밝혔다.

호텔신라는 2011년 이부진 사장 주도로 전통 호텔 건립을 추진해왔다. 4층 높이의 호텔과 3층 높이의 면세점, 근린공원 등을 조성하는 것이 골자다. 서울시는 현재 호텔 건립을 반대하고 있다. 서울시는 2012년 전통 호텔 신축 계획안을 반려한 데 이어, 2013년 7월에는 개발 예정지가 위치한 남산자연경관지구의 건축 규제 완화 결정안을 보류했다. 이로 인해 호텔 건립 계획이 지연되고 있지만, 협상이 아직 진행 중인 만큼 개발 가능성은 열려 있다고 호텔신라 측은 설명한다.

하지만 재계 일부에서는 “호텔신라가 장충동 주변 부지를 추가로 매입한 것은 결국 CJ그룹에 대한 견제용”이라고 보고 있다. 특히 CJ그룹의 의구심이 큰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과 CJ그룹은 2012년 초 장충동1가 일대 부지를 매입하는 과정에서 적잖은 신경전을 벌였다. 이재현 회장은 2007년부터 자택 맞은편 빌딩과 부지를 꾸준히 매입했다. 호텔신라와 마찬가지로 신탁회사가 매입한 뒤 CJ에 넘기는 방식이었다. 이후 지상 5층, 지하 6층 규모의 CJ경영전략연구소(이하 CJ경영연구소) 건립에 착수했다.

그러자 삼성도 CJ경영연구소 주변 부지 매입에 나섰다. 주변 부동산업자들은 한 건물을 두고 두 그룹이 동시에 매입 의사를 타진한 경우도 여러 번이라고 밝혔다. 이 과정에서 삼성 직원들이 이재현 회장을 미행한 혐의로 경찰에 고소당하기도 했다. 이재현 회장의 부친인 이맹희 전 제일비료 회장이 이건희 회장에게 상속 소송을 벌인 직후였다. CJ그룹 사정에 밝은 한 관계자는 “이재현 회장의 자택이 삼성 계열사 빌딩이나 주택에 둘러싸여 심적 부담이 컸다”며 “삼성의 압박을 견제하는 차원에서 부지 매입과 CJ경영연구소 건립을 추진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CJ그룹, 연구소 주변 정기적으로 도청 검사

당시 삼성그룹 측은 CJ와의 갈등을 부인했다. 삼성그룹 관계자는 “장충동1가 주변의 주택 활용 문제를 놓고 고민을 많이 했다”며 “주변 땅을 추가로 매입하는 방안 역시 내부에서 유력한 방안으로 논의됐다”고 밝혔다. 이재현 회장에 대한 미행 문제와 관련해서도 “삼성물산 직원이 주변 땅을 물색하는 과정에서 CJ그룹 안테나에 포착된 것일 뿐”이라고 강조했다. 사건을 수사한 검찰도 비슷한 시각이었다. 검찰은 2012년 말 삼성 직원 네 명에게 각각 벌금 10만원씩을 부과하고 사건을 종결지었다. 중국인 명의의 대포폰 5대를 구입해 삼성물산 감사팀 직원들에게 넘긴 삼성전자 감사팀 나 아무개 차장의 경우 무혐의 처분을 받으면서 미행 사건은 해프닝으로 끝났다.

부지 매입 문제로 신경전을 벌이던 삼성과 CJ그룹의 문제 역시 수면 아래로 가라앉는 듯했다. 창업주의 차명 재산을 놓고 소송을 벌이던 이건희 회장과 이맹희 전 회장의 관계에서도 역시 화해 무드가 연출되고 있다. 이맹희 전 회장은 최근 항소심에서 이건희 회장 측에 화해를 제안했다. 하지만 호텔신라가 최근 CJ경영연구소 바로 옆에 4층짜리 빌라를 매입한 사실이 밝혀지면서 서로 곤혹스런 입장이 됐다. 이 빌라는 신탁회사를 거치지 않고 호텔신라에서 직접 샀다. CJ경영연구소 바로 왼편에 위치한 건물로, 연구소와는 담 하나를 사이에 두고 마주해 있다.

호텔신라가 면세점 주변에 매입한 부지의 경우 개발이 상당 부분 진행 중이다. 서울시로부터 인허가만 떨어지면 바로 재개발이 가능한 상태다. 그러나 CJ경영연구소 옆에 위치한 빌라에는 1년 넘게 입주자들이 거주하고 있는 상태다. 이와 관련해 재계 일각에서는 “CJ가 부지를 추가해 연구소 확장을 견제하려는 것”이라는 관측을 내놓고 있다. 호텔신라도 현재 이 부지의 용도에 대해 뚜렷한 설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삼성과 CJ가 주변 땅 매입에 나섰다는 소문이 나면서 주변 땅값이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다고 부동산 관계자들은 전했다.

CJ경영연구소 오른편에 위치한 101번지와 52-22번지 역시 현재 매각이 완료된 상태다. 이 부지는 그동안 설원식 전 대한방직 명예회장의 부인 임희숙씨가 보유하고 있었다. 전체 면적이 2000㎡로 주변에서는 쉽게 구할 수 없는 물건이다. 이 땅과 건물 역시 2012년 말 한국자산신탁에 매각됐다. 신탁자가 누군지는 확인되지 않고 있지만, 실소유자는 삼성이라는 얘기가 돌고 있다.

CJ그룹은 삼성그룹의 땅 매입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삼성과 인접한 담벼락에는 CCTV로 도배하다시피 했다. 심지어 정기적으로 연구소와 이 회장 자택에 대한 도청 검사까지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CJ그룹 사정에 정통한 관계자는 “평소 사용하는 전파와 다른 종류가 연구소나 자택 내부에 포착되지 않는지 정기적으로 체크 중인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최근에는 신세계까지 장충동 땅 매입 경쟁에 뛰어들었다. CJ경영연구소에서 조금 아래로 내려가면 신세계건설 사옥과 신세계상품과학연구소가 자리하고 있다. 장충동 왕족발 타운 주변이다. 신세계그룹은 2013년부터 코람코자산신탁을 통해 이곳 일대 땅을 집중적으로 사들이고 있다. 부지를 매입하는 데 든 비용만 적게 잡아도 150억원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신세계에 부지를 넘긴 재계 인사 중에는 설원식 전 대한방직 명예회장의 부인 임희숙씨도 포함돼 있다. 이미 상당수의 족발집이 신세계의 부동산 매입으로 문을 닫은 상태다. 신세계건설과 족발집을 잇는 골목에는 출입 금지 표지판과 함께 철조망이 처져 있다. 족발집들은 영업 준비가 한창일 시간임에도 굳게 닫혀 있었다.

건물 주인이 땅을 팔면서 세입자와 소송을 벌이는 일도 잦다. 장충동에서 40년간 족발집을 운영했다는 이 아무개씨는 “어머니 대부터 족발집을 운영해왔다”며 “건물주가 한마디 상의 없이 신세계에 매각해 길거리에 나앉게 생겼다”고 토로했다. 인근에서 오랫동안 영업을 한 한양할머니 왕족발, 평북할머니 왕족발, 처갓집할머니 왕족발 등이 줄줄이 문을 닫았다. 이곳에서 만난 한 부동산업 관계자는 “일부 건물은 시가보다 2~3배 이상 비싸게 팔린 것으로 알고 있다”며 “남아 있는 족발집이 몇 개 안 된다”고 말했다. 또 다른 상인은 “장충동 하면 우선적으로 왕족발 타운을 떠올린다”며 “아직 신세계 측으로부터 매각 제의를 받지 않았지만, 제의가 와도 팔 생각이 없다”고 말했다.

이재현 CJ그룹 회장 미행 의혹을 받은 삼성물산 감사팀 소속 김 아무개 차장이 2012년 3월10일 서울 중부경찰서에서 소환조사를 받고 나오고 있다. ⓒ 연합뉴스
신세계건설 사옥 주변 ‘족발 타운’ 줄줄이 문 닫아

신세계는 이곳을 이마트의 연수원으로 활용한다는 계획이다. 이를 위해 이마트는 2013년 10월 신세계건설 사옥을 인수하는 계약까지 마쳤다. 이마트는 이미 확보한 장충동1가 주변 부지와 신세계건설 사옥을 연계해 2015년까지 도심형 연수 시설을 준공할 예정이다. 서울 중구청은 주변 부지를 리모델링 활성화 구역으로 지정해달라는 신청서를 서울시에 제출했다. 서울시가 이곳을 리모델링 활성화 구역으로 결정하면 연수원 건축이 본격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일각에서는 신세계그룹이 매입한 부지가 CJ경영연구소 등에서 멀지 않다는 점을 들어 의혹의 시선을 보내고 있다. 삼성과 CJ그룹의 땅 매입 경쟁에 신세계도 가세했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신세계그룹 관계자는 “이미 신세계건설과 신세계상품과학연구소가 주변에 위치해 있다. 최근 비정규직 인원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며 연수원을 추가로 건립할 필요성이 커졌다”며 “추가로 매입한 부지는 얼마 되지 않는다”고 해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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