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차 협공에 제네시스로 맞선다
  • 김진령 기자 (jy@sisapress.com)
  • 승인 2014.01.09 0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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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MW·벤츠 등 성능·연비 이슈 선점…현대차, 반격 고삐

현대자동차는 세계 5위권 자동차 생산업체이다. 현대보다 앞선 곳은 토요타, GM, 폭스바겐그룹, 르노-닛산 정도다. 현대차는 요즘 독일차를 잡겠다고 잔뜩 벼르고 있다. 광고에서 공개적으로 독일차를 거론하며 정면 승부에 나섰다.

현대차가 경쟁 대상으로 지목하고 있는 메르세데스-벤츠나 BMW는 현대차보다 큰 회사가 아니다. 현대차의 주요 시장인 미국·중국에서도 독일 쌍두마차의 존재감은 토요타나 GM에 비할 바가 아니다. 게다가 독일차는 실내 공간 확보나 인테리어, 편의 장치 채택에서 현대차의 경쟁 상대가 되지 못한다. 그럼에도 현대차는 최근 몇 년 사이 공공연히 독일차를 겨냥하고 있다.

이는 국내 시장 사정과 관련이 깊다. 최근 국내 시장 트렌드는 현대차의 의지대로 움직이지 않고 있다. BMW, 메르세데스-벤츠가 내세우는 성능·연비(디젤) 이슈에 현대차가 고전하는 양상이다. 이슈 파이팅에서 밀린 미국·일본 차는 국내 시장에서 힘을 못 쓰고 있다.

현대 제네시스 2014 신형. ⓒ 현대자동차 제공
지난해 현대차와 기아차의 국내 시장점유율은 각각 4%, 5%포인트 낮아졌다. 대신 수입차 점유율은 껑충 뛰었다. 지난해 1~11월 판매량이 전년 대비 20%나 늘어나는 등 15만5000대가 팔린 것으로 추산된다. 문제는 수입차에서 제일 잘 팔리는 모델이 BMW의 5시리즈, 그중에서도 디젤 모델인 520d(6290만원)라는 점이다. 지난해 1월부터 11월까지 5시리즈는 1만3841대가 팔렸는데 그중 7904대가 520d였다. 2.0ℓ 디젤 엔진을 얹고 중형차 사이즈인데도 쏘나타의 두 배 값을 받는 비결은 ‘수입차 프리미엄+독일차의 주행감’이다. 자동차 전문지 편집장인 최주식씨는 “최근 국내 소비자들도 과거 일본차 스타일의 부드러운 승차감보다는 상대적으로 하드하지만 직진 주행성이 돋보이는 독일차 스타일을 선호하고 있다”고 말했다. 여기에 디젤차의 뛰어난 연비는 플러스알파다.

국내 시장을 잠식하고 있는 독일 프리미엄 브랜드의 주력 모델이 디젤이라는 것은 아이러니다. 국내에서 디젤 엔진은 소음과 진동으로 프리미엄과 거리가 먼 이미지였다. 하지만 BMW·메르세데스-벤츠·아우디 등 독일산 프리미엄 브랜드들은 고성능·고연비의 디젤 엔진으로 한국 시장 트렌드를 바꾸고 있다.

국내 시장에서 독일 디젤차 종횡무진

벤츠의 한국 시장 주력 모델인 E클래스에서 가솔린 엔진 모델인 E300과 디젤 엔진 모델인 E220 CDI는 지난해(1~11월) 각각 4668대와 4127대가 팔렸다. C클래스에선 디젤 엔진 모델이 판매 우위를 보였다. 지난해 메르세데스-벤츠 코리아가 국내에서 판매한 차종 중 디젤차는 전체의 절반을 넘긴 것으로 알려졌다. 사정은 아우디도 마찬가지다. 중형차급인 아우디 A6는 2ℓ와 3ℓ급 엔진 모델로 나뉘고 이는 다시 디젤과 휘발유 엔진으로 분화된다. 지난해 1월부터 11월까지 2ℓ급에서 디젤 엔진 모델이 휘발유 엔진 모델보다 10배(2864대 vs 225대) 더 많이 팔렸다. 3ℓ급에선 3배 정도(3111대 vs 1168대) 더 많이 판매됐다. 지난해 11월까지 4634대가 팔린 폭스바겐의 파사트도 그중 82%(3796대)가 디젤이었다.

프리미엄 브랜드 이미지에 고성능 엔진을 얹은 독일산 디젤차는 국산 중형차 사이즈지만 가격은 대략 4000만원대 후반~6000만원대다. 국내 소비자는 사이즈에 연연하지 않고 기꺼이 지갑을 열었고 수익성 좋은 시장을 독일차들이 독식했다.

이에 대해 현대차가 반격에 나선 출발점은 제네시스 출시다. 지난해 12월 출시된 제네시스는 승차감부터 주행 능력까지 독일차를 벤치마킹했다. 제네시스의 광고를 통해 공개된 것처럼 독일 현지에서 주행 테스트를 거치는 등 독일차의 주행 감각을 이식하기 위해 애썼다.

이전부터 현대차가 우위를 보였던 인테리어나 편의 사양은 더 향상시키고 기존에 없던 상시 네 바퀴 굴림 기술(AWD)인 H트랙과 헤드업 디스플레이를 선보이는 등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에서 총력전을 펼쳤다.

시장에 나오자마자 우선 눈에 띄는 게 외부 디자인이다. 기존 쏘나타 시리즈의 개성이 강했던 날카로운 칼질(?)을 완화시키고 직선을 많이 등장시킨 게 특징이다. 일단 지난해 말까지 1만3000여 대의 계약을 맺는 등 시장 반응은 순조로운 편이다.

하지만 시장 반응은 좀 더 지켜볼 필요가 있다. 시장의 긍정적인 초기 반응에도 독일차가 주도하고 있는 연비나 디젤 라인 이슈에서 대응 카드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연비는 경쟁 차종보다 좀 떨어지고 디젤 엔진 라인 출시는 1~2년 더 기다려야 할 것으로 보인다.

독일차 메이커들은 ‘현대차는 현대차고, 독일차는 독일차’라는 식의 반응을 주로 보이고 있다. 고성능과 고연비를 선호하는 국내 시장 트렌드를 주도할 수 있다는 자신감에서다.

현대차, 주도권 다시 잡을지 주목

BMW는 지난해 하반기에 뉴5 시리즈를 선보이며 여전히 강세를 보이고 있다. 5시리즈에만 13개의 가지치기 모델을 내놓으며 시장을 선도한다. 메르세데스-벤츠는 지난해 12월 디젤 엔진을 얹은 ‘더 뉴 CLS250 CDI’를 9020만원에 내놓으며 디젤 엔진의 선택 폭을 넓히고 있다.

메르세데스-벤츠 코리아에선 E클래스가 한국 시장에서 인기 있는 이유에 대해 “주행 안정성에 대한 신뢰가 큰 데다 최근 연비 면에서도 호응을 얻고 있다”고 밝혔다. 이들은 E클래스의 디젤 모델인 E250 CDI에 네 바퀴 굴림 기술을 탑재한 포매틱 모델을 추가하는 등 경쟁력을 높이고 있다. 또 하나의 특징은 E클래스의 고객이 젊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해 6월 신형 E클래스가 선보인 뒤 고객층이 30대까지로 넓어지고 있다는 게 벤츠 측의 설명이다.

아우디도 중형차 라인인 A6에서 3.0TDI가 메인일 정도로 디젤에서 톡톡히 재미를 보고 있다. 아우디는 여기에 ‘콰트로’라는 이름의 사륜구동 옵션을 진작부터 선보였다. 최근 아우디의 마케팅 슬로건도 ‘코리아, 랜드 오브 콰트로’일 정도로 사륜구동 마케팅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아우디와 같은 그룹에 속해 있는 폭스바겐은 2ℓ급 승용 세단으로 파사트를 내놓고 있다. 폭스바겐은 프리미엄보다는 실용적 이미지가 강하다. 폭스바겐이 내세우는 파사트도 마찬가지다. ‘동급 최고의 넉넉한 공간과 트렁크+독일 엔지니어링 기술+동급 차종 최강의 연비’다.

FTA(자유무역협정)와 수입사의 마케팅 전략에 따라 독일차 가격이 내렸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국산차보다 비싸다. 이들이 주도한 고성능·디젤 이슈가 국내 마케팅 시장의 대세가 되면서 국산차 업체가 끌려가는 형국이다. 제네시스가 이런 흐름을 꺾으며 국내 시장에서 트렌드의 주도권을 다시 잡아챌 수 있을지 주목된다.


눈 감고 엔진음 들으면 독일차 느낌 
2014 신형 제네시스 시승기

최근에 나온 신차 중 제네시스만큼 기대를 모은 차종은 드물다. 현대차에서 과거와 다른 모습, 다른 퍼포먼스를 보여준다고 특히 더 강조했기 때문이다.

일단 휠베이스가 구형 제네시스보다 75㎜ 늘어나 공간 배치가 넉넉해졌다. 내부 공간 확보 분야에서 현대차가 가진 경쟁력이 드러나는 대목이다.

겉모습은 기존 국산차에서 볼 수 없었던 유러피언 클래식 카에 가깝다. 앞부분이 두툼해지고 라디에이터 그릴이 거의 기립해 있는 모습이다. 여기에 롱 후드와 롱 휠베이스는 애스턴 마틴 같은 클래식 차에서 느껴지는 취향이다.

인테리어도 동급 경쟁 차종보다 고급스럽다. 대시 보드에 나무 무늬 필름지를 사용한 게 아니라 진짜 나무를 얇게 켜낸 무늬목을 적용시켜 시각적 쾌감을 선사한다. 멀티미디어 디스플레이에 터치를 적용한 것이나 렉시콘 스피커, 차량 주변을 ‘360도 어라운드 뷰’로 보여주는 기능, 차문을 문틀에 슬쩍 갖다 대기만 하면 자동으로 스르륵 잠기는 ‘고스트 도어 클로징’ 등 편의 장치는 경쟁 차종 중 최고 수준이라는 게 현대차 측의 설명이다.

여기까지는 현대차의 기존 모델이 갖고 있는 경쟁력과 별반 다를 게 없다. 문제는 최근 트렌드로 떠오르고 있는 고성능과 주행 능력이다. 고성능에는 엔진 능력과 연비 이슈가 들어가 있다. 주행 능력에는 서스펜션과 조향 장치의 세팅, 고속으로 회전 구간을 통과할 때의 차량 반응 등이 포함된다.

시승차는 3.8ℓ V6 람다 엔진이 적용된 제네시스다. 일단 조용했다. 쉽게 시속 150km를 넘어서고 200km를 넘어도 진동이나 소음이 심드렁하게 느껴진다. 그렇다고 소음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릉그릉’ 하는 엔진음이 독일차 스타일의 엔진 소리로 세팅된 듯하다. 고속 주행 시 엔진음에 대해 시승에 참가한 기자들의 평가는 ‘눈 감고 들으면 독일차’라는 쪽으로 모아졌다. 고속으로 회전 구간을 통과할 때도 휘청거린다는 느낌보다는 딱딱하고 정확하게 제 갈 길을 짚어내는 느낌이었다. 이런 주행 능력을 운전자들은 대개 ‘하체가 단단하다’는 식으로 표현하곤 하는데, 시승 참가자들도 ‘과거보다 좋아졌다’고 평가했다.

제네시스의 주행감은 후륜 전용 8단 자동변속기, 섀시의 51.5%를 차지하는 초고장력 강판, 전자 제어로 작동되는 서스펜션, 전자식 토크 감응형 사륜구동 시스템(H트랙) 등의 협업에서 나왔다. 고성능의 한 축인 연비나 파워가 과거보다 떨어졌다는 점은 감점 요인이다. 최고 출력은 기존 제네시스 대비 20마력이 떨어지고 연비는 9.3~9.6km/ℓ에서 9.0~9.4km/ℓ로 줄었다.

신형 제네시스의 자랑인 전자식 사륜구동 시스템인 H트랙은 250만원짜리 기본 옵션이다. 제네시스 중에서 제일 싼 모델인 3.3 모던은 4660만원, 주력이 될 것으로 보이는 3.3 프리미엄은 5260만원, 3.8 익스클루시브는 5510만원이다. 옵션을 적용하면 사실상 거의 전 모델이 5000만~6000만원대 후반에 배치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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