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어디가?>에 대륙이 홀리다
  • 정덕현│대중문화평론가 ()
  • 승인 2014.01.09 0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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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의 한류 열풍’ 거센 중국 현지 취재 프로그램 포맷 수출 활발

신기한 광경이었다. 둥그런 탁자를 가운데 두고 한쪽에는 중국 후난TV 부총재와 PD 그리고 국제협력팀에서 나온 통역이 앉았고, 다른 한쪽에는 타이완 GTV에서 온 관계자가 동석했다. 중국인과 타이완 사람 그리고 한국인이 둘러앉은 다국적 회의. 거기 화제로 올라온 건 한국의 예능 프로그램이었다. 말도 다르고 국적도 다르지만 MBC의 <아빠! 어디가?> <나는 가수다>, tvN의 <꽃보다 할배> <응답하라 1994> 같은 예능 프로그램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자 분위기는 금세 화기애애해졌다. 후난TV 부총재는 대놓고 “요즘 한국에서 뜨는 예능 프로그램이 뭐냐”고 물었다. 그는 또 다른 예능 프로그램 포맷 수입을 생각하고 있었다.

ⓒ MBC 제공
왜 그렇지 않겠는가. <나는 가수다> 중국판이 지난 시즌1에 거둔 성적은 놀라운 것이었다. 자체 최고 시청률 CSM29(29개 도시 표본, 수도권 시청률에 해당) 기준 4.34%, 전국 기준으로는 2.38%를 기록했다. 이 수치는 40여 개의 위성채널이 병존하는 중국에서 대박 중의 대박이었다. 중국에서는 시청률이 1%만 넘어도 성공 프로그램으로 평가받는다. 시청률 1%를 넘는 예능 프로그램이 연간 겨우 5편 미만이다.

시청률보다 놀라운 건 이 프로그램에 대한 관심이다. 중국판 트위터 웨이보에서 3개월간 <나는 가수다> 관련 댓글은 무려 1억개가 넘게 달렸고 동영상 사이트 텐센트의 영상 총 클릭 수는 2억회에 이르렀다. 출연 가수의 몸값은 3개월 사이 10배 넘게 뛰었다고 한다.

<나는 가수다> 중국판이 중국에 부는 콘텐츠 한류의 포문을 열었다면, <아빠! 어디가?>는 중국 전역에 신드롬을 만들었다. <아빠! 어디가?> 중국판은 중국에서는 마의 시청률이라고 불리는 5%대를 넘어섰다. 점유율도 25%에 가까워 중국에서 TV를 가진 네 집 중 한 집이 <아빠! 어디가?> 중국판을 봤다는 놀라운 기록을 세웠다.

중국판 <아빠! 어디가?> 시청률 5% 넘어

<아빠! 어디가?> 중국판이 이토록 놀라운 성과를 만들어낸 배경에는 중국만의 특수한 문화적 요인이 깔려 있다. 중국에는 덩샤오핑이 추진했던 산아 제한 정책으로 한 자녀 이상을 둘 수 없게 되면서 ‘소황제’ ‘소공주’라고 불리는 독특한 아이들 세대가 생겨났다. 소황제라는 명칭이 말해주듯이 부모의 가장 큰 관심사는 자칫 이기적이고 나약하게 자라날 수 있는 아이에 대한 교육 문제다. <아빠! 어디가?>는 이 가려운 부분을 정확히 긁어주었다. 회를 거듭하면서 달라지는 아이의 모습에 중국인들은 일종의 카타르시스를 느낀다고 했다.

중국에 한국의 예능 프로그램 포맷이 이번에 처음 들어간 것은 아니다. 2003년 CCTV가 KBS <도전 골든벨>의 포맷을 구입해 중국판을 만든 것을 시작으로 2004년에는 MBC <러브하우스> 중국판, KBS <1박2일> 역시 2013년 6월 쓰촨TV에 포맷 수출 계약을 맺어 중국판이 방영됐다.

중국판 ⓒ MBC 제공
2013년 중국에서 가장 큰 반향을 일으킨 예능 프로그램은 <나는 가수다>와 <아빠! 어디가?>다. 도대체 어떤 차이가 이런 결과를 만들어냈을까. 현재 중국에서 이뤄지고 있는 예능 포맷 계약은 단순히 매뉴얼만 파는 것이 아니다. 우리 측 제작진이 직접 중국으로 날아가 중국판 제작에 일종의 노하우 전수까지 해주는 것. 이는 현재 우리 예능 포맷 계약이 여타 국가의 계약보다 중국 방송사에게 훨씬 더 매력적으로 받아들여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 때문에 ‘플라잉 PD’라는 신종 개념이 나오기도 했다. <1박2일>의 최재형 PD는 플라잉 PD로 한 달간 중국에서 제작 자문을 해주기도 했고, <나는 가수다>의 김영희 PD는 이 프로그램과 <아빠! 어디가?>의 제작 자문을 위해 수십 차례 중국을 왕래하고 있다.

기술 전수가 핵심인 중국판 예능 포맷에선 포맷 자체가 가진 경쟁력도 중요하지만 그 중국판을 만들어낼 방송사의 열의와 노력 또한 중요하다. <나는 가수다>의 성공으로 이미 중국에서는 유명 인사가 돼버린 김영희 PD는 예능 포맷 계약의 관건을 이렇게 말했다. “포맷보다 중요한 게 파트너십이다. <나는 가수다>와 <아빠! 어디가?>가 이렇게 큰 성공을 거둘 수 있었던 데는 후난TV가 가진 제작 경쟁력과 열의가 한몫했다. 노하우를 전수해주려 해도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거나 소화해내지 못한다면 아무 쓸모가 없다.”

그렇다면 중국판 <아빠! 어디가?>와 <나는 가수다>의 프로그램 완성도는 어떨까. 중국 창사 현지에서 TV를 통해 본 <아빠! 어디가?> 중국판은 여타의 방송국 예능 프로그램과는 확실히 다른 완성도를 보여주었다. 중국에서 가장 춥고 눈이 많이 내린다는 헤이룽장성에서 찍은 시즌1의 마지막 여행지를 담은 방송에서 아이들은 국내판 아이들 못지않게 귀여운 모습을 보여주었다. 중국판 <아빠! 어디가?>는 중국의 특성상 같은 시기에도 사계절을 거의 담아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그래서인지 헤이룽장성의 눈밭이라는 환경을 제대로 이용한 눈썰매 타기나 눈 조각 만들기 게임 같은 아이템이 참신하게 느껴졌다. <아빠! 어디가?> 중국판에서는 국내 버전이 그렇듯 무수한 자막과 CG(컴퓨터그래픽)가 들어가 있는데, 이것 역시 중국에서는 흔치 않은 연출이라고 한다. 그저 영상과 소리만으로 전달되던 중국 예능에 자막과 CG가 들어가 좀 더 입체적인 감각 경험을 하게 한다는 것.

무엇보다 <아빠! 어디가?> 중국판의 새로운 점은 연예인의 사생활이 공개된다는 점이다. 중국에서는 연예인이 자신의 사생활 공개를 극구 꺼리는 분위기다. 이런 다양한 요소가 맞물리면서 <아빠! 어디가?>가 중국인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었다는 것이다.

<나는 가수다> 시즌2 첫 촬영장 분위기는 우리네 <나는 가수다> 시즌1의 분위기와 흡사했다. 가수의 구성부터 발라드, 전통 가요에 이르기까지 다양했고 그들이 가진 굴곡진 인생 스토리는 관객을 더욱 열광하게 만들었다. 무대 역시 국내 제작진이 투입돼 심지어 조명까지 하나하나 직접 관리해서인지 노래의 강약에 딱딱 맞춰진 생동감 넘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MBC 상하이 지사의 최설매 매니저는 <나는 가수다> 중국판의 성공 요인을 이렇게 설명했다. “중국은 대단히 자유로운 것 같지만 민감한 부분에서는 엄격한 통제가 이뤄진다. 대중은 여기에 순응하면서도 약간의 억압을 느끼기 마련이다. <나는 가수다> 무대에 올라오는 가수 중에는 한때 잘나갔지만 중간에 여러 문제로 힘겨운 삶을 살았던 이가 많다. 이들의 노래가 관객에게는 일종의 카타르시스를 주는 것 같다.”

<나는 가수다>에 이은 <아빠! 어디가?>의 성공에 대해 중국의 광전국(우리의 방송통신위원회)은 최근 한 방송사당 1년에 한 편만 포맷 수입을 허가하는 수입 제한 조치를 취하는 등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일단 수입돼 시즌제에 들어간 프로그램은 예외로 두되 새로운 포맷을 1년에 한 편 이상은 방송할 수 없다는 것. <나는 가수다>의 성공으로 한류 콘텐츠 포맷 계약 붐이 일어나면서 상당히 많은 예능 프로그램에 중국 방송사와 계약을 맺었지만 방송되지 않고 묵혀진 것도 새롭게 생겨난 이 규제 때문이다. 중국 광전국의 이러한 규제는 현재 중국 내에 일고 있는 한류 붐이 원인 중 하나다. 즉, 현재 열풍이 불고 있는 콘텐츠 한류가 예능을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는 가장 큰 이유는 중국이 드라마보다 예능 프로그램에서 더 많이 허용을 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드라마 한류가 직접적인 콘텐츠 수출이 아닌 배우의 중국 진출로 이어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추자현, 장나라가 단적인 예다.

“지금 중국인에게 가장 필요한 건 힐링이다.” 최설매 매니저는 한국 예능 프로그램에 대한 중국인들의 선호 이유를 이렇게 표현했다. 급격한 경제 성장이 가져온 불균형은 우리나 중국이나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 실제로 <아빠! 어디가?>가 개발 시대의 권위적인 아버지상이 ‘소통하는 아빠’로 변화해가는 현 세태를 아빠와 아이의 관계를 통해 보여주는 것처럼, 중국판 <아빠! 어디가?>는 아이의 교육 문제를 프로그램이 힐링시켜주고 있는 것이다.

우리와 비슷한 가족 문화가 동질감 형성

중국 내 예능 중심으로 콘텐츠 한류 바람이 분다고 해서 무턱대고 뛰어들어 성공할 수는 없다. 가장 큰 장애물은 중국 정부의 규제다. 방송 제작에 자유로운 것처럼 보이지만 사회주의 이념을 건드리거나 국가 통제 시스템에 문제의 소지가 보이면 언제든지 규제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게 중국 현지에 있는 방송 관계자들의 이야기다. 즉, 콘텐츠 포맷 수입에 따라 한류 바람이 더 거세지고 중국 내에서 어떤 힘을 발휘하기 시작하면 정부 차원에서 민감한 문제로 받아들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또 다른 장애물은 중국과 우리의 정서 차이다. 후난TV 측은 <진짜사나이>의 포맷 수입을 고려해 한국에 방문해 촬영지까지 견학하기도 했다고 한다. 하지만 역시 군대를 보여준다는 민감한 부분 때문에 고민을 거듭하고 있다고 한다. 물론 이것은 우리에게도 마찬가지로 민감한 문제다. 최근 불거졌던 <진짜사나이>의 천안함 관련 논란이 대표적이다. 결국 이런 정서적 차이를 이겨내는 방법은 체제와 상관없이 동질성을 갖고 있는 ‘인간’에 집중하는 일이다. 군대보다는 군인에게 더 포커스를 맞췄을 때 이런 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는 것에 대해 후난TV 측도 동감하는 눈치였다.

지금이 콘텐츠 세상이라면 중국은 그 콘텐츠가 국경 없는 경쟁을 벌이는 각축장이다. 성공한 중국판 콘텐츠는 제3국으로 재판매된다고 한다. 예를 들어 중국판 <아빠! 어디가?>나 <나는 가수다>는 타이완과 홍콩에서 방영돼 큰 인기를 끌기도 했다. 이러한 중국 시장은 지금껏 국내의 콘텐츠 혹은 스타가 이끌던 한류에 새로운 흐름을 만들어내고 있다. 콘텐츠 포맷 수출은 각국이 가진 정서에 따른 변환과 리메이크가 가능하다는 점에서 기존 한류 콘텐츠 수출보다 훨씬 진일보한 형태라고 볼 수 있다. 물론 중국 정부의 허용이 언제까지 지속될 것인가에 대한 불안감은 존재하지만, 이미 새로운 한류 시장은 활짝 열렸다.

 


김영희 PD ⓒ MBC 제공
2013년 9월 김영희 PD는 베이징TV제작자협회로부터 초청을 받아 강연을 했다. 12월에는 광저우 난방TV에서 초청 강연을 했으며, 오는 2월에도 후난TV 초청 강연을 할 예정이다. 국내에서는 ‘쌀집아저씨’로 알려지며 <나는 가수다>를 기획해 주목받았던 그는 요즘 플라잉 PD로 중국에서 맹활약하고 있다. 특히 <나는 가수다>와 <아빠! 어디가?> 중국판을 만들 때 자문을 해준 그는 후난TV에서는 ‘말이 곧 법’인 인물로 통한다. 그의 말 한마디에 프로그램이 좌지우지된다는 것. 현지에서 그를 만나 중국 내에서 벌어지고 있는 콘텐츠 포맷 한류 열풍에 대해 물었다.

 

중국에서 이렇게 만날 줄 몰랐다.

나도 얼떨떨할 지경이다. 처음 <나는 가수다> 중국판 기술 자문으로 중국 땅을 밟았을 때만 해도 이 정도로 잘될지는 전혀 몰랐다. 생각보다 반향이 컸다. 우리나라에서 <나는 가수다>가 얼굴 없는 가수, 즉 실력은 있지만 주목받지 못한, 가창력 있는 가수를 선보이면서 큰 반향을 일으켰던 것처럼 중국 내에도 비슷한 처지의 가수들이 있다. 그들이 다시 무대에 서서 자신의 이야기를 담아 노래를 부르는 모습에 중국인이 열광했다. 아마도 자신의 모습을 그 가수에게 투영하지 않았나 싶다.

<아빠! 어디가?>의 인기가 어느 정도인가.

이 프로그램은 김유곤 PD가 와서 기술 전수를 해줘야 하는 건데, 매주 제작을 해야 하는 상황이라 내가 대신 프로그램 자문을 해줬다. 최근 들어 <아빠! 어디가?>의 인기가 워낙 높아서인지 강연 같은 데서 나를 소개하는 문구에 <아빠! 어디가?>를 꼭 넣더라. 그 정도로 이 프로그램에 관심이 많다. 중국판에는 일종의 CM송 같은 노래가 삽입돼 있는데 이 노래가 지금 음원 차트 1위다. 국민적인 유행가가 된 것이다. 또 <아빠! 어디가?>를 본떠 ‘○○ 어디가’라는 말이 유행어처럼 번지고 있다.

<아빠! 어디가?>를 통해 본 중국 아이들은 어땠나.

처음 <아빠! 어디가?> 촬영을 갔을 때 보니 아이들이 너무 통제가 안 되더라.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아빠들을 모아서 설득을 했다. ‘아이가 정말 귀엽고 예쁜데, 지금처럼 통제가 전혀 안 돼서는 좋은 모습으로 나갈 수가 없다. 아빠들이 도와달라’고 했다. 그래서 아빠들이 좀 더 주도적으로 아이를 이끌기 시작했다. 아이가 조금씩 바뀌는 모습이 나타나면서 아빠도 좋아하고 아이도 잘 따르고, 또 그걸 보는 시청자도 좋아하게 됐다.

중국의 콘텐츠 포맷 한류의 전망은.

새로운 물꼬 하나가 생긴 것 같다. 우리가 가진 콘텐츠 기술력이나 노하우가 외화를 벌어줄 수 있는 길이 된 것이다. 하지만 단순히 콘텐츠 전수만으로 성공의 길이 열리는 건 아니다. 중요한 건 신뢰 관계다. 꾸준히 이쪽 제작진과 우리 제작진이 소통하는 과정을 통해 쌓인 신뢰는 콘텐츠의 시너지로 이어진다. 결국 콘텐츠 포맷 한류에서는 수출이나 수입이라는 개념보다 교류가 더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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