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덟 신선이 화폭에 내려앉다
  • 안경숙│국립중앙박물관 학예연구사 ()
  • 승인 2014.01.09 0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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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중앙박물관 ‘한국의 도교 문화 - 행복으로 가는 길’ 특별기획전

할리우드 영화에서는 요즘도 <토르> <300> <퍼시 잭슨> 같은 작품을 통해 그리스·로마 신화 속의 신을 복습시키고 있지만 동양의 신은 까맣게 잊혔다. 국립중앙박물관의 특별기획전 ‘한국의 도교 문화-행복으로 가는 길’에는 그동안 잊혔던 동아시아권의 신선이 대거 등장한다. 도교 문화에서 비롯된 이들 신선이 오랫동안 우리나라를 포함한 동아시아권에서 사랑을 받은 이유는 이들이 도교 설화 속에서 인간사의 생로병사를 좌우하기 때문이다.

‘부와 권세를 누리며 건강하게 오래 사는 것’은 인간의 기본적인 욕망이다. 구석기 시대를 산 인류도 동굴에 먹고 싶은 들소와 권능을 받고 싶은 사자의 그림을 그렸다. 얻고자 하는 대상에 대한 간절한 소망을 그림에 담은 것이다. 불로불사의 존재인 신과 신선이 사람들이 복을 비는 대상으로 인기가 있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유한한 인간의 삶에 죽지도 않고 늙지도 않는다는 신선의 삶이라니 얼마나 매력적인 이야기인가.

신선 그림은 보통 중국 당대부터 유행하고 원대 이후 본격적으로 그려졌다. 명대에 와서 신선 중 가장 인기 있는 종리권(鍾離權)·여동빈(呂洞賓)·이철괴(李鐵拐)·장과로(張果老)·한상자(韓湘子)·조국구(曹國舅)·남채화(藍采和)·하선고(何仙姑) 등 8명의 신선이 팔선(八仙)으로 고정된다. 이들은 주로 군선도(群仙圖)라 하여 여신 서왕모(西王母)가 복숭아를 나눠 주는 연회 장면과 여기에 참석하기 위해 바다를 건너는 군선을 그린 <요지연도(瑤池宴圖)>, <요지연도>에서 여러 신선이 바다를 건너는 장면만 분리해서 그린 <해상군선도(海上群仙圖)> 등에 나타났다. 신선도에 그려지는 팔선의 외모와 능력은 각기 달랐지만 타고난 신분이나 빈부와 상관없이 누구나 노력 여하에 따라 신선이 될 수 있다는 긍정의 메시지가 이들 팔선이 사랑받게 되는 근본적인 이유다.

ⓒ 국립중앙박물관 제공
팔선의 능력과 신선이 된 사연

종리권은 전쟁에 나갔다가 패한 후 종남산으로 도망쳐 홀로 산속을 헤매다가 동화제군에게서 신선이 되는 다양한 비법을 전수받았다고 한다. 팔선 중 우두머리로 체격이 크고 풍채가 당당하며 푸른 눈에 아름다운 수염을 길렀는데, 윗머리를 양 갈래로 묶어 올리고 옷을 풀어헤친 채 가슴과 배를 내밀고 다닌다. 한 손에는 죽은 이를 살려내는 파초선을 들고 있다.

여동빈은 어려서부터 총명했으나 두 차례나 과거시험에 낙방한 후 종리권을 만나 신선이 되는 시험을 통과했다. 결국 종남산에 들어가 죽지 않는 비결과 검술을 전수받았다. 신선이 된 여동빈은 100세가 넘었는데도 늙지 않고 펄럭이는 옷자락에 화양건을 즐겨 쓰고 보검을 메고 다니는데, 이 보검으로 사람들을 위험에서 구해주기도 하고 가난한 사람을 도와주기도 했다.

장과로는 산에 은거하며 오래 사는 법을 터득했다. 자칭 요 임금 때 태어나 수백 살이라고 한다. 항상 흰 나귀를 거꾸로 타고 다닌다. 하얀 당나귀는 하루에 수만리를 가는데 쉴 때는 종이처럼 접어서 옷상자에 넣어두었다가 탈 때 물을 뿌리면 즉시 당나귀로 모습이 바뀌는 신통력이 있다.

이철괴는 원래 준수한 외모였다. 어느 날 태상노군을 만나기 위해 화산(華山)으로 떠나면서 제자에게 “육체를 두고 떠날 것이니 7일간 혼이 돌아오지 않으면 내 시신을 불사르라”고 명했다. 하지만 6일이 되던 날 제자는 병든 어머니가 위급하다는 소식에 스승을 기다리다 결국 육체를 불태우고 집으로 돌아갔다. 이철괴의 혼이 돌아왔을 때 그의 육체는 이미 사라져버렸고 어쩔 수 없이 근처에 있던 굶어 죽은 거지의 몸으로 들어가 지금의 모습이 됐다.

낙심하고 있을 때 호로병에서 나온 태상노군이 ‘도행은 겉모습에 있지 않다’고 깨우쳐주며 머리에 두르는 금테와 절룩거리는 한쪽 발을 지탱할 철지팡이를 주었다. 이철괴가 가진 호로병은 혼을 분리시키는 신비한 능력이 있으며 병을 치료하는 영물로 알려졌다.

조국구는 왕족으로, 송나라 인종 조태후의 동생이다. 매우 모범적인 사람이어서 방탕한 생활을 하는 조태후에게 ‘사람이 만든 법을 피할 수 있어도 하늘의 법망은 벗어날 수 없다’고 충고했지만 그의 말을 듣지 않자 집안의 재물을 다 털어서 가난한 사람에게 나눠 주고 홀로 깊은 산속에 은거해 수행에 힘쓰자 종리권과 여동빈이 찾아와 그를 신선으로 인정했다. 보통 관복에 홀을 든 모습으로 표현된다.

남채화는 그가 노래를 시작할 때면 항상 ‘답답가(踏踏歌) 남채화(藍采和)’라고 외치곤 해서 남채화라고 불렀다. 한여름에 두껍게 입고 다니는데 땀조차 흘리지 않았고, 겨울에 차디찬 눈 위에 누우면 오히려 온몸에서 열기가 나왔다고 전해진다. 남채화는 큰 박판(拍板)을 들고 시장을 돌아다니며 늘 술에 취한 채로 노래를 부른다. 어느 날 술집에서 술을 마시다 하늘에서 내려온 학을 타고 승천했다.

하선고는 유일한 여자 신선으로 어린 시절 꿈속에 나타난 신선이 운모 가루를 먹으면 몸이 가벼워지고 불사신이 될 수 있다고 가르쳐주었다. 산속을 날아다니며 과일을 가지고 돌아와 부모를 봉양해 바구니에는 항상 약초나 선도가 담겨 있는 모습으로 묘사됐다.

한상자는 팔선 중 가장 어린 신선으로 학자 한유의 조카였으나 자유롭게 돌아다니며 술만 마시는 방탕한 생활을 했다. 한상자는 늘 퉁소를 지니고 다녀 음악의 신선으로 불린다. 그가 이곳저곳 방랑하며 퉁소를 불면 그 소리를 듣고 새가 모여들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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