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영혼은 괜찮은가
  • 김선우 | 시인 겸 소설가 ()
  • 승인 2014.01.09 0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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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2월 지상을 떠난 넬슨 만델라의 장례식을 지켜보는 내내 ‘나는 내 운명의 주인/나는 내 영혼의 선장’이라는 말이 마음에 맴돌았다. 만델라 앞에 바쳐지는 무수한 헌사들 중 만델라를 가장 만델라답게 완성한 것은 ‘증오가 아닌 사랑으로, 보복이 아닌 용서와 화해를 실천한 사람’이라는 것일 테다.

감옥에 갇혀 27년을 견디는 동안 그에게 큰 힘이 되어준 시가 있다. 그는 이 시를 자주 읽고 동료 수감자들에게도 읽어주곤 했다. 19세기 영국 시인 윌리엄 어니스트 헨리의 시 <인빅터스>. 라틴어로 ‘정복되지 않는 자들’이라는 뜻을 지닌 이 시의 전문은 이렇다.

‘나를 감싸고 있는 밤은/온통 지옥 같은 암흑/신들이 어떻게 하든지/정복되지 않는 내 영혼에 감사하여라//잔인하게 쓰러진 상황이지만/나는 움츠러들지도 크게 울지도 않으리/내 머리에 피가 나도록 위협해도/나는 굽히지 않으리//분노와 비탄 너머에/어둠과 공포만이 거대하고/오랜 세월의 위협에도/나는 두려워하지 않으리//문이 좁은 것은 중요치 않다/어떤 벌도 문제 되지 않는다/나는 내 운명의 주인/나는 내 영혼의 선장인 것을’

백인에 대한 증오와 복수심이 자신의 영혼을 정복하는 것을 원치 않았던 사람. 자신이 본래 가진 선한 영혼을 지켜내고 스스로 자기 삶의 주인으로 살고자 노력했던 그는 27년간의 수형 생활 동안 자기 영혼의 주인은 자신임을 끊임없이 일깨웠고 운명의 주인으로서 자신을 온전히 지켜냈다.

만델라가 지상을 떠난 12월, 필자는 스물일곱 살 청년이 붙인 ‘안녕들 하십니까’ 대자보에 응답하는 무수한 대자보를 보며 ‘나는 내 운명의 주인/나는 내 영혼의 선장’이라는 말을 다시 떠올렸다. 당신 괜찮으냐고 한 청춘이 물었고, 많은 사람이 그에 응답할 때, 거기엔 ‘정복되지 않은 자들’의 속삭임이 있었다. 정치·경제·교육, 어디 한 군데 성한 곳 없이 엉망진창인 한국 사회가 조장하는 공포와 무기력과 냉소에 정복당하지 않으려는 안간힘으로서의 말 걸기. 세계의 냉혹함에 순응할 것을 암묵적으로 요구하는 기성의 시스템을 두드리는 연하고 보드라운 질문인 “괜찮니?” 그것은 만델라가 시 <인빅터스>를 감옥의 동료들에게 읽어주곤 했다는 그 마음과 통하는 것일 테다. 나의 고백이 당신의 고백으로 흘러가고, 이 끔찍한 지옥 속에서도 끝내 우리의 영혼을 지켜낼 수 있기를 바라는 간절함. 아, 우리는 모두 우리 삶의 주인으로 살고 싶어 하는구나.

경쟁과 낙오와 불행의 시스템을 부추기고 공고화시켜온 기성세대의 무능에도 불구하고, 오늘날의 청년들이 “당신, 괜찮아요?”라고 물어올 때, 우리 모두의 안녕을 염려하는 그 여리고 물기 많은 질문이 안쓰럽고도 가슴 뻐근하다. 기성세대의 한 사람으로서 미안하고 민망하다. 청년들은 청년의 방식으로 질문을 계속할 것이다. 말의 싹이 텄으니 알아서 진화해갈 것이다. 그러니 이제 기성세대에게 묻는다. 당신의 영혼은 괜찮은가? 자본이라는 물신에 영혼을 판 채 자신이 어떤 괴물이 되어가는지 모르는 괴물은 아닌지, 무사안일의 감옥에 자기 영혼을 처넣고 고사시키고 있지는 않은지. 우리 모두 자기 운명의 주인으로 살자고 말 건네 보는 새해 벽두다.

●외부 필자의 칼럼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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