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의 ‘기나긴 여정’ 도전자 우글거린다
  • 조재길│한국경제신문 기자·최호섭│블로터닷넷 기자 ()
  • 승인 2014.01.14 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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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트폰 시장 포화로 위기론 확산…2위권 업체들 무섭게 추격

몇 년 전만 해도 한국 경제의 엔진은 삼성전자+‘차화정’(자동차·화학·정유)이었다. 적어도 증권가에선 그렇게 불렀다. 그런데 요즘 증권가 관심사는 달랑 두 개로 줄어들었다. ‘전차’. 글로벌 경쟁력을 가진 한국 산업은 이 두 업종뿐이고, 간판은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다. 이 중 삼성전자는 국내 증시 시가총액의 20%를 차지한다. 지난해 4분기 삼성전자의 실적 추정치가 예상에 못 미친 것으로 나타나자 증시가 휘청이며(어닝 쇼크) 지수가 폭락한 것은 당연하다. 문제는 한국 증시가 삼성 집중형 구조를 보이는 것처럼 한 해 매출 300조원대의 삼성그룹도 삼성전자에 집중된 구조라는 점이다.

2012년 삼성전자는 삼성그룹 전체 매출의 45%, 당기순이익의 59%를 차지했다. 삼성전자 혼자서 나머지 계열사를 다 합친 것보다 더 번 셈이다. 때문에 삼성전자가 흔들리면 삼성그룹이 흔들리고, 한국 경제가 흔들리게 되는 것이다. 게다가 건설·엔지니어링·화학 등 다른 삼성 계열사들은 새로운 활로를 열지 못하고 있다.

이건희 삼성 회장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위기론’을 강조하며 미래 먹거리 사업 발굴을 독려하고 있다. 하지만 바이오, 의료기기, 자동차용 전지 등 5대 신수종 사업에서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1월9일 이건희 회장이 주재한 삼성그룹 신년 만찬회의 표어는 ‘the greatest journey(기나긴 여정)’. 삼성전자를 세계 전자업계 넘버원으로 끌어올린 이 회장이 현 상황을 어떻게 보고 있는지 심중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 시사저널 박은숙
 증시에서 조망한 삼성전자 위기론

서울 여의도 증권가의 펀드매니저들은 틈만 나면 “10% 룰을 풀어달라”고 요구해왔다. 10% 룰은 공모 펀드가 한 종목을 최대 10%까지만 편입할 수 있도록 하는 규제다. 다만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10%를 넘으면 예외적으로 시가총액만큼 편입할 수 있다. 현재 국내 증시에서 시가총액이 10%를 넘는 종목은 삼성전자뿐이다. 10% 룰이 해제되면 펀드매니저들이 삼성전자 주식을 시가총액 비중을 초과해 펀드에 담을 수 있다. 하지만 요즘 여의도의 분위기가 달라졌다. 10% 룰 해제는 물론 삼성전자 주식을 더 매입하겠다는 얘기도 사라졌다. ‘대장주’ 삼성전자에 대한 시각이 바뀐 것이다.

삼성전자의 사업 부문은 크게 4가지다. 반도체, 디스플레이, IM(IT·모바일), 소비자 가전(CE)이다. 현재 매출 비중을 가장 크게 차지하는 부문은 IM이다. 독보적인 입지를 구축하면서 반도체·디스플레이 등 다른 사업 부문도 스마트폰 같은 모바일 기기와의 연계성을 강화하는 추세다.

그런데 삼성전자의 ‘캐시카우’인 IM 부문이 흔들리는 모양새다. 지난 1월7일 발표한 ‘2013년 4분기 잠정 실적’에서 이런 모습이 확인됐다. 삼성전자는 ‘실적 쇼크’ 수준의 영업이익(8조3000억원)을 올렸는데, IM 부문 영업이익이 5조원대에 그친 것으로 추산됐다. 스마트폰을 사상 최대인 9550만여 대 팔고서도 영업이익이 대폭 줄어든 것이다. 올해 스마트폰 판매량이 4억대를 넘더라도 영업이익률이 떨어지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는 배경이다.

IM 부문의 영업이익은 지난해 3분기만 해도 6조7000억원에 달했다. 덕분에 삼성전자는 불과 3개월 전 ‘10조원대 분기 영업이익’이란 대기록을 달성했다.

디스플레이 부문도 부진했던 것으로 보인다. 스마트폰을 중심으로 한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판매 증가보다 대형 액정표시장치(LCD) 패널 가격 하락에 영향을 받은 것이다. 중국에서 패널 가격 경쟁이 심화하고 있는 점도 악재다. 다만 반도체 부문은 상대적으로 선방한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3분기에 이어 2분기 연속 2조원대 영업이익을 낸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D램 가격이 지난해 10월 이후 두 배가량 오르는 등 호조세를 보였기 때문이다.

삼성전자의 4분기 영업이익은 전 분기에 비해 18.31% 줄어들었다. 매출은 0.14% 줄어든 것으로 잠정 집계됐다. 영업이익률은 전 분기 17.2%에서 14% 선으로 떨어졌다. 4분기에 전체 임직원들에게 신경영 20주년 특별성과급(총 8000억원)을 지급했다는 점을 감안해도 부진한 실적이란 게 대체적인 평가다.

삼성전자는 실적 발표 후 이렇다 할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다. 실적이 잠정치란 이유에서다. 다만 내부에선 ‘일시적 부진’으로 보는 시각이 우세하다. 스마트폰·태블릿PC 등 주력 제품의 판매량이 지속적으로 늘어나고 있는 데다 반도체 가격도 오름세를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스트래티지애널리틱스(SA) 등 외부 시장조사 기관에서도 삼성전자의 올해 스마트폰 판매량과 시장점유율이 사상 최대치를 기록할 것으로 전망한다.

증권사 애널리스트들은 삼성전자의 목표 주가를 잇달아 하향 조정하고 있다. 한국투자증권은 종전 주당 200만원이던 목표가를 180만원으로 낮췄고, IBK투자증권은 180만원에서 170만원으로 조정했다. 신한금융투자는 종전 대비 10만원 낮춰 주당 165만원이 적정하다고 제시했다. 아이엠투자증권, 메리츠종금증권 등도 마찬가지다. 지난해 4분기 실적 발표 후 삼성전자 분석 보고서를 낸 증권사 두 곳 중 한 곳이 목표가를 낮췄다.

이승우 IBK투자증권 연구원은 “중요한 시점은 2분기 이후다. 애플의 대화면 제품이 시장에서 어떤 반응을 얻느냐가 내년까지 삼성전자 주가에 중요한 변수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애널리스트들은 삼성전자의 올 1분기 실적도 썩 좋지 않을 것으로 보는 시각이 많다. 매년 초는 전통적으로 IT 제품의 비수기인 데다 원화 강세가 수출 경쟁력을 떨어뜨릴 것으로 예상돼서다. 삼성전자가 오는 3월께 갤럭시 시리즈의 신모델을 내놓을 예정이란 점도 실적 부진이 점쳐지는 또 다른 요인이다. 신제품 출시를 앞두고선 대기 수요가 늘어 구제품 판매량이 꺾이기 마련이다. 송종호 KDB투자증권 연구원은 “삼성전자의 주력인 스마트폰 업황이 지난해 말보다 좋지 않기 때문에 1분기 영업이익은 9조2000억원 정도에 그칠 것”이라고 전망했다.

다만 국내 증권사들의 예측력을 얼마나 신뢰할 수 있을지는 생각해봐야 할 부분이다. 지난해 6월 JP모건이 삼성전자에 대해 부정적인 보고서를 내면서 목표가를 20만원 낮췄을 때만 해도 국내 증권사들은 코웃음 쳤다. 삼성전자 시가총액이 하루 만에 14조원 증발했을 때도 목표가나 투자 의견을 하향 조정한 증권사는 없었다. 

앞서 크레디트스위스·BNP파리바·CLSA 등 외국계 증권사는 지난해 말부터 삼성전자 실적에 비상이 걸렸다고 경고했었다. 결과만 놓고 보면 국내 증권사가 완패한 것이다.

 IT업계에서 보는 삼성전자 위기론

삼성전자가 2013년 4분기 잠정 실적 발표 이후 가장 많이 우려를 사는 부분은 역시 스마트폰 쪽이다. 2013년 3분기 삼성전자의 영업이익 중 3분의 2가 IM 사업 부문에서 나왔다. 삼성이 우위를 가져온 프리미엄 안드로이드 스마트폰 시장이 포화 상태에 이르렀고 경쟁자들이 상향 평준화되고 있는 상황도 불안을 더하는 요소다.

현재 눈앞에 닥친 삼성의 위기는 고급 스마트폰에서 찾아볼 수 있다. 최근 나온 스마트폰은 소프트웨어의 발전을 앞질러 압축 성장을 하는 바람에 교체에 대한 수요가 크지 않다. 또, 큰 수익을 내는 기기를 살 사람이 줄어들고 있는 것과 동시에 그 안에서 삼성이 더는 성능 우위를 점하기가 쉽지 않다.

삼성의 갤럭시S 시리즈는 ‘가장 빠른 프로세서’ ‘가장 큰 디스플레이’ 등을 내세웠다. 삼성이 안드로이드 시장에 빠르고 화려하게 데뷔할 수 있었던 이유는 뭐니 뭐니 해도 성능에 있다. 이를 유지할 수 있었던 힘은 프로세서부터 배터리까지 모두 다 직접 만들 수 있는 ‘제조력’에서 나왔다.

삼성은 옴니아 윈도우폰으로 승부를 보려다가 비교적 늦게 안드로이드 시장에 뛰어들었다. 시험 제품 격인 갤럭시A를 내놓았고 곧이어 본편인 갤럭시S를 내놓는다. 삼성은 이때 스펙을 전면에 내세운다. 당시 안드로이드는 일반적인 ARM 프로세서로 돌리기 쉽지 않았다. 삼성은 1GHz 프로세서와 1GB 메모리를 강조하면서 주목받기 시작했다. 이른바 슈퍼폰이었다.

삼성의 저력은 여기에서 나온다. 스마트폰에 PC를 만들던 경험을 더해 ‘빨라야 좋다’는 패러다임을 만들었다. 그리고 아주 빨리 기획해서 제품을 내놓는다. 디자인은 여러모로 애플을 따라했다는 오명을 벗긴 어렵겠지만 알맹이 자체는 디스플레이부터 프로세서, 메모리 등 모든 부품을 삼성이 직접 만들었다. 단 3개월 만에 갤럭시S를 내놓을 수 있었던 저력은 세계 최고 수준의 제조 능력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이때부터 삼성은 ‘혁신’에 목을 맨다. 그 혁신은 ‘하드웨어의 발전’으로 통한다. 삼성은 갤럭시S2를 내놓으면서 세계 최초 듀얼코어를, 갤럭시S3를 내놓으면서 또다시 세계 최초 쿼드코어 스마트폰을 내놓는다. 안드로이드는 여전히 스마트폰용으로 느리고 무거운 운영체제였지만 갤럭시S에서만은 빨랐다.

하지만 빠른 프로세서를 만들 수 있는 회사가 삼성만 있는 건 아니다. 모뎀으로 시장을 지배하는 퀄컴은 삼성의 큰 파트너이자 경쟁자다. 퀄컴이 빠른 프로세서와 통신 모뎀을 만들면 누구나 사서 쓸 수 있는 게 스마트폰 생태계다. 게다가 ‘빠른 스마트폰이 먹힌다’는 패러다임이 정립되자 저마다 빠른 프로세서를 쓰기 시작했다. 상향 평준화다. 갤럭시S4를 내놓을 즈음 삼성은 경쟁자들에게 바짝 쫓?기기 시작한다.

악재도 있었다. 삼성은 매 시리즈마다 코어 수를 2배로 올렸는데 갤럭시S4에도 이를 적용했다. 하지만 성능보다는 숫자를 두 배로 끌어올리는 마케팅 용도의 옥타코어였다. 이는 퀄컴의 쿼드코어 프로세서와 비교해도 빠르지 못했다. 게다가 퀄컴만 만들 수 있는 LTE-A 모뎀까지 겹쳐 삼성도 퀄컴의 칩을 쓸 수밖에 없게 됐다.

삼성도, LG도, 팬택도 그리고 소니, HTC도 똑같은 칩을 쓴다. 중국의 화웨이·ZTE·샤오미도 퀄컴을 쓴다. 풀HD 디스플레이에도 적용됐다. 아몰레드(AMOLED)가 삼성의 자존심을 지켜주고 있지만 IPS LCD와 아몰레드는 취향의 차이지 성능이나 세대차이는 아니다. 삼성으로서는 ‘가장 좋은 하드웨어’를 만들 기회를 얻기 어려운 상황이 됐다. 게다가 중국의 기술력과 가격 공세에 맞설 날카로운 무기가 별로 남아 있지 않다.

삼성에게 위기만 있는 것은 아니다. 저가 시장은 큰 기회이자 필수 요소다. 삼성도 이를 모르지는 않을 것이다. 기회가 될 곳이 어디인지와 그에 따른 대응은 잘 이뤄지고 있다.

최근 삼성의 전략도 상당 부분 저가폰으로 돌아섰다. 최근 삼성전자의 스마트폰 중 저가폰은 매출이나 판매량 모두 갤럭시S4, 갤럭시 노트 등 고가 라인업이 차지하는 비중을 넘어섰다. 가격과 소프트웨어는 중국·인도·남미 시장에 맞추는 노력을 하고 있다. 통신사와 유통사의 입맛에 따라 소프트웨어를 일일이 손봐서 판매하고 요구 조건에 따라 어떤 하드웨어라도 빠르게 대응할 수 있는 삼성의 다각화는 강점이다. 여전히 칩부터 디스플레이, 메모리, 배터리 세트까지 직접 다 만들어 판매할 수 있는 기업은 세계에 삼성전자뿐이다.

당장 눈앞에 닥친 주요 시장은 중국·인도·남미다. 하지만 이 시장도 마냥 밝지만은 않다. 중국에는 화웨이·샤오미 등 토종 기업들이 버티고 있을 뿐 아니라 초저가 시장에서는 이름도 없는 화이트박스 제품들이 100달러도 안 되는 가격에 수없이 유통되고 있다.

삼성이 저가 시장에서 중국 제품과 싸울 수 있는 힘은 ‘브랜드’다. 삼성의 프리미엄 브랜드를 저가 시장에도 잘 녹인다면 성장 가능성은 충분하다. 아직 시장에서 ‘갤럭시’의 브랜드 파워가 있을 때 노력이 더 따라야 할 것이다. 이미 2위권 업체의 추격은 무서울 정도다. 소비자들이 ‘삼성이나 소니나 HTC나 비슷하다’고 느끼는 순간 삼성은 어려운 길을 걷게 될 수 있다. 그 시험대는 갤럭시S5다.

아쉬운 것은 삼성이 그동안 갤럭시 브랜드를 두고 생태계를 만들지 않았다는 점이다. 안드로이드가 개방성에 뿌리를 두고 있긴 하지만 별도의 시장 지배력을 가질 수 있는 관련 액세서리 시장도 잡았어야 했다. 수많은 기업을 갤럭시 기어나 헬스 제품 같은 웨어러블 기기를 흡수하는 삼성만의 생태계로 끌어들였다면 어땠을까. 스마트 워치·저울·혈압계, 심지어 스마트폰 케이스까지 직접 만들어 시장을 좁힌 것은 여러모로 안타까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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