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가 백만장자들에게 선전포고를 하다
  • 김원식│미국 통신원 ()
  • 승인 2014.01.14 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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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블라지오 뉴욕 시장, 부자 증세 의지 7살 연상 흑인 여성과 결혼 등 가족사 파란만장

“내 어머니는 가톨릭 신자였지만 나를 교회에 데려가지 않았다. 나는 스스로 유신론자라고 생각했지만 어느 종교에도 가입하지 않았다. 나는 라틴아메리카에서 일어난 해방신학 운동의 영향을 받았다.”

지난해 8월 뉴욕 시장 선거운동이 한창이던 무렵. 빌 더블라지오(52) 당시 민주당 후보는 소셜 뉴스 웹사이트인 ‘레딧(Reddit)’에서 주최한 공개 온라인 포럼에 참석해 이렇게 말했다. 해방신학(Liberation theology)은 1960~70년대 라틴아메리카에 등장한 군사 독재 정권과 맞서기 위해 일부 가톨릭 진영에서 내놓은 마르크스주의에 기반을 둔 신학 운동을 말한다. 더블라지오는 자신이 젊었을 때 이 해방신학에서 많은 영향을 받았다고 스스로 털어놓은 것이다.

빌 더블라지오 미국 뉴욕 시장(오른쪽에서 두 번째)이 1월1일 뉴욕 시청 앞에서 열린 취임식에서 가족과 함께 손을 들어보이고 있다. ⓒ AP 연합
남미 해방신학 영향 받은 진보주의자

더블라지오가 뉴욕 시장에 당선된 이후 시장직인수위원회에 참여한 제니퍼 오스틴 공동위원장은 “그의 당선은 종교적인 가치를 지지하지만 이를 드러내지 않으려는 미국의 정치 흐름을 깨뜨린 결과였다”고 평가했다.

1월1일 뉴욕의 수장으로 공식 취임한 더블라지오 신임 뉴욕 시장은 자신에 대한 이런 평가를 달가워하지 않는다. 지난해 9월 민주당을 지지하는 뉴욕타임스가 ‘시장 후보, 한때 젊은 좌파주의자’라는 기사로 과거 행적을 거론했을 때도 그는 발끈했다. “1990년대 나 자신이 그런 이념에 영향을 받은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을 2013년에 와서 다시 거론하는 언론이 놀라울 뿐이다”라며 “사회에 대한 근본적인 변화에는 활동가 정신을 가진 진보 정신이 중요하지만, 과거 자신의 한 부분만을 부각시켜 보도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그는 뉴욕 시장 선거 내내 민주당 후보 중 ‘가장 진보적인 후보’라는 꼬리표를 붙이고 다니면서 굳이 정치적인 성향을 숨기지는 않았다. ‘해방신학’ 발언처럼 뉴욕의 새로운 진보 시장인 더블라지오를 말할 때 그의 성장 과정이나 결혼 등 살아온 삶의 궤적을 떼 놓고 말할 수 없다.

더블라지오의 부모는 1905년 이탈리아에서 미국으로 이주했다. 원래 독일계 핏줄이지만 부모의 이주 때문에 더블라지오는 이탈리아계 미국인으로 분류된다. 2012년 더블라지오가 언론과 했던 인터뷰를 보면 그의 부친은 태평양전쟁에 참전했고 그 후유증으로 심각한 알코올 중독에 빠졌다. 1961년 뉴욕에서 태어난 더블라지오가 일곱 살 때 부모는 이혼했고, 어머니가 홀로 그를 키웠다. 아버지는 폐암 등 합병증을 얻어 고생하다 1979년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평탄하지 않은 삶 속에서도 더블라지오는 뉴욕 대학(NYU)에서 학사 학위를, 콜럼비아 대학에서 국제관계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이 시기에 그는 중남미로 눈을 돌렸다. 특히 니카라과 내전 사태에 관심을 가졌고 인권과 해방신학을 다루는 여러 단체에서 활동했다. 당시 동료이자 지금은 라디오 진행자로 활동하고 있는 모린 피들러는 1월6일 ‘종교뉴스서비스(RNS)’와 가진 인터뷰에서 “당시 우리는 해방신학의 정신으로 살면서 활동했다. 우리는 그 신념이 가난한 자에게 정의를 가져다준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월가와 경찰 노조의 반발

더블라지오가 1991년 만난 셜레인 맥크레이는 그의 인생에 전환점을 만들어준 인물이다. 흑인 여성 인권운동가이자 당시 동성애자였던 7세 연상의 맥크레이와는 정치권에서 연을 맺었다. 그녀는 25세가 되던 1979년 <나는 레즈비언>이라는 책을 출간하면서 ‘커밍아웃’을 선언해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작가이자 사회운동가로 활동하던 맥크레이는 1991년 데이비드 딘킨스 당시 뉴욕 시장의 연설 담당 작가로 들어갔는데, 이때 부보좌관으로 일하던 더블라지오를 만났다. 이후 둘은 3년간의 열애 끝에 결혼에 골인했다. 매사추세츠 출신인 맥크레이는 백인 지역에서 성장하며 온갖 차별을 받았지만, 이를 극복하고 명문 사립대학인 웰리슬리 칼리지를 졸업했다. 이들의 가정은 힘든 미국 이민사, 불행한 가정환경과 인종 차별, 그리고 성적 소수자라는 미국 사회의 어두운 단면을 압축한 표본이었다.

더블라지오는 선거 캠페인을 벌이는 동안 가족을 전면에 내세웠다. 이 전략은 유색 인종과 서민층에서 폭발적인 반향을 불러왔고 압도적인 지지를 얻는 원동력이 됐다. 결과론이지만 맥크레이와 결혼한 후 얻은 19세 딸 시에라와 17세 아들 단테는 더블라지오가 뉴욕 시장 선거에서 승리하는 데 일등 공신이 됐다. 특히 그의 아들 단테는 선거 광고와 캠페인 과정에서 마치 오바마를 연상시키듯 곱슬머리 모습으로 등장했다. 흑인 아들이 말하는 백인 아버지에 대한 사랑과 가족애는 큰 감동을 불러일으켰고, 단테는 전국적인 스타로 발돋움했다. 딸 시에라의 머리 장식도 청소년들 사이에서 유행처럼 번졌다.

더블라지오 시장은 취임 이후 파격적인 행보를 밟는 중이다. 그는 법적인 시장 취임 선서를 1월1일 새벽 브루클린에 있는 자택에서 했다. 1월3일에는 폭설이 내리자 직접 자신의 집 앞에 쌓인 눈을 치운 후 지하철을 타고 시청으로 출근해 비상근무를 점검했다. 이틀 뒤인 5일에는 소문으로만 떠돌던 딸 시에라의 약물 중독설 루머에 관해 시에라가 직접 사실을 털어놓아 화제를 몰고 왔다. 그녀는 유튜브와 언론을 통해 “청소년 시절 내내 우울증을 앓았고 약물 중독에 빠져 있었다. 알코올 중독도 겪었고 대학에 다니며 마리화나를 피운 탓에 뉴욕의 한 병원에서 치료를 받기도 했다”고 고백했다. 하루 뒤인 6일에는 시장 관사로 입주하기 전, 5000여 명의 일반 시민들을 초대해 ‘집들이’를 갖고 서민과의 유대를 돈독하게 할 계획을 내비쳤다.

친기업적인 정책을 펼쳤던 마이클 블룸버그 전 시장의 12년 재임은 막을 내렸다. 그리고 블룸버그의 정책을 폐기하겠다는 더블라지오 시장이 바통을 이어받았다. 이제 막 새 선장의 지휘 아래 항해를 시작하는 뉴욕 호가 순항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무엇보다 장애물이 많다. 바꾸려고 할수록 지키려는 쪽의 반대는 거세진다. 당장 부유세를 통해서라도 빈부 격차를 줄이겠다는 그의 정책에 월가를 이끌고 있는 보수파들은 의회에서 로비전을 시작하며 견제구를 날린다. 새 시장이 “인권 차별을 개선하기 위해 즉각 폐지하겠다”고 밝힌 불심검문 문제에 뉴욕경찰(NYPD) 노조는 반기를 든 상태다. 법적 소송을 해서라도 폐지를 막겠다는 게 NYPD 노조의 입장이다. 떠나는 블룸버그가 새로 온 더블라지오에게 남긴 말은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행하라”는 한 장의 쪽지였다. 세계 주요 도시들의 북극성 역할을 했던 뉴욕이 어떻게 변모할지 더블라지오의 향후 행보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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