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청춘의 시기를 영원히 상징하다
  • 하재근│대중문화평론가 ()
  • 승인 2014.01.14 1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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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나지 않는 김광석 신드롬…시대의 희망과 좌절의 서글픔

1월6일은 가수 김광석 사망 18주기고, 1월22일은 탄생 50주년이다. 해마다 겨울이면, 겨울에 태어나 32세 겨울에 간 그를 추모하는 움직임이 있었지만 최근엔 그 열기가 더욱 뜨겁다. 일단 대구시 김광석길이나 서울 대학로 김광석 흉상 앞에선 예년과 같은 추모 열기가 나타났고, KBS 2TV <불후의 명곡>은 1월18일 방영 예정으로 김광석 편을 녹화했다. 에일리가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 알리가 <먼지가 되어>, 허각이 <사랑이라는 이유로>를 불렀다.

2월8일엔 경북대에서 추모 공연인 ‘김광석 다시 부르기’가 열린다. 이 공연은 2009년부터 시작돼 총 15개 도시를 돌며 누적 관객 5만명을 모았는데, 이는 특정 가수 추모 공연으론 초유의 기록이다. 올해는 박학기, 한동준, 동물원, 이적, 박효신 등이 참가할 예정이다.

지난 연말엔 JTBC <히든싱어>가 김광석 특집을 방영해, 김광석이 포털 사이트 실시간 검색어 1위에 오르고 음원 차트에 <서른 즈음에> <그날들> <잊어야 한다는 마음으로> 등이 등장하기도 했다. <히든싱어> 김광석 편은 시청률을 그 전주 4.27%에서 6.34%로 끌어올리며 지상파의 <인간의 조건>까지 제쳤다. 시청자의 관심이 얼마나 뜨거웠는지를 짐작케 하는 대목이다. 이번 <히든싱어>에서 화제가 된 싱어송라이터 채환은 1월22일 김광석 탄생 50주년을 기념해 신곡 <마흔 즈음에(광석이형에게)>를 발표할 예정이다.

최근 가장 화제가 됐던 드라마인 <응답하라 1994>에서도 김광석이 조명됐다. 극 중에서 삼천포가 김광석의 팬으로 등장해 윤진과 함께 김광석 콘서트를 보러 간 것이다. 작가는 삼천포의 대사를 빌어 “김광석의 음악은 영원하다”고 말하기도 했다.

ⓒ 연합뉴스
김광석의 매력

뮤지컬계에선 김광석이 가장 뜨거운 화두다. 그의 노래를 테마로 한 뮤지컬이 무려 3편이나 등장했다. <그날들>은 ‘제7회 더 뮤지컬 어워즈’에서 올해의 창작 뮤지컬상을 받았다. <바람이 불어오는 곳>은 연장 공연까지 했으며, 여기에 장진 감독이 김광석 탄생 50주년 기념 뮤지컬 <디셈버>를 연출해 김광석 신드롬에 가세했다. 김광석이 한국 창작 뮤지컬계의 젖줄이 되고 있는 것이다.

김광석 신드롬의 열기는 노래방에서도 확인된다. 반주기 제조업체 금영의 자료에 따르면 2013년 노래방 히트곡 1위는 김광석의 <먼지가 되어>였다. 음원 차트를 점령하고, 음반을 수십만 장씩 팔아치우는 아이돌들을 제친 것이다. 김광석의 노래는 요즘 SBS 주말드라마 <세 번 결혼하는 여자>에서 여주인공 엄지원의 테마곡으로도 사용되고 있다.

세상을 떠난 지 18년이나 된 가수라고는 생각하기 힘든 열기다. 김광석 신드롬은 왜 끝나지 않는 것이며, 어떻게 21세기에 더욱 강해지는 걸까.

김광석은 한 시대의 상징이다. 김광석 하면 1980년대에서 1990년대까지가 떠오른다. 그런데 바로 그 시대가 지금 대중문화계에서 가장 주목받는 시대이기도 하다. 7080 복고에서 1990년대 복고까지, 복고가 뜨고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변호인>의 폭발적인 흥행에도 복고적 감성이 한몫했다. <변호인> 후반부는 시국 사건 이야기지만 전반부는 송우석 변호사의 생활상을 중심으로 1980년대 분위기를 그려나간다. 이것은 아련히 과거를 추억하게 하는 계기로 작용해 관객의 마음을 움직였다. 지난해에 한국 대중문화계를 강타했던 <응답하라 1994>의 진정한 주인공은 쓰레기나 나정이가 아니라 ‘1990년대’였다. 이렇게 8090 시대가 뜨기 때문에, 그 시절을 상징하는 김광석의 존재감이 더 커질 수밖에 없다.

김광석은 청춘을 그리워하는 30대 이상 중·장년 세대 정서의 대변자이기도 하다. 그가 <서른 즈음에>를 부르고 바로 세상을 떴기 때문에, 그의 이름은 영원히 그 청춘의 시기를 상징하게 되었다. 시간이 아무리 많이 흘러도 김광석과 함께 청년 시절을 보냈던 사람들은 가버린 청춘을 그리워하며 김광석의 노래를 찾을 것이고, 새롭게 30대에 진입한 사람들도 이미 영원한 상징이 돼버린 김광석을 받아들일 것이다.

김광석은 8090 포크의 대표 주자로 아날로그 감성의 아이콘이기도 하다. 아날로그 감성은 이 시대가 원하는 따뜻함·위안·힐링의 정서와 관련이 깊다. 그렇기 때문에 꼭 추억이나 청춘에 대한 그리움 같은 정서를 공유하지 않더라도, 김광석의 노래 그 자체의 매력에 20대까지 빠져드는 것이다. 아이돌의 화려한 무대로 점철된 연말 ‘가요대제전’류의 무대를 보다가 그의 노래를 들으면 음악이 마음을 어루만진다는 게 무엇인지, 음악을 통한 휴식이 무엇인지 알 수 있다. 바로 이런 효과 때문에 연말 <히든싱어> 김광석 편에 큰 관심이 쏟아졌을 것이다.

김광석은 또 서사와 서정을 아우르는 폭넓은 정서를 담고 있는데, 바로 이것이 그의 노래가 뮤지컬계의 뜨거운 사랑을 받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는 원래 민중가요계 출신이기 때문에 그의 노래에선 기본적으로 시대의 고통이 느껴진다. 이것은 ‘안녕들 하십니까’라는 대자보가 신드롬을 일으키는 요즘의 상황하고도 맞아떨어진다.

동시에 그는 <잊어야 한다는 마음으로> <사랑이라는 이유로>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처럼 애절한 사랑 노래도 불러 서정적인 감동까지 줬다. 그는 또 인생의 어느 한 순간엔 누구라도 공감할 수밖에 없는 다양한 정서를 노래했다. 군 생활을 경험한 모든 청춘이 공감할 <이등병의 편지>, 중·장년 세대의 송가가 된 <서른 즈음에>,

실연의 아픔을 당한 사람들이 공감할 <사랑했지만>, 노년의 심정을 담은 <어느 60대 노부부의 이야기> 등 다양한 공감의 지점들이 있기 때문에 폭넓은 사랑을 받고, 뮤지컬 스토리의 원천이 될 수 있는 것이다. 힘찬 희망과 좌절의 서글픔이 동시에 교차하는 그의 음악 세계는 젊은 세대에게도 시대를 뛰어넘는 공감을 준다.

지난해 12월20일 서울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시작된 김광석 50주년 기념 뮤지컬 의 한 장면. ⓒ 연합뉴스
노래다운 노래에 대한 열망

김광석뿐만이 아니다. 트윈폴리오 신드롬이 있었고, 지난해에 김현식과 들국화가 다시 조명받았으며, 신인 가수들 중에선 버스커버스커와 악동뮤지션이 떴다. 20여 년간 군림한 ‘보는 음악’에 지친 사람들이 이젠 ‘들을 만한 노래’를 찾는 것이다. 김광석은 아이돌들이 생산해내는 보는 음악의 대척점에 선 ‘듣는 음악의 아이콘’이라고 할 수 있다.

오디션 프로그램에서도 후반 결선에 등장하는 잘 편곡된 화려한 노래들보다 초반 예선에서의 소박한 노래들이 시청자의 뜨거운 사랑을 받는다. 이 역시 듣는 음악에 대한 열망이 빚어낸 현상이다.

가사가 정확히 들리고, 그 가사가 나의 정서를 대변해주며 내 마음을 어루만져줄 때, 그리고 그것이 마음을 울리는 멜로디와 진심을 담은 목소리로 표현될 때 사람들은 음악에 감동한다. 김광석은 바로 그런 노래들을 남긴 가수였다. 김광석 신드롬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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