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현대차·LG는 중국 산업스파이의 표적
  • 김지영 기자 (abc@sisapress.com)
  • 승인 2014.01.22 0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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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강·자동차·전자 핵심 기술 유출 ‘초비상’ 한국 기업 인수해 기술만 빼 가는 ‘먹튀’도

삼성 ‘애니콜’이 ‘애미콜(amycall)’, 참이슬은 ‘한(韓)이슬’, 초코파이 대신 ‘코코파이’ 등. 한국의 유명 제품을 판박이처럼 모방하는 ‘카피캣(copycat)’이었던 중국이 이제는 ‘코리아 기술 헌터(hunter)’로 변신했다. 한국의 핵심 산업 기술을 ‘쏙쏙’ 빼내 이를 활용한 제품 개발에 나서며, 한국의 산업 경쟁력을 위협한다. 특히 반도체·디스플레이·스마트폰·자동차·IT 등 한국 주력 산업 분야의 기술 유출이 심각한 문제로 부상하고 있다.

<시사저널>이 국가정보원(국정원) 산업기밀보호센터를 통해 입수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에서 해외로 기술을 빼돌리려다가 적발된 사건은 총 49건이다. 산업기밀보호센터가 설립된 2003년부터 지난해까지 총 343건의 기술 유출 기도 사건이 발생했는데, 한 해 평균 40여 건꼴이다. 또 해외로 빠져나갈 뻔했던 기술 세 건 가운데 한 건 이상이 수출 주력 업종인 전기·전자 부문이다.

산업기밀보호센터가 지난 5년간 기술 유출을 시도하려 했던 산업 분야를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전기·전자업이 74건으로 전체의 35%를 차지했다. 이어 정밀기계(64건), 정보통신(25건), 화학(12건), 생명공학(7건), 기타(27건) 순으로 나타났다. 특히 전기·전자와 기계 분야가 64%로 절반 이상을 차지해 한국의 국제 경쟁력이 뛰어난 산업이 해외 ‘기술 사냥꾼’의 주 타깃 대상이었다. 이들 기술이 한국 정부의 감시망을 피해 해외로 빠져나갔다면, 지난 한 해에만 약 50조원의 피해를 입었을 것으로 산업기밀보호센터는 추정한다.

“산업 기술 유출 가운데 60% 이상이 중국으로”

이 가운데 중국으로 유출될 뻔했던 경우가 과반을 넘는다. 산업기밀보호센터 관계자는 “지금까지 유출된 우리나라 기술의 최소 60% 이상이 중국으로 빠져나간 것으로 추정된다”며 “2006년까지는 주로 IT와 반도체 분야에 집중됐으나 2007년에는 자동차·조선·철강 등 한국이 경쟁력을 가진 대다수 분야로 확산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중국으로 기술이 유출된 사건도 해마다 끊이지 않는다. 2007년 현대자동차 변속기 생산 기술과 포스코 철강재 제조 기술이 중국으로 빠져나갔다. 2008년에는 LG전자의 PDP 패널 생산 기술이 유출됐고, 2010년에는 삼성·LG전자의 휴대전화 주요 부품이 중국으로 흘러들어갔다. 지난해에도 LED와 반도체 공정 설계 도면 등이 중국으로 유출됐다. 중국으로 빠져나가기 직전 가까스로 국정원에 적발된 사건도 적지 않다. 2007년에는 대우조선해양의 선박 기술 유출 기도 사건이 발생했다. 2009년에도 LG전자 에어컨 ‘휘센’에 쓰이는 플라즈마 표면 처리 기술이 중국으로 빠져나갈 뻔했다. 이어 삼성전자 세탁기 등 백색가전처리 기술(2011년), 삼성전자 LTE 모뎀 등 스마트폰 핵심 기술(2012년)에 대한 유출 기도 사건이 발생했다.

업계 관계자에 따르면 국내에서 산업 기밀 보안에 가장 많이 투자하고 있는 삼성그룹에서조차 매년 1~2건씩 중국으로 기술이 유출되려다 적발됐다. 기술 보안에 둔감한 중소기업의 경우 기술 유출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고 볼 수 있다.

중국이 한국 기술만 노리는 것은 아니다. 기술 강대국인 미국·독일·일본 등도 중국의 타깃이다. 미국과 일본은 이미 오래전부터 중국을 주시해왔다. 1998년 미국 산업보안협회(ASIS)가 500개 기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중국을 가장 위험한 산업스파이 국가로 꼽은 기업체가 41%에 달했다. 일본 경제산업성이 2006년에 625개 기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서도 ‘산업스파이 위험 국가’ 1위(63.5%)는 중국이었다.

문제는 중국이 미국·독일·일본에 비해 한국의 기술을 더 선호한다는 점이다. 한국은 원천기술 개발보다 제품을 조립하고 가공하는 기술 활용 능력이 뛰어나기 때문이다. 산업기밀보호센터 관계자는 “한국 기술은 빼내기만 하면 바로 상용화할 수 있지만 기술 선진국의 원천기술은 중국이 응용하기엔 아직 어려운 수준”이라며 “중국으로 기술이 유출되면 한국은 일본과 기술 경쟁을 하는 동시에 중국과는 가격 경쟁을 해야 하는 샌드위치 신세가 된다”고 말했다.

기술 빼내는 중국의 수법 진화

중국이 한국 기술을 빼내는 수법도 점점 진화하고 있다. 그 유형은 크게 ‘인력 유출형(Humanware)’과 ‘기술 유출형 M&A(인수·합병)’로 나뉜다. ‘인력 유출형’은 말 그대로 사람을 통해 기술을 빼가는 수법이다. 주로 기업의 전·현직 직원을 매수하거나 중국인 산업스파이를 동원하는 식이다. 국정원 산업기밀보호센터가 2009년부터 지난해까지 최근 5년간 기술 유출 기도 사건을 적발한 내용을 보면, 전직 직원이 연루된 경우가 127건으로 전체의 61%에 달했다. 현직 직원이 직접 빼돌리려다 붙잡힌 경우도 41건(20%)이다.

영화 ‘007 시리즈’처럼 중국계 산업스파이도 인력 유출형에 해당된다. 국제 무대에서 중국은 이미 ‘산업스파이’ 국가로 악명을 떨치고 있다. 미국은 지난 2007년 국가대외무역위원회 위원장이 “중국인 산업스파이 활동에 중국 정부가 개입돼 있다”고 공개적으로 발표하며 중국을 강도 높게 비난한 바 있다. 독일은 아예 중국인 유학생을 산업스파이의 주범으로 지목하기도 했다. 독일 정보기관인 헌법보호청(헌보청)은 2006년 보고서에서 “중국 유학생·실습생·교수·연구원이 외국 대학·연구소 등에 정보 수집 목적으로 투입돼 수년 전부터 성과를 거두고 있다”며 “중국인의 산업 기밀 수집 활동 배후에 중국 정보기관이 있다”고 지적했다.

국내에서도 중국인 ‘산업스파이’가 기술을 빼내려 한 사건이 있었다. 2007년 삼성중공업 LNG선 카고탱크 기술을 빼내려 했던 선주감독관과 2011년 삼성전자 백색가전 소음 방지 기술을 빼내려 했던 수석연구원 모두 중국인 산업스파이였다.

중국이 국제사회의 비난에도 불구하고 사람을 동원해 ‘산업스파이 활동’을 지속하는 데는 비용 절감을 위한 측면이 크다. 산업스파이 한 사람을 통해 그가 체화하고 있는 수천억 원대 가치를 지닌 기술 지식을 통째로 흡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 2007년 중국이 포스코 전 직원을 통해 빼낸 철강재 제조 기술은 포스코가 450억원을 들여 개발한 것이다. 당시 중국이 포스코 전 직원에게 제시한 금액은 50억원에 불과했다. 이로 인해 중국은 적은 비용으로 한국과 비슷한 수준의 제품을 개발할 수 있게 됐다.

중국이 2007년 대우조선해양 전 직원을 수십억 원에 매수해 빼내려고 했던 선박 기술은 대우조선해양이 무려 5175억원을 들여 개발한 것이다. 개발 비용에 비하면 ‘산업스파이’에게 들어가는 비용은 그야말로 푼돈인 셈이다.

인력 유출형 기술 탈취보다 더 심각한 유형은 ‘기술 유출형 M&A’다. 투자를 빌미로 외국 기업을 인수해 기술만 교묘하게 빼 가는 이른바 ‘먹튀’ 수법이다. ‘기술 유출형 M&A’의 가장 큰 이점은 기술을 합법적으로 탈취할 수 있다는 것이다. 메커니즘은 이렇다. 먼저 중국 기업 A가 투자를 빌미로 기술력이 좋은 한국 기업 B를 헐값에 매입한다. 그 후 중국에 똑같은 업종의 회사 C를 설립해 기술 공유를 명분으로 B와 전산망을 공유한다. 공유한 전산망을 통해 ‘합법적으로’ 기술을 빼낸 후 이 기술로 중국 현지 기업인 C에서 제품을 생산한다. 동시에 B에서 제품 생산을 점차적으로 줄인다. 결국 B는 만성적인 적자 상태로 부도를 맞는다. 그 결과 강도 높은 구조조정에 들어가고 상당수 노동자가 직장을 잃게 된다. 2002년 하이닉스의 자회사였던 하이디스, 2005년 오리온전기, 2009년 쌍용자동차를 혼란으로 빠뜨린 상하이자동차의 ‘먹튀’ 사건 등이 ‘기술 유출형 M&A’의 대표적 사례다.

2002년 11월 하이닉스 LCD사업부였던 하이디스가 중국 BOE에 팔리며, 대표 기술인 광시야각 기술(FSS)을 포함해 LCD 첨단 기술 4300건가량이 중국에 유출됐다. 이 기술을 발판으로 BOE는 2012년 1조원 넘는 영업이익을 올린 것은 물론 현재 중국 현지에서 삼성·LG를 제치고 LCD 생산 1위를 눈앞에 두고 있다. BOE가 2006년 부도를 낸 하이디스는 2년간 법정관리를 거친 뒤에 타이완의 E-ink사에 팔렸고, E-ink사 역시 하이디스 기술을 탈취해 2012년 하반기에 670억원의 수익을 올렸다.

2007년 중국판 삼성전자인 창홍전자그룹에 팔린 오리온전기도 마찬가지다. 오리온의 PDP와 OLED 특허기술이 중국으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1300명이 넘는 노동자가 일자리를 잃었다. 국책 사업인 디젤 하이브리드 기술을 빼돌리고 2009년 대규모 구조조정을 단행한 상하이자동차는 지난해 12월 해고 노동자들에게 47억원을 물어내라는 법원 판결을 받았다. ‘먹튀’로 인한 진통은 현재 진행형이다. 

 

“산업스파이 처벌 강도 높여야” 


21세기를 지식 기반 사회라고 했던 피터 드러커의 말을 굳이 빌리지 않더라도 기술 유출은 경제 안보와 직결된다. 하지만 한국은 이에 대해 둔감하다. 기술 유출에 대한 사회적 경각심이 저조한 데다 제도적 장치도 미비하다.

한국산업기술보호협회가 실시한 ‘2013년 국가 핵심 기술 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중소기업의 절반 이상(51.9%)이 ‘위험 수준’이고, 대기업 28.1%가 보안 전담 조직이 전무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상노 산업기술보호협회 실장은 “한국은 기술 개발만 강조한 나머지 기술 보호에 대해서는 CEO의 인식이 부족하다”며 “특히 중소기업들은 예산 부족으로 보안 관리가 초보 수준”이라고 말했다. 결국 국가가 앞장서 기술 유출을 막아야 하지만 이마저도 사정이 좋지 않다. 지난해 한국산업기술보호협회가 정부에서 받은 예산은 10억원 남짓이다. 이는 한국인터넷진흥원 2012년 예산(1287억2600만원)의 1%에도 미치지 못한다.

산업스파이에 대한 처벌 강도가 약한 것도 문제다. 2007년부터 3년간 기술 유출 사건에 대한 법원 판결에서 1년 이하의 징역(38%) 또는 집행유예(53%)가 대부분을 차지했다. 미국이 2012년 8월 기술 유출 시 법정 최고 징역형을 15년에서 20년으로 올리고, 벌금도 최고 50만 달러에서 500만 달러로 늘린 것과는 대조적이다. 산업기밀보호센터 관계자는 “기술 유출의 대부분이 미수에 그치고, 초범이 많아 처벌이 약하다”며 “화이트칼라 범죄로 규정해 양형을 명문화하고, 근본적으로는 교육을 통한 예방이 절실하다”고 지적했다.

게다가 현행 산업기술유출방지법으로는 최근 들어 문제가 되고 있는 ‘기술 유출형 M&A’, 이른바 ‘먹튀’를 막을 방도가 없다. 산업기술유출방지법에는 국가가 연구·개발을 지원한 기업이나 국가 핵심 기술을 보유한 기업이 외국인 투자를 받을 경우 산업자원통상부장관에게 사전 신고하도록 돼 있다. 하지만 순수 민간 자본 기업에서는 해외 자본이 M&A를 통해 기술을 유출해도 국가가 손을 쓸 수 없는 실정이다. 제2, 제3의 쌍용차·하이디스 사태가 언제든 일어날 수 있다는 얘기다.

한국노동자연구소 한지원 실장은 “투자를 빌미로 외국 자본과 M&A를 추진하는 것은 우리 손으로 국내 기업을 갖다 바치는 것과 같다”며 “영국은 인도 철강업체인 ‘타타스틸’과 자국 제철소의 인수·합병 계약 때 ‘영국 내 우선 생산’이라는 규정을 명시해 ‘먹튀’를 막았는데 우리도 이런 제도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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