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그릇 싸움에 개헌 밥상 걷어찰 수도”
  • 서상현│매일신문 정치부 기자 ()
  • 승인 2014.01.22 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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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누리당 ‘친박계’의 고민…“올해가 적기” vs “임기 말에” 갈려

국회는 올 초부터 개헌 논의의 불씨를 되살리는 모습이다. 1987년 손질한 지금의 헌법을 현실에 맞게 개정해야 한다는 데 공감하는 국회의원이 많다. 박근혜 대통령과 집권 여당 내 절대다수인 ‘친박계’가 사실상 개헌 열쇠를 쥐고 있다. 재적 과반수 이상의 국회의원이나 대통령이 발의할 수 있고, 국회 재적 의원 3분의 2 이상이 찬성해야 개정되는 까닭에서다. 그런데 박 대통령은 개헌에 대해 분명한 반대 입장을 밝혔다. ‘개헌 논의=불황 지속’ 프레임을 내세우자 여권 내부에서 “개헌은 나중에”를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최경환 새누리당 원내대표가 “국민은 먹고사는 문제가 개헌보다 훨씬 더 시급하다고 생각한다”고 한 여론조사 결과를 들고 나오며 박 대통령의 발언에 힘을 실어주려는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친박계 내부는 둘로 쪼개져 있다. “개헌은 대선 공약이며, 올해도 늦었다”는 ‘개헌 동참형’과 “임기 내 개헌안을 만들면 되고 개헌 시기는 임기 말이 적합하다”는 ‘대통령 추종형’이 있다. 수적으로는 후자가 더 우세한 모습이다. 친박계 내부 사정에 밝은 한 여권 관계자는 이런 말을 했다.

새누리당 ‘친박계’ 중진인 이완구 의원, 서청원 의원, 최경환 원내대표(왼쪽부터)가 2013년 11월18일 국가경쟁력 강화 포럼 창립총회에 참석했다. 맨 오른쪽은 황우여 대표. ⓒ 연합뉴스
“친박 내에도 개헌해야 한다는 부류 꽤 있어”

“마치 이명박 정부 때를 옮겨놓은 듯 너무 닮았다는 생각이 들지 않나? ‘개헌 약속→대통령 압박→국회 내 논의→흐지부지’의 단계를 고스란히 베낀 모습이다. ‘개헌 도돌이표’같이 말이다. 이런 단계다. 우선, 밖에서 개헌을 가지고 자꾸 이야기하면 대통령과 정면 대결하는 양상이 되니 국회에서 공론화하자고 끌어들인다. 다음, 비슷한 기구를 만들고 개헌 프로젝트를 가동한다. 그다음, 어떻게 되어가느냐고 물으면 논의 중이라고 답한다. 결국, 하 세월하다 없던 일이 된다. 이명박 정권 출범 초 개헌 이야기가 나왔을 때의 뉴스를 찾아봐라. 지금과 똑같다.”

정말 그랬다. 이명박 정부 당시 김형오 국회의장은 의장 직속 헌법연구자문위원회를 구성했다. 여야 의원 156명으로 구성된 개헌 논의 모임도 있었다. 국회 내에 개헌특위를 구성하자는 이야기까지 찍어내듯 닮았다. 현 강창희 국회의장도 “이상적인 개헌안을 하나쯤 만들어 개헌특위가 참고했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여야 의원 116명이 모인 ‘개헌 추진 국회의원 모임’은 박 대통령의 신년 기자회견 직후 “그래도 개헌을 계속 논의해야 한다”고 밝혔다. 민주당은 강 의장에게 국회 내 개헌특위 설치를 공식 요청한 상태다.

익명을 요구한 친박계 중진 의원은 “개헌은 도돌이표일 수밖에 없다. 개헌이 되려면 국민이 1987년의 상황과 같은 ‘뜨거운 뭔가’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군사 독재를 청산해야 한다는 열망 같은 것 말이다. 그런 동력이 밑바닥에서부터 있어야 가능하지 ‘개헌하자, 개헌해야 한다, 개헌 논의하자’ 이렇게 당위와 필요성만 이야기해서는 죽도 밥도 안 된다”고 밝혔다. 이 의원의 말대로라면 국민적 요구가 들끓고 있지 않기 때문에 국회 내에서 개헌이 흐지부지되어도 친박계로서는 상처 입을 일이 없다는 것이다. 개헌이 비록 대선 공약이지만 파기해도 내상이 적다는 해석이다.

이 의원은 ‘개헌 동참형’으로 분류됐던 인물이다. 그는 “친박계 내에도 사실 개헌해야 한다는 부류가 꽤 있다”고 전했다. 그는 “개인적으로는 4년 중임제로의 개헌에 찬성한다. 하지만 지금 개헌 이야기가 나오면 국정 동력을 완전히 잃게 된다”고 밝혔다. 또 다른 친박계 중진 의원은 “개헌이 성사되려면 6월 지방선거에서 새누리당이 대패했을 경우나, 아니면 2016년 총선 이후 현 정부의 집권 말기가 돼야 할 것”이라며 “내년만 해도 벌써 총선 공천 때문에 의원 누구도 개헌의 ㄱ자도 꺼내지 못하게 된다”고 했다. 겉으로는 개헌은 안 된다고 했지만, 내심은 올해 개헌 논의가 궤도에 올라야 한다고 여기는 듯했다. 그러면서 “친박계 안에는 아무 생각 없는 다수와 국가 미래나 제왕적 대통령제 폐단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하는 소수가 있다”고 했다.

박 대통령이 대선 후보일 때 ‘박근혜 과외교사’로 불렸던 친박계 중진 이한구 의원은 얼마 전 “새로운 대선 후보자들이 나선 뒤에는 개헌이 잘 이뤄질 수 없으니, 올해 중에는 논의해야 개헌이 된다. 지금 시스템이 1987년에 만든 것이라 시대에 맞지 않다. 너무 늦어도 너무 빨라도 안 되는데, 이번 정부 내에서는 개헌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앞서 고민하는 친박계 소수가 있다는 중진 의원의 말에 힘이 실리는 대목이다.

2010년 10월8일 ‘개헌 전도사’를 자처한 이재오 특임장관(오른쪽)이 민주당 손학규 대표를 찾아 인사하고 있다. ⓒ 연합뉴스
“돈 안 드는 대선 공약도 안 지키는가?”

개헌 논의를 강 건너 불구경하듯 하는 부류도 있다. 개헌은 적극적으로 논의해도 절대로 안 될 것이라 확신한다는 것이 공통점인데, 이들은 대부분 율사 출신 의원이다. 한 법조계 출신 의원은 “개헌을 한다고 치자. 자, 어디에서부터 어디까지 바꿀 것인가? 우선 이 문제로 여야 간 합의가 안 된다. 개헌해야 한다는 데 공감해도 각론에서는 이견투성이가 될 것이다. 정작 까보면 목소리가 달라 그냥 덮자고 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일단 ‘대통령 4년 중임제’로의 개헌론이 있다. 대통령의 권한을 쪼개는 ‘분권형 대통령제’(이원집정부제)를 요구하는 목소리도 있다. 분권형 대통령제는 총리는 내치, 대통령은 외치를 하자는 것이 골자다. 여기에다 일부 내각책임제로의 개헌을 염두에 둔 부류도 있다. 옛 자민련 출신들이 대표적인데, 강창희 국회의장도 여기에 포함된다.

권력 구조 개편에만 그칠까. 현재 가장 문제가 되는 기초단체 선거의 정당 공천 폐지, 새누리당이 제안한 기초의회 폐지 및 광역·기초의회 통합 등도 이야기되어야 한다. 만약 기초의회를 폐지하려면 행정구역도 개편해야 하고, 의원 정수도 조정해야 할 판이다. 행정구역 개편까지 이르면 지역구가 사라질까 봐 걱정하는 의원들이 생기며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갈린다. 제 밥그릇 뺏기지 않으려 개헌 밥상을 걷어찰 공산이 커지는 것이다. 개헌 각론으로 들어가면 마치 고구마 줄기와 같다.

민주당의 한 중진 의원은 “개헌 논의의 적기가 올해”라며 “개헌은 국민투표를 거쳐야 한다. 선거가 있으면 개헌에 집중할 수가 없는데 다행히 2015년에는 선거가 없다”고 말했다. 최근 새누리당이 공약 철회나 파기를 스스럼없이 하는 것을 두고 한 친박계 인사는 이런 쓴소리를 했다. “기초노령연금 수정이나 증세 없는 복지가 사실상 철회되는 것은 다 돈, 세금과 관련돼 있다. 그래서 국민이 일견 이해할 수도 있다. 그런데 개헌은 다르다. 개헌에 돈이 드는가. 개헌하면 경제가 정말 정지하게 되는 건가. 그건 아니다. ‘돈 안 드는 대선 공약도 안 지키는가’라는 이재오 의원의 말은 그래서 쓰디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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