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찬 가짓수는 많은데 정작 집을 게 없네
  • 이승욱 기자 (gun@sisapress.com)
  • 승인 2014.01.22 1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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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장 후보 인물난 허덕이는 새누리당 박원순 제압할 카드 없어 고민

오는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새누리당의 후보 영입 작업을 총괄하는 홍문종 사무총장의 미국 출장이 여의도 정가의 호사가들 사이에서 화제가 되고 있다. 홍 총장은 1월10일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폐막한 국제전자제품 박람회 ‘CES 2014’에 참석했다. 국회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 소속인 홍 총장이 여야 의원 3명과 함께 행사 참석을 위해 출국한 것이다.

홍 총장 일행이 참석한 박람회 장소인 미국 라스베이거스가 버클리와 비행기로 1~2시간 거리라는 점이 이목을 끌었다. 홍 총장은 차기 서울시장 선거의 승리를 위해서는 여권 내 거물급 정치인과 외부 인사를 후보로 내세워야 한다는 ‘중진 차출론’과 ‘외부 인사 영입론’을 주도하고 있다. 그는 영입 대상 인물로 김황식 전 국무총리를 거론하기도 했다. 이명박(MB) 정권에서 총리를 지낸 김 전 총리는 지난해 12월 말 미국 UC버클리 대학 로스쿨에 신설되는 한국법센터의 수석고문직을 제안받아 미국으로 떠났다. 김 전 총리는 한국법센터가 문을 여는 4월까지 미국에서 머무를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2013년 11월6일 최고중진연석회의장에 들어서는 정몽준 의원에게 동료 의원들이 황우여 대표 옆 자리를 권하고 있다. ⓒ 연합뉴스
이름만 무성한 ‘풍요 속 빈곤’

홍 총장이 공교롭게도 김 전 총리가 수석고문직을 맡은 대학과 인접한 지역으로 출장을 가면서, 그가 김 전 총리를 만나 서울시장 출마 의사를 다시 타진한 게 아니냐는 추측이 제기되는 것이다. 김 전 총리의 미국행 소식이 전해지면서 사실상 서울시장 출마 의사를 접은 것이라는 시각이 지배적이었다. 홍 총장 측은 “김 전 총리와 (미국에서) 만난 적이 없다”고 밝혔다. 홍 총장의 귀국 직후인 지난 14일 일시 귀국한 김 전 총리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여권의 제안이 없는 상태에서 서울시장 출마 여부를 밝히는 것은 적절치 않다”면서 “영입 제안이 오면 대답할 것”이라며 여전히 애매한 입장을 보였다. 그런데도 굳이 홍 총장의 미국 출장을 김 전 총리와 연결 짓는 시선에는 그만큼 서울시장 후보를 물색하는 데 애를 먹는 지금 새누리당의 복잡한 속내가 반영돼 있다.

서울시장 선거는 여야를 막론하고 6월 지방선거의 승패를 판가름할 바로미터가 될 것이라는 데 이견이 없다. 지방선거까지 아직 5개월이 남았지만, 정치권에서는 6월 지방선거에서 여당의 우세를 조심스럽게 점치고 있다. 지방선거가 흔히 ‘집권 여당의 무덤’으로 알려져 있지만, 박근혜 대통령이 아직 임기 초반으로 국정 지지도가 50%대에 안착한 상황이라는 점을 감안한 분석이다. 조만간 출현할 ‘안철수 신당’이 야권연대를 가로막아 여당에게 유리한 선거 국면을 제공할 것이라는 점도 이러한 분석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하지만 서울시장 선거는 사정이 다르다. 새누리당 내부에 불안한 기색이 역력하다. 이른바 ‘소통령’으로 불리는 서울시장 선거에서 지면 새누리당의 ‘지방선거 완승 프로젝트’도 빛이 바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민주당 소속의 박원순 시장을 압도할 수 있는 인물이 없다는 점이 불안감을 더해주고 있다. 이미 새누리당과 언론을 통해 여당의 서울시장 후보로 거론되는 인물은 정몽준 의원과 김황식 전 국무총리 외에 안대희 전 대법관, 권영세 주중 대사, 이혜훈 최고위원, 원희룡·홍정욱·나경원 전 의원, 오세훈 전 시장, 조윤선 여성가족부장관 등 10여 명에 이른다. 그러나 이혜훈 최고위원을 제외하면 사실상 공개적으로 출마 의사를 내비치는 인물은 없다. 새누리당 일각에서는 이를 두고 “풍요 속의 빈곤”이라고 자조한다.

새누리당 내부에서 중진 차출론과 외부 영입론이 지배적인 기류로 자리 잡는 배경도 이러한 위기감의 결과다. 홍 총장이 애초 당내 반발 기류를 무릅쓰고 밖으로 눈을 돌린 것도 이 때문이다. 홍 총장은 “6월 지방선거가 여당에게 쉽지 않은 선거가 될 것”이라는 명분을 내세우면서 김 전 총리와 정 의원 등 차출 대상 정치인들의 실명까지 잇따라 공개하는 고육지책을 썼다. 하지만 지금까지 당사자들의 반응은 신통치 않았다.

홍 총장의 돌출 언행은 예상했던 대로 당내 반발만 불러왔다. 서울시장 출마를 기정사실화하고 있는 이혜훈 최고위원은 중진 차출론에 대해 “당의 패배주의를 확산시키는 일을 해서는 안 된다”며 비판했다. 홍 총장은 이러한 반발 기류에도 중진 차출에 공을 들이고 있다. 그는 지난 1월8일 한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주중 대사로 나가 있는 권영세 전 의원에게 (서울시장으로) 출마를 요청한 상황이라는 발언을 해 또 한 번 주목을 끌었다.

여당의 서울시장 후보로 거론되고 있는 김황식 전 국무총리 (ⓒ 시사저널 포토) , 권영세 주중대사 (ⓒ 시사저널 이종현) , 오세훈 전 서울시장 (ⓒ 시사저널 이종현 ), 이혜훈 새누리당 최고위원 ⓒ 시사저널 이종현 (왼쪽부터).
‘반전 카드’로 정몽준 출마 결단에 목매

새누리당으로서는 이미 불출마 의사를 밝힌 정몽준 의원이 그나마 여전히 유효한 반전 카드로 거론되고 있다. 새누리당 일각에서 정 의원이 사실상 중진 차출론에 가장 걸맞은 인물로 평가되고 있기 때문이다. 정 의원은 서울시장 출마에 부정적인 입장을 보였지만, 그의 출마 가능성을 열어두고 여전히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상황이다.

당내 사정에 밝은 새누리당 핵심 관계자는 “애초 새누리당 서울시장 후보로 유력하게 거론돼왔던 인물은 김황식 전 총리였고 초기 여론조사에서는 김 전 총리가 정 의원을 앞서기도 했다”며 “하지만 지난해 말에 접어들면서 김 전 총리의 지지도는 제자리걸음을 보인 반면 정 의원의 지지도는 지속적으로 상승해 역전하는 양상을 보였다”고 말했다. 그는 “정 의원이 국회의원으로 8선, 9선을 더 한다고 해서 득이 될 게 무엇이냐”며 “이미 대선 후보 반열에 올라 있어 서울시장이 별로 매력적으로 받아들여지지는 않겠지만 정치인으로서 승부수를 걸어보겠다는 욕심이 들 수도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새누리당 내에서 정몽준 의원의 서울시장 출마를 독려하는 움직임도 있다. 1951년생인 정 의원은 새누리당 소속 1955년생 동갑내기 국회의원들의 모임인 ‘양띠 모임’과 자주 회동을 하고 있다. 울산 동구가 지역구인 안효대 의원이 회장을 맡고 있는 양띠 모임에는 홍문종, 이철우 의원 등이 참여하고 있다. 양띠 모임의 지난해 송년회 자리에도 정 의원이 참석했는데, 한 참석자는 정 의원에게 “서울시장 후보만 되면 주변에 사람들이 생긴다. 그 동력으로 대선까지 가야 한다”며 출마를 강력히 권유했고 정 의원도 이를 경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몽준 의원은 1월14일 서울 동작구청에서 열린 신년인사회에 참석해 박원순 서울시장에게 “내가 서울시장에 안 나간다고 안심하고 있는 것 같은데, 더 열심히 하세요”라고 의미심장한 말을 남겨 미묘한 파장을 일으켰다.

새누리당의 반전 카드로 오세훈 전 시장의 복귀 가능성도 점쳐진다. 오 전 시장은 2011년 서울시장 사퇴 이후 최근에는 정치 일선에서 물러나 있다. 오 전 시장은 현재 정치권과는 거리를 두고 있다. 그러나 그는 여전히 차기 여권 대선 주자로서 4~5%대의 지지율을 유지하는 저력을 보여주고 있다. 앞서 언급한 새누리당 핵심 관계자는 “오세훈 전 시장은 박원순 시장 당선에 원인 제공을 했다는 원죄가 있지만, 여당의 위기 상황이라는 명분을 들고 복귀할 가능성도 작지 않다”며 “본인이 결단을 한다면 새누리당으로서도 유효한 카드”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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