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없으면 폭로도 못 해, 자식에겐 절대 안 권해”
  • 이규대 기자 (bluesy@sisapress.com)
  • 승인 2014.01.22 1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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쇳덩이의 비명이 고막을 찌른다. 듣는 사람의 경각심을 자극하며, 호루라기는 날카롭게 운다. 과거 영국의 경찰관들은 두 가지 목적으로 호각을 불었다고 한다. 시민이 법을 어기는 모습을 발견했거나, 혹은 자신의 동료가 저지른 비리를 고발할 때다. 내부고발인을 의미하는 영단어 ‘Whistle-blower’(호루라기 부는 자)는 후자에서 나왔다. 호루라기가 공공의 복리를 위해 내부고발을 하는 자, 즉 공익제보자의 상징으로 자리매김한 배경이다.

지난해 대한민국에서도 날카로운 호루라기 소리가 울려 퍼졌다. 주인공은 권은희 전 수서경찰서 수사과장(현 송파경찰서 수사과장)과 윤석열 수원지검 여주지청장이었다. 두 사람은 국가정보원(국정원) 불법 대선 개입 의혹 사건 수사에 대한 검경 수뇌부의 외압을 폭로했다. 각각 국회 국정조사와 국정감사에 출석해 관련 사실을 증언하기도 했다. 덕분에 감춰질 뻔했던 사건의 진실이 일부 드러날 수 있었다.

ⓒ 시사저널 정찬동
그런데 최근 이들을 두고 ‘보복 인사’ 논란이 불거졌다. 권은희 과장은 1월9일 총경 승진 인사에서 탈락했다. 윤석열 지청장은 1월10일 대구 고등지검 검사로 자리를 옮겼다. 두 사람에 대한 인사 정황을 살필 때, 국정원 불법 대선 개입 폭로로 불이익을 받은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된다. 당사자들은 입장 표명을 꺼린다. 권은희 과장은 1월14일 오후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관련 질문에 대한 답변을 정중히 거절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명광복 참여연대 공익제보지원단 간사는 “(윤 전 지청장 및 권 과장은) 넓은 의미의 공익제보자로 볼 수 있으나, 이들이 받은 인사 조치가 보복성인지는 좀 더 명확한 근거가 있어야 판단이 가능하다”며 신중한 입장을 보였다. 하지만 분명한 것이 있다. 두 사람의 좌천 및 승진 누락을 두고 ‘보복’ 의혹이 떠오르는 것은, 현재 우리 사회가 공익제보자들을 제대로 보호하지 못하고 있다는 공감대가 바탕을 이룬다는 점이다. 이번 논란을 계기로 공익제보자 보호의 현주소를 성찰하는 목소리가 곳곳에서 나오고 있다.

대한민국 공익제보의 역사는 1987년 민주화 이후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군사독재의 어둠이 채 걷히지 않은 1990년대 초의 일이다. 권력기관의 감춰진 치부를 고발하는 정치적 성격의 양심선언이 물꼬를 텄다. 이문옥 감사관의 감사원 감사 비리 고발, 윤석양 이병의 국군보안사령부 민간인 사찰 고발(이상 1990년), 이지문 중위의 군 부재자투표 부정 고발(1992년) 등이다. 이후 민주화가 진전되면서 공익제보는 사학 비리, 부실 공사, 성폭력 사건, 기업 횡령 등 종류가 다변화됐다.

‘생계 곤란’이 공익제보자 덮친다

이지문씨(46)를 만났다. 육군 중위로 복무하던 1992년 당시, 14대 총선 군 부재자투표 과정에 공개·대리 투표 행위와 여당 지지 정신교육이 있었다고 고발한 인물이다. 지금은 대학 강단에서 시민운동과 민주주의를 가르치며 자신과 같은 공익제보자를 지원하는 시민단체 ‘호루라기재단’의 상임이사로 활동한다. 우리 사회에 공익제보가 태동한 이후 현재에 이르기까지를 직접 경험하고 관찰해온 인물인 셈이다.

1992년 당시 우리 사회는 공익제보에 대한 인식이 희박했다. 이씨는 대대적인 보복 조치에 시달렸다. 국방부는 이씨가 허위 증언했다고 주장하며 그를 무단이탈죄로 구속했다. 부하 사병들을 대상으로 가혹한 형벌을 가하는 한편, 지휘 체계에 있는 장교들을 보직 해임하는 것으로 이씨를 간접 압박했다. 이씨는 끝내 이등병으로 파면 조치됐다.

그 후 이씨는 긴 법정 투쟁을 거쳤다. 전역 군인들의 증언을 바탕으로 자신의 신고가 ‘허위’가 아님을 입증했다. 마침내 1995년 파면처분 취소 확정 판결을 받아내 중위로 명예 전역할 수 있었다. 하지만 시련은 끝나지 않았다. 사회적으로 ‘블랙리스트’에 오른 이씨는 취업 실패 및 취소 조치를 반복 경험해야 했다. 그래도 이씨는 심리적 스트레스를 능동적으로 이겨내고 나름의 삶을 개척하는 데 성공한 축에 속한다.

대다수 공익제보자는 신고 행위로 인해 삶이 큰 어려움에 처하게 된다. 공익제보자들의 모임에 가보면 “공익제보를 한 후 잘 살고 있는 사람을 찾아볼 수 없다”는 자조 섞인 반응을 쉽게 접할 수 있다. 호루라기재단이 최근 42명의 공익제보자를 상대로 실시한 심층 면접조사 결과에 따르면, 신분상 불이익의 대표적 유형인 파면·해임을 당한 이가 25명(60%)이었다. 이들 중 이씨처럼 법에 의해 최종 구제된 경우는 11명에 불과했다.

이씨는 공익제보자들이 겪는 사회적 스트레스의 핵심 문제를 ‘생계유지’에서 찾았다. “대다수 공익제보자가 직장을 상실하는 등 생계에 어려움을 겪는다. 이로 인해 가족과의 관계가 깨지고 본인의 자존감이 무너지는 등의 부정적 연쇄 효과가 발생한다.”

이들을 사회적으로 보호할 만한 수단은 없는 것일까. 그렇지는 않다. 공익제보 문화가 태동한 이래 20여 년의 시간이 흘렀다. 그동안 우리 사회의 인권 의식도 성숙했다. 공익제보자를 제도적으로 보호하기 위한 장치가 마련됐다. 2001년 ‘부패방지법’이 제정됐다.

이를 계기로 부패방지위원회(현재 국민권익위원회로 통합)가 신설됐다. 공직자·공공기관의 부패 신고 접수 및 관리를 담당하는 한편 내부고발자 보호 조항을 뒀다. 2011년에는 ‘공익신고자보호법’이 마련됐다. 공직 사회를 넘어 민간 영역의 공익제보자를 보호하기 위한 취지로 입법된 법률이다. 문제는 이런 법적 장치만으로는 공익제보자들에 대한 실질적 보호가 불가능하다는 데 있다.

ㄱ씨를 만났다. 기자는 지면에 그의 이름과 나이를 적을 수 없다. ㄱ씨가 원하지 않기 때문이다. 인터뷰는 실명과 얼굴을 공개하지 않는조건으로 진행됐다. 부모와 친지는 자신이 해직됐다는 사실을 모른다고 했다. 복직이 될 때까지 비밀로 하고 싶다는 것이 ㄱ씨의 뜻이다.

ⓒ 시사저널 구윤성
소송에서 이겨도 복직은 ‘감감’

ㄱ씨는 보건복지부 산하 공기업인 한국보건복지정보개발원의 부장급 직원이었다. 2012년 2월, 경영진이 2010년부터 본부장·부장급 인사들의 사비를 갹출해 조성한 비자금을 골프장·단란주점에서 사용하는 등의 비리 정황을 보건복지부에 신고했다. 국무총리실 점검과 보건복지부 감사를 통해 관련 내용이 사실임이 확인됐다. 그런데 회사는 ㄱ씨를 2012년 8월 허위 사실 외부 유포 등을 이유로 해고했다.

ㄱ씨는 국가기관으로부터 정당한 내부고발이었음을 인정받았다. 부패방지법을 통해서다. 2012년 11월 국민권익위원회(국민권익위)는 ㄱ씨의 신분 보장 조치 신청을 받아들였다. 중앙노동위원회는 2013년 4월 ㄱ씨의 부당 해고 사실을 인정하고 원직 복직을 결정했다. 2013년 11월 회사가 제기한 행정소송에서도 역시 ㄱ씨가 승소했다.

하지만 ㄱ씨는 아직도 복직하지 못하고 있다. 회사가 끊임없이 항소하고 있기 때문이다. 1년 5개월여 실직 상태가 계속되고 있다. 부패방지법은 ㄱ씨가 해고의 부당성을 주장하는 근거로 작용하기는 했다. 하지만 회사는 국민권익위의 보호조치에 불복한 행정소송, 다시 그 패소 판결에 불복한 항소를 거듭했다. 오랜 시간 이어지는 법정 싸움 동안 ㄱ씨는 경제력을 잃었다.

“비리를 신고하면 문제가 순탄하게 해결될 줄 알았다.” 아니었다. 회사는 그가 허위 사실을 외부에 유포했다고 몰아세웠다. 사내 갈등의 와중에서, 공익제보자 ㄱ씨는 비리를 스스로 입증해야 할 부담까지 짊어져야 했다. 끝내 직장에서 잘렸다. “비리 사실이 확인되면 회사가 꼬리를 내릴 줄 알았다.” 이 또한 아니었다. 회사는 거듭된 소송 제기로 맞섰다. 복직을 위해 싸우는 와중에는 다른 직장에 취직도 불가능하다. 소송 기간이 길어질수록 공익제보자는 경제적으로 사각에 몰리게 된다.

개인이 집단에 맞설 때 얼마나 무력한 존재인지를 ㄱ씨는 절실히 깨달았다. ㄱ씨의 말이다. “아내의 수입으로 지금까지 버틸 수 있었다. 돈이 없으면 할 수도 없는 게 공익제보라는 생각이 든다. 선한 의도만 갖고 감행하기에는, 공익제보로 잃는 게 너무나 많다. 내 자식에게는 차마 나와 같은 행동을 권할 수 없을 것 같다.”

정진극씨(33)를 만났다. 정씨는 민간 기업 포스코의 한 계열사인 포스메이트 직원이었다. 동반 성장 관련 업무를 담당했다. 2011년 1월, 회사 생활 중 알게 된 사내 부적절한 관행에 대해 본사 윤리경영실에 신고했다. 신문고 시스템을 통해서였다. 그런데 회사 내부의 시스템을 통한 문제제기가 오히려 자신을 회사에서 고립시키는 결과로 이어졌다는 것이 정씨의 주장이다.

“신고를 한 내 신분이 노출됐다. 회사 내 공익제보자 보호 시스템에 따라 조치해줄 것을 요구했으나 계열사 직원이라는 이유로 인정하지 않았다.” 이에 대해 포스메이트 측은 “사익을 목적으로 경미한 내부 문제에 대해 합리적 해결을 도모하지 않고 모기업에 직접 신고와 항의를 지속해 회사의 이미지를 실추하고 업무를 방해했다”는 주장을 폈다.

2012년 9월, 정씨는 포스코와 그 계열사들이 공정거래협약 이행평가 자료를 허위 제출했다는 내용증명을 포스코 회장에게 보냈다. 이후 닷새 만에 징계위에 회부된 후 파면됐다. 정씨는 회사의 자료 허위 제출 건을 국민권익위 등에 공익제보했다. 그 결과 지난해 9월, 공정거래위원회는 포스코 자료 중 일부가 허위 자료임을 확인하고 당초 포스코에 부여한 인센티브를 박탈했다. 이보다 앞선 지난해 4월에는 중앙노동위원회가 정씨의 해고가 부당하다는 판정을 내렸다. 그럼에도 정씨는 여전히 복직하지 못한 상태다. 회사가 행정소송을 제기했기 때문이다.

정씨 역시 압도적인 무력감을 경험했다고 했다. ‘내부고발’이 감당해야 할 불이익은 상상 이상이었다는 것이다. “회사 내에 왜 ‘신문고 제도’가 있나. 조직을 건강하게 운영하기 위해서가 아닌가. 하지만 회사 내의 공익신고자 보호 제도는 나를 전혀 보호하지 않았다.” 주변 사람들은 등을 돌렸다. 특히 ‘널 위해서가 아니라 진실을 위해서’라며 증언을 약속했던 선배 직원의 말이 바뀌는 경험을 하면서 상처를 입었다. 결국 정씨는 회사 밖 공공기관에 공익제보를 했고 상당 부분이 사실로 확인됐다. 하지만 그는 지금 1년 4개월째 실직 상태다. ㄱ씨와 같은 공기업이든 정씨와 같은 사기업이든, 국민권익위의 신분 보장 조치나 중앙노동위원회의 부당 해고 확인에 아랑곳 않고 소송전을 편다. 공익제보자 개인이 감당하기에는 지나치게 가혹한 일이다.

이해관씨(53)를 만났다. 전 KT새노조 위원장인 그는 2010년 KT 세계 7대 자연경관 전화투표에 국제전화 요금을 부과한 것에 의혹을 제기했다. 국제전화 회선 규모상 하루 200만통 이상 거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2012년 언론과 국민권익위에 공익제보했다.

이씨는 KT로부터 보복성 인사·징계 조치를 받았다. 2012년 5월 경기 가평으로 무연고 전보 조치됐다. 이씨는 국민권익위에 보호조치를 요청했고 이는 받아들여졌다. KT는 이에 반발해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2012년 12월에는 이씨를 해고했다. 이씨가 지병을 이유로 병가를 신청한 것을 인정하지 않고 무단결근으로 처리해 해임했다. 이에 대해서도 국민권익위는 KT가 부당한 조치를 내렸다고 판단했다.

‘14%’ 법률에 해당 안 되면 보호 못 받아

그런데 지난해 5월, 서울행정법원은 이씨의 신고가 ‘공익제보’가 아니라고 판결했다. 이씨가 공익신고자보호법의 적용 대상이 아니라고 결론 내린 것이다. 왜 이런 결과가 나왔을까. 현행 공익신고자보호법은 180여 개 법률만을 적용 대상으로 삼는다. 전체 법률의 14% 수준에 불과하다. 이씨의 공익제보와 관련된 법률인 전기통신사업법은 공익신고자보호법의 적용 대상이 아니다. 그래서 이씨는 국민권익위의 공익신고자 보호 조치를 받을 수 없다는 것이다.

이씨는 판결 당시를 돌이키며 “분노에 앞서 우선 황당했다”고 말했다. “공익제보자를 보호해 사회의 부패를 적발하고 시정하는 것이 법의 취지 아닌가. 불과 180여 개 법률만을 적용 대상으로 하는 현행법으로는, 법 전문가가 아니고서야 공익제보를 하지 말라는 말이 된다.” 이씨는 항소했다. 법정 싸움은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

이지문 씨의 공익제보와 ㄱ씨 등 3인의 공익제보 사이에는 20여 년의 시간이 놓여 있다. 그사이 이들을 보호하기 위한 법적 장치가 마련됐지만 한계가 명확하다. 공익제보자는 ‘고발자’로 낙인찍혀 조직 내에서 배척받는다. 허위 신고에 불과하다는 상대에 맞서 스스로 치밀하게 증거 자료를 준비해야 한다. 대부분 보복성 징계·해고를 당한다. 장기간에 걸친 소송을 거치며 경제적으로 코너에 몰린다. 현행 부패방지법과 공익신고자보호법에 뚫린 ‘구멍’은 해당 법의 입법 취지를 배반한다. 조직은 그 빈틈을 파고들어 소송을 남발한다. 폭로자들이 지쳐 쓰러지도록 하는 것이다.

선한 의지로 세상의 치부를 고발했던 공익제보자의 ‘호루라기 소리’는, 여전히 이들에게 등 뒤의 비수로 돌아오고 있다. 이지문씨는 “현재 우리 사회의 인식이나 제도적 장치는 공익제보자를 충분히 보호할 수 없는 상황이다. 근본적인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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