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세 4840억원 먹었다, 나 좀 봐줘”
  • 안성모 기자 (asm@sisapress.com)
  • 승인 2014.01.22 1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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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대문디자인플라자 3월21일 개관…천덕꾸러기 될 수도

“21세기는 모든 것이 디자인인 시대다.” 오세훈 전 서울시장은 2006년 7월3일 취임사에서 ‘디자인 서울’을 선언했다. 디자인 개선을 바탕으로 서울의 도시 경쟁력을 높이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었다. 오 전 시장의 ‘디자인 사랑’은 남달랐다. 2007년 본부장이 부시장급인 디자인서울총괄본부를 설치하고, 2008년 서울 디자인 산업 발전 종합 계획을 수립했다. 2011년 8월26일 중도 사퇴하기 전까지 오 전 시장의 곁에는 늘 ‘디자인’이 따라다녔다.

서울을 디자인 메카로 육성하겠다며 오 전 시장이 의욕적으로 추진한 동대문디자인플라자&파크(DDP)가 오는 3월21일 개관을 앞두고 있다. 그간 말도 많고 탈도 많았다. 국내 공공 건축물 사상 최대 규모인 4840억원이 투입됐다. ‘혈세 먹는 하마’라는 비판이 제기됐던 DDP는 박원순 시장이 취임한 후 대표적인 예산 낭비 사례로 꼽히며 ‘애물단지’로 전락했다.

원래 계획은 ‘동대문운동장 공원화 및 대체 야구장 건립 추진’이었다. 오 전 시장 취임 직후인 2006년 8월17일 시장 방침으로 결정된 사안이었다. 옛 동대문운동장은 1926년 일본이 서울 성곽과 하도감을 허물고 건립한 공설운동장이었다. 하지만 축구장은 2003년 풍물시장과 주차장으로 이용되며 운동장 기능을 상실했고, 야구장도 시설이 노후해 개·보수가 시급한 상황이었다. 당시 예산은 900억원 규모였다.

오는 3월21일 개관 예정인 동대문디자인플라자&파크(DDP). 위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동대문야구장. (위) ⓒ 연합뉴스, (아래) ⓒ 시사저널 구윤성
“외형적으로 화려함만 추구” 비판

오 전 시장이 ‘판’을 키웠다. 디자인 산업을 지원할 인프라를 구축하겠다며 동대문운동장 공원화 사업 부지 안에 디자인 전문 종합 지원 시설인 월드디자인플라자(WDP)를 건립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예산이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2007년 10월 결재가 난 WDP 건립 및 운영 기본 계획에 따르면 총 3753억원이 소요될 것으로 예상했다. ‘공원’에서 ‘건물’로 초점이 옮겨지면서 예산이 4배 이상 늘어난 셈이다. 개관 시기는 2010년이었다.

DDP에 대한 비판 중 하나는 사업이 너무 급하게 진행됐다는 것이다. 타당성 조사 및 운영 방안 연구 용역이 2007년 2월부터 9월까지 진행됐다. 그런데 서울시는 이 연구 용역이 종료되기 전에 설계 절차에 들어갔다. 2007년 4월에 설계 공모를 했고, 8월에 이라크 출신의 영국 건축가 자하 하디드의 ‘환유의 풍경’을 당선작으로 발표했다.

당시 구상은 프랑스 파리에 있는 퐁피두센터와 같은 관광 명소를 염두에 두었다. DDP는 퐁피두센터와 마찬가지로 독특한 외관으로 설계됐다. 세계 최대 규모의 비정형 건축물로 유선형의 우주선을 닮았다. 하지만 자하 하디드의 ‘환유의 풍경’이 설계 공모에서 당선작으로 선정될 때부터 동대문 일대 주변과 어울리지 않는다는 지적을 받았다.

세계적 건축가의 작품이지만 전반적으로 평가가 호의적이지 않았다. 지난해 동아일보와 건축 전문 월간지 ‘SPACE’가 건축 전문가 1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DDP는 최악의 현대건축물 5위에 올랐다. 서울의 역사와 맥락에 대한 이해가 없는 건축이라는 혹평이 나왔다. 외형적으로 화려함만 추구했다는 비판도 제기됐다.

서울 시민 입장에서는 어떤 용도로 사용하려는지 모르겠다는 의문이 적지 않았다. 희망서울정책자문단 문화환경분과위원회는 2011년 11월 DDP의 역할 및 목적에 대한 개념 재정립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에 따라 시민들과 주변 상권, 각 분야 전문가 등의 의견을 수렴한 서울시 문화관광디자인본부는 1년 후DDP 운영 계획을 보완해 박 시장에게 보고했다.

서울시는 사업 계획을 보완한 사유로 운영 준비 내용의 미비점에 대한 각계의 비판과 우려를 반영한 것이라고 밝혔다.

구체적으로 △80년 역사의 동대문 운동장 철거 및 대체 시설 결정에 시민적 합의 과정 미흡 △콘텐츠와 프로그램의 초점을 디자인에만 국한해 폭넓은 창조 산업의 육성 제한 및 다양한 방문객 흡인력 부족 △주변 상권 활성화를 위한 연계 협력 방안 미흡 △지속 가능한 운영에 필요한 재정 자립 방안 미비 등을 지적했다.

이에 따라 운영 계획 전반에 대한 변화를 예고했다. ‘세계 디자인의 메카’라는 결과 중심의 비전은 ‘21세기 창조·지식의 발신지’라는 역할 중심으로 바뀌었다. ‘전문가 인프라 중심’이던 목표도 ‘시민의 경제·문화 활동 중심’으로 옮겨졌다. 전략도 ‘세계적 디자이너·전시·정보 유치’에서 ‘시민과 함께하는 24시간 운영, 60개 명소, 100% 효율화’로 변경됐다. ‘연 관람객 180만명’ 목표를 ‘연 방문객 550만명’으로 잡았다. 무엇보다 ‘시 의존형’ 운영을 ‘자립형’으로 전환했다. 수입보다 지출이 206억원 많은 구조를 수입과 지출이 모두 321억원인 구조로 바꾸겠다는 것이다.

서울시, 4년 만에 ‘운영 계획 보완’

2007년 기본 계획을 세울 당시 서울시는 DDP 운영으로 연간 생산 유발 효과 3473억원, 고용 유발 효과 3066억원의 파급효과를 거둘 것으로 기대했다. 특히 디자인 산업 역량 제고에 따른 브랜드 파워 강화와 제품 경쟁력 향상으로 기업 매출의 실질적인 증대와 고부가가치 제품 시장을 선점하는 데 크게 기여할 것으로 내다봤다. 서울 패션 산업이 추정 매출 20조원에서 30조원으로 증대하는 데 기여할 것이라는 장밋빛 전망도 내놓았다.

하지만 불과 4년 뒤 기대는 우려로 바뀌었다. 서울 경제의 활력을 회복할 수 있는 획기적인 전기가 마련될 것이라던 당초 기대는 갈수록 예산이 불어나면서 세금만 퍼붓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에 파묻혔다.

전문가들은 갖가지 방안을 조언했다. 가장 한국적인 것을 핵심 콘텐츠로 만들어야 한다는 것도 그중 하나다. 재능 기부와 아날로그적 체험에 기반을 둔 교육 프로그램을 제공해야 한다는 제안도 나왔다. 한류 공연 전문가는 한국 창작 뮤지컬 등 지원을 필요로 하는 좋은 아티스트를 발굴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DDP는 더 이상 계획이 아니다. 이제 5000억원이 투입된 시설을 어떻게 활용할지만 남았다. 서울시는 개관과 동시에 간송문화전을 비롯한 ‘한국 디자인 원형전’을 연말까지 열 예정이다. 올해가 스포츠 이벤트가 많은 해임을 감안해 ‘승리를 위한 디자인’ 작품도 선보일 계획이다. 이탈리아 디자이너 엔조 마리 작품전과 독일 울름 조형대학의 디자인 교육 철학을 보여주는 작품전도 준비돼 있다. 오는 11월에는 패션·건축·도시 등 디자인 관련 영화 50여 편을 상영하는 디자인영화제도 개최할 예정이다.

1월10일 언론에 공개된 DDP는 외형뿐 아니라 내부도 유려한 곡선을 자랑했다. 지하 3층, 지상 4층, 총면적 8만6574㎡(약 2만6200평) 규모로 지어진 건물 내부는 각종 전시와 국제회의·패션쇼 등을 할 수 있는 ‘알림터’, 디자인박물관·디자인전시관이 들어서는 ‘배움터’ 등 5개 공간이 있고, 전시장, 카페, 공연장 등 15개 시설이 들어설 예정이다.

DDP 운영 주최인 서울디자인재단 측은 퐁피두센터와 같은 문화 명소로 만들겠다는 당초 전략을 바꿔 DDP만의 스타일로 선도자가 되겠다는 목표를 내세웠다. 전임 시장과 현 시장의 갈등 양상으로까지 치달았던 DDP가 서울시의 ‘랜드마크’로 자리 잡을지 아니면 ‘천덕꾸러기’ 신세가 될지는 향후 운영될 콘텐츠에 달렸다는 지적이다.            

 

공사가 한창인 고척동 돔구장 내부 모습. ⓒ 시사저널 전영기
서울시는 동대문운동장을 철거하면서 대체 야구장으로 고척동 돔구장(고척돔)을 건립 중이다. 고척돔 역시 그동안 여러 우여곡절을 겪었다. 서울시는 지난해 9월 고척돔이 안고 있는 문제점을 인식해 390억원의 예산을 추가로 투입해 대대적인 시설 확충에 나섰다. 이에 따라 총 건설 비용은 2007년 첫 계획 때 예상한 529억원보다 약 5배가 많은 2713억원으로 늘어났다. 서울시의 고민은 향후 운영 비용이다. 프로구단 홈구장으로 사용료를 받지 못할 경우 그 비용을 서울시가 고스란히 떠안을 수 있기 때문이다.

서울에 연고를 둔 프로야구 3개팀 중 넥센이 유력하게 거론된다. 현재 목동구장을 홈으로 쓰고 있는 넥센은 최근 고척돔으로 홈구장을 이전하는 부분에 대한 컨설팅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가장 큰 걸림돌은 사용료다. 고척돔을 홈구장으로 쓰는 사용료로 연간 100억원을 지불해야 한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두산과 LG가 잠실구장 사용료로 팀당 12억5000만원을 부담하고 있는 것과 비교하면 8배나 많은 금액이다.

아마추어 야구와의 문제도 풀어야 할 과제다. 철거한 동대문운동장은 아마추어 야구 경기를 하던 곳이다. 아마추어 야구에서 우선 사용권을 주장할 수 있는 셈이다. 하지만 건설 비용이 눈덩이처럼 불어난 상황에서 운영 비용까지 세금으로 충당할 경우 비난 여론이 거세질 수 있다. 입지 선정 때부터 교통 문제 등으로 논란이 됐던 고척돔의 활용 방안을 놓고 서울시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고척돔은 2015년 2월 완공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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