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대’ 오르는 순간 박 대통령 레임덕 빠진다”
  • 양정대│한국일보 정치부 기자 ()
  • 승인 2014.01.28 1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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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무성-남경필’ 비주류 연합 당권 도전…친박 주류 ‘서청원-이완구’ 결사 저지 태세

“김무성 의원이 당 대표가 되는 순간, 박근혜 대통령은 레임덕에 빠진다. 절대 안 된다.”

청와대 비서관 ㄱ씨는 최근 사석에서 기자가 8월에 치러질 가능성이 커진 새누리당 전당대회 얘기를 꺼냈더니 대뜸 이렇게 목소리를 높였다. 전반적인 당권 경쟁 구도와 전당대회 이후의 정치 상황에 대해 물었음에도 그는 시종일관 “김무성 당 대표 절대 불가”라는 말을 수차례 반복했다. ㄱ 비서관은 지난해 김 의원이 주도한 철도 파업 철회 과정을 거론하며 “조금만 더 밀어붙이면 노조가 백기 투항을 했을 텐데 (김 의원이) 난데없이 끼어들어 ‘광’만 팔고 청와대와 정부를 바보로 만들지 않았느냐”며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다.

서청원 새누리당 의원(오른쪽)이 2013년 11월4일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에 참석해 김무성 의원과 인사하고 있다. ⓒ 시사저널 박은숙
박 대통령에게 ‘아니오’ 할 수 있는 정치인

새누리당의 한 수도권 의원은 ㄱ 비서관의 반응을 전해 듣더니 “친박계 핵심들의 대체적인 생각이 그런 것 같더라”고 했다. 친박 주류 진영과 다소 거리를 둬온 이 의원은 “이번 전당대회에서도 그냥 청와대 말 잘 듣는 대표가 뽑힌다면 그거야말로 최악인데, 친박 쪽은 생각이 다른 거지”라며 씁쓸하게 웃었다.

정치권에서 김무성 의원은 ‘무대’로 통한다. 오랜 기간 그와 동고동락해온 당 사무처 당직자들이 ‘김무성 대장’이라는 뜻으로 붙여준 애칭이다. 무대라는 별칭만으로도 그의 친화력과 추진력을 짐작할 만하다. 실제로 김 의원은 현재 여권 내에서 자신의 구상과 판단에 따라 정치를 하는 몇 안 되는 정치인 중 한 명으로 꼽힌다. 현역 의원과 원외 당협위원장은 물론 사무처 당직자들에게서도 상당한 지지를 받고 있다.

이 점 때문에 김 의원의 정치 행보는 부침이 심했다. 2007년 한나라당(새누리당의 전신) 대선 후보 경선 때만 해도 그는 확고부동한 ‘친박계의 좌장’이었다. 하지만 그는 이명박 정부에서 원내대표를 맡으면서 친박계와 멀어졌고, 박근혜 대통령이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이던 2012년 19대 총선 때는 아예 공천을 받지도 못했다. 박 대통령은 ‘가신’을 원했지만, 그는 ‘동지’가 되고자 했기 때문이라는 게 대체적인 시각이다. 지금도 여권 인사들 10명 중 9명은 박 대통령에게 ‘아니오’라고 말할 수 있는 정치인으로 김 의원을 꼽는다.

이렇다 보니 김 의원이 차기 당권 도전을 기정사실화하자 친박 주류 진영에선 긴장하는 표정이 역력하다. 김 의원의 스타일이나 그간의 정치 행보로 미뤄볼 때 당 대표가 되면 황우여 대표 체제와는 달리 곳곳에서 파열음이 날 것이라고 보는 것이다. 김 의원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박 대통령을 성공한 대통령으로 만드는 게 내 소임”이라고 강조하지만, 이를 곧이곧대로 믿는 이는 많지 않다.

야권 또한 김 의원의 전당대회 출마를 예의 주시하고 있다. 그가 비주류의 구심으로 자리 잡을 공산이 크다는 점에서다. 8월 전당대회를 거치면서 친박 주류와 비주류 간 권력투쟁이 본격화할 것으로 보는 것이다. 민주당의 한 핵심 당직자는 “무대가 움직인다는 건 청와대 일방 우위의 여권 내 권력 지도가 바뀔 가능성이 생긴다는 얘기”라고 했다.

김무성 의원은 지난해 하반기부터 차기 당권을 염두에 두고 활동 반경을 넓혀왔다. 그와 가까운 한 친박계 재선 의원은 “아마도 본인의 성격과는 달리 최대한 모나지 않게 보이려고 애쓰느라 무척 힘들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청와대와 당내 친박 핵심들의 견제를 최소화하는 전략을 써왔다는 얘기다.

김 의원이 당권을 거머쥐기 위해선 몇 개의 산을 넘어야 한다. 물론 최종적인 승부처는 현재 친박계의 좌장 역할을 하고 있는 서청원 의원과의 맞대결이다. 당초 오는 6월에 새로 취임할 19대 국회 하반기 국회의장을 마음에 뒀던 서 의원이었으나, 최근 당 대표 출마 쪽으로 입장을 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청와대와 친박 핵심들이 최경환 원내대표로는 김 의원을 꺾기 어렵다는 판단에 따라 서 의원을 설득했다고 한다. 김 의원과 가까운 한 중진 의원은 “김 의원은 ‘박심(朴心)’을 등에 업은 서 의원과의 한판 승부를 통해 ‘정치인 김무성’의 가능성을 보여줘야 한다”고 말했다.

오는 5월 새누리당 원내대표 경선에서 맞붙을 것으로 예상되는 남경필 의원(왼쪽)과 이완구 의원. ⓒ 시사저널 박은숙
5월 원내대표 경선, ‘친박 vs 비주류’ 격돌 서막

이에 앞서 김 의원은 ‘대리전’을 치러야 한다. 5월 초에 있을 차기 원내대표 경선이다. 올 초만 해도 비주류 중진인 남경필 의원 쪽으로 무게 추가 기우는 듯했지만, 최근 친박계가 원내대표 출마를 욕심내던 홍문종 사무총장을 주저앉히고 새로 이완구 의원을 내세우기로 의기투합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소장·개혁파 이미지가 강한 수도권 출신의 남 의원은 지난해 하반기부터 가급적 청와대나 친박 지도부와 부딪치지 않으려 애쓰며 원내대표의 꿈을 키워왔다.

영남 출신인 김 의원으로서는 비박(非朴) 연대를 통해 지역적 기반은 물론 이념적으로도 지지층 확산을 도모할 만한 매력적인 대상이 남경필 의원이다. 김무성 의원실 관계자는 “원내대표가 비상대책위원장을 맡아 지방선거를 치러야 할 텐데 당내에 남 의원만 한 사람이 어디 있느냐”고 했다. 양측이 윈윈할 수 있는 적극적인 연대 대상이라는 얘기다.

하지만 친박계가 충남도지사 출신의 이완구 의원을 원내대표 후보로 사실상 내정하면서 섣불리 우위를 점치기 어렵게 됐다는 게 중론이다. 이 의원은 최 원내대표와 윤상현 원내수석부대표, 홍 사무총장 등 이른바 ‘친박 트리오’와 달리 계파를 넘어 두루 친분을 쌓은 데다 충청권의 중요성도 부쩍 커진 상황이다. 이미 청와대의 의중이 실렸다는 소문도 파다하다. 전당대회에선 김 의원의 개인기로 친박계 바닥 당심(黨心)을 일부 끌어올 수 있겠지만, 현역 의원들이 투표권자인 원내대표 경선에선 이를 장담하기 어렵다.

결국 김 의원은 서 의원과의 본선 맞대결에 앞서 남 의원을 통해 원내대표 경선에서 친박계 주자로 나설 이 의원을 꺾어야 하는 셈이다. 비주류 연합군인 ‘김무성-남경필 조’와 친박 주류인 ‘서청원-이완구 조’가 그야말로 치열한 권력투쟁을 벌이게 된 것이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올해 치러질 새누리당 원내대표 경선과 전당대회는 근래 10여 년 만에 최고의 빅매치가 될 가능성이 크다”며 “김 의원이 차기 총선에서 공천권을 행사할 수 있게 되면 단번에 유력 대권 주자 반열에 오를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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