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성택 처형 전후 무역일꾼 대거 소환됐다”
  • 중국 단둥=김지영 기자 (young@sisapress.com)
  • 승인 2014.01.28 1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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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 다녀오겠다”며 중국 단둥에서 사라져…“아직 북한에서 못 나온 사람 많아”

중국 랴오닝성(遼寧省) 단둥(丹東) 시는 압록강을 경계로 북한의 평안북도 신의주시와 마주한 국경도시다. 한국전쟁 때 끊어진 압록강철교(중국명 압록강단교(鴨綠江斷橋))와 북중 무역 물자의 70% 이상이 오가는 ‘중조우의교(中朝友誼橋)’로 유명하다. 지호지간에 북한 땅이 있어 중국·한국 등지에서 온 관광객의 발길이 연중 끊이지 않는다. 특히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중조우의교를 통해 열차 편으로 중국을 방문할 때마다 전 세계 언론의 이목이 집중됐던 곳이기도 하다.

시사저널 취재진은 1월11일 저녁 7시쯤 단둥에 도착했다. 초저녁인데도 압록강변에는 산책하는 사람만 드문드문 눈에 띄었다. 주변 상가와 주점, 북한 식당 등은 조명만 화려하게 밝히고 있었다. 손님은 거의 없었다. 기온이 영하로 떨어진 탓만은 아니었다. “장성택 처형 후 북한 내부 분위기가 심상치 않게 돌아가면서 단둥에 체류하던 북한 사람의 숫자도 확 줄어들었다”는 게 단둥 현지인들의 전언이었다. 단둥에서 10년 이상 대북 사업을 했던 한국 상인은 “예년에도 1월에는 저쪽(북한)과의 업무와 무역이 거의 없었다. 그렇지만 올해 1월만큼 차분하고 조용하진 않았다”고 말했다.

1월15일 오전 중국 단둥 시에서 화물 트럭들이 ‘중조우의교’를 통해 북한 신의주시로 들어갔다. ⓒ 시사저널 최준필
2014년 1월, 단둥은 침묵의 도시였다. 관광 비수기인 겨울철인 데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반부패 개혁을 천명한 이후 공무원 접대 문화가 자취를 감추면서 단둥 지역 경제가 꽁꽁 얼어붙었다.

지난해 말부터 이 지역 경제를 더 얼어붙게 만든 또 다른 일이 벌어졌다. 바로 단둥 지역에서 북한으로 생필품을 공급하는 ‘무역일꾼’과 그 가족 상당수가 종적을 감추면서 지역 경제에 큰 주름살이 생긴 것이다. 북한이 파견한 무역일꾼은 엘리트 출신이다. 우리와 비교하면 공무원 과장이나 국장급에 해당한다. 단둥 일대에서 활동하는 무역일꾼과 그 가족은 1000여 명으로 추정된다. 단둥의 한 조선족 자영업자가 “단둥에 조선(북한) 사람이 없으면 전체 경기가 안 좋다”고 말했을 정도다.

단둥은 북한의 노동당·군부·내각 등에서 따로따로 파견한 무역일꾼들이 활발하게 활동하는 곳이다. 기자가 지난해 4월 초 단둥을 방문했을 때만 해도 그랬다. 압록강변의 호텔과 식당, 거리에서 북한 사람을 접하기란 그리 어렵지 않았다. 북한 말씨나 가슴에 단 김정일 배지 등으로 중국인과 확연히 구분됐다. 심지어 기자는 북한 무역일꾼들과 어울려 ㅈ식당에서 술을 마시며 남북문제를 놓고 ‘설전’을 벌이기도 했다.

“북 당국, 무역일꾼 개인 착복 대거 조사”

취재진은 1월11일 저녁 9시경, 지난해 4월 북한 손님들로 북적였던 ㅈ식당을 다시 찾았다. 하지만 식당은 한산했고 북한 손님도 없었다. ㅈ식당 여주인은 “북한 사람들이 지난해 말 북한으로 들어가는 바람에 하루 매상이 절반 이상 줄어들었다”고 울상을 지었다.

기자가 9개월 만에 다시 방문한 1월 중순, 단둥 일대에선 ‘단’ 한 명의 북한 사람도 접할 수 없었다. 평소 북한 사람들이 즐겨 찾는 식당과 술집에서도, 그들이 잘 묵는 중련호텔에서도, 압록강변에서도 북한말을 쓰거나 김정일 배지를 단 사람의 그림자조차 발견할 수 없었다.

북한 사람이 사라지면서 북한 당국이 단둥 지역에서 직영하는 북한 식당 8곳도 된서리를 맞은 것으로 전해졌다. 기자가 2010년 6월 단둥을 방문했을 때만 해도 500석 규모에 종업원이 50여 명이었던 류경식당은 저녁 7시께 좌석이 꽉 차서 더 이상 손님을 받지 못할 정도였다. 인근에 있는 ‘삼천리’와 ‘평양 옥류관’도 마찬가지였다. 가격은 비싸도 음식이 깔끔하고 미모의 여성 복무원(종업원)들의 노래와 악기 공연으로 인기가 높은 곳이 북한 식당이다. 하지만 2014년 1월11일 저녁 북한 식당은 썰렁했다. ‘삼천리’에는 손님이 거의 없었다. 이 지역 주민은 “관광철이 아니라는 이유도 있지만 북한 사람들이 요즘 (북한 식당에) 많이 안 가니까 장사가 안 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 많던 북한 무역일꾼과 가족들은 도대체 왜 북한으로 돌아간 것일까. 한국과 중국 단둥 및 다롄(大連) 등지에서 취재한 결과, 단둥에서 활동하던 무역일꾼들은 지난해 11월경부터 한두 명씩 북한으로 들어갔다. 이른바 ‘긴급 소환령’이 떨어졌다는 것이다. 지난해 12월12일 장성택이 처형되기 한 달 전쯤이다. 그렇게 귀국한 북한 사람 가운데 일부는 12월 말부터 한두 명씩 다시 단둥으로 돌아오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대다수는 아직 북한에서 귀환하지 못했다. 이에 대해 단둥에서 활동하는 한 대북 사업가는 “장성택에게 줄을 섰던 사람들이 (단둥으로) 돌아오지 못한 것 같다”고 말했다. 또 다른 단둥의 사업가는 “지난해 11월 초부터 조선(북한) 무역일꾼들이 하나 둘 ‘조국에 다녀오겠다’ ‘가족이 보고 싶어서 고향에 갔다 오겠다’는 말을 남기고 줄줄이 귀국했다. 직감적으로 북한에 무슨 일이 터졌구나 싶었다. 나중에 보니 장성택 사건이 터진 것이다. 그래서 나도 11월과 12월에 할 일이 없어 놀았다”고 말했다.

‘장성택 후폭풍’이 단둥에만 몰아친 것은 아닌 듯하다. 북한이 중국 전역에서 활동하는 무역일꾼에 대해 대대적인 조사를 벌였다는 것이다. 단둥 지역에서 대규모 대북 사업을 했던 한 업자는 “(장성택 처형 후) 북한에서 무역일꾼들을 대거 조사했다”며 “단둥 지역뿐 아니라 베이징 등의 (북한) 무역사무소에서 탈세했는지, 개인 착복을 했는지도 조사한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북한이 장성택 처형을 전후로 중국에서 외화벌이를 하거나 생필품을 공급하는 무역일꾼 전반에 대해 강도 높은 조사를 벌였다는 것이다. 목적은 두 가지로 해석된다. 우선 무역일꾼 개인의 비리 색출이다. 또 하나는, 장성택 세력에 대한 숙청 작업으로도 보인다.

북한 무역일꾼 가운데 일부가 단둥으로 돌아오긴 했지만 북·중 교역이 예전보다 크게 줄어들었다고 현지인들은 말한다. 취재진은 11월15일 오전 중조우의교를 통해 신의주로 들어가는 화물 트럭 행렬을 볼 수 있었다. 이에 대해 현지인은 “아무리 무역일꾼이 줄었다 해도 먹고사는 것과 관련한 생필품과 가전제품 등은 지금도 북한으로 들어간다”고 말했다.

1월11일 저녁 중국 단둥의 ‘조선한국민속거리’는 을씨년스러웠다. 현지인은 “지난해까지만 해도 북한인과 중국인 등의 왕래가 많았던 곳”이라고 말했다. ⓒ 시사저널 최준필
“김정은, 유부녀 리설주와 결혼” 소문도

북한에서 최근 단둥으로 돌아온 무역일꾼의 행보도 매우 조심스럽고 신중한 것으로 전해졌다. 북한 사람은 예전에 친하게 지냈던 한국 사람을 만나도 ‘눈인사’만 할 정도라고 한다. 단둥에 사무실을 둔 한 한국인 무역상은 “지난해까지만 해도 나와 함께 술을 많이 마셨던 (북한) 사람이 독일식 뷔페식당에 갔는데 ‘몸이 안 좋다’는 이유로 술을 안 마시더라”며 “내가 보기엔 술 먹고 실수할까 봐 조심하는 것 같았다. (실수하면) 불똥이 튈 것을 염려해 조심하더라”고 전했다. 이 무역상은 또 “지난해까지만 해도 북한 사람을 만나면 농담도 주고받았는데 (장성택 처형 후) ‘잘 지내느냐’는 인사와 가벼운 덕담 정도만 건네고 있다”고 말했다. 기자가 이 무역상에게 ‘당신이 만나는 무역일꾼을 소개해줄 수 있느냐’고 묻자 “그건 힘들다. 나도 북한과 거래해야 하는데 한국인을 소개시켜주면 내 사업도 제대로 할 수 없을 것 같다”며 난색을 표시했다.

장성택이 처형된 시점을 전후해 북한 신의주시가 건너다보이는 압록강변에는 고성능 카메라를 들고 다니는 정체불명의 사람들이 있었다고 현지인들은 전했다. 단둥의 한 현지인은 “지난해 말에는 고성능 카메라를 들고 다니는 사람들이 보였다. 여기(단둥) 사람은 분명 아니었다. 그렇다고 중국이나 한국에서 온 관광객도 아니었다”며 “(북한의) 국가안전보위부 사람들이 단둥에 있는 북한 사람들을 감시하는 게 아닌가 싶었다”고 말했다.

북한 내부는 장성택 처형 이후 대대적인 인사이동이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 내부와 연락을 주고받는 단둥의 소식통은 “12월 중순까지도 연락이 닿지 않았던 (북한 내부의) 사람이 12월 말에 ‘잘 정리됐다. 부위원장으로 승진했다’는 팩스를 보내왔다. 내가 아는 (북한 내부) 사람 중 승진한 사람이 많다”고 말했다.

단둥 지역에는 김정은 북한 노동당 제1비서의 부인 리설주와 관련된 소문도 나돌고 있다. 단둥의 한 주민은 “지난해 5월쯤부터 ‘리설주가 원래 유부녀였는데 첫 번째 남편과 헤어진 후 김정은의 부인이 됐다’는 소문이 파다했다”며 “(김정은의) 아버지(고 김정일 국방위원장)도 유부녀와 살더니, 그 아들(김정은)도 똑같다는 말까지 나왔다”고 전했다. 김정일의 두 번째 부인 성혜림도 유부녀였다. 성혜림은 중국 등지를 떠돌고 있는 김정남의 생모로, 2002년 5월 러시아에서 사망했다.

단둥 지역에는 김정은에 대한 비난과 기대가 혼재돼 있다. 일부에선 “어린놈이 무엇을 하겠느냐”며 비아냥거리는 반면 “유럽 유학까지 다녀왔기 때문에 중국처럼 개혁과 개방에 나설 것”이라고 기대하는 목소리도 들렸다.

2010년 3월26일 천안함 사태 이후 취해진 ‘5·24 대북 경제 제재 조치’로 남북 간 교류는 끊어진 상태다. 하지만 단둥 지역에서는 우회적인 방법으로 남북 교역이 이뤄지고 있다. 가령 한국인 사업가가 중국의 용역 회사를 통해 북한에 옷 5000벌을 주문한다. 그러면 중국 용역 회사는 다시 북한에 옷 주문을 하고 이를  받아서 다시 한국인 사업가에게 전달한다. 제3국을 통한 우회 무역이 이뤄지고 있는 것이다. 결국 북한에서 생산된 옷은 ‘메이드 인 차이나’ 딱지만 달고 한국으로 들어오는 셈이다. ‘5·24 조치’로 남북 직교역만 막혔을 뿐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북한산을 수입할 수 있다는 얘기다. 이에 대해 대북 사업가는 “5·24 조치로 남북 교역이 막혔다 해도 북한에 큰 영향을 미치지 못하고 있다. 중국 입장에서는 오히려 북한과의 교역이 늘어났다. 결국 피해를 본 것은 한국인 대북 무역상이다”라고 씁쓸해했다.

 

2013년 9월 평양과 나진의 모습. 왼쪽부터 평양역, 평양 교통 여경, 나진 해안공원에서 춤추며 노는 주민들. ⓒ 장 사장 제공
시사저널 취재진은 1월 중순, 중국 다롄의 한 호텔 커피숍에서 북한을 상대로 광물·전분 등을 수입하는 장 아무개 사장을 만났다. 장 사장은 1990년대부터 평양과 나진 등을 자주 오가고 있다.

그는 지난해 8~9월 평양을 다녀왔고, 나진에는 수시로 드나든다. 평양에 갈 땐 비자가 필요하지만 나진은 무비자로 갈 수 있다. 장 사장은 “지난해 평양에 갔을 때도 겉보기엔 평화로웠다”며 “나진에 가서 택시를 타거나 식당엘 가도 특별한 변화가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지난해 9월 평양에서 촬영한 사진 몇 장을 취재진에게 보여주기도 했다.

최근 몇 년 동안 평양에 자동차 수가 급증했다고 한다. 2006~07년까지만 해도 평양 시내에는 자동차가 드문드문 눈에 띄었으나, 요즘엔 출퇴근 시간에 정체 현상까지 빚어질 정도라고 한다. 장 사장은 “(평양에 갔을 때) 나한테 택시 100대를 운영하는 합작회사를 차리자고 제안한 사람도 있었다”고 전했다. 평양 시내에 택시 승객이 늘어나고 있음을 방증하는 대목이다.

장성택 처형 이후에도 북한에는 큰 변화가 없다고 한다. 장성택 처형 뒤 장 사장은 북한에 있는 지인들에게 “걱정된다”는 내용의 이메일을 보냈는데 “아무 상관없다”는 답신이 왔다고 했다.

기자가 ‘북한 사람을 만나 김정은 얘기도 하느냐’고 묻자, 장 사장은 “에이!”라며 손사래를 쳤다. 중국에선 한국인이든 중국인이든 북한 사람과 만나 김정은 등 북한 정치를 언급하는 것 자체가 금기로 돼 있다.

특이한 것은 장성택 처형 직후에도 북한은 해외에서 비자금을 조성하려 안간힘을 쓰고 있다는 점이다. 장 사장은 “(북한의) 한 국영기업 사장이 나한테 중국이나 홍콩에 내 이름으로 은행 계좌를 만들어달라고 제안했지만 거절했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그는 지난해 12월13일 북한에 있는 사업 파트너에게 받았던 휴대전화 문자메시지를 기자에게 직접 보여줬다. ‘FX 사업을 위해 홍콩HSBC 본점에 은행 계좌 개설하는 문제도 그렇고 여러 사업을 추진시켜야겠는데 연락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 올림.’ 12월17에도 ○○씨는 장 사장에게 ‘FX건과 기타 문제를 위해 중국 은행 계좌 현금카드 발급이 일차적으로 요구됩니다. 선생님(장 사장)의 협조 부탁합니다’라는 문자메시지를 보내왔다. ‘FX 사업’에 대해 장 사장은 “IT(정보기술)과 관련된 사업”이라고만 언급했다. 기자가 ‘북한엔 또 언제 가느냐’고 묻자 “(북한에 있는 지인들이) 숙청당하지 않았으면 올봄에 갔다 올 예정”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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