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산 물 팔아보니 "힘들다"
  • 노진섭 기자 (no@sisapress.com)
  • 승인 2014.01.28 1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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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심의 백산수 시장점유율 곤두박질…중국 시장에서도 ‘빨간불’

2012년 12월은 농심에게 서러운 달이다. 15년 동안 공들여 시장 1위 제품으로 만든 ‘삼다수’를 빼앗긴 바로 그 시간이다. 연 매출 2000억원이 하루아침에 날아갔다. 광동제약의 비타500과 옥수수 수염차의 매출을 합쳐도 1000억원 안팎인 것에 비하면 삼다수는 농심에게 보물 덩어리였던 셈이다.

제주특별자치도개발공사(제주개발공사)는 1998년 삼다수를 출시하면서 유통과 판매를 농심에게 맡겼다. 먹는 샘물 시장이 겨우 필락 말락 할 무렵 농심은 출시 6개월 만에 삼다수를 1위 자리에 올려놨고, 2009년 시장점유율 50%를 넘겼다. 2012년엔 연 매출 2000억원을 달성했다. 농심 전체 매출의 10%를 차지할 정도로 규모가 커졌다.

 

시장점유율이 떨어진 백산수가 진열된 서울의 한 할인마트에서 소비자가 생수 제품을 고르고 있다. ⓒ 시사저널 구윤성
농심, 삼다수 판매권 놓친 후 백산수 출시

2012년 12월, 샴페인을 터뜨릴 찰나에 비보가 날아들었다. 제주개발공사와 맺었던 판매 계약 연장에 실패한 것이다. 제주개발공사는 농심을 내치고 광동제약과 2016년까지 새로운 동거에 들어갔다. 광동제약은 소매점과 편의점에 삼다수를 판매하게 됐다. 대형 할인점과 SSM(기업형 슈퍼마켓)에 대한 유통은 제주개발공사가 직접 맡기로 했다. 농심 측은 “진로의 석수라는 생수가 인기를 끌던 당시 무명의 삼다수를 단기간에 시장점유율 1위로 끌어올린 농심과의 판매 계약을 끊은 제주개발공사를 이해할 수 없다”며 볼멘소리를 냈다. 제주개발공사가 15년 동안 뒷바라지한 조강지처(농심)를 버리고 다른 여자(광동제약)와 새살림을 차렸다는 것이다. 반면 제주개발공사는 그 조강지처(농심)가 바람을 피웠다고 주장한다. 제주개발공사 측은 “농심이 삼다수를 팔면서 동시에 자신들의 생수 제품을 만들어 삼다수와 끼워 팔기를 하는 등 문제를 만들었다”고 말했다.

실제로 농심은 오래전부터 생수 사업에 손을 댔다. 국내외 수원지를 물색하다 백두산 암반수를 낙점했다. 유럽이나 러시아에 뒤지지 않는 세계 최고의 생수라는 결론을 내린 것이다. 농심은 2006년 상선워터스라는 회사에 지분 10%를 출자하고 백두산에서 생수를 퍼 올리도록 했다. 2009년 그 지분율을 32%까지 올렸고, 2010년 백두산에 최신 설비를 갖춘 먹는 샘물 공장을 지었다. 그리고 ‘화산옥수’라는 이름을 붙인 생수를 중국 시장에 내놓았다. 유통은 농심의 중국 법인이 맡았다.

이 시기부터 농심과 제주개발공사는 삐걱거리기 시작했고, 결국 2012년 12월 제주개발공사와 농심은 갈라섰다. 때를 기다렸다는 듯이 농심은 백두산 생수를 국내에 들여와 ‘백산수’라는 이름을 붙여 팔았다. 동시에 상선워터스의 유상증자에 참여해 지분율을 55.4%로 올려 종속 회사로 편입시켰다. 농심 관계자는 “지난해 상선워터스에 대한 지분율을 80% 이상으로 높였다”며 “이는 생수 사업을 확대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삼다수를 유통하면서 노하우를 쌓은 농심은 자신이 만든 백산수를 5년 이내에 국내 1위 생수로 만들겠다는 목표를 발표했다. 농심은 공격적인 마케팅으로 출시 100일 만에 백산수의 시장점유율을 14% 수준으로 끌어올리며 국내 생수 시장 3위 자리를 꿰찼다. ‘삼다수 신화’를 재현하는 듯했던 백산수는 그 이후부터 시장점유율이 떨어지기 시작해 2013년 11월 3.5%까지 곤두박질쳤다. 데뷔전은 화려했으나 1년 만에 ‘밍밍한 물’로 돌아온 셈이다. 농심 관계자는 “시장에 진출한 지 1년 정도밖에 되지 않아 성적을 매기기엔 시기상조”라며 “천천히 시장점유율을 높여갈 것”이라고 말했다.

생수 시장 반응은 ‘밍밍’

시장에서 농심을 바라보는 시각은 부정적이다. 업계 관계자는 “매달 시장점유율이 올라가도 모자랄 판에 오히려 백산수의 시장점유율은 떨어지고 있다”며 “백두산은 겨울철에 눈이 많이 와 생수를 생산하기 쉽지 않고 한국까지 운송하기에도 애로가 많은 데다 수질도 국산 제품보다 못해 앞으로도 고전할 것”이라고 밝혔다.

삼다수를 단기간에 ‘생수의 왕’으로 만들었던 농심의 저력은 어디로 간 것일까. 경쟁이 심해지는 등 시장 상황이 그때와는 다르다는 것이 농심의 대답이다. 농심이 백산수를 내놓자마자 롯데칠성음료도 백두산 생수(백두산 하늘샘)를 출시했다. 이미 프랑스에서 에비앙이라는 생수를 수입해서 판매해온 이 회사는 2012년 당시 삼다수 위탁판매권 입찰에 참가했다가 고배를 마셨다. 소매점과 편의점 삼다수 판매권을 따낸 광동제약은 전국 소매점 95% 이상에 입점한 유통망을 총동원하겠다고 발표했다. 제주개발공사가 잠정 집계한 삼다수의 지난해 매출은 2124억원으로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농심에는 악재까지 겹쳤다.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농심이 백산수로 폭리를 취했다는 얘기가 불거졌다. 289원에 수입한 백산수를 국내에서 네 배에 육박하는 1100원에 유통한 것이다. 농심의 백산수는 중국 시장에서도 버림받을 처지에 놓였다. 백산수 상표 출원을 신청하고 등록 허가를 기다리던 농심은 지난해 11월 중국 국가지식산권국(우리의 특허청)으로부터 재심사 통보를 받았다. 중국 대표 맥주회사인 칭다오 맥주가 백산수의 상표 등록에 이의신청을 했기 때문이다.

이의신청 내용은 ‘백산수’라는 명칭이 백두산 지역에서 발원하는 샘물을 통칭하므로 특정 상품의 단독 상표가 될 수 없다는 것이다. 중국 특허 당국이 이의신청을 인정해 백산수의 상표 등록을 허락하지 않으면, 상표 도용 및 유사 상표 범람 등이 예견된다. 중국 시장에서 나름으로 고급 생수 마케팅을 펴던 농심으로서는 심각한 타격을 입을 수 있다. 게다가 ‘백산수’ 관련 상표를 보유한 기업으로부터 판매 금지 가처분 등의 소송 제기도 나올 수 있다. 이에 대해 농심 관계자는 “법률 검토를 하고 있다”고만 말했다.

지난해 3분기 매출액 1조3820억원인 농심은 창립 50주년이 되는 2015년 매출액 4조원, 경상이익 5000억원을 달성하겠다는 목표를 밝혔다. 1971년 내놓은 새우깡, 27년 전 선보인 신라면을 포함해 너구리·짜파게티 등 스낵과 라면 사업으로 재미를 본 농심은 또 다른 성장 동력이 필요했고, 결국 생수 사업을 선택했다.

국내 생수 시장은 매년 10%씩 성장해 올해엔 6000억원 규모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농심은 올해 신라면 블랙, 수미칩, 백산수를 3대 전략 품목으로 정했다. 특히 백산수를 띄우기 위해 다양한 전략을 짰다. 산모교실 등에 협찬하면서 소비자와의 접점을 넓혀나갈 구상이다. 마라톤·농구·축구·야구 등에 후원하면서 스포츠 마케팅에도 힘쓸 생각이다. 기존 광고 모델을 바꾸는 등 새로운 홍보 전략도 마련했다. 농심 관계자는 “백산수를 출시한 지 1년 만이라 성과를 평가하기엔 시기상조”라며 “호시우보(호랑이같이 예리하게 보고 소같이 신중하게 행동한다)가 올해 경영 지침”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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