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더 달라 몽니 부리다 돌연 기부하겠다니 …”
  • 조현주·이석 기자 (cho@sisapress.com)
  • 승인 2014.02.12 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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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덕 전 문화재청 국장, 신응수 대목장에 직격탄

대한민국 국보 1호 숭례문을 둘러싼 잡음이 끊이지 않고 있다. 숭례문 복구단장으로 복원 작업을 지휘했던 최종덕 문화재청 문화재정책국장이 2월5일 직위 해제됐다. 최 국장은 앞서 2월3일 숭례문 복구 과정에서 전통 기법을 사용하기로 한 당초 방침과는 달리 편법이 동원된 내용을 상세히 담은 저서 <숭례문 세우기-문화재 복구단장 5년의 현장 기록>이라는 저서를 펴내 논란의 중심에 섰다. 문화재청이 최 국장을 갑작스레 직위 해제한 것은 숭례문 부실 복구 논란으로 감사원 감사를 받고 있는 와중에 민감한 내용이 담긴 책을 발간한 데 따른 조치로 알려졌다.

최 전 국장의 책에 따르면 숭례문 복구 과정의 문제점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2008년 5월20일 문화재청은 ‘숭례문 복구 기본 원칙’을 발표하며 전통 기법과 연장을 사용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철물 제작 과정부터 기와와 단청 그리고 목재를 사용한 부분까지 실상은 전혀 달랐다. 최 전 국장은 자신의 저서 서두에서 “전통 기법과 재료 그리고 연장으로 옛 건축물을 수리하거나 복원하는 일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이러한 한계 속에서 숭례문 복구는 실시됐다”고 고백했다. 이어 “숭례문 복구를 담당했던 책임자로서 참담한 심정으로 (숭례문 부실 복구 논란이 일고 있는) 이 현장을 지켜보고 있다”고 밝혔다.

최종덕 전 국장이 낸 책 ⓒ 시사저널 이종현
특히 숭례문에 사용된 목재 구입 내역에 대한 언급이 눈에 띈다. 저서에는 문화재청이 숭례문에 들어간 목재를 어떤 식으로 구하게 됐는지 상세히 나와 있다. 또 복구공사 중단 사태가 벌어졌을 때 목공사를 총괄 지휘한 신응수 대목장과 갈등을 빚었던 일, 이후 목재 공급 루트가 바뀌게 된 사실에 대해서도 언급하고 있다.

숭례문 목재 공급 루트 왜 바뀌었나

책에 따르면 숭례문 복구에는 소나무 기증 의사를 밝힌 166명의 기증자에 대한 최종 심의를 거쳐 총 10명의 기증자로부터 입목 21주와 원목 338개를 기증받았다. 하지만 숭례문 복원에 필요한 목재를 기증한 나무만으로 충당할 수 없었다. 복원공사에는 용도에 따라 다양한 크기의 나무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문화재청은 전통 목조 건축에 필요한 목재를 크기에 따라 일반재(직경 30cm 이하, 길이 3.6m 이하), 특수재(직경 30~45cm, 길이 3.6~7.2m), 특대재(직경 45cm 이상, 길이 7.2m 이상)로 구분하고 있는데 특대재는 시장에서 구할 수 없는 경우가 많다.

2013년 3월20일 최종덕 전 숭례문 복구단장(왼쪽)이 변영섭 당시 문화재청장에게 현장 보고를 하고 있다. ⓒ 뉴시스
책에 따르면 이러한 사정 때문에 경복궁 복원 공사 때는 필요한 특대재 중 상당수는 외국산 목재를 사용했다고 한다. 하지만 숭례문은 국보 1호라는 상징성과 복구의 중요성을 감안해 외국산 소나무를 쓸 수 없었다고 했다. 이에 문화재청은 강원도 삼척에 있는 태조 이성계 5대조 무덤인 준경묘에서 20주의 소나무를 베어 10주는 광화문 복원에, 10주는 숭례문 복원에 사용하기로 했다. 광화문 복원을 담당했던 신응수 대목장이 벌채할 나무의 선정에서부터 벌채·운반·보관을 도맡았다.

어렵게 목재를 조달했지만 이것이 모두 공사에 쓰였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남는다. 책에는 2011년 12월부터 한 달간 빚어진 복구공사 중단 사태와 관련한 비화도 담겼는데 이후 목재 사용 방침이 바뀐 사실이 드러났다. 복구공사가 중단된 것은 시공사인 명헌건설과 신응수 대목장 사이에 인건비 문제를 두고 갈등이 빚어졌기 때문이다.

책에 따르면 신응수 대목장은 2011년 12월 목공사 노임 단가를 더 올려달라며 시공사 측과 마찰을 빚어 공사를 중단했다가 돌연 태도를 바꿔 자신이 기부를 해서 공사를 재개하겠다고 문화재 복구단 측에 밝혔다고 한다. 이에 대해 최 전 국장은 “모양새가 우습다. 신응수 목수가 진짜 기부할 생각이 있었으면 일을 시작할 때 진작 했어야 한다”며 “지금 공사가 마무리 단계에 와 있는데 돈 더 달라고 몽니를 부리다가 갑자기 기부하겠다고 태도를 180도 바꾸는 것은 아무래도 생뚱맞다”고 했다.

최 전 국장은 또 “더구나 그(신 대목장)는 2009년 12월 장인 선정 때 만약 자신이 숭례문 복구를 담당할 대목장으로 선정되면 임금을 기부하겠다고 공언한 적이 있다”며 “그러나 선정된 후에는 거기에 대한 어떠한 언급도 없었다”고 주장했다.

최종덕 “(신응수는) 진의를 알 수 없는 사람”

복구공사 중단 파동이 언론을 통해 공개되면서 여론은 문화재청뿐만 아니라 시공사, 신응수 대목장 모두에게 비판적으로 흘러갔다. 신 대목장은 언론 인터뷰를 통해 “내가 기부를 해서 공사를 재개하겠다”고 공식 선언하기에 이른다. 최 전 국장은 이를 회상하며 “돈이 적어 일을 못 하겠다고 파업했다가 돌연 기부하겠다고 하더니 다시 노임 단가 때문에 일을 못 하겠다고 언론에 흘린 뒤, 이제는 또다시 기부하겠다고 한다. (신 대목장의) 진의가 무엇인지 도무지 종잡을 수가 없다”고 밝혔다.

결국 공사 중단 사태는 신응수 대목장과 시공사, 문화재청의 협상 끝에 기존 계약대로 공사를 재개하는 것으로 싱겁게 끝을 맺는다. 하지만 협상 이후 신 대목장은 “공사를 재개한 뒤에 들어오는 나무들은 통나무가 아니라 자신의 목공소에서 다듬은 제재목을 가져오겠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최 전 국장은 책에서 “치목은 전통 기법으로 하겠다고 발표했는데 이제 와서 제재목을 쓰는 것도 우습다. 나의 고민이 깊어진다”며 우려를 나타냈다.

공사 재개 이후 복구공사에 쓰인 나무는 전부 신응수 대목장이 운영하는 제재소인 우림목재에서 가져온 것임을 확인할 수 있다. 기자는 지난 2011년 12월 복구공사 중단 때, 공사 현장에서 “신 대목장이 (숭례문 공사에 쓸) 나무를 자신의 창고로 빼돌리고 있다”는 소문이 무성했다는 제보를 받은 바 있다.

핵심은 신 대목장의 목재 사용 과정에 대해 비판적이었던 최 전 국장이 숭례문 복구 과정에 러시아산 소나무가 쓰였다는 의혹을 알지 못했느냐는 점이다. 이는 시사저널이 지난해 12월13일 처음 제기한 러시아산 소나무 사용 의혹을 풀 수 있는 중요한 실마리가 될 것이다.

강원도 삼척시 준경묘 주위의 금강송 군락지. ⓒ 시사저널 임준선
왜 감사받는 도중 책 펴냈나

신 대목장이 공사 재개 후 어떤 소나무를 가져다 쓰는지 최 전 국장이 파악하지 못했다면 숭례문 복구단장으로서의 역할을 다하지 못한 셈이 된다. 이와 관련해 최 전 국장은 2월7일 본지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숭례문 기둥 등에 러시아산 소나무가 쓰였는지 여부는) 전혀 모르는 사안이다”라고 말했다. 또 공사 현장에서 신 대목장의 ‘금강송 빼돌리기’에 관한 소문이 퍼지고 있었다는 사실에 대해서도 “전혀 모르는 일이다. 보고받은 적이 없다”며 언급을 피했다. 이에 대해 황평우 한국문화유산정책연구소장은 “숭례문 부실 공사가 감사원 감사를 받고 있기 때문에 최 국장은 부실 공사의 피감자이기도 하다”며 “그런데 이런 책을 펴냈다는 것은 직접 공사를 한 장인들에게 복구공사의 모든 책임을 떠넘기려는 것으로 보인다”고 비판했다.

2008년 2월10일 우리나라 국보 1호 숭례문이 방화로 불타버린 끔찍한 일이 발생해 전 국민을 경악하게 만들었다. 이 엄청난 사건의 후유증은 6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숭례문이 불타버린 데 대해 안타까워했던 국민은 부실 복구 논란과 각종 비리 의혹이 잇따라 터져 나오자 분노하고 있다.

숭례문을 둘러싼 파장이 커지면서 정치권에서도 강도 높은 비판이 쏟아졌다. 2월6일 새누리당 함진규 대변인은 논평을 통해 “2월10일은 숭례문 화재라는 가슴 아픈 일이 발생한 지 6년이 되는 날”이라며 “지난 2008년 방화라는 어처구니없는 일로 불타버린 숭례문은 5년간의 복구 과정을 거쳐 작년 5월 국민의 품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완공된 지 불과 5개월 만에 기와가 깨지고 단청이 벗겨지며 부실 복원 논란에 휩싸였고 공사 과정에서 우리 소나무인 금강송 일부를 러시아산 나무로 바꿔치기했다는 주장까지 나왔다”고 밝혔다. 이어 “정부는 지금이라도 총체적인 실태 파악에 나서야 한다. 국민들 억장을 무너지게 하는 졸속·부실 공사 의혹을 철저히 밝혀 책임을 물을 일이 있다면 관련자에 대한 문책도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숭례문 소나무 의혹과 최 전 국장의 책 내용 등에 대한 신응수 대목장의 견해를 듣고자 본지는 2월7일 여러 차례에 걸쳐 신 대목장의 휴대전화로 통화를 시도했다. 하지만 신 대목장은 전화를 받지 않았다.

 


1월19일 충북대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박 교수의 빈소. ⓒ 시사저널 이종현
숭례문을 둘러싼 의혹은 시간이 지날수록 미궁 속으로 빠지고 있다. 숭례문 복구공사에 러시아산 소나무가 사용됐다는 의혹을 풀기 위해 문화재청의 의뢰를 받아 복구공사에 쓰인 소나무의 나이테를 분석하던 충북대 박 아무개 교수(56)는 시료 분석을 마무리하고 문화재청에 약식 보고서를 제출한 직후인 1월18일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박 교수는 그동안 숭례문 부실 복구 논란에 대한 점검을 위해 꾸려진 ‘숭례문 종합점검단’에서 활동하고 있었다.

지난 1월19일 충북대병원 장례식장에서 만난 박 교수의 유족들은 박 교수가 ‘모종의 외압’ 때문에 자살에 이른 것으로 보고 있었다. 한 유족은 조심스레 “(박 교수가) 문화재청에 약식 보고서를 보내고 나서 갑작스레 죽음에 이르렀다”며 “듣기로 (숭례문에 쓰인) 유전자 분석이 불가능해 나이테 분석이 결정적 단서라고 알고 있는데 (본인이 제출한) 결과 때문에 신응수 대목장이 다칠 수도 있다고 판단한 듯하다”고 말했다. “(박 교수가) 다른 개인적인 이유로 자살까지 했을 것으로는 보이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박 교수의 동료 교수들은 박 교수가 연구실 외에는 두문불출하며 평소와는 다른 행동을 보였다고 했다. 박 교수는 숭례문 목재에 대한 나이테 분석이 끝난 후 이를 세간에 공개하는 것을 상당히 두려워했던 것으로 보인다. 박 교수의 한 동료 교수는 “(박 교수 자살) 사건이 나기 5일 전쯤 (박 교수가) 주변 사람들과의 연락을 끊어버렸다. 숭례문과 관련된 사실이 밝혀지면 주변이 다칠 수도 있다고 생각했는지 굉장히 불안해했다”고 말했다. 또 다른 교수는 “박 교수는 나무 나이테를 분석해 산지를 구별할 수 있는 국내에 유일무이한 전문가”라며 “이번 숭례문 분석을 맡은 연구팀에는 교수가 박 교수 단 한 명뿐이었고, 그가 거의 모든 분석을 도맡았다”고 밝혔다.

경찰이 문화재청으로부터 확보한 충북대 연구팀의 분석 결과에 따르면 숭례문에 쓰인 기둥·대들보 등의 소나무 표본 19개 중 2개는 나이테 패턴이 금강송과 다른 것으로 나타났다. 또 나머지 17개 중 5개는 나이테 유형을 명확하게 판단하기 어려운 것으로 확인됐다. ‘금강송 바꿔치기’ 의혹이 사실일 가능성이 크다는 것을 암시하는 대목이다.

나이테 패턴이 다르다는 이유로 금강송이 아닌 러시아산 소나무라고 확정할 수는 없다. 때문에 경찰은 국립산림과학원 측에 의뢰한 유전자 분석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문제는 벌채한 지 5년이 지난 개체에서 유전자를 채취해 분석한 경우는 전 세계 어디에도 없다는 점이다. 산림과학원의 분석 발표가 늦어지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만약 DNA 분석이 불가능하다면 검사물에 존재하는 안정 동위원소들의 구성비를 측정해 검사물의 연대나 원산지 등을 분석하는 기법인 ‘방사성 동위원소 분석법’을 활용할 수도 있다. 이에 대해 산림과학원의 홍용표 산림유전자원과장은 “방사성 동위원소 분석법을 통해 소나무의 원산지를 확인하는 것은 가능하다. 하지만 국내에는 이 분석에 정통한 연구자가 없다는 한계가 있다”며 “현재 DNA 확보를 위해 새로운 분석 기술을 개발해 시도하는 단계”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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