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코건설 횡령액 축소·은폐됐다”
  • 조해수 기자 (chs900@sisapress.com)
  • 승인 2014.02.12 1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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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수 채권 규모만 113억원”…내부 관계자 증언 및 자료 단독 입수

지난 1월21일 이른 아침, 언론매체를 통해 포스코건설의 횡령 사건이 일제히 보도됐다. 포스코건설의 경기 지방 공사 현장에서 100억원대 횡령 사건이 터졌다는 것이다. 약 2시간 후 횡령액은 3분의 1에도 못 미치는 수준으로 줄어들었다. 포스코건설 측에서 “안양 박달동 하수처리장 지하화 공사 현장에서 경리 업무를 맡은 비정규직 김 아무개씨(35·여)가 공사 비용을 과다 청구하는 방식으로 30억원을 빼돌린 것으로 보인다. 다른 직원들과 연루되지는 않은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며 서둘러 진화에 나섰기 때문이다. 그러나 포스코건설의 해명이 있은 후에도 횡령액과 연루자를 둘러싼 각종 의혹이 꼬리를 물고 제기됐다. 포스코건설이 이번 사건을 김씨의 단독 범행으로 몰고 가면서 횡령액을 줄이는 등 조직적 축소·은폐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 시사저널 구윤성
내부 직원들 광범위하게 연루됐을 가능성

가장 크게 문제가 된 것은 횡령액이다. 김씨는 2007년 1월 판교 하수종말처리장 공사장에 현장채용직으로 포스코건설에 처음 입사한 다음, 2009년 5월부터는 김포 하수종말처리장 공사장에서 경리보조로 일했다. 2013년 1월부터 지금까지는 안양 하수종말처리장 공사장에 투입됐다. 현장채용직이 7년여에 걸쳐 계속해서 고용되는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그런데 시사저널 취재 결과 이 사업장의 미수 채권이 110억원대에 이른다는 내부 고위 관계자의 증언이 나왔다. 익명을 요구한 현직 회사 간부 ㄱ씨는 “지난 1월16일 포스코건설 정도경영실이 경영기획본부와 토목환경사업본부 소관 그룹에 현장 전도금 및 미수금 관리 현황에 대한 조사를 지시했다. 이날 오후 김씨가 송도 사옥으로 출석해 사업기획그룹 담당자와 현장 전도금 통장을 대조하면서 회사 공금 개인 유용이 최종 확인됐다. 이때 미수 채권이 113억원으로 파악된 것으로 알고 있다. 이 사업장은 민간투자사업(BTL) 등 국책사업을 맡고 있는데, 횡령 규모만큼 부실 공사 우려도 커질 수밖에 없다. 당연히 (포스코건설이) 횡령 규모를 축소하려고 하지 않았겠나”라고 말했다.

더 큰 문제는 이번 사건이 김씨의 단독 범행에 의한 것이 아니라 내부 직원들이 광범위하게 연루된 조직적 비리 사건일 가능성이 있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는 점이다.

포스코건설은 시공을 맡은 사업 현장에 대해 매년 말 반드시 회계 결산을 받도록 하고 있다. 김씨가 작성한 결산 서류는 가장 먼저 현장 FA(자금 관리자)·SM(현장 관리자)의 결재를 받고, 2차로 토목환경사업본부 사업기획그룹의 확인을 거쳐 마지막으로 경영기획본부 재무관리그룹의 최종 결재를 받는다. 이러한 과정을 거치는 동안 막대한 금액의 허위 전표 작성 및 불법 자금 조성 행위가 발견되지 않았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힘든 대목이다.

포스코건설은 현장 간부가 업무 편의를 위해 결재 시스템 접속 권한을 김씨에게 알려줬는데, 김씨가 이를 악용해 근로자 숙소의 임차보증금을 중복 청구하는 방식으로 돈을 횡령했다고 밝혔다. ERP 회계관리 시스템을 통해 증빙 서류 없이 회계 전표만으로 결재가 이뤄졌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이와 관련해 지난해까지 회계 부서에서 근무한 또 다른 회사 간부 ㄴ씨는 “불과 보름, 한 달 간격으로 동일 금액, 동일 제목의 전표가 계속해서 올라오는데도 걸러지지 못했다는 것은 어느 담당자도 이를 발견하지 못했다는 것을 뜻한다. 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결재 라인에 속해 있는 직원들이 김씨의 비위 사실을 방조 또는 동조했다고밖에 볼 수 없다”고 지적했다.

포스코건설이 직원들에게 작성토록 한 환수동의서와 채권양도계약서.
“결재 라인의 김씨 비위 방조·동조 의심돼”

김씨의 비위 사실을 조사한 정도경영실에 대한 의혹도 제기됐다. 포스코건설은 지난 2003년 ‘회사의 이익과 윤리가 상충되는 경우에는 윤리를 택한다’는 윤리규범을 선포하고 윤리경영을 추진해왔는데, 이를 주관하는 부서가 정도경영실이다. 그런데 이번 횡령 사건에 대해 가장 큰 책임이 정도경영실에 있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는 것이다. 또 다른 현직 회사 간부 ㄷ씨는 “김씨가 일했던 공사 현장 중 판교와 김포는 2009년 5월 말, 2013년 1월 말에 준공됐다. 준공 후 회계 결산과 공사 품질에 대한 준공 감사는 당연한 수순이다. 그러나 당시 준공 감사에서 김씨의 횡령 사실은 드러나지 않았다. 정도경영실이 비위 사실을 밝혀내지 못한 책임을 지는 것은 당연하며, 김씨와 연루된 점은 없는지 오히려 조사를 받아야 한다. (포스코건설은) 이번 횡령 사건을 자체 감사를 통해 밝혀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지난해 9월부터 연말까지 진행된 국세청 세무조사 도중 이 사실이 드러났고, (포스코건설이 어쩔 수 없이) 이 사건에 대한 감사에 들어간 것으로 알고 있다. (포스코건설은) 국세청 세무조사에서도 세금 포탈로 수백억 원의 추징금을 부과받은 것으로 알고 있다”고 주장했다.

직원들 대상으로 ‘환수동의서’ 작성

포스코건설 측도 직원들의 연루 가능성을 인정하고 있다. 포스코건설은 감사를 진행하면서 채권양도계약서와 환수동의서를 만들었다. “횡령 금액을 최대한 환수하기 위한 목적”이라는 것이 포스코건설 측 설명이다. 그런데 환수동의서의 경우 김씨를 제외한 다른 직원들을 대상으로 작성됐다. 즉 횡령으로 금전적 이득을 본 사람이 김씨 외에 존재한다는 것을 전제하고 있는 것이다. 환수동의서 내용을 보면 ‘○○○은 주식회사 포스코건설의 직원으로서 업무를 수행함에 있어서 본인이 취득한 부당이득에 대해 다음과 같이 회사에 반환하기로 동의한다’고 나와 있다. 세부적으로는 ‘1. 본인은 포스코건설에 본인의 비윤리 행위로 인해서 발생한 손해에 대해서 이를 배상할 책임이 있으며, 이로 인해 얻은 부당한 이익에 대해 반환할 것을 확약한다. 2. 위 항의 손해배상 책임 변제 및 부당 이익을 반환하기 위하여 점유의 이전 기타 물건의 소유권의 이전 및 금전 지급을 위해 필요한 일체의 행위를 이행하기로 한다. (중략) 4. 향후 포스코건설이 본 동의서의 내용을 이행하기 위해 민·형사 소송 기타 일체의 보전 조치에 대해서 이의를 제기하지 아니하기로 한다’고 명시돼 있다. 여기서 언급한 부당이익은 횡령액을 뜻하며, 환수동의서를 작성토록 강요받은 직원들에 대해서는 포스코건설이 잠재적인 횡령 피의자로 규정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환수동의서를 작성한 내부 직원은 모두 몇 명이나 될까. 복수의 내부 관계자 증언에 따르면, 이번 횡령 사건으로 정도경영실의 조사를 받은 직원은 30~40명에 이른다. 이 중에는 경영기획, 경영지원, 재무·회계 등 핵심 부서 관계자들이 대거 포함돼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언급한 ㄴ씨는 “이들 중 일부가 환수동의서를 작성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해 포스코건설 측은 “환수동의서를 작성한 직원은 모두 5명이며, 이 중 3명은 이미 돈을 갚았고 2명만 남은 상황이다. 이들 5명은 김씨와 금전적 거래가 있었는데, 김씨로부터 빌린 돈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액수는 500만~2000만원 수준인데, 한 명만 7500만원인 것으로 파악됐다”고 해명했다.

환수동의서를 작성한 5명 중 3명은 김씨가 일했던 사업장의 현장 소장과 FA들이다. 이들은 모두 대기발령 조치를 받았다. 토목사업본부장과 공사현장담당 상무보 등 2명은 관리 책임을 지고 사표를 냈다. 그러나 포스코건설 내부에는 ‘꼬리 자르기’라는 시각이 많다. 이 사건 이후 포스코 비윤리신고센터에는 이번 감사 결과에 분노하는 장문의 글이 올라왔다. “포스코건설 여직원 횡령 사태 등 여러 가지 진행되는 상황을 바라보다가 분노가 치밀어 글을 올린다”고 쓴 이 진정서는 “인사 부서는 이번 문제를 단순한 현장 관리 부재로 축소하여 현장 재무 담당자 및 소장에게 모든 책임을 씌우고 자기들은 아무런 책임이 없다는 식으로 빠져나갈 것이라 생각된다. 그들이 이제껏 해왔듯이…”라는 말로 끝을 맺고 있다.

 

정동화 포스코건설 부회장 ⓒ 연합뉴스
여직원 횡령 사건을 계기로 정동화 포스코건설 부회장 체제가 뿌리부터 흔들릴 것이라는 관측이 제기되고 있다. 정 부회장은 지난 1월16일 포스코그룹 차기 회장 자리를 놓고 당시 권오준 포스코 기술총괄 사장과 최종 2인 후보에 이름을 올렸다. 당시 포스코건설 안팎에서는 “정 부회장이 차기 회장에 가까워졌다”며 기대감을 숨기지 않았다. 그러나 같은 날 오후 포스코 차기 회장으로 권오준 사장이 최종 낙점되면서 상황은 뒤집혔다. 포스코건설 내부 관계자들 중 일부는 “그동안 쌓여왔던 ‘정동화 리스크’가 본격적으로 표출될 것”이라는 우려 섞인 전망을 내놓기도 했다.

실제로 정 부회장이 이끌어온 포스코건설 내부에서는 인사 문제로 인한 잡음이 끊이지 않는 것으로 파악됐다. 시사저널이 단독 입수한 포스코 비윤리센터에 올라온 진정서에는 “현재 포스코건설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련의 사태들은 인사 부서 임직원 몇몇이 자신들의 야욕을 채우기 위하여 벌인 일이다. (이들은) 직원들을 위한 인사 정책보다는 자신들의 사욕을 이루기 위해 인사 권한을 휘두르고 있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또 “이들은 자신들의 인사 전횡을 마치 정 부회장의 뜻인 것처럼 포장한다. 인사 전횡에 시달린 직원들이 경쟁 업체로 이직해 포스코건설의 경쟁력이 엄청나게 떨어지고 있다”며 실명을 거론하며 현직 임원들의 비위 사실을 폭로하기도 했다.

포스코건설 안에서부터 새어나오는 인사 문제들이 결국 정 부회장 퇴진의 ‘신호탄’이 될 수 있다는 분석이다. 한 포스코건설 관계자는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며 “거듭된 인사 사고로 정 부회장이 강조한 ‘윤리경영’이 흔들리는 상황에서 정 부회장의 입지는 더욱 좁아들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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