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원순의 가장 큰 변수는 ‘철수 생각’
  • 엄민우 기자 (mw@sisapress.com)
  • 승인 2014.02.12 1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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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 이후 연대 가능성 모락모락…새누리당 “비겁한 꼼수 정치”

“나는 그의 동료이자 응원자인데 이번에 박원순 변호사의 출마 의지가 확실하다는 것을 느낀 이상 내가 어찌 고민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만약 내가 출마하더라도 한나라당(새누리당의 전신)이 서울시장을 다시 차지하면 안 된다는 점에서 야권 진영과의 단일화는 얼마든지 고려할 수 있다.”

2011년 9월 당시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은 오마이뉴스와 가진 인터뷰에서 이같이 말했다. 이틀 후 안 원장은 서울시장 출마를 포기하며 이렇게 밝혔다. “박원순 변호사가 우리 사회를 위해 헌신하면서 시민사회 운동의 새로운 꽃을 피운 분으로 서울시장직을 누구보다 잘 수행할 훌륭한 분이라고 생각한다.”

당시 언론들은 이를 ‘아름다운 양보’라며 대서특필했고, 교수였던 안철수는 이후 대권 주자로 급부상하며 정치적 존재감을 한껏 키우게 됐다. 안철수의 양보는 박원순과 안철수 모두에게 득이 된 결과를 낳았던 것이다.

지난해 11월23일 박원순 서울시장(왼쪽)과 안철수 무소속 의원이 서울 잠실실내체육관에서 열린 ‘2013 서울시 장애인 생활체육대회’ 개회식에 참석해 악수하고 있다. ⓒ 연합뉴스
“국민이 안 받아주면 그때 가서 고민해봐야”

그로부터 약 3년 반이 지났다. 서울시장 선거를 4개월여 앞둔 지금 최대 이슈는 ‘과연 누가 시장이 되느냐’에 앞서, 안철수 의원과 박원순 시장의 연대가 다시 한 번 이뤄질 수 있을지 여부다. 누가 시장이 되는지는 그다음 문제다. 최근 안철수 의원이 한 언론 인터뷰에서 “이번에는 박 시장에게 양보받을 차례”라고 했다는 보도가 나온 이후 진실 공방이 벌어지기도 했다. 사실 여부를 떠나 그만큼 야권 연대, 특히 서울시장을 둘러싼 연대 가능성에 관심이 집중돼 있음을 방증하는 것이다. 시사저널도 1월21일자에서 박원순 시장과 윤여준 새정치추진위원회(안철수 의원 측 신당 창당 추진 기구, 이하 새정추) 의장을 차례로 인터뷰하며 양 세력 간 연대 가능성에 대해 점쳐봤다.

설 이전만 해도 거의 불가능할 것만 같았던 양측 사이의 연대 가능성이 설 이후 들어 확실히 바뀌고 있다. 최근 다른 기류가 조금씩 감지되고 있는 것이다. 지금까지 민주당 측에서는 끊임없이 연대를 원하는 뉘앙스를 풍겼지만, 새정추 측은 서울시장 후보를 낼 뜻을 분명하게 밝혔다. 창당의 닻을 올리면서 지방선거의 꽃이라고 할 수 있는 서울시장 선거에 후보를 내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윤여준 의장은 지난 1월17일 시사저널과의 인터뷰에서 서울시장 후보를 낼 것이냐는 질문에 “그렇다. 이는 확고하다”고 밝혔다.

그런데 최근에는 지금까지와는 약간 다른 뉘앙스를 풍기는 발언을 했다. 지난 2월2일 여의도의 한 식당에서 가진 오찬간담회에서 윤여준 의장은 민주당과의 연대 가능성에 대해  “많은 국민이 받아주면 그 길 가면 되는 거고, 그렇지 않다면 그때 가서 고민해봐야 하는 것”이라며 연대 가능성에 대해 살짝 열어두는 모습을 보였다. 

그다음 날, 이번엔 송호창 새정추 소통위원장이 비슷한 뉘앙스의 말을 꺼냈다. 그는 한 라디오 인터뷰에서 야권 연대와 관련해 “상황이 바뀌는 것과 아무 상관없이 그냥 나 홀로 가겠다는 것은 사실 좀 현실적 감각에 문제가 있는 것이다. (중략) 스스로 변신하고 신뢰를 만드는 노력과 혁신 과정 없이 단순히 성과를 내겠다는 식의 연대는 절대로 있을 수 없다”고 말했다. 연이틀에 걸쳐 새정추의 핵심 인물 두 사람이 연대 가능성에 대해 열어놓는 발언을 한 것이다. 서울시장 자리에 대한 야권 연대는 곧 안철수 진영인 가칭 ‘새정치신당’(신당)의 양보를 의미한다.

이처럼 달라진 신당 측의 기류에 민주당과 새누리당은 민감한 반응을 보인다. 우선 오매불망 안철수 진영과의 연대를 외치던 민주당은 분위기를 이어가기 위해 적극 나서고 있다. 전병헌 민주당 원내대표는 2월6일 국회에서 열린 고위정책회의에서 “힘을 모아도 부족한데 협력과 합력의 대상끼리 견제와 분열을 하는 것은 새누리당에 이익을 주고, 새누리당을 ‘어부’로 만들어주는 결과가 된다는 것은 삼척동자도 다 아는 사실”이라고 말했다.

반면 새누리당은 비난하고 나섰다. 홍문종 사무총장은 2월4일 국회에서 열린 원내대책회의에서 신당 측의 송호창 의원과 윤여준 의장의 발언에 대해 “정치적 상황이 불리해지면 언제든 연대를 하겠다는 의도로밖에 볼 수 없다. 한마디로 여론 간보기를 하겠다는 것으로, 비겁한 꼼수 정치”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여전히 둘 사이에 미묘한 기류

새누리당에서 이처럼 연대의 불씨를 황급히 경계하고 나서는 이유는 명확하다. 서울시장 선거 구도가 박원순 시장과 새누리당 간 양자 대결로 가게 되면 박 시장의 우세가 점쳐지지만, 3자 구도로 갈 경우 새누리당이 유리하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민주당과 신당 간 연대가 이뤄진다면 그토록 원하는 ‘서울 탈환’의 꿈을 미뤄야 할 공산이 그만큼 커진다.

이처럼 연대 바람이 솔솔 불어오고 있지만 여전히 둘 사이에는 아직 미묘한 기류가 흐르는 게 사실이다. 최근엔 민주당 소속 서울시 의원 10여 명이 신당 측과 접촉한 것으로 알려져 ‘서울시장 후보 출마를 위한 기반 다지기가 아니냐’는 이야기가 나돌기도 했다.

한편 신당 내부에서도 연대에 대해서는 다양한 목소리가 나온다. 그러나 설 이후 들어 부쩍 “연대는 절대 없을 것”이라는 말을 누구도 쉽게 꺼내지 못하는 상황으로 변한 것은 분명하다. 7선의 정몽준 의원과 김황식 전 총리 등 거물급 정치인의 경선 가능성이 불거지는 등 새누리당 쪽의 상황이 설 이후 급반전되고 있는 탓이다. 신당의 주요 관계자인 ㄱ씨는 야권 연대를 원하지 않는 부류로 분류되는 인물이다. 그는 “법안 발의 문제 등을 생각하면 민주당과 연대 없이 가는 데는 어려움이 있겠지만, 이대로라면 매번 선거 때마다 우리는 단일화나 연대 요구를 받아야 된다. 개인적으로는 제3당으로서 존재감을 가져가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본다”고 말했다. 그러나 서울시장 후보 연대에 대해서는 “후보를 내겠지만 가는 과정에서 연대나 막판 단일화가 이뤄질 것 같다”고 개인 견해를 피력했다.

신당 진영에서 현재 마땅한 서울시장 후보가 없다는 것도 하나의 이유가 된다. ‘소통령’으로 불리는 서울시장 자리는 파급력 있는 인물이 후보로 나서야 얻을 수 있다. 한때 홍정욱 전 한나라당 의원이 나설 수도 있다는 소문이 돌기도 했으나, 최근 그는 주위에 “당분간 현실 정치를 떠나 있을 것”을 천명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런 상황에서 만약 신당 쪽에서 후보를 냈다가 당선도 못 되고 민주당 후보인 박 시장의 재선도 막는다면, 야권 지지층으로부터 쏟아지는 비난을 피하기 힘든 상황이다.

이런 점들을 고려하면 안철수 의원으로서도 막판 연대나 단일화에 응하는 것이 명분상 부담이 없을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지난 1월20일 기자와 만난 천정배 전 법무부장관이 한 말을 되새겨볼 필요가 있다. “지금의 박원순 시장은 사실상 안철수 의원이 만들어준 시장 아닌가. 자신이 만든 시장이 별 문제 없이 잘해오고 지지율도 높은데, 본인의 정치적 위치가 달라졌다고 따로 후보를 내서 떨어뜨리는 게 과연 어떤 명분이 있는 일인지 안철수 의원은 생각해봐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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