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 어머님’ 혈통이 의심스럽다
  • 이영종│중앙일보 기자 ()
  • 승인 2014.02.12 1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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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우상화에 아킬레스건 된 외가 미스터리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 사망 두 달 뒤인 2012년 2월13일. 그의 70회 생일을 사흘 앞두고 로동신문에는 장문의 서사시 한 편이 실렸다. ‘선군태양은 영원토록 빛을 뿌린다’라는 제목의 찬양 시에는 이른바 선군 정치를 펼친 김정일을 ‘태양’으로 우상화하는 내용이 담겼다. 그런데 다음과 같은 구절이 유난히 눈길을 끌었다.

 

 ‘아, 기나긴 세월

장군님을 기다리며 산 조선의 평양집

총총한 별빛을 밟으시며

유정한 달빛을 밟으시며

 뜨락을 거니시던

 평양 어머님의 발자욱 소리

김정은 동지의 발자욱 소리’

북한 김정은 조선로동당 제1비서가 평양시의 고아 양육 시설인 육아원과 애육원을 방문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2월4일 보도했다. ⓒ 연합뉴스 1월29일 제주시 봉개동에 있던 김정은의 외조부 ‘헛무덤’이 사라진 데 대해 경찰이 현장 조사를 하고 있다. 사진 오른쪽 위는 고영희. 아래는 외조부 고경택의 허총. ⓒ 연합뉴스
이 대목과 관련해 시에는 “전선에 계시는 장군님을 기다리며 어머님과 함께 지새운 2월의 그 밤들을 나는 잊을 수 없습니다”라는 김정은의 언급이 함께 소개됐다. 김정은이 그의 생모인 고영희를 지칭한 것이다. 북한 관영 매체에 생모로서의 고영희 관련 내용이 소개된 건 이때가 처음이었다. 특히 그녀를 ‘평양 어머님’으로 부른 대목을 서울의 북한 전문가들은 주목했다. 고영희를 김정일에 대한 투철한 내조자로 묘사함으로써 ‘김정은 지도자를 낳은 위대한 어머니’로 우상화하려는 움직임이 시작된 것이란 관측이었다.

찬양 시가 공개된 몇 달 뒤에는 한 편의 동영상이 화제가 됐다. ‘위대한 선군조선의 어머님’이란 제목이 달린 북한 기록영화였다. 75분 분량의 이 영화에는 김정일과 함께 군부대를 찾은 고영희가 부대 급식 상황을 돌아보고, 군 간부들로부터 브리핑을 받는 내용 등이 담겼다. 특히 고영희가 선글라스 차림으로 김정일에게 뭔가를 가리키는 장면 등이 주목받았다. 김정일 앞에서 당당히 선글라스를 끼고 거침없이 활동하는 모습은 이채로웠다. 그런데 이 영상은 미공개작이었다. 일반 주민들에게 상영된 적이 없어 북한 간부용으로 상영되던 영상이 흘러나온 것으로 우리 정부 당국은 판단했다.

외조부는 일본군 군복 만드는 회사 간부

이러한 일련의 움직임은 북한이 김정일 사망과 김정은의 권력 장악을 계기로 고영희에 대한 우상화를 본격적으로 벌일 것이란 관측을 가능하게 했다. 하지만 고영희와 관련한 북한의 움직임은 이게 전부였다. 이후 2년 동안 북한 공식 매체에는 고영희를 거명하거나 시사하는 표현이 등장하지 않았다. 내부적으로도 일반 주민 등을 대상으로 한 고영희 우상화 작업이 전개되지 않고 있다는 게 탈북자나 우리 정보 당국의 전언이다. 김정일의 생모인 김정숙을 우상화해 김일성·김정일과 함께 ‘백두산 3대 장군’으로 찬양했던 것처럼 고영희를 찬양하는 분위기도 달아오를 것으로 기대했던 게 빗나간 것이다.

북한이 왜 로동신문에 ‘평양의 어머니’로 슬그머니 띄우려 했던 김정은의 생모 우상화 작업을 중단했는지는 구체적으로 확인되지 않고 있다. 그러나 북한 전문가들과 대북 정보 분석가들은 짚이는 대목이 있다고 말한다. 바로 고영희가 북송 재일교포 출신이란 점이다. 북한에서 ‘째포’(재일교포를 줄여 부르는 비하적 표현)라고 불리며 하대받던 출신 성분 때문에 그녀를 드러내놓고 주민들에게 우상화하기에는 아직 적절치 않다고 판단해 고심하고 있다는 얘기다.

고영희는 1952년 일본 오사카에서 태어난 것으로 파악된다. 제주 출신인 아버지 고경택은 일제강점기인 1929년 일본으로 건너갔고, 1962년 가족을 데리고 재일교포 북송선을 타고 가 북한에 정착했다. 평양 만수대예술단 무용수로 일하던 고영희는 김정일의 눈에 들어 정철·정은 두 아들과 딸 여정을 낳았고, 2004년 5월 프랑스 파리에서 유선암 치료를 받다 현지 병원에서 숨졌다.

고영희, 출신 성분 숨기려 이름 바꿨을 수도

문제는 고영희의 아버지 고경택의 친일 행적이다. 그는 일본에 살 때 육군성 산하 ‘히로타 군복 공장’에서 일한 것으로 비밀 자료에서 드러났다. 일제에 의한 강제 징용 등의 수준이 아니라 공장 간부로서 적극적으로 가담했다는 게 당시 상황을 담은 자료를 연구한 일본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이런 대목은 김정은이 이끌고 있는 북한 체제의 존립 기반과 정면으로 충돌한다. 북한 정권을 세운 김정은의 할아버지 김일성은 이른바 ‘빨치산 투쟁’으로 불리는 항일 무장 활동을 토대로 정권의 정통성을 주장해왔다. 이는 김정일-김정은 정권으로 이어지고 있다. 그런데 오히려 김정은의 외할아버지는 할아버지 김일성을 토벌하는 일본군의 군복을 만든 인물이었던 것이다.

이런 스토리는 북한 주민들 사이에도 은밀하게 퍼지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1970년대 무용수 시절 고영희의 행적이 북한 관영 매체 등에 남아 있는 데다, 과거와 달리 외부 정보를 좀 더 쉽게 접하게 된 주민들 사이에서 입소문을 타고 있다는 얘기다. 실제로 1972년 12월29일자 로동신문에는 ‘공훈배우 고용희’라는 이름이 등장한다. 공훈배우 칭호를 수여받은 인물들 중 여덟 번째로 고용희가 등장한다. 전문가들은 여기에 등장한 고용희가 김정은의 생모 고영희와 동일 인물일 것으로 본다. 우리 정보 당국도 신빙성이 크다고 판단하고 있다. 한 관계자는 “평양 대성산 인근에 조성된 고영희의 묘지 사진을 대북 정보 채널을 통해 입수하고 분석한 결과 묘비명에 ‘고용희’로 표기돼 있음을 확인했다”고 귀띔했다. 대외 선전물인 조선화보 1973년 3월호에는 고영희의 아버지 고경택이 “내 딸이 공훈배우 칭호를 받았다”고 자랑하는 대목이 등장한다. 다만 여기에서는 딸을 고영희가 아닌 ‘고영자’로 호칭하는 점이 다르다. 정보 관계자는 “고영희의 출생 당시 이름은 고희훈이었고, 일본 이름은 다카다 히메(高田姬)였다”며 “북송된 이후 고영자란 이름을 썼으나 북한 당국이 여성 이름에 일본식 표현인 ‘자(子)’를 쓰는 걸 금지하면서 이름을 바꾼 것으로 판단된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김정일의 여자가 되는 과정에서 출신 성분을 숨길 필요성 때문에 몇 차례 이름을 변경했을 가능성도 제기한다.

김정은의 외가라 할 수 있는 제주시 봉개동에는 외할아버지 고경택의 무덤이 있다. 1999년 숨진 그의 실제 묘는 평양에 있지만, 제주의 가족·친지들이 그의 허총(虛塚; 시신 없이 만들어 놓은 무덤)을 조성해놓은 것이다. 김정은이 북한 정권의 후계자로 부상한 2008년 이후 일본 언론들이 이곳을 방문해 영상을 담아가고 가족 상황 등을 취재하기도 했다. 최근에는 국내 언론에도 이 무덤의 존재가 알려지면서 친지들이 훼손을 우려해 묘지석 등을 거둬가는 상황이 벌어지기도 했다.

북한은 김정은을 ‘백두혈통’을 잇는 후계자로 내세운다. 지난해 12월 장성택을 처형할 때도 바로 이 혈통의 순수성에 도전한 점을 최고의 죄목으로 제시했고, 김정은도 올해 신년사에서 ‘종파 오물’로 낙인했다. 하지만 정작 김정은의 뿌리는 백두산뿐 아니라 한라산이 결합된 줄기로 드러나고 있다. 특히 그의 외할아버지의 친일 행적까지 공개되면서 후지 산 줄기가 아니냐는 비야낭거림도 나오고 있다고 한다.

생모 고영희를 포함한 가계 우상화는 김정은의 권력 기반을 다지는 데 불가결한 요소로 꼽힌다. 그가 후지 산 논란을 넘어 생모 우상화에 성공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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