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질은 안 바꾸고 억지로 생살 도려낸다?
  • 정락인 기자 (freedom@sisapress.com)
  • 승인 2014.02.12 1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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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산 매각에 치우친 공기업 정상화…낙하산 인사부터 없애야

정부가 만년 적자에 허덕이며 방만한 경영을 한 공기업을 향해 칼을 빼들었다. 박근혜 대통령의 의지가 반영된 것이다. 박 대통령은 취임 이후 수시로 공공기관의 방만 경영 문제를 지적해왔다.

정부는 지난해 12월11일 ‘공공기관 정상화 대책’을 마련해 이를 구체화시켜나갔다. 정도가 심한 부실 공공기관 38곳(부채 과다 기관 18곳, 방만 경영 기관 20곳)에 대해서는 부채 감축 등 경영 정상화 계획을 만들어 올 1월 말까지 제출하도록 했다. 나머지 공공기관 300여 곳은 3월 말까지 이행계획서를 제출해야 한다. 이런 과정을 거쳐 2월2일 기획재정부(기재부)는 ‘공공기관 정상화 대책 이행 계획’을 내놓았다.

기재부는 부채 규모가 심한 18개 기관에 대해 2017년까지 부채 증가 규모를 기존 계획보다 39조5000억원가량 줄이도록 할 방침이다. 경조 휴가와 자녀 학자금 지원 제도를 바꿔 임직원 복리 후생비 규모도 전년 대비 1600억원 줄이기로 했다. 지난해 9월에 나온 중·장기 재무관리 계획에 따르면 같은 기간 이들 공공기관의 부채 증가 전망치는 85조4000억원이다. 공기업 개혁을 통해 이 중 절반에 가까운 빚 46.2%를 줄이겠다는 뜻이다.

현오석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2013년 12월24일 열린 중점관리 대상 공공기관 워크숍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자산 매각 효과에 부정적 여론 많아

정부가 추진하는 공기업 경영 정상화 대책은 크게 세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 공기업 사옥이나 보유 부지 등 자산을 매각하는 것이다. 판매 가능한 자산을 최대한 팔아서 가시적으로 부채 규모를 줄이겠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경영권에 영향이 없는 국내 지분과 해외 비핵심 사업 지분 매각도 포함된다. 이를 위해 한국철도공사(코레일)는 서울 용산 부지를 되팔고, 민자역사 지분을 매각해 2017년까지 1조9000억원을 조달하기로 했다. 용산 부지의 경우 자산 가치가 3조원이 넘는 것으로 추정된다. 부지 반환 소송을 거쳐 2017년부터 단계적으로 매각 작업에 들어가겠다는 구상이다. 코레일은 지분을 가진 전국 13개 민자역사 가운데 서울역·영등포역·대구역 등 흑자를 내는 일부 역사의 지분을 올해부터 매각한다.

한국전력공사(한전)는 서울 삼성동 본사 부지와 양재동 강남지사 사옥 등의 매각에 나선다. 한국도로공사는 휴게 시설 운영권을 매각하기로 했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는 경기도 성남 정자동 사옥(2800억원 상당)과 분당 오리 사옥(3500억원 상당) 매각을 추진하는 등 자산 매각을 통해 부채를 줄여나갈 계획이다.

이처럼 공공기관 정상화 계획은 자산 매각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당장 눈에 보이는 실적을 올리기 위해서는 이만한 것이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자산 매각이 얼마나 효과를 얻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부정적인 의견도 적지 않다.

당장 발등에 불이 떨어진 것은 해당 공기업의 수장들이다. 임명권을 쥐고 있는 정부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가 없다. 어떻게든 정부 방침에 따를 수밖에 없는 것이다. 문제는 ‘자산 매각’에 초점을 맞추다 보면 알짜 자산까지 헐값에 내다 팔 우려가 있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국민의 안전과 직결되는 비용을 줄일 경우 또 다른 부작용이 생길 수 있다. 자리 지키기에 급급한 공공기관장들이 이런 점을 얼마나 염두에 둘 것인지는 회의적이다.

자산 매각이 제대로 이행될지도 미지수다. 정부는 지난해 말 295개 공공기관에 보낸 부채 감축 계획 운용 지침을 통해 ‘지방 이전 대상 기관은 부채 감축 계획에 본사 부지 매각 계획 등을 반드시 포함해야 한다’고 명시했다. 이에 따라 한국토지주택공사(LH)·한전·한국수력원자력·광물자원공사·도로공사·수자원공사 등은 공공기관 정상화 대책 이행 계획에 본사 부지 매각을 포함했다.

기재부와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지난 1월 중순을 기준으로 지방으로 이전하는 공공기관 중 기존 본사 부지를 아직 팔지 못한 기관은 총 51곳이다. 이들이 보유한 매각 대상 물량은 총 54곳으로 여의도 면적의 84%에 달한다. 이들 공공기관이 자체 계산한 매각 대상 부동산의 장부 가격은 총 5조7101억원이다. 일반적으로 시가의 80%가량을 장부 가격으로 정하는 점을 감안하면 이들 부지의 시가는 최소 7조원을 웃돌 것으로 추정된다.

사업 규모 축소로 부채 증가 잠시 지연될 뿐

하지만 장기적인 부동산 불경기로 거래가 많지 않을뿐더러 제값을 받을지도 의문이다. 이렇게 되면 급하게 팔아야 하는 공기업의 입장에서는 ‘헐값 매각’ 논란을 불러올 수 있다. 또 한꺼번에 수도권 요지의 알짜배기 땅이 매물로 나오면 공급 과잉을 초래할 수도 있다. 부지 중 상당수는 서울 등 수도권 요지에 위치해 있다. 매각 규모가 워낙 커서 서두를 경우 자칫 국내 대기업이나 외국 기업에 헐값으로 넘겼다는 특혜 시비가 일 수도 있다.

둘째는 기존의 사업 규모 축소다. LH·한전 등은 그동안 추진해온 임대주택, 발전시설 등 국가 기간시설 사업을 지연시키거나 축소한다. 이것도 알고 보면 꼼수에 가깝다. 사업을 축소해서 부채를 감축한다는데 이것은 부채의 절대 규모가 축소된다기보다 부채 증가가 잠시 지연될 뿐이다. 가령 공공사업을 공기업이 축소하고, 민간 업체가 대행한다면 오히려 국민 부담이 커질 수 있는 것이다.

정부의 ‘공기업 정상화’ 방침에 대해 노동계는 부정적이다.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은 공동대책위원회(양대 노총 공대위)를 발족하고 대응에 나서고 있다. 양대 노총 공대위는 정부의 공기업 정상화 방안에 대해 ‘공공사업 축소와 민영화 기반을 다지기 위한 것’으로 결론을 내렸다.

양대 노총 공대위는 2월3일 논평을 내고 “LH·한전 등에서 추진 중인 임대주택, 발전시설 등 국가 기간시설 사업이 지연 또는 축소되고 축소된 사업은 민간 자본에서 유치하도록 함으로써 사실상 공공사업이 축소되고 민간으로 이양되는 민영화 기반 다지기가 공식화된 것”이라며 “만약 축소된 공공사업을 민간에서 대행한다면 결국 국민 부담이 증대될 가능성도 있다”고 지적했다. 양대 노총 공대위는 또 “공공기관의 알짜 자산을 매각하도록 한 것이어서 국부 유출과 민영화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고 우려했다.

공공기업 정상화 방안 중에는 부실 공공기관 38곳의 복리후생비 규모를 줄이는 것도 포함됐다. 정부는 공기업이 부실화된 원인 중 하나로 ‘과잉 복지’를 꼽는다. 기재부가 마련한 ‘공공기관 방만 경영 개선 계획 점검 기준’에 있는 복리후생비 개선 계획을 보면 퇴직금, 교육비·보육비, 의료비, 경조사비·기념품, 휴가·휴직 제도, 복무 형태, 유가족 특별 채용, 경영·인사 등이 포함돼 있다.

정부는 38곳의 부실 기관은 복리후생비 규모를 지난해보다 약 1600억원(22.9%) 감축한다는 방침이다. 이를 기준으로 하면 38곳외 1인당 복리후생비는 전년 대비 144만원(22.9%), 20개의 방만 경영 기관은 288만원(37.1%) 수준으로 줄어든다.

곽채기 동국대 행정학과 교수는 “공공기업의 방만 경영을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일반 국민이 수용 가능한 공공기관의 보수 및 복리후생 수준에 대한 기준을 설정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를 위해 곽 교수는 “공공기관 예산 편성 및 집행 지침을 통해 복리후생비 지급 기준을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이를 엄격하게 준수해야 한다”고 밝혔다.

복리후생비 감축 계획 일정은 그리 순탄치 않다. 직원들의 복지 문제와 연결돼 있어 노조의 심한 반대에 부딪칠 가능성이 크다. 양대 노총은 공공기관 부채의 근본 원인은 과잉 복지보다 정책 실패와 낙하산 인사에 있다고 본다.

1월23일 서울 여의도 한국노총 대회의실에서 38개 중점관리 공공기관 노조 대표자들이 기자회견을 갖고 있다. ⓒ 연합뉴스
‘낙하산 인사’가 부실 경영 부추겨

공기업의 방만한 경영과 부실 경영을 부추긴 원인 중 하나가 ‘낙하산 인사’다. 해당 기관에 전문성이 없는 사람이 ‘보은 인사’로 내려오다 보니 경영 성과를 내기보다는 ‘자리 지키기’에 급급할 수밖에 없다.

박근혜 대통령은 당선인 시절 “공공기관에 전문성이 없는 인사들을 낙하산으로 보낸다는 얘기가 많이 들린다. 이는 국민과 다음 정부에 큰 부담이 되는 것으로, 그런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고 밝혔다. 하지만 지금까지 시행된 공공기관장 인선을 보면 지난 정부 때의 행태를 답습하고 있다. 박근혜정부 출범 직후 첫 공공기관장 인선부터 ‘보은 인사’ 논란을 불러온 이유도 여기에 있다.

공공기관의 낙하산 인사는 크게 ‘기관장’과 ‘상임감사’로 볼 수 있다. 그동안 인사를 보면 ‘감사’도 대부분 전문성이 없는 인사로 채워졌다. 감사는 해당 기관의 경영을 감시할 책임이 있는데도, 경영에 책임을 지지 않기 때문에 ‘형식적인 감사’에 그쳤다. 자리만 차지하고 앉아 억대 연봉을 받아온 셈이다. 공공기관의 부채가 증가하고 직원 복지 혜택이 지나칠 정도로 증가했지만 감사는 제대로 된 견제 역할을 하지 못했다.

정부는 뒤늦게 ‘공공기관 감사’에 대해서도 손을 보겠다고 했다. 기재부는 공공기관의 경영 자율성과 책임성을 높이기 위해 감사 등 임원의 전문성을 강화하겠다는 입장이다. 이를 위해 감사의 전문 자격 요건을 법에 명문화하고 일부 공기업에만 적용되던 감사위원회 설치를 확대하거나 일정 규모 이상 공공기관의 상임감사 설치 의무화 등을 검토하기로 했다. 또 현행 2년인 감사의 임기를 3년으로 확대하고, 직무 실적 평가가 우수한 경우 1년씩 연장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공공기관 경영정보 시스템인 ‘알리오’에 따르면 공기업 상임감사 24명 중 11명이 정치권 출신이거나 군인과 경찰 출신이다. 25개 공기업 상임감사의 평균 연봉은 1억2800만원으로 집계되었다.

기재부는 각 기관이 제출한 정상화 계획 이행 정도에 따라 성적을 평가하고, 결과가 미흡한 해당 기관장에 대해서는 문책 등의 조치를 취한다는 방침이다. 이를 위해 올해 3분기 말쯤에 ‘중간 평가’를 실시할 계획이다. 강도 높은 점검과 관리를 통해 ‘부실 공기업 정상화’를 끌어내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정부의 공기업 정상화 계획이 얼마만큼 성공을 거둘지는 미지수다. 근본적인 체질 개선 없이 ‘보여 주기 식’에 그친다면 부실을 키우고 국민 부담만 가중시킬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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