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분 만에 옷 한 벌이 ‘뚝딱’
  • 김중태│IT문화원 원장 ()
  • 승인 2014.02.12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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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 산업혁명’ 일으킬 3D 프린터…그릇·컵도 집에서 제작

2011년 7월 말 영국 사우스햄튼 대학 연구팀이 무인비행기 SULSA(Southampton University Laser Sintered Aircraft)를 비행시키는 데 성공했다. 이게 주목받은 이유는 3D 프린터로 만든 비행기로 비행을 했기 때문이다. 날개, 액세스 해치, 기타 구조물을 모두 3D 프린터로 제작해 연결 부위에 볼트나 나사 등을 사용하지 않은 것이 특징이다. 엔진과 배터리만 추가해 조립한 이 비행기는 길이 1.2m의 날개를 가진 비행기로 배터리를 이용해 최고 시속 160km로 날았다. 이 연구의 성공은 비행기나 자동차를 3D 프린터로 만들어내는 시대가 왔다는 것을 알린다. 비행기 날개와 동체는 알루미늄을 깎은 후 이어서 붙이는 어려운 작업을 거쳐 만들어진다. 그러나 3D 프린터를 이용하면, 몇 달 걸릴 이 작업이 하루 만에 가능해진다. 그래서 에어버스 등에서 3D 프린터를 이용한 비행기 제작을 연구하고 있는 것이다.

ⓒ 일러스트 김세중
3D 프린터는 입체 형태의 물건을 만드는 프린터로, 이미 30년이나 된 기술이지만 대중화는 올해부터 본격화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미 FDM(Fused Deposition Modeling) 방식의 특허가 만료되면서 100만원 이하의 3D 프린터 시장 경쟁이 치열한 상황이다. 2014년에는 레이저 소결 방식(SLS)에 대한 특허도 만료되므로 더욱 치열한 판매 경쟁이 벌어질 것으로 보고 있다. 이에 따라 올해 전 세계의 3D 프린터 출하량은 75% 이상 증가할 전망이다.

생산·유통 과정의 혁명 일으키다

산업용으로 사용하던 고가의 3D 프린터가 일반 소비자를 상대로 보급되기 시작하면서 3D 프린터는 기존 산업을 변화시킬 것으로 보인다. 3D 프린터는 머릿속에서 상상하던 제품을 바로 시제품이나 완제품으로 만들어주기 때문이다. 공장 없이 제품을 생산 판매하는 다품종 소량 산업 시대가 열린 셈이다.

과거의 산업혁명은 대량 생산의 시대였다. 같은 종류의 물건을 대량 생산해 가격을 낮추는 것이 경쟁력이었다. 소량 생산이 어려운 이유는 최소의 설비 투자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1000원짜리 물통 하나를 만들려고 해도 시제품과 생산 설비가 필요했다. 시제품을 만들기 위해서는 쇠를 깎아 금형을 만들어야 하는데 이 비용만 수천만 원이 넘는다. 또한 땅을 사서 공장을 짓고 생산 라인을 갖추어야 물통 하나를 생산할 수 있었다. 1000원짜리 작은 물건 하나를 만들기 위해 수억 원이 넘는 돈을 투자해야 했던 것이 과거의 제조업이다.

반면 3D 프린터는 설계 도면만 넣으면 몇 분 만에 완제품을 생산해낸다. 남들이 올려놓은 도면을 이용해 안경테를 뚝딱 만들 수 있고 약간의 변형을 추가해 새로운 안경테를 만들 수도 있다. 안경점에 가지 않고도 집에서 마음에 드는 디자인으로 안경테를 만들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어떤 제품이건 설계도만 보관하고 있으면 즉석에서 만들어 공급하는 일이 가능해진다.

3D 프린터가 보급되기 전에는 자동차 회사에서 한 종류의 차를 단종시킬 경우 AS(애프터서비스)에 대비해 해당 자동차에 사용된 부품 종류마다 일정 수량을 보관해야 했다. 가령 그랜저 자동차를 단종한다면 백미러·범퍼·핸들·손잡이 등 많은 부품을 보관해둬야 하고 시간이 지난 뒤에 다 쓰지 못한 부품은 결국 쓰레기로 처리한다. 보관부터 처리까지 많은 비용이 발생하는 것이다. 그러나 3D 프린터를 이용한다면 이들 부품을 보관할 필요가 없다. 정비업체에서 부서진 백미러 수리를 맡았을 경우 단종된 자동차의 백미러를 3D 프린터로 그 자리에서 출력해 붙이면 된다. 지금처럼 단종된 자동차의 백미러를 수십 년 동안 보관하고 있다가 쓰레기로 버리는 비용 낭비가 사라지게 된다. 자동차 산업의 생산·유통 과정이 혁신적으로 바뀌는 것이다.

3D 프린터는 재료나 출력 방식이 점차 다양해지고 있다. 재료는 초기의 단순 플라스틱에서 유리, 돌, 금속, 초콜릿, 음식, 섬유, 콘크리트 등으로 다양화하고 있다. 영국 러프브러 대학 연구팀은 3층 높이의 공장에서 콘크리트를 분사해 건물의 일부를 실제 크기로 만드는 3D 프린팅 시스템을 만들었다. 미국 코넬 대학 연구팀은 쿠키 반죽을 만드는 3D 프린터를, 영국 엑시터 대학 연구팀은 초콜릿 제조용 3D 프린터를 발표했다. 최근에는 피자와 빵을 비롯한 다양한 음식을 만들어주는 음식 프린터가 출시되고 있다.

3D 프린터 혁명 시대 대비 필요

결국 3D 프린터는 거의 모든 분야에서 산업혁명을 가져올 것이며 기존 생산·유통 질서를 바꿀 것이다. 이제 컵이 깨지면 백화점에 가서 새 컵을 사는 것이 아니라 집 안의 3D 프린터에 도면을 지정해 컵을 만든다. 손잡이가 없어서 불편했다면 손잡이를 붙인 컵으로 만들 수 있다. 물건을 집에서 만들 수 있으니 물건을 사러 백화점에 갈 일이 없다. 백화점과 대형마트의 적이 같은 유통회사가 아니라 3D 프린터가 될 수 있는 것이다.

물론 백화점에만 닥칠 변화는 아니다. 문화·교육·산업 전반에 변화를 가져다줄 것이다. 스페인에서 탄생한 자라(ZARA)는 80여 개국에서 모두 성공을 거두면서 최근 10년 동안 가장 잘나가는 의류업체로 성장했다. 자라의 경쟁력은 2주 만에 옷을 만들어 전 세계 매장에 진열하는 ‘스피드’다. 동종 업체에서는 자라보다 더 빠르게 옷을 만들어 매장에 진열하는 곳이 없다. 때문에 많은 사람이 자라를 이길 의류업체가 없다고 말한다. 그런데 자라의 경영진은 자라를 위협하는 경쟁자가 있다면서 그 경쟁자가 바로 3D 프린터라고 말한다. 파티에 갈 의상이 필요하다면 3D 프린터를 통해 몇 분 만에 만들 수 있다. 자라의 2주보다 더 빠른 2분 만에 옷을 만드는 시대가 온다면 누가 자라의 옷을 사겠는가.

2010년만 하더라도 아침마다 지하철에는 무가지를 보는 사람들로 가득했고, 지인 몇 명은 중앙 일간지에서 무가지로 이적했다. 그러나 스마트폰이 보급되자 지하철에서 무가지는 사라지고 사람들은 스마트폰 화면만 바라보고 있다. 고속 성장을 하며 광고 시장을 잠식하던 무가지 시장 자체를 순식간에 없애버린 것은 신문·잡지·TV·라디오가 아닌 스마트폰이었음을 기억해야 한다. 스마트폰이 나온 후로 MP3, PMP, 휴대용 게임기, 계산기 등의 산업도 자취를 감추었다. 흔히 똑딱이로 불리는 콤팩트 디지털카메라를 들고 다니는 사람도 거의 사라졌다. 마찬가지로 집에서 자신이 마음에 드는 디자인을 골라 컵과 그릇을 만들고, 피자와 빵은 물론 조금 후 파티에 갈 때 입을 의상과 가면을 3D 프린터가 만들어주는 시대가 온다면 그릇을 사러 백화점에 갈 일도, 매장에 가서 옷을 살 일도 줄어들게 될 것이다. 따라서 산업 분야를 가리지 않고 기업의 경영진이라면 3D 프린터가 자신들의 산업에 줄 영향에 대해 분석하고 대비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3D 프린터는 떠오르는 아이디어를 그 자리에서 구현해 저렴한 비용으로 제품을 제작함으로써 맞춤형 소량 생산이라는 새로운 산업 패러다임을 가져올 것이다. 이에 따라 대량 생산 방식의 산업은 자연스레 쇠락의 길을 걷게 될 전망이다. 물론 부작용도 나타날 것이다. 제품의 복제가 쉬워지면서 디지털 콘텐츠의 복제 논쟁처럼 유형의 제품에서도 복제 모방 저작권 문제가 발생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러한 문제들은 지금부터 끊임없이 고민하며 풀어가야 한다.

결국 3D 프린터가 중소기업이나 사무실 가정마다 보급돼 새로운 유형의 산업혁명을 가져올 것이라는 사실은 누구나 예상할 수 있다. 스마트폰에 대한 준비를 남보다 먼저 한 기업은 성장한 반면, 준비가 안 된 기업은 쇠락했다. 3D 프린터도 스마트폰처럼 준비된 기업과 준비되지 않은 기업의 성공과 실패를 가르는 요인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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