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 볼 일 없어도 넝쿨째 굴러온 시청률
  • 정덕현│대중문화평론가 ()
  • 승인 2014.02.12 1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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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가네 식구들> <내 딸 서영이> 등 KBS 주말드라마 이례적 고공비행

KBS 주말드라마 <왕가네 식구들>의 시청률은 실로 압도적이다. 무려 43%에 육박한다. 20% 넘는 것이 하늘의 별 따기가 돼버린 최근 드라마 시청률을 감안하면 이 이례적인 시청률은 거의 경이에 가깝다. 하지만 이처럼 높은 시청률이 온전히 <왕가네 식구들>이라는 드라마 때문이라고 판단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이미 이 시간대의 주말극이 대부분 40%를 넘겨 심지어 50%에 육박하는 시청률을 냈기 때문이다.

최근 몇 년간의 KBS 주말극 시청률을 보면 <넝쿨째 굴러온 당신>이 45%, <내 딸 서영이>가 47%의 시청률을 냈다. 물론 <최고다 이순신>이 겨우(?) 30%의 시청률을 내며 굴욕을 맛보기도 했지만 그건 말 그대로 예외적인 일이라고 말하는 이가 많다. 결국 KBS 주말극은 물론 작품의 힘이 바탕이 돼야 하겠지만, 편성 시간대와 KBS라는 브랜드가 일종의 프리미엄이 되어준다는 얘기다. 항간에는 농담처럼 KBS 주말극 시청률은 기본이 20%부터 시작된다고 말하는 이들도 있다.

도대체 그 시간대에 채널을 고정시키고 있는 시청자는 누구일까. 물론 이들을 정확하게 판별하기는 불가능하다. 하지만 KBS 주말드라마가 주중드라마나 타 방송사의 주말드라마와 확연히 구분되는 특징을 통해 그 연령대와 성향 등을 예측해볼 수는 있을 것이다.

ⓒ 일러스트 임성구
“KBS 주말극, 보수적 관점 고수”

KBS 주말드라마에는 그 틀에 맞는 공식화된 문법이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3대가 골고루 등장하는 가족드라마여야 한다는 것. 이는 폭넓은 시청층 확보를 위한 세대 안배이기도 하면서 가족드라마의 특징인 다양한 양상의 이야기를 보여주기 위한 방법이기도 하다. 또한 가족드라마에 걸맞은 대결과 화해를 가족주의적 관점에서 풀어내야 한다는 점도 중요하다. 즉 <넝쿨째 굴러온 당신>이 이른바 ‘시월드’를 뒤집는 신세대 며느리와 남편을 다루고, <내 딸 서영이>가 부모 세대의 굴레를 벗어나기 위해 심지어 부모를 부정한다고 해도 결국 그 해결 과정에서는 ‘가족의 소중함’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점이다. 따라서 ‘다소’ 진보적인 문제 제기는 가능해도 결국 전통적인 가족주의의 틀 안에서 해법이 다뤄져야 한다.

그런 점에서 KBS 주말드라마만큼 보수적인 관점을 고수하는 드라마도 없다. 3대가 등장해서 신세대의 관점을 중심에 세운다고 해도 결론은 윗세대에 맞춰지기 마련이다. 즉 이 시간대의 시청자는 가족주의를 신봉하고 그 안에서 생겨나는 문제가 바뀌어야 한다는 데는 공감하지만 그렇다고 가족의 틀을 해체하고 새로운 대안을 제시하는 데까지는 나아가지 않는 보수적인 성향을 고수하고 있다. 말 많고 탈이 많아도 결국은 가족이 가장 중요하며 그 품 안에서 모든 것이 해결된다고 믿는 것이다.

<왕가네 식구들>이 과도한 설정과 캐릭터 때문에 욕을 먹으면서도 시청률이 오르는 것은 이 시간대에 몰리는 시청자의 가족주의적 성향을 정확히 꿰뚫고 있기 때문이다. 문영남 작가의 드라마에는 공식적인 문법이 있다. ①가족 내에 가족을 파괴할 만한 문제를 가진 캐릭터가 등장하고 ②그 캐릭터가 실제로 가족을 파괴하는 모습으로 공분을 자아내게 만들며 ③결국에는 권선징악으로 결론이 난다. 즉 문영남 작가는 이 시간대 시청자가 갖고 있는 가족 내의 많은 문제(시대 변화로 인해 생겨나는 것들까지 포함)를 캐릭터를 통해 끄집어내고 그 캐릭터가 파괴하는 가족이라는 자극적인 상황을 연출한 후 다시 권선징악이라는 단순한 해법 속에서 가족으로 봉합하는 이야기를 함으로써 드라마라기보다는 안전한 마인드 게임 형태의 시뮬레이션 경험을 제공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틀은 한 캐릭터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캐릭터와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난다는 점에서 훨씬 더 자극적인 경험을 하게 만든다. 즉 훈훈한 가족주의가 아니라 자극적이고 도발적인 가족주의의 틀을 가진 문영남 작가는 닳고 닳은 비슷한 이야기가 무한 반복되는 가족드라마의 주력 시청자들에게는 적어도 지루하지 않은 수위로 다가든다고 볼 수 있다.

KBS 주말드라마 주 시청층의 또 다른 특징은 이 시간대의 드라마를 각각의 변별력 있는 작품으로 보기보다는 그 시간대면 늘 하고 있는 가족드라마로 뭉뚱그려 바라본다는 점이다. 물론 매번 새로운 작품에 대한 기대감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보다 중요한 것은 이 시간대의 주말드라마가 늘 가져다주고 있는 기대감 그 자체다. KBS 드라마국의 한 관계자는 “주중의 드라마와 주말드라마는 접근 방식 자체가 다르다”며 “주중드라마가 작품의 창의적인 부분이나 새로움 등에 주목한다면, 주말드라마는 그 시간대에 적합한 틀과 그 효과에 더 집중한다”고 말했다. 결국 이 시간대의 고정 시청자가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시대가 달라져도 변함없는 가족의 모습이라는 것이다.

50~60대 시청자에겐 하나의 소일거리

하지만 이들이 그저 과거의 가족 체계나 가족주의만을 고수한다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드라마라는 특징이 있기 때문이다. 드라마는 결국 현실에 부재한 것을 판타지로 제공하기 마련이다. 따라서 기존 가족 체계가 갖고 있던 불합리한 것, 이를테면 가부장적인 가족이나 시집살이의 문제, 또 재산의 크기 차이로 인해 반대에 직면하는 결혼 혹은 이혼 문제 같은 것들을 가족드라마는 놓치지 않는다. 그래서 <내 딸 서영이> 같은 도발적인 여성 캐릭터의 출현이 가능한 것이다. 하지만 결국 서영이는 헌신적으로 바뀐 아버지에게 “미안하다”고 말하는 인물이라는 점에서 보수적인 가족주의로의 회귀를 보여준다. 결국 <내 딸 서영이>가 50%에 육박하는 시청률을 낸 동인은 아버지 세대에 공감하는 50~60대 보수적인 시청자들을 바탕으로 깔고, 동시에 서영이로 대변되는 젊은 세대에 공감하는 30~40대 시청자를 끌어들였기 때문이다. 이 갈등과 대립이 아버지와 서영이의 화해로 봉합되는 순간 시청률은 정점을 찍었다.

KBS 주말극의 주 시청층인 50~60대 시청자들의 또 다른 특징은 드라마를 작품이나 완성도로 인식하기보다는 하나의 소일거리로 받아들인다는 점이다. 이것은 과거 이들 세대가 여가로서의 TV에 대해 갖고 있던 인식에서 비롯된다. TV를 보면서도 그것을 하나의 킬링타임용 소일거리일 뿐 문화로 받아들이지 않던 시대에 드라마는 그저 틀면 나오는 오락거리 정도로 치부됐다. 그러니 작품성이나 완성도니 하는 것을 따진다는 것 자체가 이상한 일이었다. 따라서 이들에게 중요한 것은 비슷비슷해서 식상한 스토리라 하더라도 거기 즉각적으로 이입될 수 있는 캐릭터가 있느냐 없느냐 하는 점이다. 이것은 KBS 주말극이 시청자가 캐릭터에 이입해서 반복적으로 벌이는 일종의 롤플레잉 형식을 띠는 이유이기도 하다.

문영남 작가 드라마 등장인물들의 이름은 이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왕가네 식구들>의 이름을 보면 그 캐릭터가 어떤 인물이며 앞으로 어떤 일을 벌일 것인가를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즉 아버지 왕봉(장용)은 가족의 봉이고, 이앙금(김해숙)은 마음속에 가진 앙금으로 비뚤어진 엄마이며, 첫째 딸과 둘째 딸인 수박(오현경)과 호박(이태란)은 그들이 부모에게 어떤 취급을 받고 자라왔는가를 암시한다. 또 수박의 남편인 고민중(조성하)은 이혼을 고민하게 되는 인물이고, 호박의 남편인 허세달(오만석)은 실속은 없고 허세만 가득한 민폐형 캐릭터다. 이미 이름 속에 내포된 캐릭터의 특징대로 이 드라마는 앞으로 전개될 이야기를 친절하게 거의 다 보여주는 셈이다. 그러니 시청자는 이 준비된 캐릭터를 갖고 롤플레이를 즐기기만 하면 된다.

실로 20%도 어려운 드라마 시청률에 50%를 가능하게 하는 KBS 주말극의 이 특별한 시청층은 그 보수적인 성향이나 콘텐츠를 대하는 과거적 태도, 게다가 새로운 매체에 의해 점점 급변하는 시청 패턴 등으로 인해 오래도록 존속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가족주의가 서서히 해체되면서 동시에 떠오르기 마련인 가족에 대한 향수로써 한동안 과도기적인 힘을 발휘할 것이다. 이 관점으로 바라보면 거의 유일하게 50% 시청률을 바라보는 KBS 주말극에는 이제 마지막 남은 과거적 형태의 시청 패턴과 시청자의 섬처럼 느껴지는 면이 있다. 북적대고는 있지만 머지않은 시기에 사라져버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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