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혁·노진규·강광배 금메달을 따야만 영웅이 아니다
  • 기영노│스포츠 칼럼니스트 ()
  • 승인 2014.02.12 1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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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림픽 메달과 지독히도 인연 없어…불사조 투혼에 ‘박수’

“올림픽 금메달은 하늘이 도와주어야 딸 수 있다”고 한다. 4년에 한 번씩 열리는 올림픽의 해에 자신의 실력이 절정에 올라 있어야 하고 라이벌들의 컨디션이 나쁘거나 대진 운 같은 행운도 따라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다수 선수는 올림픽에 출전할 기회조차 잡지 못하거나 설사 여러 차례 올림픽에 출전한다 하더라도 금메달은커녕 메달조차 만져보지 못한다. ‘올림픽 메달’과 지독히도 인연이 닿지 않은 겨울 사나이 3인의 사연을 알아봤다.

ⓒ 연합뉴스
노진규, 악성종양으로 소치 출전 좌절

“이야기 안 할게요.” 지난 1월25일 네덜란드 헤렌벤에서 일주일 동안 전지훈련을 한 후 2월2일 격전지인 소치 아들레르 공항에 도착한 스피드스케이팅 팀추월 여자 국가대표 노선영 선수가 눈물을 글썽이며 말했다.

쇼트트랙 스피드스케이팅 전 국가대표 노진규 선수의 누나인 노선영은 소치 동계올림픽 남매 국가대표로서 ‘가문의 영광’을 얻었지만 대회를 불과 한 달여 앞두고 동생 노진규가 팔꿈치가 골절되는 커다란 부상을 당한 데다 뼈암의 일종인 골육종 제거 수술을 받으면서 영광이 ‘불행’으로 바뀌었다.

노진규는 2010 밴쿠버 동계올림픽에는 출전하지 못했지만 2011 알마티-아스타나 동계 아시안게임에서 남자 쇼트트랙 스피드스케이팅 1500m와 5000m 계주에서 금메달을 따내 2관왕에 오르면서 한국 쇼트트랙 스피드스케이팅의 간판선수로 자리매김했다.

노진규는 이후 2011 세필드 세계선수권대회 1000m, 1500m, 3000m 파이널 그리고 개인종합에서 우승을 차지해 4관왕에 올랐다. 2012 상하이 세계선수권대회 1500m에서 정상에 올라 2014 소치 동계올림픽에서 가장 강력한 금메달 후보로 떠올랐다. 이후 노진규는 소치 동계올림픽 국내 선발전에서 대표로 선발돼, 만약 부상을 당하지 않았다면 소치올림픽 한국 대표팀의 5000m 계주 멤버로 출전하려 했다.

노진규는 2013년 9월 올림픽 티켓을 걸고 개최된 월드컵시리즈 1차전 직후 자신의 몸에 종양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으나 양성이라는 진단을 받고 소치 동계올림픽 출전을 위해 수술을 미뤘다. 그러나 1월14일 태릉 빙상장에서 훈련하는 도중 넘어져 팔꿈치가 골절되는 부상을 당해 올림픽 출전을 포기해야만 했고 부상을 치료하기 위해 병원을 찾아 재진료를 한 결과 종양이 악성으로 바뀐 것으로 판명돼 1월22일 수술을 받기에 이르렀다. 다행히 뼈암은 다른 곳으로 전이가 되지 않아서 위험한 상황은 넘긴 상태다.

스피드스케이팅의 이규혁은 소치올림픽 참가로 올림픽에만 6번 출전이라는 대기록을 세웠다. 이는 하계·동계 올림픽 통틀어 한국 선수로는 최다 출전 기록이다. 이규혁은 이번에 한국 선수단 기수도 맡는 등 개인적인 영광이 겹쳤지만 그동안 올림픽 메달과는 인연이 닿지 않는 아픔도 겪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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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혁, 올림픽만 6번 출전한 악바리

이규혁의 아버지 이익환씨는 1968년 그레노블 동계올림픽 스피드스케이팅 국가대표로 출전해 1500m에서 51위, 5000m에서 38위를 차지했다. 어머니 이인숙씨도 역시 피겨 국가대표 선수 출신이다. 이규혁의 동생 이규현도 1998년 나가노, 2002 솔트레이크시티 동계올림픽 남자 피겨 싱글 대표로 출전하는 등 명실상부한 빙상 가족이다. 부모의 빙상 피를 이어받은 이규혁은 만 15세이던 1994년 릴레함메르 동계올림픽 출전부터 시작해 이번 소치 대회까지 6번 연속 출전하고 있다.

이규혁은 1997년 12월 한국 선수로는 처음으로 스피드스케이팅 1000m에서 1분10초42의 세계신기록을 세웠고, 500m와 1000m 종합 기록만으로 우열을 가리는 세계스프린트선수권대회에선 2007년 하마르 대회부터 2011년 헤렌벤 대회까지 4연패를 했다. 2011 인첼 세계선수권대회 500m에서 우승을 차지하는 등 10년 가까이 스피드스케이팅 스프린터로 세계 정상에 머물러 있었다. 그러나 지난 5번의 올림픽에서는 번번이 메달을 놓쳤다.

2010년 세계스프린트선수권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해 2010 밴쿠버 동계올림픽에서는 메달 획득이 기대됐다. 그러나 또다시 올림픽 무대에만 서면 약해지는 ‘올림픽 울렁증’이 도져서 500m 15위, 1000m 9위에 그치며 조카뻘 후배 모태범이 금메달(500m)과 은메달(1000m)을 따는 것을 지켜봐야 했다.

이규혁 입장에서 더욱 분통 터질 수밖에 없는 것은 밴쿠버 동계올림픽 이후에 벌어진 2011 세계스프린트선수권대회에서도 우승을 차지해 기량만큼은 세계 정상에 올라 있음을 다시 입증한 것이다. 이규혁이 올림픽 메달에 가장 근접한 대회는 2006 토리노 동계올림픽이었다. 당시 이규혁은 1000m에서 동메달과 불과 0.005초 차이로 4위에 머물렀다. 이규혁은 이번 소치올림픽에서는 500m와 1000m 두 종목에 출전한다. 기록상으로 두 종목 모두 메달을 딸 가능성은 거의 없지만 지난 5번의 올림픽처럼 최선을 다해 도전할 생각이다.

강광배, 스키→루지→스켈레톤→봅슬레이 소치 대회 썰매 전 종목 출전이라는 쾌거 뒤에는 강광배가 있다. 그는 우리나라 썰매 종목의 시조(始祖)라고 할 수 있다.

강광배는 1991년 전주대 체육학과에 입학하면서 스키선수 겸 지도자로 활약했다. 1994년 스키 강사로 활동하던 중 왼쪽 무릎 십자인대를 다치는 바람에 수술을 받아 ‘장애 5급’ 판정을 받았다. 이후 무릎을 별로 쓰지 않는 루지 종목을 접하게 됐고 1998년 나가노 동계올림픽 루지 종목에 출전해 31위를 차지했다.

강광배는 1998년 나가노 올림픽 이후 오스트리아 인스부르크 대학에 유학을 갔다가 지도교수 소개로 마리오 구켄베르크라는 스켈레톤 선수를 만나게 됐다. 그 후 루지에서 스켈레톤으로 전향했다.

강광배는 당시 대한민국이 국제연맹에 가입돼 있지 않아서 오스트리아 대표로 노르웨이에서 열린 월드컵에 출전하기도 했다. 이후 대한민국이 국제스켈레톤연맹에 가입했고 스켈레톤이 다시 올림픽 정식 종목으로 복귀해 올림픽 출전 기회를 얻을 수 있었다. 강광배는 2002년 솔트레이크시티 동계올림픽에는 스켈레톤 선수로 출전해 20위, 2006년 토리노 동계올림픽에서는 23위를 차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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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3년생인 강광배는 30대 중반을 넘어선 이후에도 ‘썰매 스포츠’에 대한 도전을 그치지 않았다. 이후 봅슬레이 선수로 전향해 2010 밴쿠버 동계올림픽 봅슬레이 4인승 종목에서 한국 썰매 종목 출전 사상 최고 성적인 19위를 차지했다. 강광배는 아시아는 물론 세계적으로 드물게 4번의 올림픽에서 썰매 3종목에 모두 출전하는 대기록을 세웠지만 성적보다는 참가에 의의를 두는 정도였다.

그러나 그가 뿌린 씨앗이 이제 서서히 열매를 맺어가고 있다. 대한민국은 이번 소치 대회 썰매 종목에 봅슬레이 남자 2인승, 4인승 두 팀, 여자 2인승 한 팀 등 10명, 스켈레톤 2명, 루지 3종목 4명 등 무려 16명의 올림픽 출전 선수를 배출했다.

한국 썰매는 아메리카컵 종합 우승자까지 배출하며 당당히 세계적인 선수들과 실력을 겨루고 있다. 이제 대한민국은 썰매 강국이 될 수 있는 시스템, 즉 좋은 장비와 좋은 시설, 훈련 시간, 선수 숫자 등을 갖추게 돼 4년 후 열리는 평창 동계올림픽에서는 꽃을 피울 것으로 보인다. 강광배는 2010년 9월12일 국제 봅슬레이-스켈레톤(FIBT) 연맹 국제관계 부회장으로 당선돼 소치올림픽에는 선수가 아닌 스포츠 행정가로 참가하고 있다.

 

소치올림픽에 정치생명 건 푸틴   


2002 솔트레이크시티 동계올림픽은 올림픽 사상 최악의 ‘심판 매수’ 사건으로 유명하다. 러시아의 알림잔 토흐 타르노프가 러시아 페어 피겨스케이팅 팀에게 금메달이 돌아가도록 프랑스 심판을 매수했던 것이다. 연기하던 도중 넘어지기까지 한 러시아의 엘레나 베레즈나야-안톤 시카룰리제 조는, 흠잡을 데 없는 연기를 펼친 캐나다 팀을 제치고 금메달을 차지했다. 그러나 프랑스 심판이 러시아의 알림잔 토흐 타르노프에게 압력을 받았음을 폭로해 결국 러시아와 캐나다가 공동 금메달을 차지하는 것으로 마무리됐다.

러시아는 1972년 뮌헨올림픽 미국과의 남자 농구 경기에서 심판의 석연치 않은 판정으로 금메달을 차지했고 2007년 베네수엘라에서 열린 2014 동계올림픽 유치전에서도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현지로 날아가 갖은 권모술수로 투표권을 가진 IOC 위원들을 포섭해 한 발짝 앞서 가던 평창에게 역전승을 거뒀다.

푸틴은 이번 대회에 자신의 정치생명까지 걸었다고 할 정도로 총력전을 펴고 있다. 2월5일 해안클러스터 선수단 빌리지에서 있었던 러시아 대표팀 입촌식 때도 이례적으로 참석해 높은 관심을 보였다. 푸틴은 500억 달러라는 거액을 들여 소치올림픽을 개최하는 만큼 성공적인 올림픽이 되기 위해서는 성적도 좋아야 한다며 각 종목에 재벌을 스폰서로 배치했다.

2008년 러시아의 바이애슬론 협회장에 취임한 프로호로프가 ‘샤워하듯’ 돈을 뿌려 바닥으로 떨어진 러시아 대표팀을 바꿔놓았다. 맥스 코브 미국 바이애슬론협회장은 “러시아 팀의 바이애슬론 1년 예산은 미국의 10배는 될 것이다. 러시아가 완전히 바뀌었다”고 말했다.

바이애슬론뿐만이 아니다. 현재 러시아 프리스타일스키협회장은 석탄 재벌 안드레이 보카레프다. 러시아 최대 IT 기업 크래프트웨이의 알렉세이 크라프트소프 회장은 스케이트협회를 맡고 있다. 미국 경제월간지 포브스가 집계한 재벌 순위 8위에 오른 바기트 알렉페로프의 석유회사 루코일은 크로스컨트리스키 팀의 최대 스폰서다.

이번 올림픽에서 러시아는 객관적인 전력상 금메달 11개 안팎에 그칠 것으로 예상된다. 종합 1위가 유력한 노르웨이나 미국(금메달 15개 안팎)에 4개 정도 뒤진다. 그래서 러시아가 종합 1위를 하기 위해 피겨·스키점프·모굴·아이스하키 같은 비(非)기록 종목에서 무리수를 쓸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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