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택 시장에 겨울 가고 봄 왔다
  • 박일한│헤럴드경제 기자 ()
  • 승인 2014.02.18 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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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세·거래량 상승세…“아직 바닥 안 찍었다” 시각도

#1. 2월13일 서울 금천구 독산동 ‘롯데캐슬 골드파크’ 청약 접수 첫날. 1497가구 모집에 2524명이 접수해 평균 1.69 대 1의 경쟁률을 기록하며 대다수 주택형의 청약을 마감했다. 주변 아파트 평균 시세보다 3.3㎡당 100만원 정도 비싼 1300만원 중반대로 고분양가 논란이 일었지만 사람들의 관심은 여전히 높았다. 견본주택을 연 첫날인 2월7일엔 300m가량 줄이 늘어서기도 했다. 주말 동안 견본주택에 다녀간 사람만 5만5000명이 넘었다.

2011년 입주를 시작한 인근 시흥동 ‘남서울 힐스테이트 아이원’이 3.3㎡당 1200만원대에 공급했음에도 최근까지 상당수 미분양이 남아 고전했던 것과 비교하면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졌다.

2월9일 서울 금천구 롯데캐슬 골드파크 견본주택에 몰려든 시민들이 관계자의 설명을 듣고 있다. ⓒ 연합뉴스
#2. 같은 날 오전 서울중앙지방법원 경매4계엔 강남구 개포동 현대아파트 84.81㎡형(이하 전용면적)이 처음 경매에 나와 감정가 7억7000만원보다 2050만원 높은 7억9050만원에 주인을 찾았다. 낙찰가율(감정가 대비 낙찰가 비율)은 102.7%나 됐다. 이 아파트는 매매 시장에서 대부분 8억원대에 거래되지만 저층 급매물은 7억9000만원에도 나오는 것을 고려하면 조금 비싸게 낙찰받은 셈이다. 박미옥 법무법인 메리트 경매본부장은 “시세가 더 오를 것이라고 판단한 응찰자가 입찰가를 다소 높게 쓴 것”이라며 “주택 시장이 좋아질 것이라는 기대감이 반영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올 들어 주택 시장 회복 조짐이 뚜렷하다. 아파트 거래량도 늘어나고 시세도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다. 부동산 시장의 선행 지표로 통하는 경매 시장도 과열 조짐이 보일 정도로 후끈 달아올랐다.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 이후 침체의 늪에서 허덕이던 주택 시장이 바닥을 지나고 본격적인 상승세를 보일 것이라는 낙관론도 솔솔 흘러나온다. 국토교통부는 “올해 거시경제 회복 기대, 취득세 인하 및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 폐지 등에 힘입어 회복세를 이어갈 것”이라고 전망했다.

주택 시장은 정말 본격적인 회복세로 진입한 것일까. 일단 각종 부동산 관련 지표가 빠르게 회복되고 있다. 한국감정원에 따르면 지난 1월 전국 아파트값은 0.37% 올라 지난해 9월부터 5개월 연속 뛰고 있다. 지방에 비해 침체를 보이던 수도권 아파트값도 지난 1월 0.3% 올라 역시 5개월 연속 상승 곡선을 그리고 있다.

아파트값 오름세는 설 연휴를 지나 2월까지 이어진다. 2월 둘째 주 전국 아파트 매매 가격(10일 기준)은 전주 대비 0.10% 올라 주간 기준 24주째 상승세를 보였다. 수도권은 전주 대비 0.12% 올라 오름 폭이 0.02%포인트 확대됐다. 박기정 한국감정원 연구위원은 “최근 각종 부동산 대책 관련 법안 통과와 규제 완화로 시장 회복에 대한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비수기를 지나면서 회복세가 계속될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고 말했다.

이런 시세 회복세는 주택 거래량 상승에 동반돼 더욱 의미 있다는 평가가 많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지난 1월 전국 주택 매매 거래량은 5만8846건으로 지난해 동월(2만7070건)보다 117.5% 증가했다. 최근 5년 1월 평균 거래량과 비교하면 36.6% 많은 것이다. 수도권 주택도 2만5648건 거래돼 전년 동월(8457건)보다 203% 늘어났고, 5년 평균 1월 거래량 대비 68% 증가했다.

곽창석 ERA코리아 부동산연구소장은 “최근 시세 회복세가 일시적이지 않다고 해석할 수 있는 것은 거래량이 늘어나면서 나타나는 현상이기 때문이다. 관망세를 보이던 사람들이 매수세로 전환하고 있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시장이 들썩거리면서 주택 심리 관련 지표도 일제히 장밋빛으로 변했다. 국민은행이 전국의 부동산중개업자를 대상으로 매수자의 동향을 조사한 ‘매수·매도세 동향’ 자료에 따르면 지난 1월 전국 ‘매수우위지수’는 48.4로 전달(42.3)에 비해 6.1포인트 상승했다. 이는 2011년 10월(49.0) 이래 가장 높은 것이다. 수도권 매수우위지수도 36.5를 기록해 전달(30.0)보다 6.5포인트 높아져 2011년 5월(36.6) 이후 가장 높다. 매수우위지수는 중개업자의 ‘매수 우세’ 답변 비중 변화를 나타내는 것이다.

빠르게 회복되고 있는 주택 매수 심리

건설사에 대해서도 낙관적인 전망이 많아졌다. 주택산업연구원에 따르면 2월 서울 주택사업환경지수(HBSI)는 148.9를 기록하면서 1월보다 31.3포인트나 상승해 조사를 시작한 2012년 7월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수도권 HBSI도 123.8을 기록해 1월보다 19포인트 올랐고, 지방도 110.3으로 전월 대비 5.1포인트 뛰는 등 상승세가 뚜렷하다. HBSI는 한국주택협회와 대한주택건설협회에 소속된 500개 이상 회원사를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해 산정하는 것으로, 100보다 높으면 회복될 것이라고 응답한 사람이 그렇지 않다고 답한 사람보다 많다는 의미다. 김지은 주택산업연구원 책임연구원은 “시장 회복 기대감이 전국적으로 확산되고 있으며 2013년 하반기부터 이어지고 있는 서울·수도권 시장의 회복세가 두드러진다”고 말했다.

경매 시장은 과열 조짐을 보인다. 낙찰가율이 100% 이상인 경우도 흔하게 발견된다. 예컨대 2월6일 중앙지방법원에서 경매에 부쳐진 개포동 대치아파트 40㎡형은 감정가(3억3000만원)보다 3000만원 이상 높은 3억6399만원에 낙찰됐다. 14명이 응찰해 접전을 벌여 낙찰가율은 110.3%까지 치솟았다.

지지옥션에 따르면 지난 1월 수도권 아파트 낙찰가율은 전달(81.0%)보다 1.4%포인트 상승한 82.4%를 기록했다. 이는 2011년 4월(83.1%) 이후 32개월 만에 가장 높은 수치다. 하유정 지지옥션 연구원은 “경매 시장에서 낙찰가율이 80% 이상이면 활기를 띠는 것으로 해석한다. 경매 시장에서 낙찰가율이 상승하는 것은 매매 시장에서 시세가 오를 것을 예상하고 높게 응찰하는 사람이 늘어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경매 건당 평균 응찰자 수도 1월(6.6명)보다 많은 7.5명을 기록했다. 지난해 월평균 응찰자 수는 6.5명 수준이다. 강은현 EH경매연구소 소장은 “최근 경매법정에 젊은 직장인부터 주부, 노인들까지 다양한 계층이 눈에 띈다”며 “관망세를 보이던 사람들이 매수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것 같다”고 전했다.

최근 주택 시장이 움직이는 것은 전셋값 상승세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판단이다. 국민은행에 따르면 전국 아파트 전셋값은 2009년 3월 이후 4년 11개월 연속 오르고 있다. 수도권은 2012년 7월 이후 1년 7개월 연속 상승세다. 반면 전국 아파트값은 일시적인 상승세를 보인 적도 있지만 대체적으로 2008년 이후 꾸준히 내리막길을 걷고 있다. 자연스럽게 ‘전세가율’(매매 가격 대비 전셋값 비율)은 상승할 수밖에 없다.

치솟는 전셋값, 규제 완화가 회복세 원동력

이런 분위기에 따라 수도권 전세가율은 지난해 9월 이후 60% 이상을 기록하고 있다. 수원 영통 등 일부 단지는 70% 이상을 돌파하기도 했다. 이런 곳에선 전세금에 돈을 조금만 더 보태면 집을 살 수 있기 때문에 매매 전환 수요가 늘어나고 있다.

이남수 신한은행 부동산팀장은 “수도권 주요 지역 85㎡ 이하 중소형 아파트는 매매 가격과 전셋값의 차이가 크지 않아 매매 전환 사례가 흔하게 발견된다. 매매 가격도 더 이상 떨어지지 않을 것이라는 심리가 확산되면서 차라리 집을 사자고 마음먹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는 듯하다”고 전했다.

시중 금리보다 싼 초저금리로 주택 마련 자금을 빌릴 수 있게 된 환경도 전세입자들이 매매로 돌아서는 이유로 꼽힌다. 정부가 1%대 초저금리 장기 주택담보대출 상품인 ‘공유형 모기지’와 3%대 저금리 상품인 ‘디딤돌 대출’ 등을 제공해 무주택자들이 부담 없이 돈을 빌려 내 집 마련을 할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박원갑 국민은행 부동산 전문위원은 “취득세 영구 감면,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 폐지 등 각종 세금 관련 규제 완화도 주택 거래 활성화에 큰 도움이 되고 있다”며 “지금 주택 시장은 어느 때보다 회복 기대감이 크다”고 말했다.

전문가들 가운데는 아직 바닥이라고 판단하기엔 이르다는 시각도 많다. 주택 시장도 아직 급매물 위주로 거래되고 있고 강남권 등 낙폭이 컸던 지역을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는 것이어서 상승세를 점치기는 무리라는 시각이다.

특히 여전히 해결 방법을 찾지 못하고 있는 1000조원 규모의 가계 부채 문제, 불안한 국내외 경기 전망 등 대외 변수가 시장 회복을 어렵게 만드는 요인이라는 시각이 많다. 김재언 KDB대우증권 부동산세무팀장은 “주택 시장은 경기 상황과 독립적으로 움직일 수 없다”며 “대내외 경제 상황의 불확실성이 여전하고 막대한 가계 부채 등이 매수세의 확대에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어 대세 상승으로 이어지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이재국 서일대 교수는 “미국의 양적 완화 축소로 국내 시장에서도 금리 인상 가능성이 커지는 상황”이라며 “금리가 뛰면 주택 시장에는 나쁜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고 낙관론을 경계했다.

 

침체 늪 빠졌던 고가 아파트 살아난다  


최근 주택 시장의 특징 중 하나는 고가 아파트의 빠른 회복이다. 좀처럼 회복되지 않던 고가 아파트 가격이 상승세로 돌아선 단지가 많다.

예컨대 지난 1월29일 서울 강남구 도곡동 도곡렉슬 전용면적 84.998㎡형은 11억2300만원에 계약됐다. 1년 전 9억원대까지 떨어졌던 아파트가 2억원 이상 오른 11억원 이상에 거래된 것이다. 지난 1월15일엔 서울 서초구 서초래미안 126.31㎡형도 12억7000만원에 계약됐다. 역시 2013년 8월 같은 크기 로열층이 5개월 만에 1억원이 뛴 11억4500만원에 거래가 성사됐다.

KB국민은행에 따르면 우리나라 시가총액 기준 상위 50개 아파트단지는 지난 1월 평균 0.28% 올랐다. 2011년 3월 이후 지속적으로 하락세를 보이다 지난해 9월(0.34%)을 지나면서 상승세로 돌아서 빠르게 시세가 회복되고 있다. 상위 50개 아파트단지는 지난해 10월 0.22%, 11월 0.02%, 12월 0.27% 등의 변동률을 기록했다. 이런 추세는 서울 아파트 전체 평균보다 상승 폭이 큰 것이다. 서울 아파트는 지난해 10월 0.09%, 11월 0.01%, 12월 0%, 올 1월 0.03% 등으로 미미한 상승 폭을 보이고 있다.

고가 아파트는 변동 폭이 일반 아파트보다 클 뿐 아니라 거래량도 꽤 많다. 도곡렉슬은 올 들어 7건이나 거래됐고 대치동 아이파크도 4건이나 거래가 성사됐다.

실제로 서울부동산정보광장에 따르면 고가 아파트가 몰려 있는 강남구와 서초구 1월 거래량은 496가구와 293가구로 전달보다 거래량이 더 많다. 특히 지난해 1월과 비교하면 올 1월 거래량 증가 폭은 네다섯 배 정도나 된다. 지난해 1월 강남구 거래량은 109건, 서초구는 50건에 머물렀다.

분양 시장에서도 고가 아파트의 인기가 회복되는 추세다. 서초구 방배동 ‘방배롯데캐슬 아르떼’는 전용면적 216㎡ 10여 채를 빼고 대부분 미분양이 소진됐다. 이 단지는 2012년 2월 총 744가구 중 일반 분양 물량 367가구에 대한 청약을 받았지만 분양가가 서초동에 버금가는 10억원 수준으로 높아 미계약분이 많았다. 서초동 ‘롯데캐슬 프레지던트’도 최근 분양가가 11억원 안팎인 전용 85㎡형 분양을 완료했고 강남구 역삼동 ‘개나리SK뷰’도 3.3㎡당 분양가가 3200만~3300만원이나 됐지만 최근 대부분 팔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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