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브 잡스, 말단 직원에게 회사 운명을 맡기다
  • 김중태│IT문화원 원장 ()
  • 승인 2014.02.18 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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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에 미친 젊은이에게 ‘아이팟’ 개발 지시 직위보다 전문성 중시

위기에 처한 애플을 ‘음원’이 살렸다. 2000년대 초 ‘닷컴 버블’이 붕괴하면서 애플은 새로운 시장에 눈을 뜨게 된다. 당시 나스닥을 강타한 닷컴 기업의 거품 빠짐은 넷스케이프·라이코스 등 많은 기업을 몰락의 길로 이끌었다. 고인이 된 스티브 잡스가 이끈 애플도 위기를 맞았다. 2000년 4분기에 애플은 2억 달러 가까운 손실을 봤고 매출은 전년보다 57%나 감소했다. 주가도 바닥으로 내려앉았다. 잡스는 위기에 처한 애플을 어떻게 구해야 할지 정신이 없었다. 그 와중에 잡스는 꼭 잡아야 할 새로운 시장으로 음원 시장을 꼽았다. 특히 냅스터가 보여준 P2P(peer to peer) 방식의 음원 공유는 잡스에게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잡스는 결국 음원 시장에 성공적으로 진출했다. 아이팟의 성공으로 애플은 시가총액 700조원의 세계 1위 기업으로 성장하게 된다.

아이팟과 스티브 잡스. ⓒ 김중태 제공·EPA연합
컴퓨터 회사에서 음향기기·가전 시장으로 진출하기 위해 잡스는 발 빠르게 움직였다. 그는 시장조사를 한 후 아직 시장에 진출할 기회가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고, 곧이어 음악 시장 진출을 준비했다. 잡스는 맥 디자이너에게 컴퓨터에 당장 CD롬 버너를 표준으로 장착하라고 말하고 컴퓨터 안에 있는 수만 곡의 노래 파일을 관리할 수 있는 주크박스 소프트웨어 개발을 지시한다. 소프트웨어를 새로 개발하려면 적지 않은 시간이 필요하지만 사운드스텝(SoundStep) 덕분에 기간을 단축할 수 있었다.

사운드스텝은 당시 28세에 불과한 제프 로빈(Jeff Robbin)이 만든 회사다. 그는 애플을 떠나 사운드스텝이란 회사를 차렸다. 이 회사에서 만들던 프로그램이 사운드잼(SoundJam)이다. 잡스는 사운드스텝을 인수해버린다. 이후 로빈은 동료와 함께 다시 개발에 착수해 넉 달 만에 아이튠즈(iTunes)를 만든다. 지금까지 애플의 대명사가 된 소프트웨어로 수만 곡을 관리할 수 있는 주크박스 소프트웨어가 탄생한 것이다.

애플, PC 회사에서 음향기기 업체로 전환

잡스는 2001년 1월 개최한 맥월드 컨퍼런스 엑스포(Macworld Conference & Expo)에서 아이튠즈(iTunes)를 선보인다. PC 업체에서 음향기기·가전 업체로의 전환을 선포한 것이다. 애플은 아이튠즈를 소개하면서 ‘세상에서 가장 훌륭하고 쉬운 주크박스 소프트웨어’라고 평했지만 세상은 PC 회사인 애플의 음악 사업 진출을 높게 평가하지 않았다. PC 시장에서 점유율도 미미한 매킨토시용 음악 소프트웨어가 세상을 뒤바꿀 시작점이 될 것이라고 당시에는 예상하지 못했다. 기껏해야 소수가 사용하는 매킨토시 컴퓨터용 음악 프로그램 중 하나였을 뿐이다.

세상의 반응은 냉담했다. 이미 냅스터가 성장했고, 다이아몬드사(Daimond Multimedia Systems, Inc.)의 리오(Rio) MP3플레이어가 활개 치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컴퓨터나 만들던 애플이 새로운 시장인 가전 시장, 그중에서도 전문적 기술이 필요한 음악 시장에 진출하는 일은 쉽지 않아 보였다. 과거 애플은 퀵테이크(QuickTake)라는 디지털카메라와 뉴튼(Newton) 같은 PDA를 만들어 PC 외의 시장으로 진출을 시도했지만 실패했다. 음악 시장에서도 애플이 성공할 것이라고 보는 사람은 없었다.

그럼에도 잡스는 음원 시장을 놓칠 수가 없어서 두 사람에게 비밀 지령을 내린다. 한 명은 스탄 NG(Stan Ng)다. 스탄은 첼로·바이올린·기타를 배울 정도로 음악에 심취한 인물이다. 오케스트라·밴드·합창단·DJ 활동 등으로 음악에 관한 경험도 풍부하다. 또 한 명인 토니 파델(Tony Fadell)은 개발자다. 토니는 네덜란드 로얄 필립스(Royal Philips Electronics) 등에서 하드웨어 및 소프트웨어 개발 경험을 가진 사람이다. 2001년 2월에 이 두 사람에게 비밀 지령인 ‘스컹크 워크스(skunk works)’가 내려온다. 이 지령은 MP3 시장에 애플이 참여할 여지가 있는지 조사하는 것이었다. 단 3개월의 시간이 주어졌다.

두 사람은 경쟁 업체 제품부터 분석했다. 그리고 기존 제품이 실망스럽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단 몇 곡만 저장할 수 있는 용량에 버튼이 10개가 넘어 대부분 음악 감상용으로 쓰기에 불편했다. 두 사람은 기존 제품과는 완전히 다른 것을 설계했다. 수만 곡을 저장할 수 있고 사용하기 편한 기계를 만들고자 한 것이다.

그렇게 2개월 반이라는 시간을 연구에 매달린 후 잡스에게 성공 가능성을 보고했고, 잡스는 스탄에게 즉시 제품을 개발하라고 지시했다. 직원에게 회사의 운명을 건 시장조사를 맡기고 그들에게 개발까지 맡긴 것이다. 이번에도 요구 기간이 짧았다. 2001년 그해 크리스마스 시즌에는 판매가 돼야 했다. 10월쯤에는 양산 채비를 해야 하므로 불과 몇 달 만에 개발을 끝내야 하는 어려운 작업이었다.

아이튠즈 개발자인 제프 로빈. ⓒ 김중태 제공
5개월 만에 음원 시장 판도 바꿔

한국이었다면 이 과정이 어떻게 처리됐을까. 스마트TV나 자동차, 태양광 등 새로운 사업에 진출할 때 말단 직원에게 시장조사를 맡기고 개발을 맡기는 회장은 없을 것이다. 아마 회장이 사장에게 “김 사장, 스마트TV 사업 진출해볼까 하는데 태양광 사업은 요즘 전망이 어떤가?”라고 물을 것이고, 사장이 “한번 알아보니 좋습니다. 스마트TV 사업을 시작해볼까요?”라고 대답하면 사장이 그룹의 새로운 사업 부서를 맡아서 개발을 지휘할 것이다. 중요한 것은 이 사장이 스마트TV·태양광·음악에 대해 전혀 모른다는 사실이다. 우리나라 대기업의 신규 사업을 보면 대부분 그 분야를 모르는 사장이 지휘한다.

반면 잡스는 음악 시장 진출을 위해 음악에 미친 직원을 선택했다. 음악을 좋아하는 친구니 음악 시장에 대해 잘 알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실제로 두 사람은 음악에 대한 사람들의 욕망을 정확하게 파악했고 그 욕망에 맞는 제품인 아이팟을 만들어냈다.

아이팟(iPod)을 만드는 과정도 독특했다. 스탄과 토니는 애플의 수많은 직원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무엇을 만들고 있는지는 알려주지 않고 회사를 위해 신제품을 만드는 데 도움이 필요하다고 요청했다. 직원들은 무슨 일인지 묻지 않고 기꺼이 두 사람의 일을 위해 자신들의 능력을 합쳐주었다. 이것이 애플의 문화다. 그렇게 불과 5개월 만에 두 사람은 아이팟을 만들고 음원 시장의 판도를 바꾼다.

하드웨어 제품인 아이팟에 이어 노래를 구입할 수 있는 아이튠즈 뮤직스토어도 만든다. 그렇게 애플이 아이튠즈와 아이팟을 선보임으로써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를 겸비했지만 잡스는 뭔가 부족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CD를 번거롭게 파일로 변환시키는 것보다는 바로 아이팟으로 옮기는 게 좋겠다는 생각을 한 것이다. 그래서 쉽게 음악을 구해서 넣을 수 있는 뮤직스토어를 생각했지만 애플의 힘만으로는 실현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음원 다운로드 방식이라면 고개를 젓는 소니·EMI·유니버설 등 음반사를 설득해야 했기 때문이다.

우여곡절 끝에 2003년 4월 아이튠즈 뮤직스토어가 문을 연다. 아이튠즈 프로젝트를 이끌던 부사장 에디큐(Eddy Cue)는 “첫 6개월 동안 100만 곡을 팔면 성공”이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그런데 단 6일 만에 100만 곡을 판매하는 돌풍을 일으킨다. 돌풍에 힘입어 2005년 1월 애플은 1억대 이상의 아이팟과 2억5000만 곡의 노래를 팔았다고 발표한다. 이렇게 아이튠즈, 아이팟, 아이튠즈 뮤직스토어를 갖추면서 애플은 컴퓨터 회사에서 벗어나 세계 1위 기업을 목표로 성장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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