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군이 전투기도 장갑차도 팔아먹어
  • 모종혁│중국 통신원 ()
  • 승인 2014.02.18 1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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썩은 내 진동하는 중국 군대…장성 별장에서 마오타이 1만병 나와

‘순금으로 만든 마오쩌둥(毛澤東) 흉상, 모형 배, 세숫대야…’ 2012년 1월 부패 혐의로 면직된 한 중국군 장성의 집에서는 귀중품들이 쏟아져 나왔다. 한 병당 1000위안(약 17만원)을 넘는 마오타이(茅臺)주 1만병이 산처럼 쌓여 있었다. 당시 압수수색에 나섰던 무장경찰 20여 명은 이틀 동안 트럭 4대를 동원해서야 장물을 다 옮길 수 있었다. 바로 중국군 총후근부 부부장인 구쥔산(谷俊山) 중장의 별장에서 벌어진 일이다.

1월15일 중국 언론은 이러한 구 중장의 비리 사실을 뒤늦게 보도했다. 군 검찰과 무장경찰이 급습한 허난(河南)성 푸양(?陽) 시 둥바이창(東白倉) 촌의 별장은 밖에서 보면 평범했지만, 내부는 초호화판이었다. 대지 6600㎡에 3개의 정원과 2개의 화원, 1개의 분수대가 있었다. 본관 계단 앞에는 백옥의 코끼리상 2개가 서 있었다. 마을 주민들로부터 ‘장군부(將軍府)’로 불렸던 별장 지하에는 구 중장 부부가 수집했거나 뇌물로 받았던 장물이 보관돼 있었다. 구 중장은 베이징 중심가에 수십 채의 집을 갖고 있었다. 상하이에서는 군용 토지를 부동산 개발업자에게 20억 위안(약 3520억원)에 팔면서 1억2000만 위안을 리베이트로 챙겼다. 지금까지 드러난 축재 액수만 무려 200억 위안(약 3조5200억원)에 달한다. 여기에 여배우, 가수, TV 아나운서 등 5명의 정부(情婦)도 두었다. 중국군 역사상 최대 부패 스캔들로 기록되고 있지만, 이는 빙산의 일각에 불과할 뿐이다.

지난해 11월6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인민해방군 간부들과 악수하고 있다. ⓒ Xinhua 연합
미그기 360대 해체된 후 민간 기업에 팔려

정식 명칭이 인민해방군(人民解放軍)인 중국군은 세계 최대의 병력을 지닌 ‘슈퍼파워’다. 중국 정부는 지난해 4월 발표한 ‘중국 국방백서’에서 베일에 가려 있던 병력 수와 편제를 처음으로 공개했다. 백서에 따르면 총 병력은 230만명으로 육군 85만명, 해군 23만5000명, 공군 39만8000명이다. 육군은 7개 군구로 나뉘어, 18개 집단군(우리의 군단)으로 편제돼 있다. 규모를 공개하지 않았지만 전략 미사일부대인 제2포병은 중국군의 비밀 병기다. 백서는 “둥펑(東風) 계열 탄도미사일과 창젠(長劍) 계열 순항미사일을 보유한 전략적 핵심 역량으로 타국의 핵무기 사용을 억제하고 핵 반격과 일반 미사일로 (적을) 타격할 수 있다”고 소개했다. 방대한 병력 못지않게 국방비 지출도 엄청나다. 2월3일 영국 군사정보업체 IHS 제인스가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올해 중국 국방비는 1480억 달러(약 157조원)로 추산된다. 군인연금 등이 포함됐지만 정부 각 부서에서 지원되는 군 예산과 국영 군수기업에서 지출되는 연구·개발비 등은 여전히 베일에 가려 있다. 내년에는 영국·독일·프랑스 등 유럽 3대 군사 강국의 전체 국방 예산을 합친 것보다 많아질 전망이다.

이런 중국군에 가장 큰 문제는 부정부패다. 구쥔산 사건처럼 부패는 군 내부 전체에 만연해 있다. 하지만 그 실상은 철저하게 비밀에 부쳐진다. 군의 사기와 이미지를 고려해 대외 공개를 꺼렸기 때문이다. 1990년 이래 부정부패로 실각한 장성은 모두 8명이지만, 비리 내역과 처결 결과가 알려진 사람은 4명에 불과하다. 그중 해군 부사령관 왕서우예(王守業) 중장은 범죄 사실이 중국 언론을 통해 낱낱이 공개된 첫 인물이다.

왕 중장은 총후근부 병영건설부장과 전군 병영개조판공실 주임 재임 시 1억6000만 위안(약 281억원)을 축재했다. 총후근부는 재무, 군수, 병영 건설, 교통 수송, 유류, 의무, 회계감사 등 중국군의 돈줄을 장악하고 있는 곳이다. 이런 부서에서 장기간 근무했던 왕 중장은 야전 경험이 전혀 없었지만 승진 가도를 달렸다. 문예공작단 소속 미녀 장교 5명을 정부로 뒀고 사생아도 낳았다. 왕 중장은 2006년 중앙군사법정에서 집행유예부 사형선고를 받아 단죄됐다.

개인 비리보다 더욱 심각한 것은 조직적으로 이뤄지는 군수품 밀매다. 2007년 홍콩 월간지 ‘동향(動向)’은 중앙군사위원회 조사팀이 벌인 ‘2004~05년 특별사건 수사 자료’를 입수해 그 실상을 폭로했다. 수사 자료에 따르면 산시(陝西)성 군수창고에 보관 중인 미그-15 전투기 385대가 25대로 갑자기 줄어들었다. 사라진 360대는 해체돼 민영기업에 팔렸고 기록은 모두 소각됐다. 쓰촨(四川)성 군수창고에 있던 전차와 장갑차 1800대도 해체된 뒤 엔진은 1만 위안(약 176만원)에 판매됐고 강철은 제철회사에 넘겨졌다.

윈난(雲南)성 군수창고에서는 매년 5억 위안(약 880억원) 이상의 재해 구호물자와 연료가 업그레이드되는데, 11년분이 허가 없이 사라졌다. 야전침대, 군화, 텐트, 의약품 등을 보관하는 광시(廣西)자치구 군수창고에서도 밀반출이 수시로 이뤄졌다. 이런 군수품 밀매는 총후근부 고급 장교의 비호 아래 각 군구 장성들과 지방정부 관리들이 결탁해 이뤄졌다. 당시 ‘동향’은 “매년 폐기 처분되는 군수품이 250억~500억 위안에 달하는데 이 중 상당수가 밀매되는 실정”이라고 보도했다.

무기 밀매가 가능한 것은 중국군이 수많은 기업을 직접 운영하기 때문이다. 중국군은 1980년대 초부터 총후근부·총참모부·총정치부 등 중앙 총부와 육·해·공군 사령부 산하에 다양한 사업체를 두었다. 이들 군 기업을 통해 중국군은 국방비의 일부를 충당했고 부대 운영과 군인 복지, 재취업, 연금 등 다양한 예산을 확보했다. 1990년대 초 군 기업은 3000개가 넘었다.

대외 무역까지 담당했던 군 기업의 부정부패가 심각해지자, 1998년 장쩌민(江澤民) 당시 국가주석은 중국군의 기업 활동을 전면 금지시켰다. 수많은 군 기업이 국영기업으로 탈바꿈했지만 군부와의 유착은 여전했다. 군수품 밀매를 도운 것도 과거 군 기업이었던 국영기업이다. 이런 현실에 중국 국방대학 교수를 지낸 류밍푸(劉明福) 대교(우리의 대령)는 2012년 출판한 저서에서 “중국군의 최대 적은 일본·필리핀·미국이 아니라 내부의 부패”라고 우려했다.

꼬리만 자르고 몸통은 손도 못 대

사태의 위중함을 느낀 중국 정부는 뒤늦게 비리 척결을 위해 소매를 걷어붙였다. 2012년 6월 구쥔산 사건을 계기로 전군 장성들에게 개인 재산을 전부 신고하도록 명령했다. 지난해 5월에는 특권의 상징이던 군과 무장경찰의 차량 번호판을 모두 교체했다. 벤츠·BMW·아우디 등 외제차와 배기량 3000㏄ 이상, 45만 위안(약 7920만원) 이상의 고급차 이용도 금지했다. 이로 인해 퇴출된 군용차는 무려 45만대에 달한다. 1월30일에는 ‘출장·여행 경비 관리규정’을 제정해 시행에 들어갔다. 군대 내 출장 심사 제도를 마련해 출장자의 숫자와 일수를 제한하고, 경비와 객실 수준도 규정해 외유성 여행을 방지했다. 무엇보다 숙박비·교통비 등은 공용 카드로 결제하도록 해서 투명도를 높였다.

그러나 부패의 ‘몸통’에는 손을 못 대고 있다. 구쥔산의 배후로 지목받고 있는 쉬차이허우(徐才厚) 전 중앙군사위 부주석은 1월20일 베이징에서 열린 퇴역 간부 위문 공연에 모습을 드러냈다. 쉬 부주석은 지난해 내내 연금 조사설이 끊이질 않았지만 여전히 건재를 과시했다. 왕서우예 사건 때도 진짜 몸통은 따로 있다는 의혹이 꼬리를 물었지만 ‘깃털’인 왕 중장만 단죄됐다. 부패와의 전쟁을 벌이고 있는 시진핑(習近平) 주석이 ‘복마전’ 중국군의 부패를 일소하고 정군(整軍)시킬 수 있을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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