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겨 여왕’의 왕관을 누가 감히…
  • 조영준│엑스포츠뉴스 기자 ()
  • 승인 2014.02.18 11:47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러시아 신성’ 리프니츠카야·동갑내기 아사다 마오가 추격

2014 소치 동계올림픽이 막바지로 치닫고 있다. 이 대회의 절정은 여자 피겨스케이팅이다. 당초 김연아의 독주로 싱겁게 끝날 것으로 예상되던 여자 피겨는 개최국인 러시아의 신예 율리아 리프니츠카야(16·러시아)가 대회 초반 국가 대항 단체 피겨전에서 혜성처럼 떠오르며 승부의 향방을 쉽게 예측할 수 없게 됐다.

김연아(24)는 국내는 물론 전 세계가 주목하는 스포츠 스타다. 이미 그는 21세기를 대표하는 피겨 선수다. 2000년대 이후 피겨스케이팅 여자 싱글의 각종 기록은 모두 김연아의 몸짓으로 작성됐다.

김연아는 2010년 밴쿠버 동계올림픽에서 21세기 피겨 역사의 새로운 좌표를 썼다. 쇼트프로그램 최고 점수 78.50과 프리스케이팅 최고점인 150.06, 두 점수를 합친 종합 228.56의 기록은 아직도 깨지지 않고 있다.

(왼쪽부터) ⓒ 연합뉴스
김연아는 2002년 새로운 채점 제도가 도입된 이후 200점을 넘은 최초의 여자 싱글 선수다. 세계 기록도 11차례나 갈아치웠다. 이런 데이터를 볼 때 그는 특별한 경쟁자가 없는 독보적인 선수다. 하지만 피겨스케이팅이 펼쳐지는 은반 위에는 김연아만 있지 않다. 여왕의 왕관을 뺏기 위해 도전하는 선수가 우글거린다.

김연아는 카타리나 비트(49·독일) 이후 26년 만에 올림픽 2연패에 도전한다. 올림픽 2회 연속 우승의 위업을 달성한다면 김연아는 피겨 역사에 커다란 발자국을 남기게 된다. 지금까지 올림픽 피겨 여자 싱글에서 2회 연속 우승을 거둔 이는 두 명밖에 없다. 소냐 헤니(노르웨이)는 1928년 생모리츠 대회 때부터 3연패를 달성했다. 1980년대를 풍미한 독일의 카타리나 비트는 1984년 사라예보올림픽과 1988년 캘거리올림픽에서 연속 우승을 차지했다.

김연아의 최대 적은 김연아 자신과 중압감

올림픽 2연패 달성을 위해 넘어야 할 산은 많다. 김연아의 가장 두려운 적은 자기 자신이다. 스스로를 극복하는 것이 우선 과제다. 그다음으로는 전 국민에게 받는 중압감을 극복해야 한다. 마지막은 새롭게 등장한 다크호스와 오래된 숙명의 라이벌이다.

율리아 리프니츠카야의 돌풍은 예견됐다. 2012년 세계 주니어 선수권대회 우승자인 그는 2014년 1월13일부터 19일까지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열린 ‘2014 유럽피겨스케이팅선수권대회’에서 209.72점으로 우승을 차지했다. 리프니츠카야가 받은 이 점수는 여자 싱글에서 역대 네 번째로 높다. 세계 기록인 228.56점과 두 번째로 높은 218.31점(2013 캐나다 세계선수권) 그리고 세 번째인 210.03점(2010 그랑프리 프랑스 에릭봉파르 대회)은 모두 김연아가 세웠다.

성공적인 올림픽 리허설을 마친 리프니츠카야는 올 2월9일과 10일에 걸쳐 열린 2014 소치 동계올림픽 피겨 단체전 여자 싱글 쇼트프로그램(72.90점)과 프리스케이팅(141.51점)에서 모두 1위에 올랐다. 특히 쇼트프로그램에서는 아사다 마오(24·일본, 64.07)를 8.83점 차로 제쳤다.

러시아는 자국에서 열리는 동계올림픽을 앞두고 선수 육성을 위한 대대적인 투자에 나섰다. 해외의 유명한 코치를 영입했고 뛰어난 기량을 지닌 선수를 귀화시켰다. 또한 재능이 많은 어린 선수들을 적극적으로 후원했다. 러시아의 어린 소녀 상당수는 발레와 체조를 기본으로 배운다. 이러한 시스템을 통해 리듬체조와 피겨스케이팅 인재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리프니츠카야도 이러한 시스템에서 나온 인재다. 체조선수 출신인 그는 유연성이 뛰어나고 운동 능력이 탁월하다. 리프니츠카야가 구사하는 비엘만 스핀(회전하면서 한쪽 스케이트 날을 잡고 머리 뒤쪽으로 끌어올리는 자세)은 일직선에 가깝다. 현재 이 정도의 유연성을 보여주는 스케이터는 흔치 않다.

스핀 자세도 뛰어나지만 회전 속도도 빠르다. 리프니츠카야는 스핀으로 평균 1점이 넘는 가산점을 챙긴다. 158cm의 단신인 그는 아직 체형 변화를 겪지 않았다. 몸이 가볍기 때문에 빙판을 차고 도약하는 힘이 남다르다.

리프니츠카야는 김연아의 장기 중 하나인 트리플 러츠+트리플 토루프 콤비네이션 점프(기본점 10.10)를 구사한다. 점프의 높이와 비거리는 김연아와 비교해 현저히 떨어진다. 문제점으로 지적받는 것은 정확하지 못한 트리플 러츠 점프다. 러츠 점프는 에지(스케이트 날)를 아웃에지(바깥쪽)로 기울인 상태에서 빙판을 차고 도약하는 점프다. 하지만 리프니츠카야의 러츠는 바깥쪽이 아닌 안쪽으로 비스듬히 기울인 상태에서 도약을 한다.

리프니츠카야, 러시아 홈어드밴티지 이점

이렇게 정확하지 못한 점프를 할 경우 롱에지(Wrong edge) 판정을 받는다. 롱에지 판정을 받을 경우 -1점 이상의 감점이 매겨진다. 실제로 올해 유럽선수권에서는 트리플 러츠가 롱에지 판정을 받았다.

하지만 자국에서 열린 소치올림픽에서는 롱에지 판정을 받지 않았다. 또한 소치올림픽에서는 예술점수(PCS)도 후하게 받고 있다. 이 때문에 홈어드밴티지 이점을 받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리프니츠카야에 대한 평가에선 호불호가 갈린다. 2006년 토리노 동계올림픽 피겨 남자 싱글 금메달리스트인 에브게니 플루센코(32·러시아)는 “리프니츠카야는 천재”라고 치켜세운다. 세계선수권 5회 우승에 빛나는 미셸 콴(34·미국)은 “리프니츠카야는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할지를 정확히 알고 있다. 자국 국민에게 받는 관심을 부담으로 느끼지 않고 즐긴다”고 칭찬했다.

반면 리프니츠카야가 과대평가됐다는 지적도 있다. 과거 미셸 콴을 지도했고 현재는 그레이시 골드(19·미국)의 코치로 활약하고 있는 프랭크 캐롤(75·미국)은 “리프니츠카야가 비슷한 연령의 선수들과 비교하면 대단한 것은 확실하다. 하지만 그가 이번 소치올림픽 단체전에서 받은 예술점수는 지나치게 높다고 생각한다”며 의문을 제기했다.

리프니츠카야는 아직 검증되지 않은 점이 많다. 그는 아사다를 제치고 김연아의 강력한 대항마로 떠올랐다. 하지만 올림픽 같은 큰 대회 경험이 적은 것은 약점이다.

아사다 마오, 2013~14 트리플 악셀 성공률 0%

아사다 마오는 2010년 밴쿠버 동계올림픽 이후 침체기에 빠졌다. 2011년과 2012년 세계선수권에서는 모두 메달권에 진입하지 못하며 6위에 그쳤다. 부진이 지속되자 아사다는 힘든 결정을 내렸다. 그동안 양날의 검으로 작용했던 트리플 악셀을 포기했다. 2012~13시즌, 아사다는 트리플 악셀 대신 성공률이 높은 쉬운 점프를 주로 구사했다. 결과는 성공적이었고, 그랑프리 파이널 우승을 차지했다.

하지만 김연아가 2013년 캐나다 온타리오 주 런던에서 열린 세계선수권에 복귀하자 아사다는 전략을 수정했다. 김연아를 뛰어넘기 위해서는 반드시 트리플 악셀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절치부심 끝에 다시 트리플 악셀 훈련에 들어갔지만 김연아에 패하며 이 대회 3위에 그쳤다.

올림픽이 열리는 2013~14시즌 동안 아사다는 출전하는 대회에서 모두 트리플 악셀을 시도했다. 결과는 성공률 0%였다. 늘 트리플 악셀에서 회전수 부족 판정을 받으며 감점됐다.

이런 상황에서 ‘다크호스’인 리프니츠카야가 등장했다. 전 세계 언론은 김연아와 리프니츠카야의 대결에 관심을 쏟고 있다. 올림픽이 열리기 전 피겨 여자 싱글에선 김연아의 압승이 예고됐다. 하지만 단체전이 막을 내린 후 상황은 급변했다. 해외  도박사들은 김연아보다 리프니츠카야에 더 많이 배팅하고 있다.

영국 베팅 정보 사이트 ‘오즈체커’에 따르면 21개 유럽 베팅업체를 통해 소치 동계올림픽 피겨스케이팅 여자 싱글 베팅 참가자 중 리프니츠카야에 베팅한 사람이 52.3%다. 이 수치는 김연아에게 베팅한 23.03%의 두 배에 가깝다. 한창 상승세를 타고 있는 리프니츠카야가 홈어드밴티지의 영향까지 받으며 유리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김연아의 기량은 4년 전과 비교해 녹슬지 않았다. 대한빙상경기연맹 정재은 피겨 이사는 “김연아의 연습을 볼 기회가 많았다. 점프는 예전보다 더 좋아졌다는 느낌을 받았다. 한층 쉽게 뛰고 있다. 새 프로그램을 연습한 지 얼마 안 됐음에도 쉽게 적응하고 있었다”고 평가했다.

김연아는 4년 전 밴쿠버에서 압도적인 기량을 펼치며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자신의 마지막 무대가 될 소치올림픽에서 패기 넘치는 어린 소녀와 펼칠 대결에 전 세계의 시선이 쏠린다. 1976년 인스부르크 동계올림픽 피겨 여자 싱글 우승자인 도로시 해밀(미국)은 “김연아가 최상의 상태라면 누구도 따라잡지 못할 것”이라며 김연아의 우위를 점쳤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