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덕수, STX다롄에서 비자금 수천억 빼돌렸다”
  • 중국 다롄·서울=조현주 기자 (cho@sisapress.com)
  • 승인 2014.02.26 1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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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저널, ‘STX다롄-계열사 거래 장부’ 단독 입수 강 전 회장 처남의 대승정공·대승물류가 비자금 조성 통로

검찰의 칼끝이 강덕수 전 STX그룹 회장을 정조준하고 있다. 검찰은 강 전 회장의 배임·횡령 혐의와 함께 비자금 조성 의혹에 대한 수사에 본격 착수했다. 2월17일 서울중앙지검 특수2부는 서울 중구 STX남산타워에 있는 ㈜STX와 STX조선해양 등 6개 계열사와 강 전 회장의 서울 서초동 자택 등을 압수수색했다. 검찰은 이 과정에서 컴퓨터 하드디스크, 회계장부, 내부 보고서 등을 확보해 정밀 분석 작업을 벌이고 있다.

검찰의 이번 수사는 2월10일 STX중공업으로부터 STX그룹의 내부 비리에 대한 수사 의뢰를 받은 데 따른 조치로 보인다. 앞서 지난해 12월 초 산업은행 등 STX중공업 채권단은 강 전 회장의 배임 혐의에 대한 조사가 필요하다고 판단해 STX중공업 측에 검찰 수사 의뢰를 요청했다. 당시 강 전 회장을 포함한 전직 임원 5명이 수사 대상에 올랐다. 검찰은 강 전 회장이 사세를 확장하는 과정에서 STX중공업 자금으로 다른 계열사를 지원해 2000억원대의 손실을 끼친 정황을 포착한 것으로 전해진다.

ⓒ 시사저널 최준필·연합뉴스
검찰은 또 강 전 회장의 비자금 조성 의혹에 대해서도 강도 높은 수사를 벌이고 있다. 특히 검찰은 강 전 회장이 비자금을 조성한 곳으로 STX그룹의 중국 현지법인인 STX다롄조선을 겨냥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강 전 회장이 STX다롄조선 내 계열사를 통해 1000억원대 비자금을 조성한 혐의를 포착했다는 것이다. STX다롄 내부 사정에 정통한 한 인사는 “강 전 회장의 비자금 의혹 수사 대상에 오른 (STX그룹) 임원진 가운데 다롄조선 관계자가 다수 포함돼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산업은행 등 STX그룹 채권단이 STX다롄조선과 거래한 현지 협력업체 관계자들로부터 강 전 회장의 비자금 조성 의혹과 관련된 첩보를 입수해 검찰 측에 넘겼다”고 말했다.

시사저널은 지난 1월 초부터 강 전 회장의 비자금 조성 의혹에 대한 제보를 접하고 관련 취재를 해왔다. 이 과정에서 강 전 회장이 중국 다롄에 있는 일부 계열사로 일감을 몰아주고 이를 통해 1000억원대 비자금을 조성했다는 증언을 확보했다. 이에 따르면 강 전 회장은 이들 계열사의 지배 주주로서 개인 회사나 다름없이 운영해왔으며 자신의 친인척을 ‘자금관리책’으로 활용해왔다는 것이다. 중국 다롄 현지 취재 결과, 이러한 내용의 증언은 STX다롄조선 협력업체들 사이에서 오래전부터 공공연한 비밀로 나돌고 있었다.

시사저널 취재진은 강 전 회장의 비자금 조성 의혹에 대한 실상을 추적하기 위해 지난 1월10일 중국 랴오닝성(遼寧省) 다롄(大連) 시 장흥도에 위치한 STX다롄 조선소를 찾았다. 당시 STX다롄 조선소는 공장 직원들이 월급 체불 문제로 집단 항의에 나서 문을 닫은 상태였다. 조선소에 출근하고 있는 이들 또한 200여 명에 불과했다. 이마저도 주로 중국인 직원이었다. 취재진은 다롄 현지에 남아 있는 STX다롄조선 협력업체 관계자들을 통해 다롄조선의 현황을 파악했다.

“다롄에서 챙겨간 돈만도 1000억원이 넘는데 (강 회장이) 회사 빚 갚을 돈이 없어 아파트를 내놓았다는 것은 한마디로 쇼다.” 취재진이 1월10일과 11일 다롄에서 만난 STX다롄 협력업체 대표들이 한목소리로 내놓은 말이다. 이들이 성토한 까닭은 앞서 1월6일 강덕수 당시 STX그룹 회장이 계열사 부채를 상환하기 위해 시가 100억원대의 서울 서초동 자택을 매물로 내놓겠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당시 강 회장 측은 자신의 자택을 처분해 오는 6월 말까지 30억원을 상환하겠다는 부채 상환 계획을 밝혔다. 그가 처분하겠다는 자택인 서울 서초동 트라움하우스 5차는 한국에서 가장 비싼 집 가운데 하나다. 이런 내용이 언론에 보도되자 “강 회장 수중에 자금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소문이 파다하게 퍼졌다.

하지만 중국에서는 분위기가 전혀 달랐다. 중국 현지 취재 과정에서 취재진은 “강 전 회장이 중국 현지법인들을 통해 수천억 원대의 비자금을 조성했다”는 제보를 접했다. STX다롄 사정에 밝은 소식통은 “STX다롄은 이른바 ‘강덕수 패밀리’가 장악한 상태다. 한국 감독기관의 손길이 닿지 않아 (강 전 회장이) 회사를 제멋대로 굴렸다. 회장이 심복을 심어두고 회사(STX다롄)를 망하게 했다. 하지만 이를 문제 삼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고 밝혔다.

이 소식통은 “중국 법인인 STX다롄의 지분은 강 전 회장과 홍콩의 한 페이퍼컴퍼니가 상당 부분 보유하고 있다. 그래서 중국에서는 STX다롄 자체가 강덕수 전 회장의 개인 회사로 알려져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STX다롄의 자금줄을 쥐고 있는 핵심 업체는 바로 대승정공과 대승물류다. (강 전 회장은) 이들 업체를 통해 수천억 원대의 비자금을 만들어 홍콩의 페이퍼컴퍼니로 빼돌렸다”고 말했다.

처남이 대승정공·대승물류 자금관리책

배관 제작업체인 대승정공과 운송 및 소모품 납품을 담당하는 업체인 대승물류는 중국에서 ‘강덕수 회사’로 통한다. 강 전 회장이 87.45%의 지분을 보유한 ㈜포스텍이 두 회사의 지분 100%를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사실상 강 전 회장의 개인 회사나 다름없다. 이뿐만이 아니다. 두 업체는 지금까지 강 전 회장의 친인척이 통합 운영해왔다. STX다롄 사정에 밝은 한 인사는 “대승정공과 대승물류의 대표이사 최 아무개씨는 쌍용그룹 시절부터 인연을 쌓아 강 전 회장의 ‘오른팔’로 불리는 인물이다. 두 회사의 공동 전무인 배 아무개씨는 강 전 회장의 처남”이라고 말했다.

이 인사에 따르면 강 전 회장은 대승정공과 대승물류에 심복인 최씨를 대표이사로 앉혔지만 이른바 실권 없는 ‘바지사장’에 불과했다. 실질적인 경영과 자금 관리는 강 전 회장의 처남인 배씨가 맡고 있었다는 게 협력업체 관계자들의 공통된 전언이다.

그렇다면 강 전 회장은 왜 처남에게 ‘돈 관리’를 맡겼을까. 이와 관련해 STX다롄 협력업체 관계자들은 “강 전 회장이 처남을 통해 수천억 원의 비자금을 조성해 빼돌렸다”고 주장했다. 본지는 이러한 주장을 뒷받침할 만한 ‘STX다롄조선과 계열사 간 내부 거래 장부’를 단독 입수했다. 이 장부는 STX다롄과 대승정공(옛 포스아이) 간 거래 내역서로, 두 업체가 그동안 어떤 식으로 자금을 빼돌렸는지 그 수법과 정황을 파악할 수 있는 핵심 자료다.

장부 내 거래 계약서에 따르면 STX다롄은 2010년 9월 계열사인 대승정공과 파이프(배관) 가격 단가 상승에 관한 계약을 체결했다. 이 과정에서 수상한 거래 내역이 포착됐다. 두 업체가 계약한 파이프 단가(배 한 척에 들어가는 파이프 물량을 기준으로 책정)는 STX다롄이 이전에 거래했던 ㄷ업체에 비해 19%가 오른 가격이었다. 게다가 STX조선해양의 진해조선소에 공급되는 파이프 단가에 비해서도 5%가 높다. 대승정공이 만든 파이프는 한국보다 인건비와 원료비가 더 저렴한 중국에서 만들었다는 점을 감안할 때 한국보다 가격이 비싼 것은 이해하기 힘든 대목이다. 이 계약으로 인해 2010년부터 STX다롄의 배관 단가가 294만7843.53위안(한화로 약 5억2000만원)에서 350만6513.78위안(약 6억2000만원)으로 올랐다.

게다가 계약서와 함께 첨부된 문건에는 ‘긴급 시에는 각 공정 단가 및 운송비를 각각 3배로 (대승정공에) 지급한다’고 적시돼 있다. 이와 관련해 STX다롄에 파이프를 공급해왔던 ㄷ업체 관계자는 “기존에 거래했을 때는 배관 단가를 올리려고 하면 1년 정도 협상 과정을 거치다가 결국 ‘인상 불허’로 결정되곤 했다. 하지만 (강 전 회장의 처남이 자금 관리를 맡은) 대승정공은 2010년부터 해마다 STX다롄과 배관 단가 인상 계약을 맺었다. 게다가 공정 단가나 운송비를 몇 배로 받는다는 것은 상상도 못 했던 일”이라고 밝혔다.

뿐만 아니라 대승정공은 2010년부터 STX다롄에 파이프를 공급하기 시작했는데, 거래를 시작한 첫해부터 STX다롄의 파이프 발주 물량 100%를 수주했다. ㄷ업체 관계자는 “STX다롄이 대승정공에 일감을 몰아주기 전인 2009년까지 ㄷ업체가 파이프를 100% 공급해왔다. 이미 중국에서 10년 정도 파이프 제작을 하면서 기반을 다져왔기 때문이다. 그런데 2010년부터는 거래량이 제로 수준으로 떨어졌다”며 “STX다롄과의 거래로 연 매출 200억원을 올리곤 했는데 그것이 한순간에 0원이 됐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STX다롄은) 협력사를 죽이면서까지 대승정공을 챙겼는데도 (대승정공은) 적자가 수십억 원에 달했다”고 덧붙였다.

ㄷ업체 관계자의 말을 종합해보면 대승정공은 2010년부터 연간 최소 240억원(19% 인상한 파이프 단가 적용) 이상의 매출을 기록했을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STX다롄이 배관 발주 물량을 전부 몰아줬음에도 대승정공이 적자 상태를 벗어나지 못한 까닭은 무엇일까. 강 전 회장이 처남을 통해 거래 실적을 조작해 매출의 일부를 빼돌렸을 가능성이 크다.

2011년 4월29일 강덕수 전 회장이 중국 다롄에서 열린 STX그룹 출범 기념행사에서 사기(社旗)를 흔들고 있다. ⓒ 연합뉴스
납품 단가 2~3배 부풀려 STX다롄에 공급

본지가 입수한 장부는 STX다롄의 황당한 내부 거래 중 일부 사례에 불과하다. 대승정공에 비해 대승물류는 STX다롄과의 거래만으로 연 매출을 1조원 이상 올렸다. STX다롄의 회사 버스에서부터 공장 직원이 사용하는 장갑 한 켤레까지 대승물류를 거치지 않는 것이 없었다. 이 때문에 다롄 현지에서는 대승의 영문 약자인 ‘DS’가 강 전 회장의 이름인 ‘덕수’를 뜻하는 것이란 우스갯소리가 돌 정도였다. 게다가 대승물류는 STX다롄과 거래할 때 납품 단가를 2~3배 부풀려 책정하면서 수백억 원에 이르는 차익을 챙겼다.

이에 대해 다롄 현지 소식통은 “(STX다롄 조선소에서)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은 대승물류가 (STX다롄에서) 수주받는 구조였다. 대승물류는 조선소 내에 조그마한 사무실을 하나 두고 있는 작은 회사일 뿐인데 연 매출은 1조원이 넘었다. 매출을 올리는 수법은 간단했다. (STX다롄으로의) 납품 단가를 제작 공장에서 사오는 가격보다 무조건 2~3배 부풀렸다”고 설명했다. 그는 “대승물류는 강 전 회장의 개인 회사이기 때문에 아무리 단가를 높게 불러도 무조건 계약이 성사됐다”며 “결국 대승물류 때문에 STX다롄이 다 죽는 꼴이 됐지만 STX다롄이나 대승물류 모두 강 전 회장의 개인 회사이기에 문제 될 게 없었다. 납품 단가를 부풀려 매년 수백억 원의 차익이 생겼는데 이것이 모두 (강덕수) 회장에게 들어갔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다롄조선소 때문에 STX그룹 망했다”

대승물류가 모든 물품의 가격을 기본적으로 두 배 부풀려 STX다롄에 넘겼다고 가정할 때 연 매출액의 절반가량이 차익이라고 볼 수 있다. 현지 소식통은 “대승물류는 납품 단가를 부풀려 빼돌린 수백억 원의 차익으로 대승정공의 영업적자 분을 감쪽같이 메웠다”며 “대승정공은 단가 상승 계약을 맺어 매출액을 키워갔지만 매년 적자였고, 대승물류는 납품가 부풀리기로 STX다롄에서 수백억 원을 빼돌렸다. 그런데도 두 회사는 실질적으로 통합돼 운영됐기 때문에 결과적으로는 늘 매출과 영업이익이 늘어나고 있는 것으로 처리됐다”고 밝혔다. STX다롄의 일부 관계자는 이런 사실을 포착했지만 “대승이 강 전 회장의 개인 회사였기 때문에 그 누구도 막을 수 없었다”고 했다.

STX다롄 협력업체 관계자들은 대승정공과 대승물류가 2007년부터 최소 1000억원가량의 자금을 빼돌렸고 이것이 모두 강 전 회장 수중에 들어갔을 것으로 보고 있다.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 이후 조선업 불황이 이어지고 STX그룹이 유동성 위기에 빠지면서 STX다롄은 지난해 4월 공장 가동을 중단했다. 하지만 문을 닫기 직전까지 STX다롄과 대승 사이에는 검은 거래가 이어졌다. STX다롄의 한 협력업체 대표는 “STX그룹이 망한 것은 사실상 STX다롄의 비리 때문”이라고 비난했다.

아직 터지지 않은 뇌관이 있다. 바로 STX건설이다. STX건설은 강 전 회장과 두 딸이 지분 62.23%를 보유하고 있고, 강 전 회장이 최대주주로 있는 포스텍이 나머지 지분 37.77%를 가지고 있다. 강 전 회장 일가가 지분 100%를 소유한 개인 회사인 셈이다. 현지 소식통은 “중국 현지에 다롄 조선소를 세운 게 STX건설이다. STX건설은 엄청난 규모의 사원 아파트를 건설했는데 이 거래 내역을 분석하면 비자금 규모는 상상을 초월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렇다면 STX그룹은 그동안 강 전 회장의 수천억 원대 비자금 조성 의혹을 감지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일까. 이를 확인하기 위해 STX그룹의 지주회사인 ㈜STX 측에 연락을 취했다. ㈜STX 관계자는 “현재 그룹이 와해되다시피 해 ㈜STX가 모든 계열사 상황을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당시 사정을 알고 있을 만한 관리자들 또한 대부분 회사를 떠난 상태”라며 “STX조선해양이 STX다롄의 1대 주주이기 때문에 (다롄에서의 비자금 조성 문제는) 조선해양 측에서 파악할 사안”이라고 답했다.

하지만 STX조선해양 측 관계자 역시 “STX다롄은 (우리와는) 별개의 회사로 운영됐기 때문에 (STX조선해양에게는) 감사 권한도 없었다”고 밝혔다. 그는 “문제가 된 대승정공과 대승물류는 그룹 계열 가운데 하나인 포스텍의 자회사라서 STX조선해양과 직접적인 연관이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 관계자는 또 “대승물류와 대승정공을 이끌어왔던 최 아무개 사장은 현재 대승물류의 부사장직을 맡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지만 대승물류는 와해된 상태라 현지 연락처조차 남아 있지 않다. 강 전 회장의 처남인 배 아무개 전무 역시 이미 회사를 떠났다”고 말했다.

STX그룹 측 입장을 종합해보면 STX다롄 조선소는 STX그룹이 3조원이나 투자해 만들었는데도 이곳을 관할하는 조직이 그룹 내 어디에도 없었다는 얘기다. STX다롄은 ‘강덕수 왕국’이나 다름없었기 때문에 비자금 조성에 대해 누구도 간섭할 수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런 방식으로 조성된 비자금의 출구가 어딘지도 관심사다. 그 출구로 정·관계가 지목되고 있다. 검찰 수사가 더욱 주목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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