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바다’ 엄포 놓을 땐 언제고 추파 던지는 ‘젊은 수령’
  • 진희관│인제대 통일학연구소 소장 ()
  • 승인 2014.02.26 1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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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주변국에 잘 보이려 남북 관계 개선에 사활

아무리 예측 불가능한 체제라고 하지만 지난해와 올해 북한의 태도는 달라도 너무 다르다. 지난해 11월 ‘청와대 불바다’ 발언에 이어 12월 장성택을 공개 처형하다시피 했던 평양의 모습은 해가 바뀌면서 온데간데없어졌다. 매우 적극적으로 남북 대화에 나서고 있는가 하면, 이산가족 상봉이 실현된 것 역시 북한이 호응한 결과라 해도 틀리지 않다. 이러한 현상은 어떤 배경에서 나온 것일까.

결론적으로 북한 김정은 체제는 고립에서 벗어나 정상 국가(normal state)가 되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남북 관계를 회복하고, 미국과의 관계를 풀어서 한반도 평화 체제를 수립하는 과정이 필수다. 예전처럼 북한이 맞대응으로 일관해서는 해답이 나올 수 없는 것이다. 어떻게 해서라도 관계를 진척시켜야 한다는 것이 지금 북한의 입장으로 보인다.

2월12일 남북 고위급 접촉이 판문점 ‘평화의 집’에서 열렸다. 회담을 시작하기 전 남북 대표단이 인사를 나누고 있다. ⓒ 통일부 제공
아베 향한 거침없는 비난 성명도 멈춰

지난 1월6일 박근혜 대통령이 신년기자회견을 통해 이산가족 상봉을 제의하자, 북한은 사흘 만에 조국평화통일위원회(조평통) 서기국 통지문을 통해 거절했다. 2월 대규모 한미 합동군사훈련이 계획돼 있는 마당에 편안하게 이산가족이 만나기 어렵다는 이유였다. 그러면서도 조건이 갖춰지면 따뜻한 날에 실현할 수 있을 것이라는 유화적인 태도를 취하면서 뭔가 바뀌는 평양의 분위기를 드러냈다. 2주 만인 1월24일 북한은 전날 국방위원회 공개서한에 이어 조선적십자 통지문을 통해 이산가족 상봉 행사를 갖자는 제안을 해왔다. 날짜도 남측이 편한 날로 정하라는 ‘통 큰’ 제안을 했다. 한미 합동군사훈련 계획이 취소되었거나 뚜렷한 변화가 있는 것이 아닌데도 이산가족 상봉을 하겠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군사훈련은 변수가 안 된다는 얘기가 된다.

물론 북한이 2월6일 국방위원회 정책국 담화를 통해 “대화와 침략 연습, 화해와 대결 소동은 양립할 수 없다”는 입장을 밝히며 다소 오락가락하긴 했지만, 그런 가운데서도 비공개로 고위급 회담을 제안하고 결국 판문점 평화의 집에서 고위급 접촉을 통해 이산가족 상봉이 실현되기에 이르렀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을 보면 북한은 기존 입장을 견지하면서도 변화를 꾀하고자 하는 것으로 평가된다. 즉, 한미 합동군사훈련에 대해서는 반대하지만, 남북 관계를 회복하는 것이 우선이라는 입장으로 변화했다고 볼 수 있다.

김정일 사망 이후 북한의 대남 행위들을 보면, 첫 1년 동안은 장거리 로켓 발사와 핵실험을 통해 위기를 조장했다. 2012년 1월부터 고조된 군사적 위기는 지금까지의 어떤 상황보다 위험스러웠다. 특히 목표물을 거명하면서 타격하겠다는 주장과 함께 북한 청년들 모두가 군대 재입대 지원서에 서명하는 운동을 전개하는 등 전례 없는 일들이 벌어졌다. 그러다가 2013년 봄 한미 합동군사훈련이 유례없이 대대적으로 전개되면서 2개월여 위기가 고조됐으나 5월을 분기점으로 변화가 일면서 6월부터는 개성공단 재가동을 위한 협의에 들어가고 8월엔 합의에 이르렀다.

북한은 김정일 사망 초기 1년여 동안 대외적 위기를 조장하면서 대내적 결속을 다진 것으로 평가된다. 이후부터는 대외 관계를 회복하고 개선하는 데 총력을 기울여왔다. 일본에 대한 태도 변화도 감지된다. 2013년 5월 중순 이지마 이사오(飯島勳) 관방참여의 방북 이후 아베 총리에 대한 실명 비난을 중단한 것은 놀라운 일이다. 2012년 말 아베 정권 출범 이후 북한의 대일 비난은 정부에 대한 것만이 아니라 아베 개인에 대한 실명 비난까지 거침이 없었다. 그런데 특사 방북에서 어떠한 합의가 있었는지는 알려지지 않고 있지만 북한 로동신문과 조선중앙통신이 아베에 대한 실명 비난을 중단한 것은 북일 간에 관계 개선을 위한 모종의 합의가 이루어졌음을 시사하고 있다. 또 이지마 관방참여가 지난해 10월 중국 다롄(大連)에서 북한 측과 비밀 접촉을 가졌다는 의혹도 일본 언론을 통해 제기됐다.

지난 2월10일에는 도널드 그래그 전 주한 미국 대사의 방북이 이루어졌는데, 억류된 재미 한인 케네스 배씨의 석방 문제만 논의된 것 같지는 않다. 한국과 전개되고 있는 고위급 회담을 비롯한 이산가족 상봉 이후의 관계 등에 대해 포괄적인 논의와 메시지 전달이 이루어졌을 것으로 추측된다. 최근 북한을 방문한 류전민(劉振民) 중국 외교부 부부장이 방북 일정을 마친 직후인 2월20일에 한국을 찾기도 했다.

장성택 전 국방위원회 부위원장이 반역자로 처형된 다음 날인 2013년 12월13일 아침 평양의 눈길을 시민들이 걸어가고 있다. ⓒ AP 연합
동해안 벨트 협력과 발전 꾀할 가능성

주변 국가들의 움직임도 활발하지만 북한 역시 한국을 비롯해 미국·일본·중국 등 주변국들과의 관계 개선을 위해 전 방위로 노력을 기울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여기에는 한반도와 핵 문제 해결이라는 거대 어젠다 논의를 해야 한다는 명제가 있지만, 작게는 개별 국가들과의 이해관계를 풀어가려는 의도도 담겨 있다는 분석이다. 일본과는 북일 평양선언(2004년 9월) 이행과 납치자 문제 해결이라는 과제가 걸려 있다. 한국과는 무엇보다 금강산 관광 재개가 관건이다. 우리 정부는 이에 대해 관광객 피격 사건에 대한 사과와 재발 방지를 요구해왔으며, 북한도 2009년 8월 현대아산 현정은 회장의 방북 때부터 이를 수용할 뜻을 내비쳤다. 따라서 금강산 관광 재개를 위한 회담이 진행된다면 더 이상 관광을 중단할 명분은 없어진다. 그리고 이산가족 상봉이 진행되는 과정에서도 이에 대한 논의가 오갈 수 있다. 금강산 관광이 재개될 경우 5·24 조치는 사실상 유명무실해지며, 남북 교류 협력은 새로운 전기를 맞이할 수 있다.

우리 통일부는 2월6일 업무보고를 통해 DMZ 평화공원 연내 착공 및 남북 농업 협력 계획을 밝혔다. 이것은 북한과 조속히 대화를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일이며, 북한 역시 이에 대한 이해를 충분히 고려했을 것이다. 따라서 북한이 적극적으로 호응해온다면, 우리 정부로서는 더 이상 문을 닫을 수만은 없는 여건에 있다고 볼 수 있다. 북한은 금강산 관광 재개를 발판으로 동해안 벨트 협력과 발전을 꾀할 가능성이 크다. 김정은 시대의 속도라고 해서 ‘마식령 속도’로 명명된 대규모 마식령 스키장이 유지되기 위해서는 북한 인민들만으로는 부족해 주변국 관광객이나 투자를 유치하지 않고는 안 될 것이란 평가다.

북한은 주변국과의 문제를 풀어가기 위해서는 먼저 한국과의 관계를 개선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절박감을 갖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남북 관계를 조속히 개선하라는 것이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유훈이었다는 견해도 일각에서 제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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