씀씀이 큰 알짜 관광객을 잡아라
  • 호주 시드니=노진섭 기자 (no@sisapress.com)
  • 승인 2014.02.26 15: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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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관광청, 기업 인센티브 여행 적극 유치 한국은 관광객 수 늘리기 급급

농심·SK이노베이션·빙그레 등 기업의 인사팀장 10명은 2월13일부터 엿새 동안 호주의 2개 도시(시드니·골드코스트)에 머물렀다. 항공료·숙박비 등 일체의 비용은 호주관광청이 부담했다. 이들은 매년 신입사원, 진급자, 우수 직원에게 해외 포상휴가(인센티브 여행)를 보내주는 실무자들이다. 호주 정부가 이들을 융숭하게 대접한 이유다.

이들이 머물렀던 고급 호텔과 식당은 모두 단체 손님을 소화할 수 있는 규모를 갖춘 곳이다. 호주 정부는 한국 기업인들에게 선보이기 위해 그런 업체들을 선별했다. 한국에서 온 기업인들을 맞은 호텔과 식당 관리자들은 대형 연회장, 회의 시설 등을 소개하기에 바빴다. 목욕 수건, 모자와 같은 기념품을 주면서 이들의 환심을 사려고 노력했다.

호주관광청 관계자는 오페라하우스, 캥거루, 코알라 등을 앞세워 호주에서만 체험할 수 있는 여행 코스로 한국 기업인들을 안내했다. 길이가 수십 km에 이르는 섬의 소유주이자 그곳에서 식당을 경영하는 부르스 니콜스 사장은 “며칠 전에도 중국에 있는 다국적 기업의 인센티브 여행객 수백 명이 다녀갔다”며 “한국 기업인들도 호주를 많이 찾아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 시사저널 임준선
세계 각국 인센티브 여행객 유치 총력전

최근 기업의 인센티브 여행객이 세계 관광 시장에서 ‘큰손’으로 떠오르고 있다. 기업들은 우수 직원에게 포상금을 주는 관행에서 벗어나 해외여행을 권하는 쪽으로 방향을 틀고 있다. 긍정적인 효과가 크기 때문이다. 한 기업의 인사부장은 “우리 회사는 매년 우수 직원 부부에게 인센티브 해외여행을 보낸다”며 “상여금을 주던 예전보다 직원 가족과 회사 간의 신뢰가 높아졌다”고 밝혔다.

인센티브 여행객은 단체 관광객과 달리 씀씀이가 크다. 단체 관광객이 항공·숙박·식사 등 제반 경비를 줄이는 데 초점을 맞추는 것과 달리 인센티브 여행객은 경비에 큰 부담을 느끼지 않는다. 기업이 직원의 사기 진작이나 포상 개념으로 보내는 여행인 만큼 돈이 더 들더라도 숙소와 식당의 품질을 따진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하루 숙박비를 20만원에서 10만원으로 줄였다고 해서 전체 여행 경비가 많이 줄어들지 않는다. 오히려 인센티브 여행을 떠나는 직원들의 사기 진작을 생각해서, 기업은 더 좋은 호텔과 식당을 잡으려고 노력한다”고 설명했다.

세계 각국은 인센티브 여행객 유치에 총력전을 펼치고 있다. 적은 노력으로도 한 번에 수백, 수천 명의 여행객을 유치할 수 있어 지역 경제 발전에 큰 보탬이 되기 때문이다. 특히 호주는 인센티브 여행객 유치에 적극적인 국가로 꼽힌다. 호주관광청은 아예 인센티브 여행을 유치하는 조직을 별도로 운영하며 아시아 지역 국가들을 공략한다. 호주 시드니의 비즈니스 여행을 총괄하는 셔니 여 아시아 지역 국장은 “호주는 기업인들이 회의와 행사를 진행하고, 코알라를 안아보고, 캥거루에게 먹이를 주는 체험을 할 수 있는 유일한 나라”라고 소개하며 “대륙에서 동떨어진 지역적 특색 때문에 호주를 잘 모르는 사람이 많아 한국 기업인들을 초대하는 등 활발한 마케팅을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인센티브 여행지로 호주를 선택하는 국내 기업은 거의 없는 실정이다. 여행 일정이 대개 3박4일이나 4박5일이어서 동남아시아 국가를 선택하는 사례가 많다. 호주는 비행시간만 10시간이 걸려서 짧은 여정과는 어울리지 않는 나라라는 인식이 강하다. 한 금융 기업의 인센티브 여행 담당 부장은 “우리 회사의 인센티브 여행 일정은 길지 않아서 주로 일본, 동남아 국가들을 여행지로 정한다. 호주는 새로운 경험을 할 수 있는 나라임에는 틀림없지만 오랜 비행시간이 문제”라고 말했다.

그러나 동남아시아 여행지에 식상한 기업들은 새로운 관광지를 찾기 시작했다. 호주가 그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윤영우 농심 영업기획팀장은 “최근까지 대리점 점주 등을 3박4일 일정으로 동남아시아 국가에 인센티브 여행을 보내왔는데, 주말과 일요일을 낀 5박6일 일정을 만들면 호주도 인센티브 여행지로 가능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채우석 아프로파이낸셜(러시앤캐시) 비서실장도 “최근 직원들을 위한 인센티브 여행지로 괌·사이판·하와이를 정했더니 직원들의 호응이 좋았다. 비행시간이 14~15시간 걸리는 남미 지역은 현실적으로 어렵겠지만 비행기로 10시간 안팎인 호주는 고려할 만한 인센티브 여행지”라고 말했다.

한국 관광 수지 13년 연속 적자

지난해 한국을 찾은 외국인 관광객이 1200만명을 돌파했다. 1991년 300만명이던 게 12년 만에 4배 성장한 것이다. 그러나 1인당 지출 금액은 1207달러로 1991년 1203달러와 별 차이가 없다. 물가상승률을 고려하면 오히려 줄어든 셈이다. 1인당 지출 비용이 적다는 점 외에도 지난 5년간 재방문율(2회 15%, 3회 8.5%)에 거의 변화가 없다. 이런 배경 탓에 2013년 한국 관광 수지는 약 35억3000만 달러(약 3조8200억원) 적자를 기록했다. 2001년 이후 13년 연속 적자 행진이다. 지난 10년간 누적 적자액은 500억 달러를 훌쩍 넘었다.

한마디로 한국 관광산업은 관광객은 많은데 돈을 못 버는 구조다. 한국 관광산업 경쟁력 지수는 전 세계 140개국 중 25위로 주변 아시아 국가 중에서 가장 낮다. 이는 한국 관광산업의 경제적 효율성이 낮다는 뜻이다. 이 때문에 개인·단체 관광에서 인센티브 여행 유치로 관광산업의 체질을 개선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10여 년 전부터 정부·지자체·여행사 등이 대규모 관광객 유치에 돌입했다. 그러나 단체 관광과 인센티브 관광을 구분하지 않고 무조건 관광객 수를 늘리는 데만 급급했다. 마케팅이 정교하지 못하다는 지적이 나온 배경이다. 관광업계 관계자는 “상당수 지자체는 단체 관광객을 유치해오는 여행사에 지원금을 주는 제도를 자랑스럽게 떠든다. 돈으로 돈을 벌려는 구시대적인 마케팅에서 벗어나지 못한 모습”이라고 꼬집었다.

다행스럽게도 최근 대형 여행사를 중심으로 인센티브 여행객 유치에 초점을 맞추는 움직임이 보인다. 하나투어와 모두투어 등 일부 여행사는 인센티브 여행을 전담하는 자회사를 별도로 마련했다. 정찬호 하나투어 비즈니스 부장은 “국내외 기업들이 인센티브 여행을 확대하는 만큼 여행사도 그 수요를 전담하는 독립 법인을 늘려가는 추세”라고 설명했다.

또 인센티브 관광객들에게 내세울 만한 여행 프로그램을 개발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호주는 캥거루·코알라·원주민을 체험하는 상품을, 일본은 조용한 시골과 온천에서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웰빙 상품을 각각 강조한다. 한국은 어떤가. 한국은행과 동국대가 지난해 3개월 동안 경주를 찾은 외국인 528명을 대상으로 경주의 대표적인 이미지를 물어봤다. 불교문화(29.8%)라는 일반적인 대답이 가장 많았다. 경주를 세계문화유산이라고 생각하는 외국인은 없었다. 또 그들은 경주 특산품이나 쇼핑 품목이 부족하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한국만이 가진 특색이 없는 데다 돈을 쓸 곳도 없다는 얘기다.

호주에는 서울-부산 거리의 2배가 넘는 18홀 골프장이 있다. 관광객은 골프를 치기 위해 여러 마을을 거치면서 먹고, 자고, 쇼핑을 할 수밖에 없다. 일본은 ‘일촌일품(一村一品)’ 정책을 펴왔다. 마을마다 다른 지역에서는 구할 수 없는 하나의 특산품을 개발했다. 어디를 가나 비슷비슷한 음식·기념품·볼거리를 내세운 한국과 비교된다. 박양우 한국호텔외식경영학회장(중앙대 교수)은 “여행사는 인센티브 관광 유치에 대한 노하우와 기술이 미흡하고, 정부는 홍보에만 치중하느라 인센티브 관광 수요와 여행사를 연결하는 능력이 떨어지며, 지자체도 세계 인센티브 여행 시장에 대한 마케팅 능력이 없다”며 “중앙정부와 지자체가 관광 상품 개발과 홍보를 함께 진행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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