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 관광객 테러로 경제 숨통 끊는다
  • 김회권 기자 (khg@sisapress.com)
  • 승인 2014.02.26 1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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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 버스 폭탄 테러 ‘안사르 베이트 알마크디스’, 혼돈의 이집트가 낳은 괴물

이집트의 수도 카이로에서 이스라엘 예루살렘으로 향하는 지중해 해안도로는 외국인 관광객이 즐겨 찾는 길이다. 특히 기독교 신자에게 이 도로는 인기 코스다. 이집트 피라미드를 본 뒤 수에즈 운하를 터널로 통과하고 시나이 사막의 광대한 풍경에 압도당한 후 예루살렘 성묘교회에서 역사의 무게를 한 번에 느낄 수 있는 코스라서 더더욱 그렇다. 2월16일 폭탄 테러를 당해 3명의 한국인 사망자가 나온 버스도 이 도로를 따라 달렸다. 이스라엘로 가려면 누구나 들르는 국경 도시 타바에서 이스라엘로 넘어가기 위해 잠시 정차한 후 수하물 위탁소에 다녀오는 사이에 신원 미상의 인물이 버스에 올라타 폭탄을 터뜨렸다.

누구의 소행인지, 왜 한국인을 노렸는지 오리무중인 가운데 과격 이슬람 단체로 알려진 ‘안사르 베이트 알마크디스(예루살렘을 지키는 사람들)’는 이집트에서 발생한 한국인 관광버스 테러 사건을 자신들의 소행이라고 주장했다. 이스라엘의 라디오 방송인 <더 타임스 오브 이스라엘>의 보도로 밝혀진 내용이다.

2월16일 이집트 시나이반도 타바 국경검문소 앞에서 벌어진 자살 폭탄 테러로 한국인 관광객이 여럿 숨지거나 다쳤다. ⓒ 연합뉴스
군 짓누르자 이슬람 세력들 강하게 반발

그동안 군이나 경찰을 주로 노렸던 이 단체가 갑자기 외국인 관광객에게 총구를 겨누기 시작했다. 이집트는 외국인 관광객 테러에 무방비로 노출됐다. 테러를 당한 뒤 몰아치는 후폭풍에 이집트 경제는 더 취약했다. 되짚어보면 과거에도 이와 비슷한 일이 있었다. 1990년대 카이로를 비롯해 이집트 전역에서 테러가 일어났던 시절이다. 이때도 주로 외국인 관광객을 노린 공격이었다. 1998년 11월17일 이집트 룩소르에서 벌어진 참극이 대표적이다. 이슬람 과격 세력이 총기를 난사해 외국인 58명이 사망한 사건이 벌어졌다.

당시 이집트 중앙은행 보고서에 따르면, 룩소르 테러 사건이 일어나고 한 달 뒤인 1998년 12월 이집트를 방문한 외국인 관광객은 17만8000명으로 전년 동기와 비교해 절반 수준으로 떨어졌다. 겨울철 최대 관광 성수기였던 1999년 1월에는 방문객이 더 줄어 16만8000명 정도에 불과했다. 12월 외국 여행사들과 관광객들이 이집트 방문을 무더기로 취소하면서 평균 67%를 유지하던 호텔 객실 점유율은 18%대로 떨어졌다. 평소 3만명 선을 유지하던 한국인 관광객 수도 당시에는 급감해 100~200명으로 줄어들었다. 관광산업이 불경기에 접어들면서 당시 이집트 경제는 마비되다시피 했다.

이번에 이스라엘 라디오는 “이 단체가 트위터에 ‘이집트 경제와 관광산업, 군부 지도자에 대한 공격을 계속하겠다’는 뜻을 내비쳤다”고 보도했다. 관광산업에 타격을 주기 위해 추가 테러를 할 가능성이 한층 커진 상태다.

현재 이집트는 ‘군(軍) 빛’을 띠고 있다. 지난해부터 정당과 종교계, 청년 대표들로 구성된 ‘50인 위원회’에 의한 헌법 개정 작업이 진행됐다. 방향은 이랬다. 지난해 7월의 모하메드 무르시 대통령 축출을 주도한 군의 권한을 막강하게 유지하는 방향으로 최종안이 정리됐다. 무르시 대통령이 축출된 후 들어선 과도정부를 주도한 세력은 군이었다. 군은 자신들의 세력을 강화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개헌 과정에서 군의 의견은 또 다른 곳에 반영됐다. 무르시 전 대통령의 정치적 모체였던 무슬림형제단이 테러 조직으로 공식 지정됐다. 이집트 정부는 무슬림형제단 멤버를 테러 조직 구성원으로 기소할 수 있게 됐다. 예를 들어, 무슬림형제단의 시위에 참가한 사람은 형법에 의해 금고 5년을 받게 된다. 무슬림형제단 간부에게는 징역 25년이 적용되며 형제단 활동에 종사한 사람도 기소될 수 있다. 형제단에 대한 탄압은 현재 이집트 내부의 또 다른 갈등을 부르는 원인이 되고 있다.

이미 이집트 정부는 무슬림형제단의 이데올로기를 퍼뜨리려고 했다는 이유로 수십 명의 활동가를 구속하며 단속을 강화했다. 그러나 형제단의 구성원은 전국적으로 수만~수십만 명에 이르고, 이런 탄압 움직임에 자유주의 세력까지 정부 비판에 나서고 있다. 올해 1월14~15일 열렸던 국민투표에서 새 헌법은 38.6% 투표율에 98.1%의 찬성표를 얻어 통과됐다. 하지만 낮은 투표율로 생긴 대표성이 오히려 혼돈의 징표라고 보는 관측이 많다.

무바라크 민병대가 주축이라는 설도

무르시 전 대통령 축출 이후 혼란에 빠진 이집트에서는 지금 맹렬한 공격을 퍼붓고 있는 새로운 이슬람 무장 조직이 등장했다. 이집트의 혼돈을 상징하는 존재가 돼버린 단체가 이번 버스 테러의 주범인 ‘안사르 베이트 알마크디스’다. 과도정부와 군이 무슬림 세력을 찍어 누르면서 튀어나온 풍선 같은 존재다.

안사르 베이트 알마크디스는 과격하다. 카이로의 경찰 본부 앞에서 자동차 폭탄 공격을 가하고 대낮에 경찰 간부를 암살했다. 5명의 사망자를 낸 군용 헬기 격추도 자신들의 사건 리스트에 올렸다. 크리스마스이브인 지난해 12월24일 이집트 북부 다카리야의 치안본부 건물에서 자동차 폭탄 테러를 감행해 16명이 사망하고 100여 명의 부상자가 나온 사건도 자신들의 짓이라고 했다. 심지어 이들은 실질적인 이집트의 권력자도 노린다. 무르시 전 대통령을 축출한 압둘팟타흐 시시 군 최고평의회의장 겸 국방장관은 올해 4월로 예정된 차기 대선에 출마할 의향을 내비치고 있다. 안사르 베이트 알마크디스는 시시 국방장관을 향해 “복수의 날이 온다”고 경고한다.

이집트 보안 당국은 이 단체가 2011년 무바라크 정권이 붕괴된 이후 등장한 무르시 전 대통령의 정치적 모체인 무슬림형제단에서 파생됐고, 테러리스트 집단에 가까우며 이집트인들이 만든 단체라고 보고 있다. 지금은 국제 테러 조직으로 유명한 알카에다와 끈이 닿아 있으며 전투원의 대다수는 시나이반도의 부족 출신이라고 분석했다. 시나이반도는 이번 버스 폭탄 테러가 일어난 곳이다. 지난 몇 달간은 나일강 유역 대평원 지역인 나일 델타(Nile Delta)와 카이로 주변에서도 지원을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안사르 베이트 알마크디스의 전체 지휘 계통과 자금원에 대해서는 이집트 정보 당국도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반(反)무바라크 체제 시위의 와중에 사라진 무바라크 민병대가 주도하고 있거나 지원하고 있다는 얘기가 나온다.

미국의 싱크탱크인 ‘민주주의 방어 재단(Foundation for Defence of Democracies)’의 데이비드 베네트 연구원은 “무슬림형제단과 관련이 있다고 해도 극히 일부분에 불과할 것이다. 오히려 그보다는 알카에다의 영향을 받았을 가능성이 크며 그 이상이 존재할지도 모른다는 느낌이 강해진다”고 말했다.

차기 대권 주자로 유력한 시시 국방장관을 지지하는 시위대. ⓒ EPA 연합
‘아랍의 봄’ 사생아, 이집트 관광업 공격

이슬람 테러 집단 전문가인 마티유 기도레 프랑스 툴루즈 대학 교수는 안사르 베이트 알마크디스의 초반 목표를 “이스라엘을 공격하고 천연가스 파이프라인을 파괴해 이집트와 이스라엘의 협력 관계를 막기 위한 것이었다”고 설명한다. 실제로 이 단체는 이스라엘 홍해 연안의 휴양지인 에일라트에 로켓을 발사했다고 성명을 발표한 적이 있다. 기도레 교수는 “안사르 베이트 알마크디스는 무르시 전 대통령이 해임된 지난해 7월3일 이집트 군대를 ‘배신자’로 규정하는 종교령을 발표했다. 이후 그룹의 성격을 반이스라엘 이슬람 무장 세력, 그리고 이집트 보안군을 표적으로 하는 조직으로 변화시켰다”고 설명했다.

베네트 연구원은 “(공격의) 정교함을 보면 당초 이 단체가 할 수 있다고 생각했던 수준을 넘어서고 있다. 이 단체의 구성원 중 매우 숙련된 전투원들이 있는 게 아닐까 싶다. 몇몇은 실전 경험도 풍부해 보인다”고 분석했다. 시나이반도를 주로 연구하는 이스마일 알렉산드라니 이집트 사회인권센터 연구원 역시 이들의 전투 수준이 상당하다고 평가한다. 그는 “무바라크 정권이 붕괴한 이후 안사르 베이트 알마크디스가 리비아와 수단에서 무기를 조달하고 있다. 일부는 아프가니스탄·시리아·보스니아에서 전투 경험이 있었던 자들이다”라고 말했다.

안사르 베이트 알마크디스는 지금까지 시나이반도를 무대로 알카에다류의 전략을 펼치며 군 치안부대 등을 노렸다. 하지만 한국인이 사망한 타바 관광버스 테러는 이집트의 중요한 젖줄인 관광산업에 피해를 주는 쪽으로 전략을 전환했다는 신호탄이 되고 있다. 이들의 목적이 현 이집트 정부를 어떻게 공격해 정치적 일정표를 무너뜨리는 것인지는 확실치 않다. 많은 부분이 베일에 가려져 있다. 다만 아랍의 봄이 낳은 사생아가 또다시 이집트를 혼돈에 빠지게 하고 있는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차기’로 주목받는 시시 국방장관 


이집트의 차기 대선에 출마할 경우 당선이 가장 유력시되는 사람은 압둘팟타흐 시시 군 최고평의회의장 겸 국방장관이다. 그는 공개적으로 모습을 드러내는 일이 많지 않지만 탁월한 연설 능력을 갖고 있다. 특히 부드러운 어조로 말을 건네는 것이 인상적이라 중년 여성에게 인기가 높다.

군이 주도적으로 무르시 정권을 축출한 지난해 7월 이후에는 이례적으로 국민을 향해 직접 과도정부를 지지해달라는 연설을 하기도 했다. 시시 장관의 연설에는 무르시 지지파 시위대를 압도할 만큼의 인원이 모여들었다. 시시 장관의 대중 연설 기술은 1952년 쿠데타로 왕정을 타도하고 카리스마를 뽐낸 가말 압델 나세르 전 대통령과 비슷하다는 의견이 많다.

시시 장관은 1954년 카이로에서 태어났고, 1977년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한 후 영국과 미국에서 교육을 받았다. 1973년 제4차 중동전쟁의 ‘영웅’이기도 하며, 무바라크 전 대통령 세대와는 달리 전장 경험이 없는 세대의 대표 격이다. 2012년 8월 무르시 대통령이 정적이었던 모하메드 후세인 탄타위 당시 국방장관을 경질하면서 그 자리를 이어받았다. 아랍 사회주의를 주창한 나세르의 추종자이기도 하지만 정치적 색채가 무엇인지는 수수께끼에 싸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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