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안부 할머니들 친구’가 위험하다
  • 김원식│미국 통신원 ()
  • 승인 2014.02.26 1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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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혼다 의원에게 강력한 경쟁자 등장…한중 커뮤니티, 모금 운동 나서

“존경하는 케리 국무장관. 희생자들이 인내하기에는 더 이상의 여유가 없습니다. 그래서 당신이 즉각 이 중요한 문제에 대해 관심을 가져주길 촉구하려고 이 편지를 씁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20만명에 이르는 여성들이 강제로 성노예로 끌려갔지만 이제 한국에 55명, 필리핀에 26명, 타이완에 5명이 생존해 있을 뿐입니다. 1월26일 한국의 위안부 희생자였던 황금자님마저 돌아가시고 말았습니다. 불과 16세의 나이에 일본 제국주의 군대에 성노예로 끌려갔던, 소름끼치는 그분의 과거사는 이제 생존자들이 그토록 오래 기다리고 있는 정의의 실현을 보게 될 날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2월4일 존 케리 미국 국무장관에게 보내는 서신에서 일본계 미국 정치인 마이클 마코토 혼다 미 연방 하원의원(72)은 단호했다. ‘마이클 혼다’라는 이름으로 잘 알려진 그는 미국 캘리포니아 주 실리콘밸리를 에워싸고 있는 제15지역구 민주당 소속 7선 중진 의원이다. 지난 2007년 일본 정부와 일본 보수단체, 언론들의 압력을 뚫고 일본군 위안부와 관련한 하원 결의안을 주도적으로 통과시킨 인물이다.

2012년 8월20일 마이클 혼다 의원이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의 보금자리인 경기 광주시 나눔의 집을 찾아 김군자 할머니와 인사를 나누고 있다. ⓒ 연합뉴스
‘일본계 미국인’ 이유로 한 살 때 수용소행

당시의 결의안은 아무런 법적 구속력을 갖지 못했지만 ‘위안부 할머니들의 친구’로 불리는 그의 열정은 멈추지 않았다. 1월17일 미국 의회를 통과해 오바마 대통령이 서명한 2014년도 통합 세출 법안에는 흥미로운 대목이 있다. ‘세출위원회는 2007년 7월30일 하원에서 만장일치로 통과된 위안부 결의안(H. Res. 121)에 주목해 일본 정부가 이 결의안에서 제기된 문제들을 해결하도록 독려할 것을 국무장관을 통해 촉구한다’는 문구다. 결의안이 법제화된 것이다.

우리에게는 정치인으로 알려져 있지만 사실 마이클 혼다 의원은 교육자 출신이다. 30년 이상을 과학교사와 고등학교 교장으로 일했다. 그가 지난해 6월7일 뉴저지 주의 팰팍에 있는 위안부 기림비를 방문해 한 말은 교육자의 내면을 보여준다. “내가 일본계 미국인과 전직 교사로서 위안부 문제를 특별히 여기는 것은 미래 세대가 학교에서 역사를 정확히 배워야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일본계 미국인, 정확하게는 미국에서 태어난 일본인이라는 그의 출생 이력은 2차 세계대전과 겹쳐 고난의 상징이 됐다. 1941년 미국 캘리포니아 주 월넛 그로브(Walnut Grove)에서 태어난 그가 한 돌이 채 되기도 전에 일본의 진주만 공습이 발생했다. 당시 미국 행정부는 일본에 동조할 수 있다는 이유로 일본계 미국인들을 강제수용소에 보냈는데 여기에는 한 돌이 갓 지난 혼다도 끼어 있었다. 그가 다섯 살 때까지 강제수용소에 있어야 했던 이유다. 혼다 의원이 정치인이 된 이후 벌인 여러 인권 활동은 수용소에서 느꼈던 아픈 경험이 뿌리가 됐다.

수용소를 나온 후 가족과 함께 딸기 재배 농가에서 소작인으로 일했던 혼다 의원은 산호세 고등학교와 산호세 주립대학을 졸업한 뒤 생물학 박사 학위를 받았고 이후 30년 가까이 산호세 고등학교의 과학교사와 교장으로 일했다. 그러고는 교육위원으로 선출됐고 캘리포니아 주의 주 하원의원을 거쳐, 2001년 캘리포니아 산호세에서 연방 하원의원에 당선됐다.

미국은 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계 미국인을 강제 수용한 조치에 대해 1980년 조사위원회를 설치했고, 1988년 레이건 대통령이 당시의 잘못을 사과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혼다 의원에게도 해당되는 이 사과를 통해 잘못된 역사를 인정하고 치유하는 문제가 개인적으로 매우 중요하게 다가왔을 법하다. 세간에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그가 위안부 결의안을 처음 통과시킨 것은 2007년이 아니다. 1990년대 캘리포니아 주 하원의원으로 일할 때도 같은 내용을 담은 결의안을 주 의회에서 통과시킨 적이 있다.

“로 칸나 갑자기 우리 지역구 출마” 배경 의심

오는 11월 미국에서는 중간선거가 열린다. 435명의 연방 하원의원 전원이 새로 결정되는 날이다. 현재 혼다 의원은 강력한 당내 도전자를 만났다. 변호사 출신으로 미국 상무부 부차관보를 지낸 인도계 미국인 여성 로 칸나(37)가 출마를 선언한 상태다. 흥미로운 것은 칸나의 등장 배경이다. 아무런 정치적 기반이 없던 그가 막대한 선거 자금을 모으면서 나타났기 때문이다.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경선을 4개월 남긴 1월 말 기준으로 칸나가 모은 정치후원금은 197만5000달러(약 21억3000만원)에 달해 혼다 의원(62만3000달러)의 세 배가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혼다 의원 지역구에 위치한 실리콘밸리의 거대 기업들이 자금을 지원한 것으로 알려졌다. 게다가 일부 일본계 기업들과 일본계 미국인들의 자금줄이 동원된 것으로 한인 사회는 보고 있다.

더욱 의심되는 것은 당초 칸나 후보는 혼다 의원의 선거구가 아닌 옆 선거구에서 출마할 계획이었는데 갑자기 방향을 선회한 것으로 전해진 점이다. 혼다 의원 측의 머란 보좌관은 “2012년 로 칸나 변호사가 혼다 의원의 바로 옆 지역구에서 출마하겠다고 해서 선거 자금도 모아주는 등 도와주었더니, 방향을 바꿔 혼다 의원에게 도전장을 던졌다”고 밝혔다.

문제는 당내 예비경선 과정이다. 정당과 무관하게 투표하는 예비경선 과정을 고려할 때 혼다 의원이 1위를 차지해도 골치 아프다. 이번에 새로 도입한 ‘정글 프라이머리’ 제도에 따르면, 50% 이상을 득표하지 못할 경우 같은 당 1~2위가 모두 본선에 나갈 수 있는데 이럴 경우 혼다 의원을 싫어하는 공화당 지지자들의 표가 칸나 후보에게 몰릴 수 있다는 것이다. 혼다 의원의 선거운동에 빨간불이 켜지고 칸나 후보에게 일본계 자금이 지원된 것으로 알려지자 한인 사회가 ‘혼다 의원 살리기’에 적극적으로 나선 상황이다. 그나마 한 가지 다행스러운 사실은 한인 사회뿐만 아니라 중국계 미국인들도 ‘혼다 살리기’에 적극 동참하고 있다는 점이다.

뉴욕에 위치한 ‘시민참여센터’의 김동찬 대표는 “2월15일 중국계 그레이스 맹 하원의원(뉴욕)이 주최한 뉴욕 기부금 행사에서 16만 달러나 모았다”며 “이는 과거 일본이 일으킨 전쟁으로 인해 동아시아 지역이 당한 피해 해결을 위해 혼다 의원만큼 앞장서 노력한 사람이 없다는 점을 중국계 미국인들도 공감한 결과”라고 설명했다.

2007년 11월 한국을 방문한 마이클 혼다 의원의 연세대 강연에서 한 학생이 질문을 던졌다. “위안부 결의안 안건 때문에 일본인 3세로서 정치적 앞날에 어려움이 있지 않겠느냐.” 혼다 의원은 답했다. “유권자들이 싫어하면 물러나면 그만이지만, 올바른 일은 역사에서 지워지지 않는다.” 그가 계속 옳은 일을 할 수 있을까. 그동안 다소 무관심했던 연방 선거에 관심이 집중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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