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오석은 ‘낙하산 부대’ 못 잡는다
  • 안성모 기자 (asm@sisapress.com)
  • 승인 2014.03.04 1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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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정부가 공공기관을 수술대 위에 올렸다. 부채 관리를 강화하고 방만 경영을 근절하기 위해 대대적인 수술에 들어가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영 미덥지가 않다. 한 손에는 개혁의 칼날을 쥐고 있는 듯 보이지만 다른 한 손에는 낙하산을 움켜쥐고 있다. 경영을 정상화하라면서 낙하산 인사를 내려보낸다. 정부의 공공기관 개혁 의지가 의심스럽다. 

ⓒ 일러스트 임성구

“일을 하라는 거야, 말라는 거야?” 공기업에서 근무하는 한 인사가 정부의 공공기관 경영 정상화 방안에 대해 불만을 터뜨렸다. 그는 “부채 감축 계획이라는 게 하던 일을 미루거나 줄이거나 아예 없애라는 것이다. 이런 방안이 세상 어디에 있나 하는 생각에 한참을 웃었다”고 밝혔다. 정부가 마치 성명서 발표하듯 “공기업을 방만 경영이나 일삼는 비리 집단으로 내몰고 있다”며 울분을 토하기도 했다. 이 인사는 “정책적 판단을 내리고 이에 대해 책임져야 할 경영진은 줄줄이 낙하산을 타고 내려앉는데 어떻게 경영 정상화를 이루겠다는 것인지 모르겠다”고 토로했다.

집권 2년 차를 맞은 박근혜정부가 공공기관을 겨냥해 칼날을 매섭게 세우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경제 혁신 3개년 계획의 최우선 과제로 공공기관 개혁을 꼽았다. 부채 관리 강화와 방만 경영 근절이 핵심이다. 임기 동안 부채 비율을 지금보다 20%까지 끌어내리고, 방만 경영을 해온 기관들을 중점 관리한다는 방침까지 세웠다. 이행 실적을 평가한 뒤 미흡할 경우 해당 기관장을 해임할 수 있도록 하는 등 초강수를 두고 있다.

공공기관의 부채는 심각한 수준을 넘어섰다. 2007년 말 249조2000여억원에서 2012년 말 493조4000여억원으로 5년간 무려 244조2000여억원이나 늘어났다. 공공기관 부채가 국가 채무액 443억1000여억원보다도 많다. 규모뿐만 아니라 증가 속도도 빨라졌다. 이렇게 가다가는 공공기관 부채가 한국 경제를 침몰시킬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이는 더 늦기 전에 공공기관을 수술대에 올려야 한다는 정부 주장의 논거이기도 하다.

공기업 부채, 정부 정책 사업 때문에 급증 당사자인 공공기관 입장에서는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부채 중점 관리 대상으로 지목된 기관에서는 저마다 자구 계획을 마련해 정부에 제출하는 등 분주한 모습이다. 한국토지주택공사·한국수자원공사·한국철도공사·한국철도시설공단·대한석탄공사 등 5곳은 부채 감축 계획이 미흡하다며 ‘조건부 승인’이 떨어져 3월 말 추가 보완 계획을 내야 한다. 한국토지주택공사는 경쟁력이 약한 사업의 철수, 한국수자원공사는 해외 사업 조정, 한국철도공사와 한국철도시설공단은 고비용 구조 개선 방안을 제출하라는 권고를 받은 상태다.

공공기관 내부에서는 불만의 목소리가 커지는 분위기다. 눈덩이처럼 불어난 부채의 책임을 기관에만 전가하고 있다는 것이다. 중점 관리 대상에 포함된 한 공공기관 관계자는 “정부가 추진한 정책 사업으로 인해 부채가 급증한 측면이 큰데 여기에 대해서는 나 몰라라하고 무조건 부채부터 줄이라고 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주장했다.

한 공기업 노조 관계자는 “경영 정상화의 핵심이 부채 감축이라는 건 말이 안 된다. 부채를 줄이라는 것은 사업을 하지 말라는 건데, 그 피해는 결국 국민에게 돌아간다”고 지적했다. 전국공공산업노동조합연맹 관계자는 “사업을 하지 않게 되면 직원들을 구조조정하게 될 것이다. 결국 민영화 수순을 밟게 되는 것 아닌가”라고 우려했다.

실제 부채 규모가 큰 12개 공공기관 중에서도 상위에 올라 있는 기관은 SOC(사회간접자본) 관련 기관들이다. 한국토지주택공사는 10여 년 전부터 신도시 개발, 국민임대주택 건설, 세종시 및 혁신도시 개발 등으로 부채가 쌓였다. 여기에다 이명박(MB) 정권의 핵심 주택사업이던 보금자리주택을 대규모로 건설하면서 부채가 불어났다.

한국수자원공사도 마찬가지다. MB 정권이 사활을 걸었던 4대강 사업과 경인아라뱃길 사업으로 인해 늘어난 부채가 9조2000여억원에 이른다. 한국도로공사도 도로 건설 투자가 부채 증가의 큰 원인으로 꼽힌다. 정부가 경기 부양을 목적으로 SOC 사업을 확대함에 따라 고속도로 건설 때 50% 부담하던 것을 100% 전액 부담하기도 했다. 그 비용이 6조7000억원가량 된다. 한국철도공사는 2010~12년까지 3년간 부채가 큰 폭으로 상승했는데 고속철도 운영을 위한 신규 차량 구입과 적자 노선 운행을 위한 운영 자금 충당 등이 원인이다. 용산 역세권 개발이 지지부진한 탓도 있다.

이처럼 공공기관의 부채가 급증한 배경에는 정권 차원에서 추진한 정책 사업이 놓여 있다. 물론 전부 다 그렇다는 것은 아니다. 경영 혁신이 필요한 부분도 적지 않다. 평소 부채 관리를 잘해야 하고 방만한 경영을 해서는 안 된다. 하지만 보유하고 있는 자산을 헐값에라도 팔아 부채를 갚아나가는 식은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

직원들의 임금과 복지 비용부터 삭감하고 보자는 식의 발상도 효용성이 있을지 의문이다. 당장은 여론의 지지를 받을 수 있겠지만 이 또한 방만 경영을 사전에 방지하는 근본 대책은 아니기 때문이다. 공공기관의 부채를 감축하고 방만 경영을 막는 첫걸음은 공공연하게 이뤄지고 있는 낙하산 인사를 근절하는 데서부터 출발해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김한기 경실련 경제정책팀장은 “정치적 보은 차원에서 기관장 자리에앉게 되면 책임감을 갖고 공공기관을 운영하기가 쉽지 않다. 정부 눈치를 살피지 않을 수 없고 노조를 설득하는 데도 한계를 갖는다. 결국 공공기관 개혁의 가장 근본적인 방안은 낙하산 인사를 차단하는 데서부터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방만 경영 말라면서 낙하산 인사 투하

낙하산 인사를 근절하지 않고 공공기관을 개혁한다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 얘기다. 무엇보다 정부 정책은 국민의 신뢰를 바탕으로 운용돼야 힘을 얻을 수 있다. 박 대통령은 취임 전부터 낙하산 인사를 하지 않겠다는 뜻을 여러 차례 밝혔다. 하지만 약속은 지켜지지 않고 있다. 박 대통령이 강조해온 원칙에서도 벗어난 일이다. 김 팀장은 “원칙을 스스로 허무는 것은 국정 운영에서 국민 신뢰를 저하시키는 요소”라고 지적했다.

그렇다면 부채 규모가 커 정부의 중점 관리 대상에 오른 공공기관의 인사는 어떻게 이뤄지고 있을까. 시사저널은 과거 5년간 부채 증가를 주도했던 12개 공공기관 경영진으로 어떤 인사가 발탁됐는지 면면을 살펴봤다. 12개 기관 중에서 박근혜정부 출범 후 기관장이나 감사가 바뀐 곳은 9곳이다. 이들 중에서 상당수가 낙하산 인사로 지목됐다.

부채가 가장 많은 한국토지주택공사(LH)의 경우 사장과 감사가 모두 교체됐다. 이재영 사장은 정통 관료 출신이다. 행정고시 23회에 합격한 후 20년 넘게 국토해양부(현 국토교통부)에서 근무했다. 경기도시공사 사장으로 있던 지난해 6월10일 21 대 1의 경쟁을 뚫고 한국토지주택공사 사장으로 임명됐다.

이를 두고 다소 의외의 결과라는 반응도 나왔다. 당초 유력 후보로 거론되던 ‘친박(친박근혜)계’ 중진 김학송 전 의원(현 한국도로공사 사장)과 한만희 전 국토해양부 1차관, 하성규 전 중앙대 부총장 등은 지원조차 하지 않았다. 이 사장은 또 최종 경합에서 현 정권과 가까운 후보도 제쳤다. 이에 대해 한국토지주택공사 관계자는 “이 사장은 국토부에서 토지주택 업무를 맡았고 경기도시공사에서 부동산 개발 업무를 책임진 이 분야 전문가다. 경력이나 전문성도 없이 내려오는 낙하산과는 다르다. 지난해 판매 실적도 목표에서 1조원 초과 달성했다”고 밝혔다.

올해 1월20일 임명된 김영도 감사는 한국감정평가협회장을 지냈다. 현재 단국대 부동산·건설대학원 겸임교수를 맡고 있다. 이 사장과 마찬가지로 전문성을 지녔다는 게 공사 측 설명이다. 박 대통령의 외곽 지지 모임인 국민희망포럼 상임이사로 활동한 김 감사는 대선 캠프에서도 국민소통본부 특보단 총괄단장을 맡아 대선 승리에 기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함께 박근혜정부 주택 정책의 근간인 행복 주택을 입안한 게 김 감사였다는 점에서 한국토지주택공사 감사로 적절한지에 의문을 제기하는 이들도 있다.

LH 노조 관계자는 “MB 정권 때 정책 사업을 무리하게 추진하면서 부채가 엄청나게 증가했다. 당시 보금자리주택이 그랬는데 (현 정권의) 행복주택도 마찬가지라고 본다. 보은 인사로 낙하산이 내려오면 정부 정책을 무조건 따를 수밖에 없다. 결국 공기업을 망치는 사람은 잘못된 정책 결정을 내려놓고는 임기가 끝나면 도망치듯 회사를 떠나는 낙하산 인사들”이라고 지적했다.

현오석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장관이 2월27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제4차 공공기관운영위원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 연합뉴스

감사 자리에 정치인 발탁…개혁 의지 의심

부채가 많은 다른 공공기관도 대부분 낙하산 인사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MB 정권 때 4대강 사업으로 빚더미에 올라앉은 한국수자원공사의 경우 지난해 11월4일 최계운 인천대 도시환경공학부 교수가 사장으로 취임했다. 세계도시물포럼 사무총장을 지낸 최 사장에 대해서는 MB 정권 시절 한나라당(현 새누리당) 운하정책환경자문교수단에 참여한 적이 있어 한국수자원공사의 수장으로 적절하지 못하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당시 한나라당은 이명박 후보의 대운하 공약을 뒷받침하기 위해 운하정책환경자문교수단을 발족했다. 국회 국방위원장을 지낸 김학송 전 의원이지난해 12월10일 한국도로공사 사장에 임명된 것을 두고도 말들이 무성했다. 3선의 친박계 중진으로 대선 때 유세지원단장을 맡았던 김 사장은 임명되기 전부터 낙하산 인사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공모를 진행하는 과정에 이미 낙점설이 나돌았기 때문이다. 최연혜 한국철도공사 사장은 지난해 10월20일 취임 후 갖가지 구설에 올라 이목을 끌었다. 철도 파업에 강경하게 맞서 보수 진영의 지지를 받은 반면, 한국철도공사 사장 자리를 자신의 정치적 야망에 이용하고 있다는 등 곱지 않은 시선이 적지 않다.

방만 경영을 감시해야 할 감사 자리에 정치인을 앉힌 것은 정부의 공공기관 개혁 의지를 의심하게 한다. 안홍렬 한국전력공사 감사, 황천모 대한석탄공사 감사, 문제풍 예금보험공사 감사 등은 국회 입성을 노려온 여권의 현역 정치인들이다. 정부가 강조하는 경영 정상화를 위해서는 감사의 역할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하지만 낙하산을 타고 내려간 감사의 경우 경영 감시라는 본연의 임무에 충실하지 않은 경우가 많다. 감사 자리가 일은 편하고 급여는 많아 여전히 ‘낙하산의 꽃’으로 인식된다면 공공기관 개혁은 공염불에 그치고 말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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