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원 재벌 ‘부부 싸움’ 갈수록 험악
  • 이규대 기자 (bluesy@sisapress.com)
  • 승인 2014.03.04 1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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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고다어학원 대표의 남편 측근 ‘살인예비음모’ 의혹 추적

국내 굴지의 대형 외국어학원인 파고다어학원이 홍역을 앓고 있다. 핵심 경영진 간 분쟁 때문이다. 당사자는 현 최고경영자 박경실 파고다아카데미 대표(58)와 학원 설립자 고인경 전 회장(69)이다. 두 사람은 부부다. 지난 30여 년간 함께 학원을 경영하며 파고다어학원의 성장을 이끌었다. 그런 두 사람 사이에 갈등의 골이 깊게 파인 것이다.

표면상으로는 박경실 대표의 비위 사실을 두고 잡음이 계속 나온다. 경찰은 2월18일 서울 서초동 파고다어학원 본사를 압수수색해 어학원 사무실 컴퓨터에 저장된 문서 등을 확보했다. 경찰은 박 대표가 고 전 회장과의 경영권 다툼 과정에서 위법 행위를 저지른 혐의를 포착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런데 경찰이 밝힌 혐의에는 충격적인 내용이 포함돼 있다. ‘살인예비음모’ 의혹이다. 박 대표가 고 전 회장 측 인사를 살해하려는 음모를 꾸몄다는 의혹이 경찰 수사 과정에서 제기되며, 상황은 ‘막장’으로 치닫고 있다. 경찰은 박 대표의 개인 휴대전화와 컴퓨터, 사무실 CCTV 등을 압수해 정밀 분석을 의뢰한 상태다.

서울 관철동에 있는 파고다어학원 종로타워. ⓒ 시사저널 최준필
자녀 ‘재산 분할’ 계기로 갈등 깊어져

두 사람 간의 갈등은 지난해 박경실 대표가 횡령·배임 혐의로 검찰에 불구속 기소되면서 수면 위로 떠올랐다. 박 대표는 2006년 주주총회와 이사회 결의를 거치지 않은 채 임의로 회사 자금 10억원을 성과급 명목으로 받았다. 자신의 연봉 2억원의 5배, 2005년 회사 당기순이익 72억원의 7분의 1에 해당하는 액수였다. 박 대표는 이 중 7억원을 자신과 딸이 지분을 나눠 갖고 있는 ‘파고다타워종로’의 신축 자금으로 썼다. 그래서 횡령 혐의를 받고 있다. 박 대표는 각종 대출을 받으면서 파고다아카데미를 연대보증자로 세워 회사에 손해를 끼친 배임 혐의로도 기소됐다.

지난 1월16일 이러한 혐의에 대한 재판부의 판결이 나왔다. 박 대표는 횡령 혐의만 유죄를 받았다. 징역 1년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흥미로운 것은 박 대표의 혐의가 세상에 드러나게 된 과정이다. 형사 고발의 당사자는 직원 강 아무개씨였으나, 남편인 고 전 회장이 배후에 있다는 추측이 강하게 제기됐다. 실제로 수사 및 공판 과정에서 고 전 회장은 박 대표에게 불리한 증언을 했다.

두 사람은 지금까지 각별한 동업자 관계로 알려졌다. 하지만 학원업계에서는 양측의 분쟁이 심상치 않다는 말이 오래전부터 나돌았다. 각종 소문과 추측이 난무해온 가운데, 지난해 박 대표의 공판 과정을 거치면서 상당 부분 사실로 드러났다는 것이다. 관련 사정에 밝은 한 학원업계 관계자는 “두 사람의 관계를 둘러싸고 여러 말이 돌았지만 뚜렷한 근거가 제시되지는 않았다. 그런데 지난해 재판 과정에서 당사자를 포함한 가족들이 피고 및 증인으로 출석해 진술하는 과정에서 상당 부분 사실로 밝혀졌다”고 말했다.

두 사람의 갈등은 2000년대 초 박 대표가 고 전 회장의 지분을 딸에게 이전한 것이 결정적인 계기로 알려졌다. 경영 일선에서 벗어나 외부 활동에 몰두하던 고 전 회장이 히말라야 원정을 다녀오는 사이, 박 대표의 뜻에 따라 자녀들에게 ‘재산 분할’이 이뤄졌다는 것이다.

이때 고 전 회장의 전처소생인 딸과 박 대표 소생인 딸에게 지분이 불공평하게 이동했다고 한다. 고 전 회장은 전처로부터 1남 1녀, 재혼한 박 대표로부터 1녀를 얻었다. 장남이 1996년 사망해 현재 딸 둘만 남아 있는 상태다. 즉, 박 대표가 고 전 회장의 부재를 틈타 자신의 ‘핏줄’에 치우쳐 재산을 분할했다는 것이다. 기자는 이런 사실을 구체적으로 확인하기 위해 고 전 회장의 큰딸에게 전화 인터뷰를 요청했으나 그는 “아직은 (내가) 나설 때가 아니다”라며 답변을 거절했다.

이후 10여 년 사이에 두 사람의 관계는 점점 파국으로 치달았다. 2011년 박 대표가 제12대 한국학원총연합회장 선거에 출마했을 때 고 전 회장이 적극적으로 선거 활동에 나서기도 했으나, 일각에서는 그 배경에 경영권 및 재산 등을 둘러싼 밀약이 있었을 것이라는 추측이 나오고 있다. 하지만 고 전 회장의 ‘외조’를 바탕으로 박 대표가 당선된 이후에도 두 사람의 갈등은 해소되지 않았다. 결국 지난해 3월 박 대표와 고 전 회장은 이혼 소송을 하기까지 이르렀다.

이혼 소송이 시작된 시점은 박 대표의 배임·횡령 혐의에 대한 수사가 시작된 직후다. 고 전 회장은 2월18일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학원만 40년 가까이 하면서 10년 전에 큰아들을 잃고 히말라야 원정을 여러 번 다녀오는 동안 통장과 인감을 아내에게 맡겨뒀더니 재산을 빼돌려서 재판까지 가게 됐다”고 밝힌 바 있다.

박 대표는 이미 횡령 혐의로 집행유예를 선고받은 상태다. 그런 가운데 최근 전격 압수수색이 벌어지는 등 새로운 비위 의혹에 휩싸였다. 경찰은 지난해 10월쯤 관련 첩보를 입수해 내사를 진행해왔다고 밝혔다. 박 대표의 비위 혐의를 둘러싼 지속적인 고발 작업이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경찰은 곧 박 대표를 직접 소환해 조사할 방침이다.

박 대표 “악의적 제보에 의한 수사”

현재 경찰이 수사 중인 박 대표의 혐의에는 ‘살인예비음모’도 포함됐다. 박 대표가 운전기사로 고용했던 최측근 ㄱ씨에게 고 전 회장의 측근 ㄴ씨를 살해하라고 지시했다는 내용이다. 운전기사 ㄱ씨는 국회의원 보좌진 출신으로 박 대표를 밀착해서 수행했던 인물이다. ㄱ씨를 만났던 한 인사는 “덩치가 크고 완력이 센 사람이다. 묵묵히 자신이 맡은 일을 해나가는 성격”이라고 전했다.

경찰은 ㄱ씨의 진술을 바탕으로 해당 혐의를 포착했다. ㄱ씨의 진술을 뒷받침하는 정황 증거는 박 대표가 ㄱ씨에게 건넨 돈이다. 경찰은 ㄱ씨 자택에서 수억 원의 돈을 발견했다.

‘살인예비음모’의 피해자로 지목된 ㄴ씨는 고 전 회장의 사촌동생이다. 국가안전기획부(현 국가정보원) 출신 인사로 알려져 있다. 평소 박 대표의 비위 사실을 캐고 다녔던 것으로 전해진다.

파문이 커지자 지난 2월19일 박경실 대표는 변호인 명의로 입장을 발표했다. 박 대표는 “2012년 2월부터 2013년 8월까지 ㄱ씨를 운전기사로 고용한 사실은 있으나 살해를 지시한 적은 없다”며 혐의를 전면 부인했다. 운전기사 ㄱ씨가 ㄴ씨와 공모해 허위 사실을 제보했고, 경찰은 ㄱ씨의 진술에 의존해 이번 압수수색을 진행했다고 주장했다. “ㄱ씨의 악의적인 제보에 따라 이뤄지는 경찰 수사에 적극적으로 협조해 진실을 밝히겠다”고도 했다.

그렇다면 박 대표가 ㄱ씨에게 거액의 돈을 건넨 것은 사실일까. 사실이라면 그 이유는 무엇일까. 박 대표의 변호인은 기자와의 전화 통화에서 “변호사 선임 및 로비 자금 명목으로 건넨 돈”이라고 해명했다. 박 대표가 ㄱ씨를 믿고 일을 맡겼으나 돈을 개인적으로 횡령한 사실을 뒤늦게 알게 돼, ㄱ씨를 지난 1월23일 변호사법 위반 등으로 고소했다는 것이다. 변호사가 아닌 인물이 법률 사무의 대가로 금품을 수수하면 형법상 처벌 대상이 된다.

운전기사 ㄱ씨의 진술과 박경실 대표의 주장은 완전히 엇갈린다. 양측 사이에 오간 수억 원의 돈만이 ‘팩트’인 상황에서, 사건의 실체적 진실은 드러나지 않고 있다. 한편 고 전 회장은 “살인미수교사 혐의는 나도 모르는 일”이라고 밝혔다.

비위 혐의를 넘어 살인예비음모 의혹까지 휩싸인 박 대표의 운명은 과연 어떻게 될까. 향후 진행될 경찰 수사가 이를 결정할 것으로 보인다. 기자는 박경실 대표 측의 입장을 듣기 위해 파고다어학원을 통해 질의서를 전달했으나, “질의한 사항이 현재 직간접적으로 소송 및 경찰 조사 중인 사안이다. 특별히 말씀드릴 사항이 없다”는 입장만 밝혔다.


‘조력자’에서 ‘실세’가 된 박경실 대표 


파고다어학원의 역사는 1969년부터 시작된다. 고인경 전 회장이 세운 한미외국어학원이 전신이다. 처음부터 승승장구했던 것은 아니다. 한때 운영에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이때 도움을 준 사람이 박경실 대표다.

두 사람은 1979년 결혼했다. 학원 이름이 현재의 ‘파고다’로 바뀐 것도 이때다. 이후 두 사람은 부부이자 동업자로 학원을 함께 성장시켰다. 박 대표는 청소부터 서무까지 업무 전반을 아우르며 ‘살림꾼’ 역할을 톡톡히 했다고 전해진다.

파고다어학원의 연매출은 2012년을 기준으로 800억원대에 달한다. 파고다어학원이라는 이름 아래 몇 개의 계열사가 모여 ‘그룹’을 구성한다. 우선 ‘파고다아카데미’가 있다. 서울 강남·종로·신촌 등에 9개 학원을 운영하는 법인이다. 이 밖에도 온라인 동영상 강의 사이트를 운영하는 파고다SCS, 교재를 판매하는 파고다서점, 건물관리법인 리드캔 등이 있다.

박 대표는 1990년대부터 경영에 본격 참여했다. 1994년 파고다아카데미 대표이사로 취임한 이래 사실상 일선 경영 활동을 총괄했다. 고인경 전 회장은 점차 외부 활동에 치중하는 모습을 보였다. 결국 2009년 박 대표가 파고다어학원그룹 회장직에 취임한다. 현재 박 대표가 경영권 면에서 우위에 있다. 주요 계열사의 지분 현황을 살펴보면 박 대표 몫이 거의 절반을 차지한다.


 

학원업계의 큰손, 재선 노리나 

박경실 대표를 둘러싼 의혹의 파장은 파고다어학원 안에서만 그치지 않는다. 학원업계 전반에도 만만찮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박 대표가 대형 어학원의 대표이사이자 한국학원총연합회 회장직을 맡고 있는 등 업계에서 차지하는 위상이 상당하기 때문이다.

박 대표는 2011년 취임 이후 3년 임기 동안 지속적으로 협회 내부의 반발에 시달렸다. 공교육 시장 진출 등 자신의 사욕을 채우기 위해 협회 장악에만 열을 올렸다는 주장이 일각에서 나온다. 지난해 박 대표에 맞서 단식투쟁에 나서기도 했던 문종숙 양천구 연합회장은 “취임 직후부터 업무 방해 명목으로 소송만 남발했다. 대형 학원을 운영하는 개인의 이익만 챙길 뿐 갈수록 어려워져 가는 영세 학원들을 위한 대책은 없었다”고 주장했다.

주목할 점은 박 대표의 임기가 곧 끝난다는 것이다. 3월에 13대 회장 선거가 있다. 현재 학원업계는 정부의 선행학습 금지 법안 통과에 맞선 대응책 마련에 골몰하고 있다. 차기 회장이 누가 되느냐에 관심이 집중되는 이유다. 박경실 대표의 재선 도전 가능성이 점쳐지는 가운데, 그를 둘러싼 의혹이 어떤 영향을 미칠지가 학원업계의 비상한 관심을 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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