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쓸어버릴 수도 없고…” 푸틴의 고민
  • 김회권 기자 (khg@sisapress.com)
  • 승인 2014.03.04 1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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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전 돌입한 발칸의 화약고 우크라이나…‘반러시아’ 후보 유력

‘차르(황제) 푸틴’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인기는 소치 동계올림픽 붐을 타고 더욱 치솟았다. 하지만 동계올림픽 폐막과 함께 그에게 고난이 닥쳐오고 있다. 우방인 우크라이나에서 ‘반(反)러시아’ 구호가 울려 퍼지고 있기 때문이다.

푸틴의 외교 정책에서 최대 목표는 구소련의 대부분을 커버하는 러시아 세력권을 구축하는 작업이다. 여기에서 핵심적인 국가가 우크라이나다. 4500만 인구를 보유하고, 광대한 국토와 자원을 자랑한다. 인종과 종교도 러시아에 가까우며 정치·경제적으로도 중요한 파트너 국가다.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에서 유럽을 향하는 천연가스가 통과하는 나라 중 하나다. 우크라이나가 자국 영향권을 벗어나는 상황은 러시아가 가장 피하고 싶은 시나리오다. 우크라이나는 러시아 세력권이라는 푸틴의 왕관에서도 중앙에 박히는 보석이 돼야 하는데 말이다.

가장 유력한 우크라이나 차기 대통령 후보인 율리야 티모셴코 전 총리(왼쪽)와 비탈리 클리치코 UDAR 당수(오른쪽). ⓒ EPA연합·ITAR-TASS연합
‘친러’ 야누코비치, 대통령궁에서 쫓겨나

상황은 러시아에 불리하다. 키예프에서는 여전히 대규모 반정부 시위가 계속되고 있고 러시아와 밀착했던 빅토르 야누코비치 대통령의 구심력은 급속히 떨어지고 있다. 야당은 조기 대선 실시를 결정했다. 대통령이 쫓겨나고 생긴 권력의 공백은 일단 거국일치 내각이 메웠다. 가급적 빨리 새로운 대통령을 뽑기로 했는데 그 날짜는 5월25일이다. 반면 야누코비치의 지지 기반인 동부에서는 키예프의 움직임을 ‘무장 쿠데타’라고 비난하는 목소리가 높아가고 있다. 동부 카르키프에서는 2월22일 동부·남부 지방 의원들이 모임을 갖고 시위대의 움직임에 반발했다. 러시아 국영 텔레비전에 따르면 참가한 의원 대다수는 러시아어로 “합법적인 정부가 무장 테러리스트에 장악됐다”며 비판했다.  “러시아! 러시아!”라는 환호가 울려 퍼졌고, “거리로 나와 방어를 준비하자”고 촉구하는 의원도 있었다.

친(親)러시아 성향의 독립국가연합(CIS)연구소의 데니소프 키예프 지부장은 우크라이나 전 정권이 생활수준을 저하시켰고 부패도 심했다는 점에 동의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반정부 시위는 극우 세력에 의해 과격화됐다. 야누코비치는 2010년 선거에서 민주적으로 선출된 대통령이다. 민주적으로 선출된 대통령이 불법적인 모양새로 쫓겨난 것은 심각한 문제다. 이것은 정권의 교체가 아니라 쿠데타와 다름없다.” 그 역시 동·남부 지역의 분열을 지적했다. 이 지역은 러시아어를 많이 사용하기 때문에 우크라이나 정부의 언어 정책에조차 불만을 터뜨린 곳이다. 키예프의 불안에 동·남부 지역은 더 불안해졌다. 데니소프 지부장은 “우크라이나가 분열할지도 모를 비극을 막기 위해서는 연방제를 진지하게 검토해야 할 시기가 왔다”고 말했다.

갈라진 동·남부와 서부의 갈등은 정치 현장에서도 극단적으로 드러날 전망이다. 5월에 열릴 대선 입후보자 접수가 시작되면서 새로운 정치의 계절이 도래했다. 이번 대통령 선거는 빅토르 야누코비치 정권을 바탕으로 한 친러시아파 후보와 친EU파 후보의 다툼이 될 전망이다. 일단 반정부 시위를 주도하고 있는 친EU파의 비탈리 클리치코가 출마를 선언했다. 전 WBC 헤비급 챔피언인 클리치코는 당선이 유력한 후보다. 프로복서 출신이지만 영어와 독일어 그리고 러시아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하며 박사 학위도 가지고 있다. 민주동맹(UDAR) 당수로 2012년 10월 최고회의 선거(국회의원 선거)에서 약진했는데 야당 지도자인 율리야 티모셴코 전 총리가 권력 남용 혐의를 받고 감옥에 가 있는 동안 친EU파의 선두로 올라섰다. 정권 붕괴 직전 여론조사에서 지지하는 대통령 후보를 묻는 질문에 클리치코는 당시 현직 대통령이던 야누코비치와 대등한 지지율을 기록했다.

구정권 진영도 채비를 갖추고 있다. 2월24일 야누코비치의 지지 기반인 동부 카르키프 주의 미하일 도프킨 주 행정장관(한국의 도지사에 해당)이 출마를 선언했다. 도프킨은 키예프에서 도피한 야누코비치 대통령과 2월21일 밤, 카르키프에서 극비 회담을 가진 것으로 전해진다. 세르게이 티기프코 전 부총리도 친러시아파 후보로 출마군에 포함돼 있다. 

우크라이나도 야권 단일화가 초미의 관심

역시 태풍의 눈은 ‘오렌지 혁명’의 주인공인 티모셴코 전 총리다. 임시 총리직을 고사한 채 바로 대통령 선거로 직행하겠다는 것이 티모셴코의 계획이다. 다만 과거에 정치를 혼란시킨 쓰라린 기억이 국민에게 남아 있는 게 약점이다. 2010년 티모셴코는 우크라이나 대통령 선거에서 패배했다. 당시 야누코비치가 대통령에 당선된 이후 티모셴코는 총리 자리에서 물러났고 2011년 우크라이나 검찰에 기소됐다. 검찰 측은 2009년 티모셴코가 2010년 대통령 선거에서 유리해지도록 러시아와 손을 잡고 우크라이나에 거대한 경제적 손실을 가져오는 천연가스 계약을 맺었다고 주장했고 법원은 이를 받아들였다.

우크라이나의 정치학자인 안드레이 피온트로프스키는 “다음 대선은 친(親)서방 후보에게 승산이 있다”며 “티모셴코의 인기는 꾸준하지만 오래된 정치인이고 과거의 일 때문에 반대하는 층도 두텁다. 가장 대중적으로 인기가 높은 후보는 클리치코다. 러시아어를 구사하는 것도 강점”이라고 전망했다. 그럼에도 티모셴코의 파괴력은 상당하다. 티모셴코와 클리치코의 단일화가 푸틴에게는 치명타가 될 것이라는 얘기는 그래서 나온다.


우크라이나 결국 쪼개지나 


우크라이나 정세가 세계의 이목을 끌고 있다. 지금까지 눈길은 수도 키예프의 마이덴 광장에 머물렀지만 이제는 크림 반도로 옮겨야 할 때다. 크림 반도에는 쫓겨난 야누코비치를 보호해주는 것으로 의심되는 의회와 보안군 등이 있는데 이들은 새 정부를 따르지 않겠다는 의향을 내비치고 있다. 이미 언론에도 보도된 대로 우크라이나는 동부와 서부가 인종·종교·언어·산업 등에서 확연히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동부에서 다수파를 차지하는 러시아계 주민이 우크라이나의 분열이나 러시아 편입을 바라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크림 반도는 사정이 다르다. 크림 반도에서는 우크라이나로부터 독립하려는 기류가 강하다. 러시아에 편입하려는 움직임도 활발하다. 심페로폴 등 크림 반도의 주요 도시에서는 친러시아파 주민들이 모여 이번 사태를 쿠데타라고 비난하기도 했다. 이번 사태에서도 크리미아 자치 정부는 “우크라이나 새 정부에 종속하라는 압력과 위협에 굴복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게다가 마이덴 광장에서 반정부 인사를 진압했다가 해체된 치안부대 ‘베르쿠토’ 대원 상당수가 크림 반도 출신이다. 새로 들어선 과도정부는 베르쿠토의 잔학 행위에 대한 조사를 실시하고 있지만 대원들은 이에 따르지 않고 무장 농성을 계속하고 있다. 대원들 입장에서는 최전선에서 힘든 싸움을 강요당했는데 정권이 바뀌자 버려지는 상황을 납득할 수 없기 때문이다. 크리미아 자치 정부 의회도 이들에게 동정적인 시선을 보내고 있고, 자치 정부 차원에서 새로운 직장을 제공하고 있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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