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긋하다 갑자기 ‘호떡집’ 불났다
  • 이승욱 기자 (gun@sisapress.com)
  • 승인 2014.03.11 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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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누리당, 신당 부상 따라 전략 수정 불가피…중진 총출격 맞불

“지금은 양상이 바뀌었지만, 애초 청와대와 당 지도부는 지방선거에 기용해서는 안 되는 중진 정치인의 가이드라인에 대해 교감을 하고 있었던 것 같다. 거기에 포함된 인사 중 한 명이 제주도지사 후보로 거론되는 원희룡 전 의원이다. 원 전 의원은 ‘올웨이즈(always·항상) 비박’을 해온 인물이다. 친박 쪽 인물이 아무리 없어도 원 전 의원은 후순위로 밀릴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이젠 그 마지막 카드를 쓸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야권의 통합 신당 출현이라는 돌발 변수가 튀어나왔기 때문이다. 신당의 지지율이 치고 올라오는 상황에서 청와대의 가이드라인도 별 의미가 없어졌다.”

민주당과 새정치연합의 통합 신당 창당 발표 이후 기자와 만난 새누리당 친박계 핵심 관계자는 6·4 지방선거를 앞두고 다급해진 여권 내부의 분위기를 이렇게 전했다. 원 전 의원은 야권의 통합 신당 추진 발표 이후 당 지도부의 ‘콜’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원 전 의원은 최근 언론 인터뷰에서 “출마 가능성이 크다”고 밝히고 있어 출마 선언이 초읽기에 들어간 것으로 보인다.

남경필 새누리당 의원이 3월5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중진연석회의에서 경기도지사 출마 결심을 밝히는 발언을 한 후 인사하고 있다. ⓒ 연합뉴스
한때 지지율 역전 위기감 휩싸이기도

여당 중진 차출론의 화룡정점은 ‘원조 친박’으로 통하는 유정복 전 안전행정부장관이다. 3월5일 인천시장 출마를 위해 장관직을 사퇴한 유 전 장관은 당초 인천시장이 아니라 경기도지사 후보 출마 가능성이 당내 일각에서 더 높게 제기됐었다. 인천 태생이긴 하지만 지역구가 경기 김포인 탓이다. 당 내부 사정에 밝은 한 관계자는 “유 장관 쪽 인사들이 경기도 수원 모처에 캠프를 차렸다는 이야기가 돌았다. 당내 상황에 따라 여차하면 경기도지사 후보로 나선다는 계획을 세운 것 같다”며 “하지만 유 장관이 박근혜 대통령의 복심으로 통하고 내각에서 박 대통령을 보필해야 하는 만큼 지방선거 차출은 쉽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하기도 했다. 수원 지역 5선인 남경필 의원이 경기도지사 출마 선언을 하면 뜻을 접을 것이란 관측이었다. 그러나 신당 출현으로 지방선거 분위기가 가열되면서 유 전 장관은 인천시장 출마로 급선회했다. 신당 소속의 송영길 시장에 맞서 강력한 대항마가 필요하다는 당의 부름에 응한 것이다.

야권의 통합 신당 창당 발표는 그동안 친박계 당권파가 미리 짜놓은 중진 차출론에 부정적이던 ‘비박’ 중진 정치인들에게 ‘선당후사(先黨後私)’라는 명분을 마련해주고 있다. 3월2일 서울시장 출마를 선언한 정몽준 의원에 이어 남경필 의원도 5일 경기도지사 출마 쪽으로 급선회했다. 현실화가 불투명해 보였던 새누리당의 중진 차출론이 완성 단계에 접어들었지만, 신당 창당 컨벤션 효과가 꽤 큰 것으로 나타나자 새누리당도 대응책 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그동안 여당에 크게 열세를 보였던 야당의 지지율이 지금은 여러 여론조사에서 새누리당과 접전 양상으로 나타나고 있다. 3월2일 신당 창당 발표 직후인 4일 KBS가 미디어리서치에 의뢰해 전국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 신당이 39.7%로 새누리당(42.9%)을 3.2%포인트 차 오차 범위 내에서 맹추격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지난 2월 조사에서 민주당과 새정치연합의 지지율 단순 합계 수치보다 3.1%포인트 상승한 것이다. 반면 새누리당 지지율은 같은 기간 1.9%포인트 떨어졌다.

역전의 위기감에 휩싸인 새누리당 입장에서 그나마 안도할 수 있는 결과도 있다. 시간이 지나면서 통합 신당 깜짝 발표의 컨벤션 효과가 조금씩 가라앉고 있고, 남경필·유정복 등 여권 중진들의 출마 선언이 이어지면서 다시 격차를 조금씩 벌리고 있는 것이다. 시사저널이 3월5일과 6일, 미디어리서치에 의뢰해 서울·인천·경기 등 수도권 지역 1500명을 대상으로 여론조사를 실시한 결과 새누리당이 43.9%를 얻은 반면, 신당은 37.0%로 나타났다. 6.9%포인트 차로 격차가 조금 더 벌어졌다.

하지만 오차 범위에 근접한 현재의 지지율 격차로는 우세를 장담할 수 없다는 점에서 새누리당과 광역단체장 후보들은 ‘새 정치’ 프레임으로 선거 구도가 변하는 것을 저지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정몽준 의원은 3월2일 서울시장 출마 선언 기자회견에서 “(통합 신당 창당은) 서울시장 후보를 내자니 그렇고, 안 낼 수도 없는 안 의원 쪽의 고육지책이다. 안 의원의 새 정치라는 것이 이렇게 무너지는 것을 보니 안타깝다”고 야권의 신당 창당을 평가절하했다.  

유정복 전 안전행정부장관이 3월5일 국회에서 인천시장 출마를 공식 선언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시사저널 박은숙
경선 공정성 등 ‘박심’ 논란 여전

새누리당은 당 지도부에서 제시한 비상대책위와 선거대책위 이원 체제를 조기 가동하고 지방선거 체제로 신속하게 전환한다는 계획이다. 현 지도부 임기 이전인 5월15일 전에 지도부가 사퇴하고 비대위를 꾸려 외부 인사를 영입하는 등 당의 면모를 일신한다는 복안이다. 또한 당권 주자인 서청원(수도권)·김무성(영남권)·이인제(충청권) 의원을 중심으로 지역별로 선대위를 삼분하는 안을 추진하고 있다.

특히 3월14일 귀국할 예정인 김황식 전 국무총리가 17일께 서울시장 출마 선언을 하면, 서울·경기·부산 등 주요 광역단체장 후보자 결정을 위해 권역별 순회 경선을 하고 경선 흥행몰이를 한다는 전략이다. 이 안은 경기도지사 출마 선언을 한 원유철 의원이 공식 제안한 것으로, 황우여 대표가 긍정적으로 받아들여 실무 작업을 진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새누리당의 지방선거 전략에는 복병도 도사리고 있다. 중진 차출이 성사되거나 성사가 기정사실화되고 있는 경기도지사와 인천시장, 제주도지사 공천의 경우 전략 공천 가능성의 불씨가 여전히 남아 있는 데다, 경선 룰을 두고도 불협화음이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 제주도지사 경선의 경우, 원 전 의원 측과 당 일각에서 “특정 예비후보가 최근 집중적으로 대의원 수를 늘린 정황이 있다”며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이에 따라 20%에 불과한 여론조사 반영 비율을 100%로 늘려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또 새누리당 경선 후보 등록 기한을 당초 3월10일에서 15일로 연장하는 것을 두고도 김황식 전 총리 등 특정 후보를 배려했다는 측면에서 경쟁 후보들이 의혹의 눈초리를 보내고 있다. 이른바 ‘박심(朴心)’ 논란이 재연돼 자칫 볼썽사나운 ‘집안싸움’이 불거질 경우 새누리당의 지방선거 전략에 생채기가 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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