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 뉴욕 부동산 4000억 투자 ‘헛발질’
  • 노진섭 기자 (no@sisapress.com)
  • 승인 2014.03.11 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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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연금공단이 미국 뉴욕의 노른자위 빌딩에 4000억원을 투자했다. 수익금은 연간 126억원 정도로 추산된다. 대출 이자, 세금, 사전 조사 비용, 관리 비용 등을 제하면 얼마나 남을지 의문이다. 그러나 국민연금은 투자금과 수익 내역을 공개하지 않고 있다. 국민이 미래를 저당 잡히고 부은 돈이 어디에서 새는지 시사저널이 추적했다.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과 함께 미국 뉴욕의 상징물로 꼽는 건물이 햄슬리 빌딩이다. 국민연금공단(국민연금)은 2011년 6월 이 빌딩의 지분 49%를 인수했다고 발표했다. 당시 전광우 국민연금 이사장은 뉴욕 현지의 한국 특파원들과 가진 만찬회에서 “미국 자산운용사가 51%, 국민연금이 49% 지분 참여로 햄슬리 빌딩을 인수했다”며 “안정적인 투자 이익을 거둘 것으로 예상한다”고 밝혔다.

햄슬리 빌딩은 34층 건물인데 동쪽과 서쪽에 각각 15층짜리 건물이 붙어 있다. 맨해튼에서 가장 번화한 도로(파크 애비뉴)에 있는 이 빌딩은 1929년 준공됐고, 1997년부터 내부 리모델링을 하면서 현대적인 사무 공간으로 탈바꿈했다. 뉴욕 시가 랜드마크로 지정한 이 건물의 전체 면적은 13만㎡(약 3만9000평)이고 ING자산운용, 스위스 재보험, 일본계 해상화재보험사 등 쟁쟁한 금융사들이 입주해 있다.

ⓒ 김원식 시사저널 뉴욕통신원
역사, 위치, 입주사 등 어느 것 하나 빠지지 않는 이 건물에 국민연금은 왜 49%라는 ‘어정쩡한 비율’로 투자했을까. 투자 당시 전 이사장은 세금을 줄이기 위해서라고 설명했다. 시사저널 취재 결과 국민연금이 더 투자하지 못한 이유가 있었다. 국민연금이 확보했다는 지분 49%는 그 빌딩의 지분이 아니라 그 건물 소유회사(자산운용사)의 지분으로 확인됐다. 자산운용사에 대한 지분 참여 규정상 국민연금의 지분은 투자 금액의 절반을 넘지 못하도록 돼 있다.

그 자산운영사(인베스코, invesco)와 국민연금이 각각 51%와 49%의 지분 참여로 만든 페이퍼컴퍼니(230파크 애비뉴 홀딩)가 그 빌딩을 인수했다. 그 빌딩의 법적 소유주는 230파크 애비뉴 홀딩이고, 이 페이퍼컴퍼니의 지분 51%를 소유한 인베스코가 실질적으로 빌딩 운용권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국민연금 관계자는 “자산운용사 인베스코가 설립한 페이퍼컴퍼니에 인베스코와 국민연금이 각각 51%와 49% 지분을 투자했고 그 돈으로 햄슬리 빌딩을 매입했다”고 밝혔다. 

취재 과정에서 그 빌딩의 전 소유주(골드만삭스)는 그 건물을 통째로 넘기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빌딩의 지분 5%를 남겨두고 95%만 매각했다. 추후에 그 빌딩을 되사려는 조항(buyback)을 계약서에 명기했을 가능성이 높다. 국민연금은 인베스코에 돈만 투자한 셈이므로 국민연금이 투자금을 회수하기 위해 그 빌딩을 팔고 싶어도 인베스코가 동의하지 않으면 매각이 어렵다. 반대로 국민연금은 그 빌딩을 팔고 싶지 않아도 인베스코가 매각을 추진하면 끌려갈 수밖에 없다. 게다가 현재 빌딩의 5%를 소유하고 있는 골드만삭스와 인베스코가 악의적인 동맹을 맺어 시쳇말로 장난칠 수도 있다. 

시사저널이 단독 입수한 미국 뉴욕 햄슬리 빌딩의 등기부등본과 매매계약서. ⓒ 시사저널 임준선
국민연금 “투자 수익 공개 못한다”

그렇다면 지분 49%에 해당하는 투자 금액은 얼마일까. 국민연금 측에 자료를 요청했지만 “시장에 미치는 파급력 때문에 계약서에 비밀 유지 조항을 넣었고 이 때문에 투자 금액을 공개할 수 없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이에 대해 시민들은 상식 밖의 일이라는 반응을 보였다. 회사원 주영래씨(40)는 “정부 조직이 국민 돈을 투자하면서 용처를 밝히는 것은 상식이자 의무”라며 “비밀 유지 조항을 넣는 계약이라면 차라리 다른 곳으로 투자처를 변경해서라도 국민의 돈을 투명하게 관리해야 한다”고 비판했다. 문진영 서강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연금 가입자인 국민에게 지급할 준비금을 얼마나 사용했는지 밝힐 수 없다는 말은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시사저널이 뉴욕 등기소 등에서 단독 입수한 건물의 매매계약서와 소유권 자료를 보면, 빌딩의 매각 대금은 7억6000만 달러(약 8000억원)로 기록돼 있다. 그 금액의 49%에 해당하는 약 4000억원을 국민연금이, 나머지 51%는 인베스코가 부담했다. 국민연금은 취재진의 계속된 확인 요청에 이 사실을 실토했다. 국민연금 관계자는 “정확한 금액을 밝힐 수는 없지만 인수 금액의 49%를 국민연금이 투자한 게 맞다”며 “그 금액의 절반가량은 현지 은행에서 대출을 받았다”고 밝혔다. 약 2000억원은 국민연금 기금으로 충당하고 나머지 2000억원은 대출금으로 마련했다는 설명이다.

1988년 설립된 국민연금은 최근까지 기금 운용 내역을 공개하지 않았다. 박근혜정부의 국정 운영 철학인 정보 공개 원칙에 역행하는 일이다. 공개 요구 여론이 잇따르자 지난해 초 국민연금은 기금의 용처를 공개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뭉뚱그린 투자비는 공개하면서도 여전히 세부 내용은 베일에 가려 있다. 예컨대 지난해까지 해외 부동산에 투자한 규모는 8조원이지만 어떤 건물에 얼마를 투자했는지는 밝히지 않는 식이다.

뉴욕 현지 부동산업계에서는 계약 가격과 실제 매매가가 다른 것은 아닌지 의문을 품는다. 현지 부동산중개업소 사장은 “누구나 공식 서류에서 매매가를 확인할 수 있는데도 국민연금이 그 금액을 밝히지 않는 배경이 의심스럽다. 일각에서는 비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국민연금이 다운 계약서(가짜 계약서)를 작성한 것 아니냐는 의혹까지 제기하고 있다”며 “매매 과정에서 다운 계약을 했다면 미국에서 큰 범죄 행위에 해당한다”고 말했다.

국민연금은 의혹을 해소하기는커녕 증폭하고 있다. 국민 돈을 투자한 후 얻는 이익금에 대해서도 함구한다. 뉴욕 햄슬리 빌딩에 간접 투자한 2011년 당시 국민연금은 12~18% 수익률을 보고 투자한다고 밝힌 바 있다. 연간 최소 480억원의 수익을 올릴 것으로 계산한 것이다. 투자 후 2년을 넘긴 현재 수익 금액을 확인해달라는 기자의 요청에 국민연금 관계자는 “금액은 밝힐 수 없지만, 수익률은 미국의 상업용 부동산 시장 회복에 힘입어 빌딩 매입 금액의 약 10% 수준”이라고 밝혔다. 

이것은 거짓말이다. 국민연금 내부 관계자에 따르면 그 빌딩에 대한 투자 대비 수익률 10%는 어림없는 수치다. 이는 모든 뉴욕 건물의 평균적인 가치 상승률이라는 설명이다. 빌딩 가치 상승과 국민연금의 수익은 별개 문제다. 국민연금은 그 빌딩 자체가 아니라 그 빌딩에 투자한 인베스코의 페이퍼컴퍼니 지분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국민연금은 수익이 아니라 지분에 대한 비율만큼 배당을 받는다. 국민연금도 미국 내 부동산 가격 상승률과 실제 국민연금의 수익률 사이에 차이가 있다는 점을 안다. 강영구 국민연금 해외부동산팀장은 “통상 해외 부동산 투자 수익률은 6~7%이고 5년 후 8%로 오를 것으로 전망한다”고 말했다.

국민연금 해외 부동산 투자 확대

이 말대로라면 햄슬리 빌딩 투자에 대한 수익금은 연간 126억원이다. 투자 당시에 기대한 480억원의 3분의 1에도 못 미치는 것이다. 여기에서 은행 대출금 2000억원에 대한 이자와 기타 비용을 제하면 실제 손에 쥐는 금액은 얼마 되지 않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처럼 국민연금은 수익금을 밝히지 않고, 수익률도 18%에서 10%, 다시 6%까지 상황에 따라 말 바꾸기를 하고 있다. 투자은행(IB)업계는 2012년 국민연금의 해외 부동산 투자 수익률을 4.85%로 추산한 바 있다.

게다가 세금도 부담해야 한다. 그 빌딩의 세금은 2000만 달러(뉴욕 시)와 300만 달러(뉴욕 주) 등 모두 약 3000만 달러(약 310억원)에 이른다. 이 세금을 면제받았는지, 아니면 지분율에 따라 국민연금과 인베스코가 나눠 부담했는지에 대해서도 국민연금은 확인해줄 수 없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그 빌딩에 투자하기 전에 조사하는 비용도 계산해야 한다. 뉴욕 월가에서는 그 비용도 무시할 수 없을 정도로 큰 규모라는 소문이 돌고 있다. 이에 대해 국민연금 관계자는 “엘리베이터·유리창 등 20여 개 항목에 대해 실사를 진행하면서 법무법인 등에 지급한 금액은 알려줄 수 없다”며 “일반적으로는 규모 대비 1.5% 선”이라고 설명했다. 이 말대로라면 해당 빌딩에 투자하기 전에 사전 조사 비용으로 쓴 돈은 약 60억원이다.

국민연금은 2006년 해외 펀드를 시작으로 외국에 투자했고, 외국 부동산 투자는 2009년부터 시작했다. 지난해에도 프랑스·미국·호주·싱가포르·독일 등 해외 부동산을 사들였다. 

국민연금은 앞으로 해외 부동산에만 10조원을 추가로 투자할 계획이다. 최광 국민연금 이사장은 “2043년 기금 규모 2560조원으로 성장할 국민연금은 해외에서 답을 찾아야 한다”며 “후세대 부담을 완화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적극적인 자산 배분 전략으로 높은 수익률을 창출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행보는 미국에서 뉴스가 됐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지난해 아시아 투자자들이 노령화 대책으로 미국 부동산을 사들이고 있다고 보도했다. 특히 한국의 미국 부동산 투자 규모는 아시아 국가 가운데 2위를 기록해 ‘업계의 큰손’으로 등장했다고 전했다. 점잖게 표현했지만 사실 현지에서 국민연금의 해외 부동산 투자를 보는 시각은 민망할 정도다.

김원식 시사저널 뉴욕 통신원은 “햄슬리 빌딩의 실소유주는 인베스코이고 국민연금은 돈만 빌려준 셈”이라며 “미국 한인 사회에서는 국민연금이 국민 돈으로 외국 투자사만 좋은 일 시킨 것이라는 비난이 일고 있다. 심지어 미국 월가의 자산운용업계에서는 국민연금 등 한국 기관투자가의 돈을 눈먼 돈으로 보고 달려드는 형국”이라고 현지 사정을 전했다. 뉴욕 지역의 한 부동산업자는 “국민연금이 지분 참여한 페이퍼컴퍼니를 인베스코가 악의적으로 이용할 경우 국민연금은 고스란히 당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며 우려했다. 

1935년 미국에서 설립된 인베스코 자산운용사에는 임직원 5800명, 투자 전문 인력 740명이 있다. 2013년 운용 자산 규모는 7455억 달러(약 800조원)다. 아시아·태평양 지역에는 1962년부터 투자를 시작해 1972년 홍콩에 첫 사무소를 열었고 지난해 11월에는 서울에도 사무소를 개설했다. 이 회사는 지난해 국민연금, 중국 기관투자가들과 공동으로 미국 건물(BG그룹플레이스)을 인수한 적이 있다. 

직원 한 명이 8000억원 주물러

국민연금이 인베스코와 같은 대형 자산운용사를 통해 해외 부동산에 투자하는 배경에는 인력 부족이 자리하고 있다. 국민연금의 해외 부동산 투자 전담 직원은 국내 9명과 북미 지역 부동산 담당자 1명(뉴욕 사무소) 등 모두 10명이다. 국민연금은 지금까지 약 8조원을 해외 부동산에 투자했는데, 1인당 8000억원을 주무른 셈이다. 한국과 투자 규모가 비슷한 캐나다 연기금의 경우 1인당 운용 규모가 3600억원이다. 2배 이상 차이가 난다. 자산 규모에 비해 운용 인력이 부족하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최광 이사장도 인력 부족을 인정한 바 있다. 그는 평소 “2015년부터는 2년 동안 해마다 100명씩 늘려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그렇게 늘려도 2016년이면 기금이 550조원이 되기 때문에 1명당 운용 기금이 1조원을 넘는다”고 밝혔다.

국민연금은 인력이 적으니 외국 자산운용사에 투자 제반 사항을 일임하는 모양새다. 실제로 계약서에 비밀 유지 조항을 넣은 것이나 수익률을 비공개로 하자는 내용 등을 외국 자산운용사가 주장하면 국민연금은 끌려가는 모양새다.

이런 문제는 이미 2011년 국정감사에서도 불거진 바 있다. 해외 부동산 투자에 대한 결정이 졸속으로 이뤄지고 있다고 당시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박상원 의원(한나라당)이 지적했다. 영국 HSBC빌딩, 영국 게트윅 공항을 포함해 일본·호주·독일·미국 등의 부동산 투자 제안부터 결정까지 걸리는 기간이 1~3개월 남짓이라는 것이다. 

투자 대상이 다양하지 못하다는 지적도 있다. 헤지펀드나 원자재보다 부동산에 투자가 편중된 것이다. 실제 선진국 기관투자가들도 세계 사무용 빌딩 호황기에 여러 부동산에 투자했다가 금융 위기로 큰 손실을 봤다. 미국 캘리포니아 공무원연금(캘퍼스)은 2008년 무려 23.4%의 손실을 냈고, 네덜란드 공무원연금(ABP)은 20.2%, 캐나다 국민연금(CPP)은 18.6%의 손해를 입었다. 전문가들은 해외 연기금이 세계 금융 위기에 유난히 취약했던 까닭은 주식·부동산 등 위험 자산 투자 비중이 컸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전광우 전 국민연금 이사장은 2011년 뉴욕에서 한국 특파원을 만난 자리에서 햄슬리 빌딩을 싸게 샀다고 자랑했다. 전 소유주인 골드만삭스가 2007년 11억5000만 달러에 그 건물을 매입한 것과 비교한 것이다. 그러나 그 빌딩 가치가 불과 4년 만에 7억6000만 달러로 떨어진 이유는 설명하지 않았다. 뉴욕 현지 부동산 관계자는 “부동산 거품이 꺼지면서 뉴욕의 빌딩 가치가 주저앉았고, 부동산이라는 특성상 경기에 따라 가치가 오를 수도 내릴 수도 있다. 싸게 샀다는 점을 강조할 일이 아니다”며 “국민에게 투자 규모와 수익금을 공개할 수 있는 떳떳함을 보고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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