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 어떻게 굴리고 법 바뀌는지 국민은 ‘깜깜’
  • 주은선 경기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
  • 승인 2014.03.11 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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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험료 내는 가입자는 정책 결정 과정에서 배제 정권 따라 정치적 위험 오락가락

국민연금의 노후 보장에 대한 의구심이 커지고 있다. 과거 국민연금에 대한 불안감은 주로 국민연금기금과 관련된 것이었다. 최근에는 여기에 기초연금 논란이 덧붙여지면서 불안과 불만이 증폭되고 있다. 국민연금에 대한 불신을 드러내는 지표 중 하나는 국민연금 의무 가입 대상이 아님에도 임의로 가입한 사람들 가운데 자발적 탈퇴자가 크게 늘어났다는 것이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2012년 임의 가입자 중 자발적 탈퇴자 수는 1만3216명이었으나 2013년에는 2만8132명으로 두 배 이상 증가했다.

향후 급여 지급을 위해 무려 400조원 이상의 연기금이 쌓여 있고 향후 30여 년 동안 기금이 증가할 것으로 예상됨에도 연금에 대한 국민의 시선은 냉담하다. 기금 규모가 커지는 것에 비례해 신뢰가 커지고 있는 것 같지는 않다. 국민연금은 이러한 불신의 대상이 될 만한 본질적인 문제를 갖고 있는 제도인가.

흔히 개인연금·퇴직연금과 같은 사(私)연금은 금융 시장 등락의 위험에 취약하고 기초연금·국민연금과 같은 공적 연금은 정치적 위험에 노출돼 있다고 한다. 사적 연금은 기금을 형성해 이를 투자한 수익에 따라 급여를 지급받는 것이 통상적이다. 정부가 운영하는 공적 연금은 투자 수익이 아닌 법에 의해 급여액이 결정되며 현 노동 세대가 노인 세대를 부양하는 세대 간 부양 원리에 따르기 때문이다.

가난한 사람들의 마지막 거주지인 서울시 용산구 동자동 ‘쪽방’에서 한 노인이 창밖을 내다보고 있다. ⓒ 시사저널 임준선
국민연금 받을 수는 있을까

그러나 국민연금은 특수하다. 국민연금 제도는 국가가 책임지는 공적 연금인데도 정치적 위험과 시장의 위험을 모두 갖고 있다. 국민연금 제도 변화에 따라 급여액이 급변할 수 있으며, 커다란 기금을 가지고 있기에 금융 시장 고유의 위험으로부터도 자유롭지 못하다. 국민연금이 갖는 두 가지 위험을 하나씩 살펴보자.

먼저 정치적 위험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나중에 국민연금 받을 수는 있을까’라는 질문에 필자는 과거에는 ‘연금 지급 보장은 국가의 의무이니, 국가가 존속하는 한 국민연금 제도는 지속된다’고 답하곤 했다. 그러나 2007년 국민연금 개혁을 계기로 국민연금이 가지는 정치적 위험 역시 가볍게 볼 수 없게 됐다.

사회적 계약에 근거한 제도인 만큼 장기적으로 사회적 상황 변화에 따른 연금 정책의 변화는 불가피하다. 그러나 국민연금 가입자들의 노후 보장 안정성을 저해할 정도로 큰 폭의 급여 삭감 등은 다수의 이익을 관철하는 민주주의 체제에서 거의 불가능하다. 국민연금의 정치적 위험은 이른바 한국식 민주주의로 인해 증폭된다.

국민연금 가입자들은 1988년 도입 이후 이미 두 차례 급여 인하를 겪었다. 국민연금의 표준 소득 대체율은 70%에서 60%로, 다시 60%에서 40%로 감소했다. 특히 2007년의 연금급여액 삭감은 다른 어느 나라의 연금에서도 찾기 어려울 정도로 큰 폭이었다. 40년을 꼬박 보험료를 낸 평균적인 가입자의 국민연금 급여액은 근로 시기 소득의 60%에서 40%로 무려 3분의 1이 삭감되고 있다.

그 결과 2040년 실제 평균 급여액은 노동 시기 소득의 21~22% 수준에 불과할 것으로 예측된다. 즉, 2007년 개혁으로 이제 저(低)연금은 만성적인 문제가 됐다. 문제는 급여의 3분의 1에 달하는 큰 폭의 국민연금 급여 삭감이 이루어지는 과정에서 정작 시민들, 좁게는 국민연금 가입자들이 이러한 제도 변화 자체를 잘 몰랐다는 점이다. 이 변화를 제대로 아는 것은 오직 관료들뿐이었다. 국민연금법의 변화는 사회적 합의의 산물이 아니라 철저하게 폐쇄적인 관료 정치, 시민사회로부터 단절된 정당들끼리의 주고받기 결과였다. 국민연금 가입자들은 급여 삭감 사실조차 모르는 경우가 허다했다. 그만큼 한국 연금 정책 결정 과정에 보험료를 내고 제도의 근간을 형성하는 당사자들은 배제돼 있다.

다시 유사한 정치적 위험이 기초연금 개혁 과정에서 표면화되고 있다. 2007년 국민연금 급여 삭감을 보완하는 의미에서 도입된 기초노령연금을 개혁하기 위해 2013년 11월 박근혜정부는 새 기초연금법안을 내놓았다. 이는 기초연금액을 국민연금 가입 기간과 연계해 삭감하는 안으로서 장기간 가입할수록 기초연금 급여를 깎고, 30년 이상 가입자에게는 기초연금을 주지 않는 법안이다.

공적 연금 총 보장액의 감소는 국민연금 가입자에게, 세대로는 당장 50대 이하를 비롯해 후세대로 갈수록 더욱 심각하게 나타날 전망이다. 이 안도 의견 수렴과 합의 노력의 산물은 아니다. 이미 낮아질 대로 낮아진 국민연금 급여를 건드리지 못하니 국민연금 가입자들이 받을 기초연금 급여를 조정하는 우회적 선택일 뿐이다. 지난해 박 대통령이 기초연금안  변화에 대해 노인들에게 사과했지만, 이 사과는 정부 안으로 인해 혜택이 줄어들 젊은 세대와 국민연금 가입자들을 향하지는 않았다.

국민연금 연계 기초연금안 통과를 위한 청와대의 압력은 심상치 않아 보인다. 박 대통령이 복지 3법을 통과시켰어야 한다고 발언한 직후 열린 3월6일 보건복지위 법안심사소위에서 한 여당 의원은 국민연금 장기 가입자는 이미 국민연금에서 많은 수익을 보고 있는 것 아니냐고 말했고, 다른 의원은 모두를 만족시키는 완벽한 법안은 있을 수 없다고 했다.

국민연금 가입자들의 목소리와 이해는 정책 결정 과정에서 그대로 묻혀버리고 있다. 향후 몇 달 안에 2007년 국민연금 급여 삭감과 유사한 과정이 반복될 수도 있다. 시민 없는 연금 정치가 계속되고 있는 셈이다.

글로벌 금융 시장 영향 크게 받아

두 번째로, 거대 기금으로 인해 발생하는 국민연금의 위험을 살펴보자. 사실 단순히 시장의 위험이라기보다는 국민연금 재정 위험으로 지칭하는 것이 더 정확하다. 당장 국민연금 재정이 위기에 처해 있는 것이 아니며, 재정 문제는 기금 규모가 절정에 달하는 2043년 전후로 달라진다. 전반기에 한국 국민연금 재정은 소진 위험이 아니라 지나친 적립으로 인한 불균형 상태가 예상된다.

게다가 금융 시장 투자, 그중에서도 주식 투자, 해외 투자, 위탁 투자, 대체 투자를 확대하는 기조에서 글로벌 금융 시장의 명운과 국민들의 노후 보장이 그 어느 때보다 긴밀해지고 있다. 한국 국민연금의 지속성은 국가 자체의 지속성만큼이나 글로벌 금융자본주의의 안정성, 기대하기 힘든 장기적 안정성에 기대고 있다.

2043년 이후에는 매우 빠른 속도의 기금 감소가 문제다. 2040년 이후 약 15년이 기금 수입과 지출 사이에 심각한 불균형이 발생하는 시기다. 이 시기 기금의 급감에 대응할 만한 연금의 사회적 지속성을 높일 수 있는 방안이 필요하다. 이와 관련해 연금 제도의 사회적 지속성 기반인 출산율과 취업률 제고가 필요하다.

2040~60년대 연금 제도의 지속성을 결정하는 것은 2000?30년 사이 출산율과 경제 활동 인프라 구축 그리고 이후의 경제 활동 참여율, 경제 성장과 임금 인상 등이다. 재정 안정 문제는 근본적으로 기금 규모의 문제가 아니라 제도의 사회적 지속 가능성의 문제임을 명확히 해야 한다. 국민연금은 기금이 있든 없든 근로 세대가 노령 세대를 부양하는 체계로서 국민연금 제도의 안정성에는 역시 앞서 언급한 현재와 미래의 근로 세대가 창출하는 부의 양과 고용률, 보험료를 납부하는 근로자 수와 은퇴자 수의 균형이 중요하다. 이는 2013년 현재의 기금 수익률보다 공적 연금 기여를 지속하고, 세금을 부담하고, 소비할 노동 인구가 더 중요하다는 말이다.

그러나 결정적 시기인 현재의 출산율, 노동 시장 참여율 등은 답보 상태에 있으며, 경제 활동 인프라에 대한 투자 수준은 낮다. 국민연금의 문제는 이른바 보험료 인상으로 기금 규모를 키워서 피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독일·스웨덴·프랑스 등이 공적 연금 기금 규모를 1년 지출 규모를 약간 넘는 수준으로 유지해온 것은 그런 이유에서다. 소득을 연기금으로 모아 금융 시장에 투입하기보다 소비와 투자에 넣는 것이다.

국내 노인 빈곤율이 48%를 넘어선 상황에서 ‘연금, 과연 나중에 제대로 받을 수 있을 것인가’라는 질문은 자신이 노후 빈곤을 면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절박한 의문이다. 지금으로서는 이에 대한 답의 절반은 적어도 자신에게 달려 있으며, 무엇보다도 국민연금 제도가 처한 정치적 위험, 즉 기초연금법에 주목하라고 답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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