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트코인 4억7천만 달러 증발 음모인가, 해킹인가
  • 김원식│뉴욕 통신원 ()
  • 승인 2014.03.11 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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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운트곡스 파산 신청…미국 정보기관 개입설 돌아

“비트코인은 통화(通貨)가 될 수 있는 테스트를 통과하지 못하고 있다. 사람들이 비트코인을 상품처럼 거래하고 그 가치는 달러화로 환산돼 매매된다. 원유 가격도 시시각각 달라지지만, 원유 배럴을 화폐 단위로 취급하지는 않는다. 비트코인이 향후 10~20년 사이에 사라진다 해도 놀랄 일은 아니다.”

‘투자의 귀재’ ‘오마하의 현인’으로 불리는 버크셔 해서웨이의 워런 버핏 회장은 3월3일 미국 CNBC 방송에 출연해 ‘비트코인(Bitcoin, 온라인 거래에서 쓰이는 가상 화폐)’을 이렇게 평가했다. 화폐로서의 역할을 하지 못할 것이며 미래에는 사라질 가능성이 있다는 얘기다. 일종의 가상 화폐지만 기존의 실물 화폐를 대체할 수 있다는 기대감은 한때 비트코인의 가치를 연일 상승세로 이끌었다. 그런데 최근 해킹 사건이 잇따라 발생하면서 상황이 바뀌었다. 상승세가 급격한 내리막으로 바뀌었다.

비트코인의 가장 오래된 거래소 중 하나인 ‘마운트곡스(Mt. Gox)’는 2월28일 본사가 있는 일본 법원에 파산 보호 신청을 했다. 4억7000만 달러(약 5017억원)에 상당하는 85만개의 비트코인을 해킹에 의해 도난당했다는 것이다. 그동안 전산 장애 등 안전성에 대한 숱한 우려를 ‘기우’로 치부했던 마운트곡스는 결국 도난 사실을 인정했고, 한때 전도유망하다는 평가를 받았던 마크 카펠리스 마운트곡스 CEO는 머리 숙여 고객들에게 사죄하는 기자회견을 해야 했다.

마운트곡스뿐만이 아니다. 3월4일에는 캐나다에 있는 거래소인 ‘플렉스코인’이 62만 달러(약 6억6000만원)에 상당하는 896개의 비트코인을 도난당했다. 이유는 역시 해킹이었다. 안전성과 신뢰도가 무너지면서 일부에서는 “이제 비트코인은 몰락하기 시작했다”고 주장했다.

마크 카펠리스 마운트곡스 CEO(왼쪽)와 비트코인(오른쪽). ⓒ AP·EPA 연합

개발자 ‘사토시 나카모토’는 누구인가

비트코인은 탄생 자체가 베일에 싸여 있다. 2008년 ‘사토시 나카모토(Satoshi Nakamoto)’라는 이름을 사용한 인물(혹은 기관)이 난해한 수학 문제를 풀게 하고 이를 푸는 사람에게 지급하기 시작한 것이 비트코인이다. 마치 상금을 주듯 문제를 푸는 사람에게 최대 2100만개의 비트코인이 발행되도록 설계되었다. 현재 1200여 만개의 비트코인이 뿌려졌고 추가로 800여 만개가 발행되도록 설계돼 있다. 이렇게 호기심을 자극하며 시작된 비트코인 캐내기 작업에 여러 그룹이 동원되면서 관심을 불러 모았다. 실제로 달러로 환전해 물품을 구입하거나 바로 결제가 가능해지면서 열풍이 불었다. 그런데 문제는 개발자인 사토시 나카모토가 누구인지를 아무도 모른다는 데 있다.

일본 이름을 사용했기 때문에 일본의 전산 관련 교수라는 주장이 있지만, 흥미롭게 미국 정보기관 개입설도 나돌고 있다. 비트코인을 만들어낸 배후에 미국 국가안보국(NSA)이 있다는 구체적인 음모론이 그럴싸하게 인터넷에 펴져 있다. 지난해 11월 한 소셜 네트워크에 올라온 음모론은 구체적이다. 국제통화기금(IMF)은 “20년 정도 통화 수축용 통화(deflationary currency)가 필요하다”는 주장을 공개적으로 외쳤는데, 거기에 어울리는 가상 통화인 비트코인을 미국 NSA가 1990년대 초반부터 꾸준히 개발해왔다는 것이다. 존재가 알려지지 않은 사토시 나카모토도 실제로는 NSA의 관련 프로젝트 주임연구원이었던 다쓰아키 오카모토라는 주장이다.

이 음모론에 따르면, 비트코인 발행과 사용 등은 컴퓨터에 기록되기 때문에 정보기관이 모든 내역을 알 수 있다. 가상 화폐의 성스러운 창설자로 추앙받는 사토시 나카모토는 비트코인을 가장 많이 소유한 인물(기관)이라는 소문도 확산 중이다. 음모론자들은 이번 해킹 사건을 단순한 해킹이라고 보지 않는다. 비트코인의 과열을 다소 진정시키기 위해 ‘보이지 않는 손’이 작동했다고 믿고 있다. 마운트곡스 사건도 누군가에 의해 의도된 것이라는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비트코인이 1비트코인당 1000달러를 넘어서면서 과열되자 마운트곡스 서버에는 지난해 말부터 분산 서비스 공격(DDoS) 등이 행해졌고 서비스가 안정적이지 못하다는 지적에도 비트코인의 활황세가 가라앉지 않자 결국 해킹이라는 마지막 수단을 동원해 비트코인을 빼내갔다는 것이다.

음모론에 대한 반론도 만만치 않다. 도쿄에 소재한 또 다른 비트코인 업체 창업자인 로저 버는 유튜브에 올린 동영상에서 “마운트곡스의 거래 중단과 해킹 사태는 부실한 프로그래밍 기술이 원인”이라고 진단했다. 다시 말해 이번 사건은 마운트곡스처럼 관리가 허술한 업체 탓에 발생한 것이지 비트코인 자체의 문제는 아니라는 게 로저 버의 설명이다. 실제로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이번 마운트곡스의 파산 보호 신청 사건을 두고 먼저 매를 맞은 격이라는 반응이 적지 않다. 비트코인 시장에 선두로 나선 거래소들에 공통으로 제기되던 보안 문제라는 악재를 먼저 치렀다는 뜻이다.

한때 1100달러가 넘던 비트코인 가치가 500달러대로 반 토막 났지만, 이후부터는 650달러를 넘어서며 회복세를 보이고 있는 것도 이런 해석을 뒷받침하고 있다. 오스틴 알렉산더 뉴욕 비트코인센터 부소장은 영국이 최근 비트코인 거래에 대해 부가가치세 비과세 결정을 한 사실을 언급하며 “아직도 알려지지 않은 좋은 소식이 많다”고 낙관론을 폈다.

“비트코인은 화폐가 아닌 상품”

일부 전문가는 “투자자들이 거래소 파산과 비트코인 자체를 별개로 보고 있다”며 “잇따른 악재는 이미 비트코인 가격 폭락에 모두 반영됐다”고 주장한다. 실제로 올해 1월9일부터 비트코인을 받고 있는 미국 솔트레이크시티 소재 ‘오버스탁(Overstock.com)’도 “3월4일 기준 비트코인 사용 금액이 이미 100만 달러를 넘어섰는데, 당초 2014년 한 해 동안 1000만 달러가 사용될 것으로 봤지만 이런 추세라면 1500만 달러를 넘어설 것”이라고 예상했다.

비트코인 자체를 견제하는 움직임도 동시에 나타난다. 일본 정부는 3월5일 비트코인을 화폐가 아닌 상품으로 간주해 거래에 세금을 부과하고 금융회사에서 취급하지 못하도록 하는 내용을 담은 거래 규칙을 발표했다. 중점 단속 사항은 비트코인을 이용한 돈세탁과 부정 거래다. 미국 정부도 마운트곡스 사태에 관한 조사를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미 피해를 본 고객들은 일본 현지에서 소송을 벌이고 있다. 미국 법원에도 소장이 줄을 잇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마운트곡스 사건은 온라인에 존재하는 가상 화폐의 위험성을 경고한 것”이라며 “중앙은행의 보장이 없는 가상 화폐는 어느 한순간에 사라져버릴 수 있다는 것이 현실로 나타났다”고 지적했다. 반면 한 전문가는 “비트코인이 정부 기관에 의해 만들어졌든 아니든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며 “우리는 단지 쉽고 저비용으로 거래할 수 있는 비트코인의 장점을 즐기고 있을 뿐”이라고 말했다. 익명성과 국적에 구애받지 않는다는 점에서 큰 인기를 끌던 비트코인이 기로에 처한 것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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