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팔아먹고 살기에 ‘시팔이’라 불린다”
  • 조철│문화 칼럼니스트 ()
  • 승인 2014.03.11 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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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디자인하는 ‘SNS 시인’ 하상욱

그가 좋은 직장 그만두고 뭘 새롭게 시작했을 때 아무도 잘되리라는 덕담을 해주지 않았다. 대학 전공과 전혀 다른 분야에서 스스로 좋아 배우고 익힌 것을 살려 짓고 다듬었다. 자신이 만든 작품을 음미하며 짧은 시간이라도 즐거웠다고 한마디해주면 그만이라고 생각했다. 새로운 일에 도전하는 데 돈도 많이 들이지 않았고, 그래서 사람들이 많이 봐주기를 욕망하지도 않았다. 남들의 눈치를 살피는 성격도 아닌데, 잘나서가 아니라 자신이 그러고 사는 삶이 맞다고 생각했다. 그런 자신을 두고 남들은 얼마 가지 않아 그동안 들인 공이 헛되게 될 거라며 내기까지 하는 눈치였다.

그 계통을 좀 안다는 사람들은 대놓고 욕하거나 손가락질했다. 하지만 묵묵히 자신이 하는 일을 사랑했다. 진정성이 통한 것일까. 잘 보이지 않는 곳에 있는 자신을 용케 찾아주었고, “너무 괜찮다”며 치켜세우는 사람이 늘어나면서 그의 작품은 벤치마킹하거나 분석할 만한 대상이 됐다.

ⓒ 시사저널 임준선
“시가 사람보다 중요하진 않다”

<서울 시>라는 시집인지 말장난 그림책인지 모를 책을 펴내 화제가 된 하상욱 작가(34)는 한때 ‘애니팡 시인’으로 알려졌으나 요즘은 애니팡을 하지 않는다. 시의 내용이 짧고 대중적이어서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에서 많은 인기를 누렸다. 그래서 ‘SNS 공감 시인’이라고 소개되기도 한다.

“시를 팔아먹고 살기에 ‘시팔이’라 불리기도 한다. 사람보다 시가 중요하지 않다. 그런데 왜 내 글을 두고 ‘시’라는 잣대를 대고 왈가왈부하는지 모르겠다. 나는 공감이라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교집합을 만드는 데 열중한다.”

그를 만난 3월3일 페이스북에 올린 글은 ‘니가 필요해/ 내가 잘할게’다. 제목은 ‘돈’. 대다수 글이 단 두 줄 짧은 내용이다. 그런 글로 SNS 20만 유저에게 공감을 얻었던 것이다. 처음부터 책으로 펴낼 요량으로 쓴 글이 아니었다. 그런데 트위터·페이스북 등 SNS는 물론 인터넷 포털 사이트에서 많은 사람이 그의 시를 공유하고 널리 퍼뜨렸다. 예상치 못했던 인기에 그의 글에 대한 비아냥거림이나 비판이 한풀 꺾이면서 책 출간까지 가게 됐다.

처음에 오른 글들은 생활 속에서 재치 있게 뽑아낸 낱말놀이 같았다. 남녀노소·세대 구분 없이 다들 고개를 끄덕일 내용이었다. ‘서로가 소홀했는데/덕분에 소식 듣게 돼-애니팡’. ‘끝이 어딜까/너의 잠재력-다 쓴 치약’. 

짧기도 하지만 단숨에 읽고 많은 이가 공감한 게 인기 비결. 따로 글쓰기 수업을 받은 적이 없다는 하 작가는 평소 생활 속에서 반짝하며 떠오르는 생각을 옮겨 적고, 군더더기를 빼고 심플한 글을 모았다.

대학에서 시각디자인을 전공한 하 작가는 디자이너로 활동하다 전자책 업체에서 콘텐츠 기획자로 일하기도 했다. 좋은 디자인은 더 이상 뺄 것이 없는 심플한 디자인이다. 좋은 글 역시 짧고 명료할수록 대중에게 어필할 수 있다는 점에 착안해 이와 같은 글을 지속적으로 써왔다고 했다. 절묘하게 숫자를 맞추거나 첫 행과 둘째 행을 대비시키는 것들이 눈길을 끌었다.

“좋은 디자인은 ‘더 이상 뺄 게 없는 디자인’인 것처럼 개인적으로 시가 길면 재미가 없더라. 본문이 길면 읽히지도 않고 읽기 싫어질 때도 있지 않은가. 짧게 쓰는 재미가 있는데 그 재미가 없어지는 게 싫었다.”

군더더기를 쏙 뺀 글처럼 그의 몸은 작고 날씬했다. 사진을 촬영하는 동안 자신의 일이 그러한 것처럼 갖가지 표정을 지어 보이고 온갖 자세를 취하며 부지런을 떨었다.

“긍정적인 말 속에 폭력이 숨어 있다”

그는 생활 속에서 모두가 공감할 내용을 담아내지만 어떤 이에게는 불편할 내용도 있다. 그렇다고 어느 편에 서서 뭐라고 주장하지는 않는다. 그는 “긍정적인 말 속에 폭력이 숨이 있다”며 ‘잘할 수 있다’라기보다 ‘이런 것은 이런 것이다’며 현실을 직시할 줄 알아야 한다고 했다. ‘착하게 살았는데/우리가 왜 이곳에-지옥철’ 같은 내용이 그렇다.

기성세대와 젊은이가 어떻게 다른지를 알면 세대 간 단절을 소통으로 바꿀 수 있을 거라고도 했다. “이전 세대는 이전보다 나은 삶을 산다. 지금 세대는 지금보다 나을 세상을 본다. 어른과 젊은 세대의 차이는 받침 하나 차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지향점이 반대이기 때문에 많이 노력해야 서로에 대해 이해하고 교집합을 만들어내 교감할 수 있다.”

그를 두고 ‘시인이다’ ‘아니다’로 말이 많은데 정작 자신은 “시인을 자칭해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시인이 되고자 한 것도 아니었다. 내가 잘할 수 있는 것을 연결시켜 새로운 것을 만든 것일 뿐”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하 작가는 살이 찔 겨를이 없다. 즐겁게 상상하고 차 마시며 세상일에 관심 가지는 가운데 나누는 글로써 세상이 나아졌으면 하는 바람이 크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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