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자에게서 특유의 아름다움 발견한다”
  • 김세원│가톨릭대학 교수 ()
  • 승인 2014.03.11 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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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르웨이 출신 세계적 스릴러 작가 요 네스뵈

190cm가 넘는 큰 키에 담배를 입에 문 채, 잔뜩 찌푸린 표정으로 들어올 줄 알았다. 그런데 금발과 깡마른 체구 말고는 요 네스뵈(54)는 외모적으로는 그가 창조해낸 해리 홀레 형사를 닮지 않았다. 턱수염을 기르고 청재킷에 청바지, 등산화 차림으로 나타난 그는 이마가 넓고 턱은 뾰족한 전형적인 천재형 관상을 가지고 있었다.

프리랜서 기자, 증권중개인, 록밴드 리드보컬이자 싱어송라이터, 명성과 부를 거머쥔 세계적인 스릴러 작가. 여러 분야를 자유롭게 넘나드는 다채로운 이력과 다재다능함, 엄청난 다작을 생각하면 ‘천재’라고 불리기에 손색이 없어 보였다. 실제로 그의 영어는 유창했고 그의 답은 정확한 묘사가 돋보이는 그의 작품만큼이나 예리하고 분명했다.

암벽 등반을 위해 태국 방콕에 들렀다가 전날 밤 비행기로 서울에 도착한 그를 2월28일 성북구 성북동 노르웨이 대사관저에서 만났다. <박쥐>와 <네메시스, 복수의 여신>이 한국에서 동시 발간된 것을 기념해 도서출판 김영사·비채가 초청했다.

ⓒ 김영사 제공
북유럽 스릴러의 대표적 작가

요 네스뵈는 최근 북유럽 열풍을 타고 세계적인 인기를 누리고 있는 ‘북유럽 스릴러’의 대표적 작가다. 40개 이상의 언어로 번역된 네스뵈의 소설들은 세계에서 2000만부, 노르웨이에서만 400만~500만부가 팔렸다. 노르웨이 인구가 500만명 내외인 것을 생각하면 전 국민이 1인 1권꼴로 그의 책을 갖고 있는 셈이다. 해리 홀레 시리즈의 대표작인 <스노우맨>(2007년)은 2012년 2월 한국에서 출간된 이래 4만5000부가 팔렸다.

톨비요른 홀테 주한 노르웨이 대사가 직접 작가 소개에 나섰다. 그는 “노르웨이는 유엔 인간개발지수 1위 국가로 생활수준이 높고 무료 교육 등 복지 혜택이 많은 안정적 나라지만 그래서 삶이 좀 지루한 측면도 있다”며 “실제로는 연간 50건 이하의 살인 사건이 일어나는 조용한 나라인데 매년 요 네스뵈 같은 작가들이 작품 속에서 수백 명을 죽여 흥분을 안긴다”고 말했다.

오슬로 태생으로 장래가 촉망되는 청소년 축구선수였던 요 네스뵈는 부상으로 프리미어리그 진출의 꿈을 접고 노르웨이 비즈니스스쿨에 진학했다. 낮에는 증권중개인과 프리랜서 저널리스트로 일하고 밤에는 록밴드 ‘디 데레(그 남자들)’의 보컬 겸 싱어송라이터로 인기를 끌던 네스뵈는 37세에 갑작스레 모든 활동을 중단하고 호주로 갔다가 반년 만에 소설가로 변신해 귀환했다.

갑자기 작가로 변신한 계기는 무엇일까. 그의 얘기는 이랬다.  “1992년 시작한 록밴드 활동이 1997년 한 해 108회 공연을 할 정도로 대성공을 거뒀고 유명세도 탔지만 증권중개인과 병행하는 것이 너무 힘들어 호주로 여행을 가기로 했다. 마침 출판사에서 일하는 친구가 록밴드에 대한 책을 써보지 않겠느냐고 권유했는데 밴드에 대한 책보다는 오랫동안 생각해왔던 범죄소설을 써보기로 했다. 6개월 만에 <박쥐> 원고를 들고 노르웨이로 돌아와 출판사에 가명으로 원고를 보냈는데 2주 후에 연락이 왔다. <박쥐>로 북유럽 최고 문학상으로 꼽히는 유리열쇠상과 리버튼상을 동시에 받았다. 그 후 밴드의 마지막 앨범을 내고 주식 중개 일도 그만둔 뒤 태국 방콕으로 가 두 번째 소설 <바퀴벌레>를 완성했다. 소설 집필에만 의존하는 가난하고 배고픈 삶을 각오하고 있었는데 두 번째 소설도 반응이 좋아 전업작가 생활에 문제가 없었다. 그런데 이 책이 16년 만인 지난주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 1위에 올랐다는 소식을 듣고 놀랐다.”

그는 “악인에게도 공감 가는 부분이 있어야 하기 때문에 나의 내면을 들여다보고 내 안에 있는 사이코패스 같은 성격을 끌어내려고 한다. 그렇다고 해서 악마적인 행동을 할 필요는 없다. 카페에 앉아 오가는 사람들을 관찰하면서 저 사람은 왜 저렇게 움직이는지, 그 동기는 무엇인지를 생각하는 것만으로 충분하다”고 밝혔다.

잔인한 설정이 많이 나오는 이유

요 네스뵈의 작품에는 불치병·희소병 환자가 자주 등장하고 사지절단 등 잔인한 설정이 많이 나온다. 왜 그럴까. “사지절단에 대한 질문들을 많이 받는데 특별한 이유는 없다. 그렇게 세세하게 분석당하고 싶진 않다(웃음). 삶에는 잔인하지만 그래서 아름다운 부분이 있다. <스노우맨>에 피부가 줄어들어 질식하게 되는 희소병 환자가 나오는데 이 설정은 자신의 성격으로 인해 스스로 질식하게 되는 것을 상징한다.”

그는 “나는 항상 사회적 약자, 루저들에게서 어떤 특유의 아름다움을 발견한다. 어떻게 보면 갑작스러운 감정이 아니라 서서히 진행되는 지속적인 슬픔과 외로움이 북유럽 특유의 감성이라고 생각한다. 오슬로 카페에 앉아 사람들을 지켜보다가 말없이 조용히 앉아 있는 사람들에게서 드러나는 슬픔에 매혹되곤 하는데 그 슬픔에 어떻게 대처하는지에 관심이 간다”고 덧붙였다. 지금까지 발표한 소설 중 자신에게 가장 큰 성취감을 준 작품은 무엇일까. “제2차 세계대전을 배경으로 한 <레드 브레스트>라 할 수 있다.”

이 작품은 2011년 여름 세계를 경악하게 만든 노르웨이의 극우 테러리스트 브레이빅의 총기 난사 사건을 11년 전에 예언했다고 해 언론에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요 네스뵈는 “브레이빅 사건이 일어났을 때 오슬로의 인도어 클라이밍장에서 인공 암벽등반을 하고 있었다. 밧줄에 매달려 있어 몰랐는데 다른 친구들은 땅이 흔들리는 것을 느꼈다고 하더라. 귀가 후에 뉴스를 보면서 현실이 소설보다 더 비현실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미국의 9·11 테러와는 달리 이 사건은 개인이 일으켰다는 점에서 지진이나 눈사태 등 자연재해와 같다고 생각한다. 개인적으로나 역사적으로나 잊을 수 없는 사건이었다”고 회상했다.

요 네스뵈는 <밀레니엄>의 작가 스티그 라르손(1954~2004년)의 계보를 잇는 북유럽 스릴러의 대표 작가로 외국 문학을 좀처럼 인정하지 않는 영미권에서 주목받고 있다. 북유럽 스릴러는 눈 덮인 풍경과 혹독한 추위를 배경으로 안정된 복지국가의 평화로운 풍경 뒤에 숨은 어두운 이면과 범죄의 그림자를 드라이하고 직설적인 문장으로 그려내는 게 특징이다.    

요 네스뵈의 <스노우맨>은 2년 전 마틴 스코세지 감독이 제작을 맡기로 하고 유니버설스튜디오에 판권이 팔렸다. 한국에 서 발간된 <눈 위의 피>도 레오나르도 디캐프리오가 제작하기로 하고 워너브러더스에 판권이 넘어갔다. 그가 현재 집필 중인 <더 선>의 판권도 워너브러더스에 팔렸다. ‘밀레니엄’ 시리즈의 첫 편이 007 시리즈의 스타 대니얼 크레이그를 주인공으로 할리우드에서 영화화돼 선풍을 일으킨 것처럼 머잖아 요 네스뵈의 분신인 해리 홀레를 스크린에서 볼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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