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재준의 신념
  • 윤길주 편집국장 ()
  • 승인 2014.03.18 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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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재준 국정원장은 참여정부 때 육군참모총장을 지냈습니다. 그는 노무현 정권의 종북주의에 항거하다 군복을 벗었다는 것을 자랑스럽게 여기고 있습니다. 최고 권력자에 맞서 소신과 원칙을 지켰다는 것입니다. 그는 박근혜정부 초대 국정원장으로 화려하게 부활합니다. 2013년 4월 남 원장은 취임 첫 외부 일정으로 계룡대를 찾아 3군 본부 간부들 앞에서 ‘군인의 길’을 역설합니다. 남재준다운 행보입니다.

예비역들은 그를 군인의 전형이라고 말합니다. 김종대 디펜스21플러스 편집장은 시사저널에 연재되는 ‘장군들의 전쟁’에서 이렇게 썼습니다. “남 원장은 절대 다른 물질과 반응하지 않고 오직 홀로 존재하는 비활성의 기체, 즉 아르곤(Argon)이다. 외골수이며 고집불통이라는 비난과 함께 강직함이라는 찬사가 교차한다. 그에게 세상은 직각이다.”

‘군인 남재준’이 제31대 국정원장이 된 지 1년이 됐습니다. 그는 1년 내내 종북 세력과 전쟁을 벌였습니다. “대한민국의 공산화를 막기 위해 죽겠다”는 그로서는 성전(聖戰)일 것입니다. 그 결과 대선 댓글 개입 의혹, 남북정상회담 대화록 공개, 이석기 내란음모 사건, 채동욱 전 검찰총장 혼외 아들설 뒷조사 의혹 사건 등이 이어졌습니다. ‘어둠의 제왕’이라는 국정원장이 수차례 국회에 불려나와 두들겨 맞고 때론 반박했습니다. 이런 모습을 보며 보수 쪽에서는 남 원장을 영웅으로 치켜세우고 진보 쪽에서는 종북 몰이꾼이라고 비난했습니다.

서울시 공무원 간첩 증거 조작 의혹 사건으로 국정원이 다시 파문의 중심에 섰습니다. 국정원은 잇단 말 바꾸기를 하다 결국 사과했습니다. 국정원 심부가 검찰에 압수수색당하기도 했습니다. 치욕도 이런 치욕이 없습니다.   

남 원장이 간첩 증거 조작 의혹 사건에 대해 어디까지 보고받았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간첩은 어떤 수단과 방법으로라도 때려잡아야 한다’는 그의 신념이 맨 아래 직원들 가슴에까지 각인돼 있는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간첩으로 여겨지면 간첩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빗나간 반공주의 말입니다. 사법 체계나 개인의 인권은 끼어들 틈이 없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해 6월 국정원 개혁을 주문했습니다. 국정원은 지난해 말 이른바 ‘셀프 개혁안’을 내놨습니다. 국회·정당·언론사에 대한 연락관(IO) 상시 출입 제도 폐지와 ‘방어 심리전’ 계속 수행이 골자입니다. 국민 요구에 굴복해 내놓은 개혁안에 알맹이가 없다는 비판이 많았습니다. 개혁은 ‘사람이 하고 사람으로 끝난다’고 했습니다. 인적 청산이 핵심입니다. 개혁 대상에게 개혁을 맡기면 시늉만 할 게

뻔합니다. 고양이가 생선가게를 지킬 리 없습니다.

음지에서 국가안보의 든든한 기둥 역할을 해야 할 국정원이 정쟁의 한복판에서 좌충우돌하는 모습에 국민은 불안합니다. 과거 국정원의 모토는 ‘음지에서 일하고 양지를 지향한다’입니다. 이걸 ‘양지에서 일하고 음지를 지향한다’로 바꿔야 할 판입니다. 지금 원훈은 ‘자유와 진리를 향한 무명의 헌신’입니다. ‘국정원 주연’ 사건들을 보면서 국정원이 모토에 담긴 ‘자유’와 ‘진리’의 진정한 뜻을 알기나 하는지 묻고 싶습니다. 거기다 ‘무명’은 다 까발려져 ‘유명씨’가 되고 말았습니다. 브레이크 없는 국정원, 이대로 뒀다간 더 큰 사고를 칠까 염려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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