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제시 문건 공증인은 ‘유령 인물’”
  • 엄민우·조해수 기자 (mw@sisapress.com)
  • 승인 2014.03.18 1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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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당국 명단에 없는 사람…“수사 과정에서 검찰도 알았을 것”

‘서울시 공무원 간첩 사건 증거 조작’ 논란의 여파가 확산되고 있다. 웬만한 이슈는 시간이 지나면 가라앉기 마련인데 이번 사건은 갈수록 확대되는 양상이다. 사태 초기 침묵으로 일관하던 국정원은 3월9일 밤 유감을 표명했다. 무관한 것처럼 수사에 나섰던 검찰도 의혹의 시선이 자신들 쪽으로 쏠리자 긴장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이번 증거 조작 사건의 쓰나미가 내곡동(국정원)을 넘어 서초동(대검찰청)까지 덮칠 기세다.

검찰은 국정원 대공수사팀으로부터 유우성씨의 간첩 의혹 자료를 모두 넘겨받아 지난해 2월 당시 서울시 공무원 신분이던 유씨를 간첩죄로 구속 기소했다. 지난 2월13일 중국 정부의 공식 발표에 의해 국정원이 제출한 증거 문건에 대한 조작 논란이 불거지자, 검찰은 그동안 대공 사건의 관례를 들며 책임을 피해갔다. 간첩 사건에서 대개 수사는 국정원의 몫이고, 검찰은 기소를 맡을 뿐이라는 것이다. 언론의 추적 보도와 야당의 문제제기 등으로 의혹이 갈수록 증폭되자 검찰은 이른바 ‘블랙 요원’으로 불리는 국정원 협력자 김 아무개씨와 국정원 파견 직원인 이인철 주중 선양 총영사관 영사 등을 소환 조사하고, 국정원을 압수수색하는 등 수사 강도를 높여갔다. 하지만 수사 강도가 높아질수록 검찰 역시 이 의혹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또 다른 의혹들이 드러나고 있다.

‘서울시 공무원 간첩 사건’ 피고인 유우성씨와 위조 의혹을 받고 있는 출입경기록 문서. ⓒ 시사저널 구윤성
허룽 시에 근무하는 공증인은 3명

시사저널은 출입경기록의 위조 가능성을 의심케 하는 추가 정황을 발견했다. 검찰 측이 제출한 출입경기록에 공증인의 것으로 추정되는 서명날인 이름이 실제로 중국 공증인 명단에 없는 사람이었음을 확인한 것이다. 중국의 ‘지린성 사법부’ 홈페이지에 들어가 특정 루트를 따라 들어가면 지린성 지역 공증처에 근무하는 공증인 명단을 확인할 수 있다. 지역별로 총 70개 부문으로 나뉘어 명단이 적혀 있는데, 그중 허룽 시에 근무하는 인물은 모두 3명이다. 대표공증인인 임 아무개씨 외에 주 아무개씨, 지 아무개씨가 공증인으로 등록돼 있다. 중국 정부가 진본으로 인정한, 유씨 변호인 측이 제시한 출입경기록에는 공증인 임씨의 이름 석 자가 푸른색 도장으로 찍혀 있다. 그런데 검찰이 제시한 출입경기록에는 공증인 이름이 찍힌 도장은 없었고, 대신 공증 도장 안에 공증인의 것으로 추정되는 서명날인이 돼 있었다. 시사저널은 이 날인의 이름과 공증인 3명의 이름이 일치하는지 여부를 서울 소재 유명 사립대 중국어과 교수, 국내에서 활동하는 조선족, 중국 관련 공증 업무를 처리하는 업체 인사 등 복수의 관계자에게 각각 확인해달라고 요청했다. 그 결과 흘림체로 쓰여 정확한 이름을 식별하기는 어렵지만 허룽 시 공증인 3명의 이름이 아닌 것은 확실하다는 답변을 동일하게 들을 수 있었다. 그중에는 “굳이 해석하자면 이름이 아니라 발급을 허락한다는 의미의 서명을 한 것으로 볼 수도 있다”는 답변도 있었다. 하지만 이마저도 중국 공증에서 ‘거의 쓰이지 않는 방식’ 이라고 전했다.

유씨 재판 과정에서 검찰이 팩시밀리(팩스) 번호만 다를 뿐, 동일한 내용의 문건을 법원에 각각 제출한 배경에 대해서도 의문이 확산되고 있다. 본지는 검찰 측이 증거로 제시한 문건에 적힌 팩스 번호가 정체불명의 번호임을 최초로 확인해 보도했다(시사저널 2월25일자, ‘9680-2000은 스팸 번호’ 기사 참조). 검찰은 지난해 두 차례에 걸쳐 자신들이 제출한 유씨의 출입경기록이 허룽 시에서 발급됐음을 증명하는 허룽 시 공안국의 ‘사실 확인서’를 법원에 증거 자료로 냈다. 두 문서는 내용은 똑같으나 팩스 번호만 달랐다. 첫 번째 제출한 문서는 중국에서 스팸 번호로 알려진 ‘96802000’번, 두 번째 제출 문서에는 허룽 시 공안국 대표 전화번호인 ‘043342236××’가 팩스 발신번호로 적혀 있었다.

검찰의 압수수색이 있었던 3월10일 국가정보원 입구에 취채진이 몰려 있다. ⓒ 연합뉴스
“팩스 두 번 받았을 때 이미 알았을 것”

검찰은 왜 같은 내용의 팩스를 두 번에 걸쳐 받았을까. 이에 대해 검찰은 “(영사 측이) 팩스 발신번호를 잘못 찍어 보내, 혹시 문제 삼을 수 있어서 허룽 시 공안국에 공식 팩스 번호로 다시 보내달라고 했다고 한다”고 해명했다. 바로 이 점이 국정원뿐 아니라 검찰도 이미 문건의 진위 여부에 대해 충분히 의심했을 것으로 짐작하게 하는 부분이다. 유씨 변호를 맡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의 김용민 변호사는 “96802000번 번호가 이상하니 다시 보내라고 한 그 부분이 (검찰 측도 미리 인지할 수 있었다는) 중요한 부분이다. 같은 내용의 팩스가 두 개 들어오고 발신번호만 달랐다. 변호사도 딱 보고 단번에 알 정도인데, 엘리트들만 모여 있다는 중앙지검 공안부 검사가 몰랐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주장했다.

이번 사건을 지속적으로 들여다보고 있는 국회 법사위 소속 서영교 민주당 의원 또한 기자와의 전화 통화에서 “똑같은 자료가 하자를 보완해 두 번 나왔고, 변호인단 측에서도 지속적으로 자료의 위조 가능성에 대해 지적해왔기 때문에, 검찰은 이 자료가 문제가 있다는 것을 수사 과정에서 알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결국 검찰은 서로 다른 번호가 찍힌 문건을 증거 자료로 제출하는 과정에서 국정원 측이 건넨 증거가 오염된 것이라는 사실을 충분히 인지했을 것이란 의견이 설득력 있게 제기되고 있다.

국정원이 제출한 문서가 정상적인 외교 루트를 통해 입수되지 않았다는 점을 검찰이 사전 인지하고 있었음에도, 재판 내내 문서를 합법적으로 입수했다고 주장한 것 또한 의심이 드는 대목이다. 유씨 사건을 담당한 검찰 수사팀은 지난해 11월 항소심 재판부에 “유씨가 2006년 5월27일 정상적인 방법으로 중국에서 북한으로 들어갔다”는 내용의 출입경기록을 제출했다. 당시 담당 검사는 법정에서 “대검찰청이 중국 지린성 공안청에 출입경기록을 요청하는 공문을 발송한 뒤 지린성 허룽 시 공안국으로부터 발급받았다”고 일관되게 주장했다. 그러나 지난 2월 문서 조작 의혹이 일자 180도 입장을 바꿨다. “지난해 7월 대검찰청을 통해 중국 지린성 공안청에 공식 요청했으나 거부당했고, 이후 국정원을 통해 입수했다”는 것이다. 문서 자체의 신빙성을 높이기 위해 입수 경로를 고의적으로 허위 진술한 것이다.

간첩 혐의로 기소된 유씨의 혐의를 뒤엎을 수 있는 증거나 진술을 확보해놓고도 그 사실을 숨기거나 무시했다는 점도 지적된다. 검찰은 유씨가 2012년 1월22~23일 중국에서 통화한 기록을 확보해놓고도 유씨를 기소할 때 1월23일 입북했다고 공소 사실에 기재했다. 그러나 1심 재판 도중 유씨의 지인을 통해 “1월23일 유씨 가족과 함께 (중국에) 있었다”는 진술이 나오자 “1월24일 새벽 북한으로 들어갔다”며 급하게 공소 사실을 변경했다. 유씨 1심 재판의 결정적인 증인이었던 유씨의 동생 가려씨는 검찰 조사 도중 “국정원 조사에서 한 말은 강압에 의한 허위 진술이었다”고 번복했지만, 검찰은 가려씨의 말을 무시했다고 유씨 변호인 측은 주장하고 있다.

지난 2월14일 검찰 제출 서류가 위조된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는 민변의 김용민 변호사(맨 왼쪽). ⓒ 연합뉴스
“1000만원 썼다면 단순 서류 발급 아니다”

중국 공증 업무를 대행하는 업계에서는 이번 사건에서 위조 사문서 행사 혐의로 구속영장이 청구된 국정원 협력자 김 아무개씨의 경우 단순 발급 대행 수준을 넘어서는 ‘특별한’ 임무를 수행했을 것이란 의견을 제시하기도 했다. 서울 대림역과 남구로역 조선족 타운 일대에는 중국 관련 서류 공증을 대행해주는 업체들이 상당수 자리 잡고 있다. 주로 여행사에서 해당 업무를 수행하는데 조선족들이 영주권을 취득하는 데 필요한 결혼 관련 서류나 ‘무범죄 경력 증명서’ 등을 대신 신청해서 받아다준다. 여행사에 필요 서류를 제출하면, 여행사는 그 서류를 다시 중국 브로커 측에 맡기고 브로커가 해당 문서를 받아 다시 여행사에게게 건네주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보통 브로커에 맡길 때 서류 한 개당 20만원 안팎이면 충분하다고 한다.

흔한 경우는 아니지만 가끔 위조 서류를 브로커가 전달해 법무부 출입국관리사무소에서 적발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취재진은 해당 업무를 진행하는 한 관계자를 접촉해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예전에는 공증 서류 대행에 들어가는 돈이 200만원까지 했으나, 요새는 이 바닥도 경쟁이 치열해 60만원 이하에 거의 다 해결된다. 그런데 1000만원까지 비용을 들였다는 점을 볼 때 (국정원 협력자인) 김씨는 일반적인 공증 문서 발급이 아니라, 국정원과 모종의 거래를 통해 ‘특별한 임무’를 수행하기 위함이라고 의심할 수밖에 없다.”

유씨의 변호인인 김 변호사는 “어쩌면 검찰이 유씨의 간첩 혐의 사건에 대해 계속 공소 유지를 하지 않고 취하할 가능성도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1심에서는 유씨의 간첩 혐의에 대해 무죄를 내렸을 뿐 수사 과정에서 유씨의 동생 가려씨가 고문이나 폭행을 당했다는 점은 인정하지 않았다. 그런데 2심 재판 과정에서 이 문제가 다시 쟁점으로 부각될 수도 있을 것이란 얘기다. 실제 법원은 항소 과정에서 가려씨에 대한 변호인 접견권이 침해됐다는 판단을 내렸다.

하지만 검찰 입장에서도 중도에 항소를 포기하기란 쉽지 않다. 수사 자체가 애당초 무리한 것이었음을 스스로 인정하는 셈이 되기 때문이다. 법원의 판결을 받기도 전에 소를 취하한다는 것은 검찰로서는 치욕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김진태 총장 취임 100일째를 맞아 의욕적인 모습을 기대했던 검찰의 시름이 깊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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