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감원 간부가 뒤 봐주는 사이 호화 룸살롱에서 놀다 해외로 튀다
  • 노진섭 기자 (no@sisapress.com)
  • 승인 2014.03.26 1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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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조8000억 불법 대출 사기 사건…감독기관·은행·사기단 합작품

세간을 뒤흔든 거액 사기 대출 사건 전모가 드러나고 있다. 그러나 주범이 해외로 도피했고, 금융감독원(금감원) 간부가 그 뒤를 봐준 것으로 밝혀지면서 파문이 확산되고 있다. 업체 대표들이 5년 동안 불법으로 대출받은 돈 1조8000억원 가운데 약 3000억원을 갚지 않은 채 개인적인 용도로 착복했다. 고급 별장과 빌딩 등 부동산을 사들이고, 외제 승용차 구매와 해외 원정 도박 등에 돈을 흥청망청 썼다. 서민 대출에는 까다로운 은행들이 이들에게는 줄을 서서 돈을 대줬다. 금융 비리를 감독해야 할 금감원 간부까지 연루됐다. 업계 관계자는 “이번 불법 대출 사건은 감독기관과 은행의 도덕적 해이가 어느 정도인지 보여주는 사례”라고 말했다.

단군 이래 최대의 사기 대출 사건은 사소한 일에서 시작됐다. 2007년 8월 KT ENS(KT 자회사)에 휴대전화 주변 기기를 납품하는 협력업체들이 납품 단가를 10~50% 부풀린 서류로 은행을 속여 대출을 받았다. 이 사실을 KT ENS의 김 아무개 부장(51)이 눈치 챘다. 그러나 김 부장은 협력업체 사장들로부터 뇌물 4000여 만원을 받고 눈감아줬다. 돈맛을 본 이들은 2008년부터 대담한 범죄를 계획했다. 그해 5월부터 올 1월까지 김 부장은 법인 인감을 사용해 KT ENS가 협력업체들에 줄 돈이 있다는 내용의 채권 관련 서류를 가짜로 만들었다. 협력업체 사장들은 이를 이용해 16개 금융기관으로부터 486차례에 걸쳐 모두 1조8335억원을 대출받았다.

사기 대출 사건의 주범 중 한 명인 서정기씨가 불법 대출받은 돈 11억원을 들여 청주에 마련한 별장. 내부에 수영장(오른쪽 위)·테니스장(오른쪽 아래) 등 호화 시설을 갖추고 있다. ⓒ 서울지방경찰청 제공
이들은 대출금 돌려막기를 하면서 은행들로부터 신뢰를 얻었다. 그러나 약 3000억원은 갚지 않고 개인 용도로 사용한 사실이 경찰 수사 결과 드러났다. 김근식 서울지방경찰청 수사과장은 “미상환액 2894억원 중 2280억원은 사용처가 파악됐다”고 밝혔다.

협력업체(엔에스쏘울)의 전주엽 대표(43)는 경기도 판교에 15억원짜리 빌라를 사서 내연녀에게 선물하는 등 부동산 매입에만 311억원을 썼다. 2004년부터 안면을 익힌 또 다른 협력업체(중앙티엔씨)의 서정기 대표(44)와 인천 부평, 서울 목동에 있는 부동산을 각각 175억원과 100억원에 사들이기도 했다.

서 대표는 2009년 충북 청주에 있는 별장을 11억원에 구입한 후 2010년 6억원을 들여 수영장, 연못, 테니스장, 노래방 시설 등을 호화롭게 꾸몄다. 이런 식으로 560억원을 부동산 구입에 쏟아부었다. 그는 현금으로 수천만 원씩 가지고 다니며 지인들과 서울 강남의 유흥업소를 전전해 ‘밤의 황제’로 통했다.

서 대표는 2012년 8월 스마트산업협회 2대 회장으로 취임하면서 그럴듯한 ‘명함’을 갖게 됐다. 은행들은 이런 그를 믿었다. 25개에 불과했던 회원사는 서 대표가 회장으로 취임한 후 급격히 증가했다. 이 과정에서 정부 측 고위 관료가 개입했다는 의혹이 불거졌다. 미래창조과학부 차관이 협회의 초대 명예회장으로 이름을 올렸던 탓이다. 미래창조과학부는 해명 자료를 통해 “차관이 스마트 산업 분야 중소기업을 활성화한다는 취지에 공감해 협회의 명예회장직을 맡은 것은 사실이나, 명예회장으로서 협회로부터 보수 등 어떠한 지원을 받거나, 협회에 도움을 준 적은 없다”고 밝힌 바 있다.

금감원 직원이 조사 사실 흘려

전 대표와 서 대표 등 협력업체 사장들이 은행 대출금으로 호화로운 생활을 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KT ENS 김 부장의 공모가 있었다. 위조 서류를 만들어준 것뿐만 아니라 서류의 진위를 확인하는 은행 측의 요청을 해결해줬다. KT ENS는 법인 인감을 아르바이트생에게 맡기는 등 관리가 허술했다. 이에 대한 대가로 협력업체 사장들은 김 부장에게 벤츠 차량과 법인카드 등 4억원 이상을 준 것으로 밝혀졌다.

사기 대출 사건에 금융감독원 간부가 연루됐다는 수사 결과가 나오자 금감원에 대한 비판이 고조되고 있다. ⓒ 시사저널 이종현
이들의 사기 행각은 지난해 12월 꼬리가 밟혔다. 금감원 저축은행검사국의 박 아무개 팀장은 여신 상시 감시 시스템에서 수상한 점을 발견했다. 여신 상시 감시 시스템은 저축은행의 불법 행위에 대응하기 위해 금감원이 지난해 구축한 것으로 저축은행의 대출에 이상 징후가 없는지 조사하는 일을 한다.

박 팀장은 지난 2월5일 사기 대출에 대한 결정적인 증거를 잡았고 금감원은 2월6일 언론 브리핑을 통해 전모를 공개했다. 금감원이 언론에 사기 대출 건을 터뜨리자 경찰이 수사에 나섰다. 서울지방경찰청 경제범죄특별수사대는 3월19일 KT ENS 김 부장과 전 대표, 서 대표 등 협력업체 관계자 8명을 구속하고 관련자 7명을 입건했다고 밝혔다.

그런데 금감원이 사기 대출을 공개하기 전에 문제가 생겼다. 금감원이 사기 대출을 조사한다는 사실이 금감원 자본시장조사국 소속 김 아무개 팀장의 귀에 들어갔다. 김 팀장은 1월과 2월 두 차례에 걸쳐 관련 사실을 박 팀장에게 들은 것이다. 김 팀장과 박 팀장은 막역한 사이다. 동년배에 같은 대학 법대 출신이며 금감원에서는 연이어 노조위원장을 지냈다. 2004년까지는 박 팀장이, 2005년부터 2007년까지 김 팀장이 노조위원장을 맡았다.

김 팀장은 2월3일 이 사실을 이번 사건의 주범 중 한 명인 서 대표에게 알려줬다. 김 팀장과 서 대표는 오래전부터 알던 사이였다. 그 다음 날 또 다른 주범인 전 대표는 홍콩을 경유해 해외로 달아났다. 경찰은 전 대표의 신병 확보를 위해 국제형사경찰기구(인터폴)에 적색수배 요청을 했다.

금감원 직원 60억원 상당 뒷돈 챙겨

비리를 감독해야 할 감독기관 당국자가 사기 대출 조사 진행 상황을 외부에 유출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수사 칼날은 금융권과 당국으로 확대됐다. 추가로 대출을 승인해준 은행 내부 관계자의 연루 여부도 관심 대상으로 떠올랐다. 주범인 전 대표가 해외로 도주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금감원의 비호가 있었던 셈이다. 경찰은 금감원의 김 팀장이 뒤를 봐준 혐의에 대해 수사 중이다. 김 팀장이 서 대표에게 금감원의 조사 사실을 흘려준 정황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김 팀장은 2008년 서 대표가 경기도 시흥의 200억원대 농장을 구입할 때 지분 30%를 공짜로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또 필리핀 등에서 해외 골프 접대를 받았다. 경찰은 이 지분이 대출 사기 범행과 관련이 있는지 확인 중이다. 금감원 감찰실 관계자는 “김 팀장을 3월 초 직위해제한 후 대기발령 조치를 하고 검찰에 관련 수사를 의뢰했다”며 “검찰 수사 결과에 따라 징계면직 등 엄중히 조치할 예정이며 향후 유사 사례 발생 시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엄정히 처벌할 것”이라고 밝혔다.

김 팀장에게 불법 대출과 관련한 금감원 조사 내용을 흘린 금감원 저축은행검사국 박 팀장에 대해서도 비밀 누설 혐의로 조사했다. 박 팀장은 김 팀장과 사기 대출로 구속된 서 대표 간의 관계를 몰랐고, 서 대표와는 일면식도 없다고 부인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금감원은 박 팀장이 내부 규정을 어겼지만 고의성이 없다고 보고 징계위원회는 열지 않기로 했다. 금감원 관계자는 “박 팀장은 김 팀장과 협력업체들의 관계를 모른 상태에서 단순히 김 팀장의 질문에 답했을 가능성이 크다”며 “다만 아직 끝나지 않은 개별 검사에 대한 사안을 누설했기 때문에 징계는 아니더라도 인사상 불이익은 피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경찰은 은행 직원의 연루 가능성도 조사 중이다. 은행이 서류만 제대로 확인했어도 사기 대출은 지속되기 어려웠을 것이라는 게 경찰 측 설명이다. 협력업체들이 금융기관에 제출한 문서는 실제 KT ENS가 사용하는 서류와 양식이 달랐다. 협력업체들이 내는 세금계산서가 제대로 발급된 것인지, 매출은 진짜인지 확인하지 않는 등 대출 관리도 소홀했다. 협력업체들이 대출금 상환일을 잘 지키자 은행들은 협력업체들을 의심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금감원은 이번 사기 대출 사건에 일부 은행 직원들이 연루됐을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집중 조사를 벌이고 있다. 금감원은 사기 대출로 피해를 본 하나은행·농협은행·국민은행·한국씨티은행에 대해 최근 현장 검사를 실시했다. 이번 대출에 관련된 직원들의 계좌 추적에서 증빙을 찾아내지는 못했으나 수년간 1조8000여 억원의 부실 대출이 발생하는 과정에서 은행이 몰랐다는 것은 이해가 되지 않는 대목이다.

은행 직원 연루 가능성도 있어

이번 사기 대출은 중소업체의 불법 대출에서 시작됐지만 그 뿌리에는 감독기관과 은행들의 유착이 똬리를 틀고 있다. 특히 금감원은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은행감독원·증권감독원·보험감독원 통합 조직으로 출범해 금융 전반에 걸쳐 막강한 권한을 가진 조직이다. 공무원이 아닌 반민반관(半民半官) 조직으로 평균 연봉이 9000만원이 넘는 ‘신의 직장’으로 통한다. 그러면서도 정부에서 위임받은 감독권을 앞세워 온갖 비리에 개입해 국민의 분노를 샀다. 전·현직 임직원 10여 명이 억대의 뇌물을 받고 처벌받은 저축은행 사태는 불과 3년 전 일이다. 동양그룹 사태 등에서 보았듯 국민을 울리는 기업들의 불법 행위에도 사실상 직무유기를 했으며, 개인정보 유출 사건에서도 “2차 유출이 없다”며 국민을 우롱했다. 금감원은 감독 기능을 통해 국민을 보호하는 조직이 아니라 온갖 금융 비리에 가담했다. 업계에서 금감원이 ‘금피아’로 통하는 이유다.

금융 소비자 보호 관련 시민단체인 금융소비자원(금소원)은 금감원의 부실 감독에 대한 책임을 조사해달라는 국민감사를 감사원에 청구하기로 했다. 조남희 금소원 대표는 “무려 5년여 동안 1조8000억원에 달하는 부정 대출이 이뤄진 것을 금감원·은행 등이 알아채지 못해 KT ENS 협력업체 대출 사기 사건이 발생했다. 감독 책임 부실과 내부 직원 연루 가능성이 있어 감사원에 국민감사를 청구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그는 “하나은행이 4년 넘게 1조1000억원 규모의 사기 대출을 당한 것은 기본 대출 시스템조차도 관리하지 않았던 것이고 최고경영자의 무능을 보여준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번 사기 대출 사건에 하나은행 직원의 협조가 있었을 것이라는 의혹을 제기한 것이다. 하나은행이 지난해 12월 KT ENS에 내용증명을 보내 대출 서류의 진위를 문의하는 등 이미 이 사실을 알고 있었고, 금감원도 인지하고 있었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금소원은 “이번 사건이 공식적으로 알려진 후 하나은행은 자체 조사를 하겠다고 했으나, 이후 ‘아무런 증거를 못 찾았다’고 하고 있다”며 “이는 내부 직원과의 연루가 발견되면 향후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불리해질 것을 우려해 조사를 게을리한 게 아닌지 의혹을 지울 수 없다”고 주장했다. 또 “이번 사태를 계기로 금융위와 금감원의 감독체계 근본을 재점검해야 하며, 청와대와 국회는 반드시 근본적인 수술을 해야 할 시점이라는 인식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KT ENS 측 “우리 회사는 불법 대출 주범 아니다” 


KT ENS는 연간 매출이 약 6000억원 내외로 KT의 자회사 중 10위 안에 꼽히지만 일반인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았다. 엄밀히 따져보면 KT ENS는 사기 대출 주체가 아니다. 그러나 한 직원이 연루되면서 ‘못 믿을 기업’이 됐다. 모회사인 KT까지 나서서 적극적으로 해명했지만 별 소용이 없다. 사기 대출을 둘러싸고 온갖 설이 제기되면서 KT ENS의 대외 신뢰도는 급격히 떨어졌다. 금융회사들과 책임 소재를 놓고 공방도 오갔다. 급기야 은행들의 상환 압박이 잇따랐고, 자금 조달이 힘들어지면서 KT ENS는 3월12일 법정관리를 신청했다.

KT ENS는 3월20일 이사회도 물갈이했다. 금감원 전자공시를 통해 공정거래위원회에 제출한 임원 변동 내역에서 이사회를 구성하는 등기임원 5명 가운데 4명을 교체했다고 밝혔다. 김성만 대표, 차재연 감사 등이 3월11일자로 사임했다. 같은 날짜로 강석 전 KT ENS SD본부장을 새 대표로 뽑았다.

이 회사 노조는 3월20일 성명을 내고 “경찰 수사 결과의 요지는 ‘사기 업체들이 금융기관으로부터 1조8000억원 상당을 부정 대출받고 KT ENS의 내부 공모는 없는 것’인데도 일부 언론은 ‘KT ENS 대출 사기’ ‘불법 대출’ ‘사기 대출’ 등의 표현을 사용해 마치 우리 회사가 불법 대출을 일으킨 주범인 양 몰아가 400여 조합원 가슴에 씻을 수 없는 상처와 울분을 안겨줬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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