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국 해서 번 돈이 운석 사는 밑천이었다”
  • 정락인·김지영 기자 (freedom@sisapress.com)
  • 승인 2014.03.26 13:46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진주에서 운석 발견된 후 관심…국내에도 수집가들 많아

경남 진주가 운석 때문에 들썩이고 있다. 최근 운석이 무더기로 발견되면서 국내는 물론 세계의 이목을 끌고 있다. 운석은 희소성 때문에 ‘하늘의 로또’로 불린다. 가격도 ‘부르는 게 값’이라고 한다. 운석의 소유권이 최초 발견자에게 있다고 해석되면서 ‘행운’을 줍기 위한 행렬이 줄을 잇고 있다.

운석은 하늘에서 떨어진 주인 없는 물건인 데다 문화재로 보기도 어려워 부동산 소유자에게 소유권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그러다 보니 국내외 운석 사냥꾼들이 진주로 몰려들고 있는 것이다. 이들이 논밭과 주거지들을 이 잡듯이 들쑤시고 다녀 해당 지역 주민들은 몸살을 앓고 있다.

국내 최다 운석 보유자 김동섭 소장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발견된 운석은 1943년 전남 고흥군 두원면에 낙하한 것이다. 당시 운석은 일명 ‘두원 운석’으로 명명됐지만 소유권이 일본으로 넘어갔다. 현재는 임대 형식으로 국내에서 보존 중이다. 이번에 진주에서 나온 운석은 두원 운석에 이어 두 번째로 71년 만에 발견됐으며, 우리나라가 소유권을 갖는 최초의 운석이다. 

김동섭 소장 ⓒ 시사저널 구윤성
운석의 가치가 높게 평가되면서 ‘운석 수집’도 덩달아 관심을 끌고 있다. 현재 국내 유일의 운석 전문 수집가는 김동섭 한국운석광물연구소 소장(80)이다. KBS TV <진풍명품>에서 감정위원(보석·운석·광물·화석)을 맡기도 했다. 현재 김 소장이 보유하고 있는 운석은 1100여 점에 이른다. 그가 운석을 수집한 것은 1980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해외에 나가 현지 자연사박물관을 견학하며 운석에 관심을 갖게 됐다. 이때부터 지금까지 187개국을 돌아다니며 운석을 수집했다. 주로 운석 사냥꾼들을 만나 구매하는 형식으로 모았다.

김 소장은 러시아와 국교를 맺지 않았을 때는 북한 여행사를 통해 운석을 사오기도 했다. “한번 수집해야겠다고 생각하면 반드시 손에 넣어야 직성이 풀린다”고 할 정도로 운석이 있는 곳이면 어디든 달려갔다. 김 소장은 자신이 운석 사냥꾼이나 장사꾼으로 비치는 것을 경계한다. “돈에는 별로 관심이 없다. 그냥 운석을 모으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하고 뿌듯하다. 한 번도 운석을 모은 것을 후회한 적은 없다.”

지금까지 전 재산을 털어 모은 운석의 가치는 적게는 1g당 수백만 원에서 많게는 수십억 원까지 나간다. “지난해 러시아에 떨어진 운석은 1조원에 낙찰돼 3조원에 팔리지 않았나. 나는 젊었을 때 아내와 약국을 운영하며 꽤 큰돈을 벌었다. 그 돈으로 당시 평당 100원에 경기도에 3만5000평의 땅을 샀다. 이것이 개발 호재로 가격이 폭등해 평당 100만원까지 갔다. 이 돈이 운석을 사는 밑천이 됐다. 운석이 떨어졌거나 발견됐다는 소식을 들으면 땅을 팔고 그 돈으로 운석을 사가지고 왔다.”

김 소장은 평생 모은 운석을 학문 연구를 위해 아낌없이 기증하기도 했다. 2005년 6월에는 한양대 안산캠퍼스 자연사박물관에 광석·운석·보석 1만3000여 점을 기증했다. 이 공로로 명예 이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지금까지 18곳에 수집품을 무상으로 기증했는데, 그 운석의 가치만 2400억원에 이른다. 2004년에는 딸 지현씨와 함께 672종의 운석을 정리한 <운석도감>도 펴냈다.

김 소장의 꿈은 세계에서 가장 큰 자연사박물관을 만드는 것이다. “내가 보유하고 있는 운석이 충북 음성 창고에만 448점 있다. 미국 스미스소니언보다 많다. 이곳 운석으로 9층탑을 제작하기도 했다.” 그는 진주 운석에 대해 “운석은 희귀할수록 귀한데 이것은 희귀한 게 아니다. 가격으로 치면 1억5000만원에서 2억원가량 나갈 것 같다. 문화재로 지정하려는 움직임이 있는데 그럴 경우 3배 정도 값이 뛸 수 있다”며 “운석은 달과 화성에서 나온 것일수록 가격이 높다. 지금 1억원이라도 몇 년 뒤면 두세 배 이상 뛴다. 구할 수가 없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김정우 대표 ⓒ 시사저널 임준선
희귀 광물 10만점 소장 김정우 대표

경기도 남양주시 진접읍에는 국내 최대 규모의 사립 자연사박물관인 ‘우석헌’이 있다. ‘어리석지만 아름다운 돌의 집’이라는 뜻이다. ‘우석’은 설립자인 김정우 대표(67)의 호다. 이곳 상설 전시장에는 광물만 2700여 점을 전시하고 있고, 수장고에 있는 것까지 합치면 10만점이 넘는다. 운석도 수십 점이 있다. 실제 전시장과 수장고에는 희귀한 광물들이 가득했다. 김 대표는 1987년 브라질에 간 것을 계기로 광물을 수집하기 시작했다. “돌이 얼마나 아름다웠던지 혼자 보기가 아까웠다. 그때부터 돌을 사기 시작해 지금에 이르렀다.”

김정우 대표는 취재진이 방문했을 때 운석 세 점을 탁자 위에 올려놓고 설명을 했다. 진주 운석에 대해 물었더니 “직접 보지는 않았지만 언론에 나온 것을 보면 철진운석(철과 니켈의 합금으로 이뤄진 것)은 아닌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진주 운석이 발견된 지점을 보면 땅이 깊게 패지 않은 것이 이상하다”며 “운석은 보통 포물선을 그리며 떨어지고 700~800m 땅속으로 들어간다. 그런데 지표에서 30cm 정도에서 발견됐다는 게 좀 의아스럽다”고 말했다.

영화감독 지망생이었던 김 대표는 주변에서 ‘광물에 미쳤다’고 할 정도로 운석 수집에 평생을 바쳤다. 지금까지 30여 국가를 돌아다니며 광물을 모았다. 운석도 마찬가지다. 왜 광물에 집착하느냐고 했더니 “자연사는 지구의 원천이다. 그 뿌리가 되는 것이 광물과 화석이다. 아름다운 광물에 취하면 마약에 빠져드는 것과 같다”고 말했다.

얼마 전 우석헌 학예팀은 진주에서 중생대 화석을 발굴하기도 했다. 이곳에는 매년 초·중·고 학생들과 교사 등 10만명 정도가 다녀간다. 우석헌의 소장품 중 1만여 점이 국가생물다양성기관에 등록돼 있을 정도로 학술적 가치가 높다. 김 대표는 “광물은 신이 만든 시들지 않는 꽃”이라고 표현했다.

포털 사이트 네이버 카페 ‘금을 캐자’ 개설자인 이수영씨(67)는 젊었을 때 강원도 사북탄광에서 6개월 정도 광부로 일했다. 그 후 광업진흥공사(현 광물자원공사)에 입사해 7년 동안 전국을 돌아다니며 광물 시추 작업을 관리·감독했다. 그 밖에도 국내외 여러 곳에서 유전 탐사 개발, 금·은·구리 등 광물 탐사 활동을 했다. 현재 개인적으로 소장하고 있는 광물은 100여 점 정도다.

이씨는 2009년 네이버에 카페를 개설하고 일반인들이 광물을 보내와 의뢰하면 종류와 가격을 매겨주는 일을 했다. 진주 운석이 화제가 된 뒤에는 카페 방문객과 가입자가 크게 늘어났다. 이씨는 “운석이 떨어진 날 50여 명이 신규 가입을 했다. 학생도 있고, 심지어 중국인도 있다”고 말했다. 이씨는 주말마다 광맥을 찾아 전국 각지를 다닌다. 진주에 운석이 떨어졌다는 소식을 듣고 두 번이나 탐사차 진주를 방문했다.

구창식 광물수집가협회 회장(55)도 ‘광물 수집광’이다. 학원에서 수강생 교육용으로 보석 광물 2000여 점을, 개인 소장용으로 100여 점을 보유하고 있다. 그는 “우리나라는 운석도 없고, 보석도 없다. 자수정도 고갈된 상태다. 구하기가 힘들어 해외에서 전시회가 열릴 때 가서 산다”고 말했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