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식의 죽음 기다리는 어미의 심정 아는가”
  • 노진섭 기자 (no@sisapress.com)
  • 승인 2014.03.26 1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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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어야만 고통 끝나는 ‘희소병’…가족에만 맡겨선 안 돼

자식의 죽음을 기다리는 어미가 있다. 열 달 배 아파 낳은 어미도 아들의 희소병엔 어쩔 도리가 없다. 아들(박지훈·19) 병치레로 10년을 하루같이 살아낸 어미(신경숙·45)는 익숙해질 만한데도 눈물만 난다. 아들이 경기를 일으킨 것은 2004년 추석 무렵. 입원해서 수많은 검사를 받았지만 병 이름조차 알 수 없었다. 병원에서 신경안정제를 투여받은 후 그 부작용으로 40도를 오르내리는 고열과 온몸에 퍼진 물집으로 생살이 벗겨지고 각막이 녹아내렸다. 고통을 견디다 못한 아홉 살배기 입에서 나온 말은 이랬다. “엄마, 이만큼 아팠으니 이제 죽어도 돼?”

어미는 세상이 무너져 없어지길 바랄 정도로 원망스러웠다. 아들은 이름도 들어본 적 없는 희소병(스티븐스 존슨 증후군)에 걸렸고 치료법은 없었다. 시력을 잃어 시각장애인이 된 아들의 몰골은 앙상해져갔다. 가망이 없다던 아들은 10년을 버텼다. 학교에 다닌 날보다 병원에서 치료를 받은 날이 더 많다 . 지금도 한 달에 10일은 병원에 가서 치료받는다. 19세 한창 나이에 겨우 37㎏의 몸무게를 이끌고 걷기조차 버거울 정도로 폐가 나빠졌고, 병원에서는 마지막 수단으로 폐 이식 수술을 해보자고 했다. 아들의 마지막을 준비하라는 얘기나 다름없었다. 그 수술을 받아도 목숨을 몇 개월 아니면 몇 년 연장하는 정도밖에 안 된다는 사실을 모자는 안다. 커서 책을 쓰는 작가가 되고 싶다는 아들이 “불쌍해 죽겠다”는 어미는 말끝을 잇지 못했다. 고열에 눈물샘이 녹아내려 눈물조차 흘릴 수 없는 아들은 어미 옆에서 한사코 인공 눈물을 눈에 넣었다.

10년째 희소병(스티븐스 존슨 증후군)을 앓고 있는 아들(오른쪽)과 어머니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 시사저널 임준선
희소병에 걸리는 순간 그 가정은 나락으로 떨어진다. 일반 장애인은 시간이 지나면 어느 정도 안정되지만 희소병은 진행되는 병이다.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는 불안감이 가족을 짓누른다. 죽어야 끝날 것 같은 고통에 몸부림치는 환자나 생계를 내팽개친 채 환자를 지키는 보호자나 모두 그 불안감의 무게를 감당하기 어렵다. 그래서 환자는 스스로 목을 매려고 하고, 가족은 매일 아침 그 환자가 살아 있음에 가슴을 쓸어내리기를 반복한다.

희소병 환자에게 돈은 ‘생명의 끈’

홍진미씨(가명·48)는 비 오는 날이 좋다. 티 없이 맑은 날을 좋아했지만 10년 전 그날부터는 울어도 티가 나지 않는 비 오는 날을 기다렸다. 세 딸을 얻은 기쁨은 2003년 둘째가 초등학교 3학년이 되면서 절망으로 변했다. 희소병(뮤코지방증) 판정을 받았고 셋째도 마찬가지였다. 손가락이 굽는 등 모든 기관이 이상을 보여 정상적인 생활이 어려웠다. 어릴 적에 또래보다 말을 늦게 시작했고, 첫 걸음마를 시작할 때도 넘어지기 일쑤였던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완치는 요원했고 병이 악화하지 않도록 수술을 받고 주사를 맞는 데만 수천만 원이 들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남편마저 회사에서 작업 도중에 두 다리가 부러지는 사고를 당해 몸져누웠다. 두 딸과 남편의 치료비는커녕 당장 생계가 막막했다. 그동안 벌어둔 돈을 다 까먹고 친정과 시댁에 손을 벌렸다. 그것도 한두 번이지 염치없이 더 도움을 청할 곳이 없어 사채까지 썼다. 남편이 겨우 회사로 복귀했지만 150만원 남짓한 월급으로는 이자 갚기에도 빠듯하다. 둘째 딸은 고등학교를 졸업했지만 지능이 오래전에 멈춘 상태여서 대학 진학은 어림없었다. 다 큰 딸이 어린애처럼 엄마의 보살핌을 받으며 온종일 집 안에서만 지낸다. 고등학생인 셋째 딸도 내년에 졸업하면 그런 생활을 이어갈 것이 빤하다. 홍씨는 “가정에 희소병 환자가 생기면 생활 자체가 붕괴한다”며 “나라가 좀 도와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들에게 생명의 끈은 곧 돈이다. 돈이 있으면 조금이나마 생명을 연장할 수 있고, 적어도 고통스러운 증상을 줄일 수는 있다. 그렇지만 그 돈을 마련하기란 가족에게 큰 짐이다. 그 많은 돈을 썼으니 조금이라도 호전되면 좋으련만 환자가 끝내 숨을 거두면 그 가정은 풍비박산이 난다. 희귀난치성질환센터는 그런 환자가 50만명에 이를 것으로 추정한다.

환자를 돌볼 가족이 있으면 그나마 다행이다. 사망이나 이혼 등으로 환자 혼자 남을 경우에는 목숨이 위태롭다. 일부는 장애인시설 등으로 보내지지만 장애인이 아닌 까닭에 시설에서 난색을 보인다. 교회에 시설(더불어 사는 집)을 만들어 홀로 남겨진 희소병 환자 20여 명을 12년째 돌보고 있는 이태훈 목사는 “내 아들도 근육병(근육이 굳는 희소병) 환자여서 그들의 고충을 안다. 그런 이유로 개인 시설을 운영하고 있지만 인천시가 지원해주는 돈은 1년에 1600만원인데 그나마 올해부터 6000만원으로 올랐다”며 “희소병은 진행 중이어서 위급해지면 병원 응급실로 뛰어갈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고 어려움을 호소했다. 

까다로운 의료비 신청 과정, 그사이 가정 붕괴

정부는 2001년부터 ‘희소·난치성 질환자 의료비 지원 사업’을 폈다. 박근혜정부는 지난해 희소병을 포함한 4대 중증 질환 보장을 강화하는 계획을 발표했다. 국민건강보험으로 희소병 환자 가족의 경제적 부담을 덜어주겠다는 의미다. 약값·진료비 등에서 환자 본인이 부담하는 비율이 20% 이상에서 10%로 낮아졌다. 그러나 국제적으로 공인된 7000여 종의 희소병 가운데 134종만 의료비 지원 혜택을 받는다. 전체 환자 중 의료비 지원을 받는 환자는 20% 정도에 불과하다.

의료비 지원을 받을 수 있는 환자라도 발병부터 실제로 지원을 받기까지 수개월에서 수년이 걸린다. 지원 자격을 갖추려면 ‘질병 분류 코드’를 부여받아야 한다. 해당 질병을 앓고 있어도 확진을 증명할 수 없으면 신청조차 불가능하다. 환자들은 결국 소수 전문가로부터 정확한 진단을 받기 위해 일부 대형 병원으로 몰려들고 이 과정에만 수개월이 걸린다.

확진 판정을 바탕으로 산정 특례 등록을 해야 한다. 확진일부터 30일 이내에 환자는 담당 의사가 서명한 등록 신청서를 국민건강보험공단에 직접 제출하거나 병원을 통해 대리 제출해 등록을 마쳐야 한다. 이 등록이 완료되면 다시 서류를 갖춰 지역 보건소에 제출한다. 보건소는 자료를 바탕으로 관할 사회복지과에 통합 조사를 의뢰하고 다시 그 결과를 받아 지원 대상 등록 여부를 결정한다. 그동안 희소병 환자 가정은 집 팔고, 사채까지 쓰면서 최하위층으로 전락한다.

희소병 환자가 모든 의료비를 지원받는 것도 아니다. 암, 뇌질환, 심장질환에는 거의 무료로 받을 수 있는 MRI 진단도 희소병에는 일부만 지원된다. 희소병(다발성 경화증) 환자인 신현민 희귀난치성질환연합회장은 “유방암 항암제가 내 병에 조금 도움이 되는데, 같은 항암 주사제를 맞아도 유방암 환자는 10만원만 부담하지만 나는 200만원을 낸다”며 “본래 유방암 약이지 다발성 경화증 약으로 FDA(미국 식품의약국) 승인이 난 것이 아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희소성 질환에는 약이 없다. 그래서 일반 약으로 합병증을 막는 정도에 그친다. 희소병은 중증 질환이지만 일반 약을 돈 걱정 없이 쓸 수도 없다. 김중곤 국립보건연구원 희귀난치성질환센터장(서울대병원 소아과 교수)은 “선천성 면역결핍증 환자는 면역력이 약해 항생제나 진균제와 같은 약을 일반 환자보다 많이 사용한다”며 “그러나 일반 환자보다 많이 사용하는 약값에 대해 건강보험을 적용받지 못해 환자가 자비로 부담할 수밖에 없는 실정”이라고 설명했다.

증상 악화를 막는 약이라도 있으면 다행이다. 그나마 전부 수입 약(미국 제품)인 탓에 가격은 비싸고, 부작용이 있어도 감내할 수밖에 없다. 공급도 불안하다. 실제로 미국에서 수입하던 약의 공급이 한때 잘 되지 않아 환자들이 애를 먹은 적이 있다. 진동규 삼성서울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는 “국내 제약사가 이런 약을 만들면 약값을 낮출 뿐만 아니라 약 공급도 안정된다. 기존 약에 차도가 없던 환자가 새로운 약으로 호전될 수도 있다”며 “헌터증후군에 대한 약을 국내 제약사가 개발하자 이 약을 사용하기 위해 다른 나라 환자가 국내 병원을 찾아오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환자 수가 적으니 제약사가 막대한 개발비를 들여 약을 만들어도 수지가 맞지 않는다. 약을 개발해도 실제로 환자가 사용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정부가 약을 환자에게 사용하도록 승인하려면 독성과 안전성에 대한 근거(임상시험 결과)가 있어야 한다. 그런데 환자 수가 적으니 임상시험에 참여할 환자 수가 턱없이 부족해 임상시험 자체가 어렵다.

피부는 물론 장기 근육까지 굳어가는 희소병인 근육병 환자들이 모여 사는 시설(더불어 사는 집)에서 한 환자가 산소호흡기 줄로 생명을 이어가고 있다. ⓒ 시사저널 임준선
관련법도, 전문가도 없어

일각에서는 완치가 어려운 희소병 환자에게 나랏돈을 무한정 쏟아부을 수는 없다고 지적한다. 그 돈을 건강을 회복할 수 있는 환자에게 사용하는 편이 효율적이라는 것이다. 이에 대해 신 희귀난치성질환연합회장은 “희소병 약은 거의 없어서 건강보험 혜택을 받고 싶어도 못 받는다”며 “희소병이 40조원의 건강보험에 주는 부담은 에이즈보다 작아 연간 700억원 안팎”이라고 반박했다.

공공복지 차원에서 희소병 환자를 지원하는 정책에 문제가 있다. 질병 분류 코드로 분류되는 희소병은 지원하고, 그렇지 않으면 아무리 중증 질환이라도 지원 대상이 되지 않는다. 네덜란드에서는 기형아가 태어나면 1년 지원한 후 치료가 될지 안 될지를 따져 그 다음 단계 지원 여부를 결정한다. 싱가포르는 희소병으로 파산 지경에 이른 환자를 나랏돈이 아니라 의료 펀드로 지원해 국가 부담을 줄였다. 허대석 서울대병원 혈액종양내과 교수는 “같은 질환이라도 사람마다 상태가 달라 환자에 따라서 지원 범위를 적용할 필요가 있다”며 “환자가 보건복지부 앞에서 시위하면 지원해주고 그렇지 않은 환자들은 지원하지 않는데, 이런 차별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 고민해야 할 시점”이라고 지적했다.

희소병에 대한 대응 체계가 없으니 각 질환에 대한 전문가도 없다. 병원에 가서 여러 가지 진단을 받아도 어떤 병인지 밝혀내지 못하는 이유다. 각 대학병원에는 희소병센터가 있지만 전문가는 없는 상태다.

의사가 개인적으로 희소병에 관심을 갖고 연구하려 해도 연구비를 지원해주는 곳이 없다. 이런저런 이유로 희소병 진단과 치료 방법은 발전하지 못하고 제자리걸음을 되풀이하는 실정이다. 김중곤 희귀난치성질환센터장은 “충청·호남·영남·대구에 4개 거점 병원을 만들어 희소병을 보는 의사 150명이 정보를 공유한다”며 “사실 희소병이 수천 가지여서 최소한 수백 명의 전문가가 필요하지만 그렇지 못한 실정”이라고 밝혔다. 

정부가 희소병 환자를 지원한다면서도 근본적인 체계를 잡지 못하는 이유는 관련법이 없기 때문이다. 장애인을 위한 법은 있지만 희소병 환자를 위한 법이 없어서 보건복지부장관의 고시나 지침에 따라 정책이 오락가락한다. 2012년 국회가 관련 법안을 만들었지만 현재까지 서류 더미에 묻혀 있다.

건국대 사회복지학과 이현희 박사의 논문(‘희귀난치성 질환 자녀를 둔 어머니의 생활 경험에 대한 질적 사례 연구’)을 보면 가정에 희소병 환자가 발생하면 그 끝은 대개 ‘가족의 붕괴’다. 지난해 2월 정 아무개씨(49)는 희소병 환자인 아들 둘을 남기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퀵서비스로 돈을 벌던 남편은 사고로 다리를 다쳐 일을 그만뒀다. 자신은 아이들 건사하느라 일을 할 엄두가 나지 않는다. 월 76만원의 기초생활수급비로 아이들의 병수발을 들고 목구멍에 풀칠해왔다. 더 버티기 힘들다는 평소 입버릇처럼 정씨는 그렇게 삶을 마감했다.

2007년에는 전남 담양에서 한 아버지가 희소병으로 20년간 투병한 아들의 산소호흡기를 떼어 숨지게 했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자식의 생명을 제 손으로 끊을 수밖에 없었던 아비의 심정이 어떠했을지 가늠조차 하기 어렵다. 100조원 복지 시대에 희소병을 가족에게만 맡기는 것은 사회적 직무유기다. 이쯤 되면 희소병은 질병이 아니라 사회적 재해다. 재해를 방치하는 나라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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